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도 신언서판은 유효하다
중국 당나라 때 인재등용 조건은 신언서판(身言書判)이었다.
헌데 요즘 정부 고위직 관리 인사검증 청문회를 보면서 이 신언서판의 의미를 다시 생각 하게 한다.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해보자. 신(身)은 신수, 용모를 뜻하나 요즘 말로 첫인상이라 해석할 수 있겠다.
첫인상의 중요성을 초두효과(Primacy Effect)로 설명하는데 처음들은 정보가 나중에 들은 정보보다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처음에 좋은 인상을 준 사람은 이미 뇌리에 깊게 각인되어 남이 그를 나쁘게 평가해도 믿지 않는 다는 말이다.
박 대통령의 수첩에 적힌 인물들, 그래서 고위관리로 낙점 받은 사람들은 그런 초두효과의 영향으로
인간됨과 과실을 모른 채 낙점 받았지만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며 낙마했다.
그래서 사깃꾼일 수록 고급차를 타고 다니고 명품 브랜드로 자신을 치장한다.
현대의 선거도 홍보물에 나타난 후보자의 사진만 보고 지지자를 선택하는 이미지 효과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다음으로 언(言)은 그 사람의 평소에 한 말과 글이다. 말과 글은 그 사람의 세계관 인생관 곧 그 사람 정체성을 드러낸다.
언론인 출신 모 인사가 총리후보로 추천을 받았지만 과거에 행한 글과 말 때문에 결국 낙마하지 않았던가?
말 한 마디 때문에 인간관계에 금이 가고 필화로 인하여 역사의 죄인으로 낙인 찍힌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말과 글을 삼가 해서 신중 하는 것은 옛 선비들의 신조였다.
서(書)는 지식을 말하는데 요즘 말로 어느 분야의 전문가를 뜻한다.
그러나 오늘날 박학다식이 취업이나 인생 지침의 충분조건은 되지만 성공의 필요조건은 아닌 듯하다.
젊음과 열정을 바치고 많은 돈을 들여 박사학위를 땄어도 취업 안 돼 백수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또 곡학아세의 처신으로 망신을 당하거나 손가락질 받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어느 분야의 대가가 되었어도 그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거나 질시를 받게 되면 그 전문지식은
취업이나 출세의 장애가 되는 게 오늘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판(判)은 사물의 이치를 깨우쳐 아는 판단력을 말한다.
이 판단력은 처신의 문제다. 대법관 출신의 총리 후보가 전관예우를 받아 짧은 기간에 범부들이 상상조차 어려운 수당을 받은 것이나,
교육부장관 후보가 제자 논문을 자기 것인 양 사용해서 연구수당을 받아먹고 승진의 자료로 사용했다
낙마한 것 등은 판단력이 잘못 됐기 때문이다.
자신이 차마 정부고위관리가 될 줄 모르고 탈세를 하고 위장전입을 하여 폭리를 취하고 이권에 개입해 경제적인 부를 취득했다면
자업자득인 꼴이다. 출세에 눈이 멀어 자신의 과실도 모르세로 덮으려는 꼴이 가관이다.
평상 시에 보수 정부를 득달같이 공격하며 진보 논객을 자처하던 사람이 정부의 부름을 받자 하루 아침에
자신의 정체성이나 지조도 버리고 정부의 홍위병 노릇을 하던 사람들의 말로는 멜로드라마의 종말을 보듯 매우 익숙한 광경이 되었다.
권부에 있던 사람들의 위세가 크면 클수록 권좌에서 내려 온 후에 원성과 죄 값은 비례한다.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부친 잘못된 정책으로 늘어난 부채와 파괴된 자연환경과 이미 외국인에게
팔아넘긴 부동산과 고통 받은 사람들에 대한 보상은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현대 사회는 인간관계 망에 의해 움직인다. 위정자들은 네트워크를 이용해 줄을 대고 욕망의 에스컬레이터를 타려고 한다.
허나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늘 자신을 살피고 내려갈 길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지 못할 바엔 아예 나서지 않음이 말년의 행복을 담보하는 현명한 길이다.
제주논단(제주일보. 2014.7.21.)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