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는 작가보다 현명하다
작가는 자신이 생각하는 단면적 삶의 현상을 다루지만 독자는 삶의 본질을 찾으러 돋보기를 들이댄다.
작가의 세상은 편협될 수밖에 없지만 독자들의 삶에 대한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작가는 한 구멍을 통하여 삶을 깊게 통찰한다면
독자는 자기만큼씩의 구멍을 통하여 때로는 작가보다 더 깊게 때로는 더 넓게 인생을 조망한다.
작가는 달을 가리키지만 독자들은 더 넓은 우주를 본다.
그래서 같은 작품이라도 독자들의 생각과 느낌이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일전에 독후감을 심사하면서 느낀 소회다.
한마디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게 부끄럽다.
내가 쓰고 있는 작품이 그들에게 어떤 울림으로 다가갈까?
그런 가치라도 있는 것일까?
생각이 이런데 까지 이르자 글 쓰는 것이 두려워졌다.
세상에 나와 있는 수많은 작품집들,
작가는 최선을 다하여 썼다고 하지만 그 중에 대다수는 감정의 토사물, 교묘하게 포장된 위선들,
현학적이지만 알맹이가 없는 작품들, 읽고 나면 시간 아깝고 사기당한 느낌이 드는 작품들도 많다.
따지고 보면 내 작품들도 그렇다.
때로는 시류에 영합하여 나도 여기 있소 하고 손들며 내놓은 작품도 있고,
가슴으로 쓰지 못하고 책상 앞에 앉아 머리를 쥐어짜며 꾸며낸 이야기며,
원고청탁을 받고 시간에 쫓기어 설익은 채로 내놓은 작품들도 있었다.
그걸 눈치 챈 독자들은 실망하고 사기꾼이라고 분개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정말 미안하고 죄송하다.
어찌 보면 작가들은 사기꾼의 기질을 타고 난 것인지도 모른다.
몇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지만 수 천 명을 죽이면 영웅이 되듯이
섣부른 사기는 비난을 받지만 그럴 듯하게 포장된 마술은 박수를 받는다.
눈속임은 사기고 마음을 움직인 마술은 감동이 된다.
좋은 문학 작품들은 마술과 같다.
그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도 아니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소재와 장치를 찾아내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때 명작이 된다.
남의 글을 읽는 것은 자극이 된다.
그것도 평론가의 전문적인 비평이 아닌 평범한 독자의 독후감들은 많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결국 문학작품이라는 것도 작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의 배설물이 아닌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어야 한다.
공감을 얻지 못하는 작품이 어찌 문학인가.
과거에 문학의 주체와 효용가치가 작가에 머물렀다면
현재는 작가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하나의 오브제가 문학이며
독자들에게는 가치 있는 삶을 찾기 위한 선택지가 된다.
당연히 선택의 권리는 독자들에게 있고 선택받지 못한 작품들은 소음이나 쓰레기가 된다.
내가 펴낸 작품집들도 그런 운명을 무수히 맞이했으리라. 반성한다.
독자들의 시선은 동시대를 함께 살며 함께 고민하고 그 해결책을 함께 찾고자하는 동반자의 안목이다.
어려운 시대가 영웅을 낳듯이 날카로운 평가가 좋은 작가를 탄생시킨다는 걸 새삼 알았다.
그래서 함부로 쓰지 말 것이며 써놓고도 수백 번을 생각하고,
내놓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가 되면 발표하라던 대학시절 은사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독자들의 독후감을 통해
작품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무엇을 써야할 것인지
등단한지 30년이 넘고서야 고민하게 됐으니 나도 어지간히 우둔한 놈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