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에서의 행복했던 여름
2011년 마라도의 여름은 창작 열기로 뜨거웠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지원하고 제주작가회의가 주관한 레지던스 프로그램(예술인 상주제도)에
참가를 신청하고 7월 중순부터 한 달 여간 마라도에 자발적 유배를 신청했다.
마라도에 입주를 결심한 이유는 내가 30여 년간 해온 문학 작업에 대한 한계를 절감하고,
고갈된 창작력에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가하는 작가로서의 진퇴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려는 절실한 마음에서 였다.
결국 자신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마라도 기원정사에 입주했다.
시간은 무한하게 나를 향해 열려 있었지만, 그 시간들을 철저하게 구속하며 자신을 채근했다.
아침 5시 30분에 기상하여 한 시간의 운동으로 땀을 흘리며 시작되는 일과는
하루 10시간의 집필 시간을 확보하려고 입주 작가들과의 커피 타임도 불참했다.
신문도 텔레비전도 없는 휴대전화도 끊고 며칠간은 인터넷도 불통인 섬에 나를 가두었다.
처음 며칠은 불안하고 갑갑했지만 자신을 해체시키고 그간 발표한 작품들의 문제점들을
정비해 나가는 과정에서 평온함을 찾을 수 있었다.
직장, 가정, 사회적인 문제들에서 벗어나 수형인처럼
철저하게 몸을 구속 시키니 문학적 상상력이 자유롭게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마라도에서 난 많은 변화를 느꼈다.
태풍 무이파의 영향으로 고립된 7일은 소중한 체험이었다.
태풍이 지나가는 길목에 위치했던 마라도는 그야말로 정적과 공포 속에 휘감겼다.
하루 종일 바닷가에 앉아 스스로 전율하는 바람과 섬을 삼킬 듯이 달려드는 설원의 산맥 같은 파도들을
보노라니 태풍의 에너지가 내 몸 속 용광로에 불을 지핌음 느꼈다.
그래서 잠재된 문학적 에너지가 한 없이 용출되면서 세 편의 새로운 작품을 얻었다.
지난 여름은 너무도 행복했다.
작가로서 이처럼 치열하게 작품에 몰두했던 시간이 있었을까?
철저하게 내 자신을 흔들고 부정하면서 그 속에서 자신감과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음에 만족한다.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마라도 주민들과 많은 영감을 준 마라도의 자연에 감사한다.
이런 장소를 흔쾌히 제공해 준 기원정사 혜진 스님과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한 김수열 선생과
제주작가회의, 그리고 마라도를 자주 드나들면서 먹을거리를 준비하고 잔심부름을 마다 않은 조중연 선생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오랜 기간 한 솥 밥을 먹으며 늘 맑은 담소와 격려로 함께 했던 4명의 입주 작가들은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각인 될 거다.
함께 한 시간들이 행복했다. 고맙다.
이제 난 유배지에서 만기 출소하지만 앞으로 기원정사에서 쓴 많은 문인들의 작품들이
각광을 받으며 마라도창작스튜디오 프로그램이 성공을 거두기를 바란다.
내 문학의 전환점으로 기억 될 2011년 마라도의 여름은 정말 행복했다.
2001. 8. 14
마라도 기원정사를 떠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