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여름에 읽을만한 소설
황시운 『그래도 아직은 봄밤』
인간 실존의 문제를 얘기하는 작가의 시선은 날카로우며 뭉클하다. 탄탄한 구성과 상처받은 인물들에 대한 심리묘사가 공감을 준다. 작가 자신의 처지를 대비시킨 「매듭」은 단연 뛰어나다. 단편 하나하나가 신선하며 완성도가 높다.
김숨 『듣기 시간』
트라우마 때문에 정신마저 파편화된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인터뷰. 치매 걸린 할머니의 과거를 찾아가는 증언 형식의 소설이 새롭다. 감각적이며 소름 돋을 만큼 치밀한 묘사, 묵음의 시간을 채워나가는 과정이 진지하며 감동적이다.
정인 『누군가 아픈 밤』
과거의 아픈 기억을 통해서 현재를 재구성하여,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인간 삶의 이면을 파헤치는 작품들이다. 조곤조곤한 문체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김이정 『네 눈물을 믿지마』
내가 누구인가를 찾는 여로, 낯선 곳 사람들과의 교유에서 얻는 인생에 대한 지혜와 고뇌가 편편마다 새로운 공감을 준다. 편안하게 녹아드는 문체, 파산, 이혼 등 고통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작가의 시선은 의지적이고 따스했다.
강명희 『65세』
소시민들의 고통을 자신의 언어로 담아내 소리없이 흐르는 개울 같은 단편들이다. 중년과 노인들의 문제, 세대 간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한 따뜻하고 긍정적 시선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김주욱 『물북소리』
제주4·3을 현재화시켜 폭력의 문제를 소리의 파장으로 표현하려 한 시도가 참신하다. 환청의 시원을 쫓아 정적 속에 내재된 폭력의 의미를 권력의 속성으로 확장시킨
알레고리가 흥미롭다.
김탁환 『당신이 어떻게 내게로 왔을까』
탄탄한 서사와 번뜩이는 잘 계산된 문장, 사건의 진행에 맛깔스럽게 녹아든 배경과 심리표현. 개척하며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는 주인공.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치밀한 사건 전개와 충격적인 반전 등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코로나19 덕분에 출판사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한다. 많은 작가들이 그들만의 컴컴한 동굴 속에 앉아 인간의 아픔, 고뇌를 치유할 수 있는 백신을 만들듯 문학 작품들을 책으로 펴내기 때문이다.
작가로서 동종업자의 작품을 읽는 것은 즐거움이다. 작품을 읽으면서 어떤 영감을 얻기도 하고, 새로운 트랜드를 알아야하기 때문에 소설가는 다른 소설가의 작품을 꾸준히 읽어야 한다. 특히 젊은 작가들의 번뜩이는 작품들은 한국 소설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두근거리기도 한다.
토지문화관에서 퇴소하고 나서 본격적 여름이 시작되었고 코로나19는 4번째의 팬데믹으로 번져서 집 밖을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기도 하지만 많은 소설을 읽을 기회가 생겼다. 읽었던 소설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작품들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