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집 외할머니 발간
작가의 글
내가 사는 세상과의 화해를 위해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창작의 시간은 행복하다.
글 쓰는 일에만 오롯이 마음을 쏟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 마라도에 나를 가두며 맛본 그 행복감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세상은 생각만큼 아름답거나 행복하지 않다.
추하고 더러운 모습이 활개치고 기쁨보다 슬픔이 많다.
그게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리얼리티다.
때로 세상은 내가 바라는 반대의 방향으로 치달을 때가 많다.
이런 모순되고 불합리한 일들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지만,
눈과 귀를 닫고 위선과 쾌락과 단순함으로 무장하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니 나는 늘 동시대와 불화의 관계에 놓인다.
이것이 글을 쓰는 이유다.
여기 실린 작품들은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화해를 위해 건네는 메시지다.
네 번째 작품집을 묶고 다시 길을 떠난다.
이번엔 천직으로 여겼던 직장도 그만 두었다.
또 다른 문학의 지평을 찾아 치열하게 천착하기 위해서다.
부족한 작품에도 늘 격려와 사랑으로 지켜봐 주시는 유민영 선생님께 고마움을 전하며,
사랑하는 가족과 내 이웃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2012년 8월
발문
대기만성형의 극작가
-제4희곡집 출간에 부쳐
柳 敏 榮 (전 단국대대학원장. 서울예대석좌교수)
내가 중견 극작가 강용준을 처음 만난 것이 1980년대 후반이므로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뀐 세월이다. 그런데 수년에 한 번씩 어쩌다 만나면 이상스럽게도 늘 보던 사람 같이 친근감이 든다. 그 이유는 물론 그의 인품에 기인하는 것이겠지만 그보다는 그가 변함없이 창작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벌써 네 번째 희곡집을 낼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좌고우면하지 않고 줄기차게 창작에 전념하고 있어서임은 두말할 나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찍부터 강용준을 제주 앞바다 속에 묻혀있는 진주보석 같은 대기만성형의 극작가로 보고 있었다. 그 이유는 네 가지에 있다.
첫째 그는 누가 자기를 알아주던 그렇지 않던 상관 않고 한결 같이 한 톤으로 작품을 쓰고 있는 극작가다. 주지하다시피 상당수의 극작가들이 화려하게 각광을 받으면서 등장해도 몇 편의 작품을 내고는 사라지고 만다. 가령 내가 수 십 년 동안 데뷔시킨 수 십 명의 극작들 중 현재 활동하고 있는 작가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런 점에서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힘을 발휘하는 강용준의 저력은 놀라운 것이다. 이번에는 그가 창작에 전념하려고 교직까지 내놓는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가.
두 번째로 강용준은 누구보다도 무궁무진한 제재를 가진 극작가라는 점이다. 그것이 다름 아닌 제주바다와 ‘신화의 섬’의 아픈 역사이다. 바다를 인생으로 바라보고 작품을 쓴 경우는「노인과 바다」의 헤밍웨이라든가「모비디크」를 쓴 허먼 멜빌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강용준이 유일하다. 삼면이 바다인 한국에서 해양극이 나오지 않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인데, 다행히 강용준이 존재함으로써 그런 아쉬움은 사라지게 되었다. 더욱이 4·3사태는 제주작가만이 제대로 쓸 수가 있고, 그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제주사람들의 정신적 치유가 달려있는 만큼 강용준의 도전은 계속되어야 할 것 같다. 그는 이미 새로운 각도에서 그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세 번째로 그는 호흡이 긴 극작가라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체로 상당수 극작가들이 단막극으로 승부를 거는데 비해서 그는 항상 장막극으로 대결한다. 대학에서 제대로 국문학을 공부하고 희곡을 써왔기 때문에 탄탄한 구성력과 세련된 언어구사가 돋보이는 극작가인 것이다.
네 번째로 그가 여타 극작가들과는 달리 중앙으로 삶터를 옮기지 않고 끝까지 자기 고장에 묻혀서 창작을 하고 있는 점이다. 외국의 경우는 세계적인 작가들도 수도보다는 자기 고향에서 작품을 쓰고 있는 예가 적지 않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일단 등단하면 모두가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온다. 물론 성공한 예도 없지는 않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극작가들이 세태에 찌들어 시들어 버린다. 그러나 강용준은 다르다. 그는 결코 제주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언제나 싱싱하게 살아 숨쉰다.
끝으로 대부분의 극작가들의 경우 처음에 반짝했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작품이 나빠지는데 반해 강용준은 그 반대의 경우이다. 내가 그를 대기만성형으로 보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제4희곡집 상재를 거듭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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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2012. 8. 28. 한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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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작가 강용준씨(본사 논설위원)의 희곡집 ‘외할머니’가 발간됐다. ‘방울소리’, ‘폭풍의 바다’, ‘파도에 길을 묻다’에 이어 네번째 희곡집 ‘외할머니’에는 2008년 제주문학 48·49호를 통해 발표된 ‘황금나무과수원’과 제주특별자치도무용단의 무용극의 토대가 됐던 ‘탐라순력도’ 등 총 7편의 작품이 수록됐다. 제주인의 삶의 기록이자 존재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제주의 신화, 역사, 바다를 소재로 희곡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그는 이번 작품집을 통해 신화 속 ‘자청비’, 역사속 인물인 홍윤애와 조정철, 4·3 희생양인 세 젊은이 등을 통해 세상을 본다. 특히 ‘외할머니’는 생태계 파괴와 급속한 서구화의 물결을 타면서 시장경제 논리에 의해 잠식해가는 향토적이고 전통적인 것들에 대한 소중한 기억과 향수를 외할머니를 통해 드리우고 있다. 대선을 4개월도 남겨두지 않은 지금, 정의로운 사회와 사심없는 구민을 위해 일한 능력 있는 인재가 낙선하는 선거판의 단면을 희극적으로 그린 단막극 ‘나순량 후보’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유민영 서울대 석좌교수는 강씨의 희곡집 발간에 부쳐 “대체로 상당수 극작가들이 단막극으로 승부를 거는데 비해 강씨는 항상 장막극으로 대결을 하는 호흡이 긴 극작가”라며 “탄탄한 구성력과 세련된 언어구사가 돋보이는 극작가”라고 말했다. 경희대 국문과와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강씨는 극단 이어도를 창단하고 제주연극협회 회장, 제주문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도서출판 연극과인간,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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