성화는 타오르고 있는가
성화는 타오르고 있는가
20년 전만 하더라도 문학인으로 등단하는 것은 국가고시에 패스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등단의 문이 좁았다. 몇 개 중앙 신문사의 신춘문예와 권위 있는 서너 군데 월간지 신인문학상 공모가 전부였다.
그래서 문인이 되려면 문학청년 기간을 거치면서 문학에 대한 열정과 경외심으로 오랜 각고의 습작 기간을 거쳐야 했다.
그래서 등단이라는 영광은 개인뿐 아니라 마을의 경사였고 축하를 받을 일이었다.
그러나 근래 들어 문학인들이 많이 배출되면서 문학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문학이 더 이상 고상한 것이 아닌 하찮은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문학인들이 경시 당하는 풍토는 정부의 문화정책에서 기인한다.
아니 정책이 잘못된 게 아니라 정책 시행이후의 사회 변화에 대한 대비책을 생각하지 못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문화의 세기’에 맞춰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까지 ‘문화원’, ‘문화의 집’이 늘어났고 대학마다 평생교육원을 개설하면서 생활예술로서의 문학을 확산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예술의 대중화는 특히 문학부문에서 엘리트문학인의 지원보다 문학의 인프라를 구성하는데 치중했고 그 결과 지방에 문학관이 생기고 문학지망생들을 다량 생산하게 되었다.
MB정부가 들어서면서는 문화예술지원 4대 정책을 마련하면서 그 중에 생활예술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렸다.
그런데 말고삐를 잡으면 말을 타고 싶어하는 게 인지상정이라 평생교육으로서의 문학을 수강하고 일정과정을 수료한 문학애호가들은 무슨 자격증이라도 따듯 앞 다투어 등단의 길을 찾았다.
이를 부추긴 게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기 백 개의 문학잡지사들이다.
이들 잡지사들은 등단 장사를 했고 심한 잡지는 한 달에 스무 명씩 시인, 작가들을 양산해냈다.
그 결과 맞춤법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문인의 자격(?)을 남발하다 보니 어느 마을에선 한 집 건너 시인, 수필가라는 비아냥을 듣게 됐다.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문학인 행세하니 꼴사납다는 말일 게다.
상황이 이렇게 까지 된 데는 기성 문인들 책임도 크다.
즉 특정 잡지사 운영위원이나 편집위원으로 참여하는 제주 문인들이 자신의 영향력 과시나, 해당 잡지사 출신 문인들이 세 확장, 또는 잡지사 경영에 협조(?)하기 위하여 설익은 문인 배출에 중매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중에는 탄탄한 내공을 가진 문인들도 더러 있지만, 문학의 이름으로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글들 속에 예술이 주는 훈훈한 향기나 감동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은 찾아보기 어려워 졌다.
문학인이라는 사람들 스스로가 예술의 존엄성을 무참하게 유린하고 있는 것이다.
평생을 문학에 천착하며 문학이라는 성터를 지켜 온 선배들 대하기가 자괴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시대는 바야흐로 무한경쟁 시대다. 좋은 작품을 쓰는 사람만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하면 ‘나 홀로 문인’이 될 뿐이다.
문학인이라는 이름은 명예가 아니라 멍에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더욱 그립듯이, 문학인은 힘들고 고난한 세상을 헤치며 빛을 찾아내야하는 멍에를 져야 한다. 그래서 부조리한 세상 때문에 아프고 고통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희망과 구원의 메시지를 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써 내야 한다.
그런 작품으로 독자에게 인정받을 수 있어야 진정한 문인이다.
소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작가는 예술의 성전에 성화를 지키는 전사’라고 했다.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무슨 시대착오적인 소리냐고 할 지 모르지만 시대가 변해도 문학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작품을 쓸 때마다 늘 내 자신에게 묻는다.
과연 내 예술의 성전에 성화는 타오르고 있는가?
2011년 4월 1일자 <제주매일> 세평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