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는 벤치
설계
강용준
2024. 4. 11. 09:46
설계 設計
강영은
나는 내가 빈집일 때가 좋습니다.
침묵이 괴물처럼 들어앉아 어두운 방을 보여줄 때 고독한
영혼이 시간과 만나 기둥이 되는 집, 증거 없는 희망이 슬픔
과 만나 서까래가 되는 집.
우주의 법칙을 속삭이는 별빛과 그 별빛을 이해하는 창가
와 그 창가에 찾아든 귀뚜라미처럼 우리는 하나의 우주 속
에 들어 있는 벌레라고 우는 집.
희고 깨끗한 미농지를 바른 벽이 도면에 있어 닥나무 껍
질에 둘러싸인 물질의 영혼처럼 영혼의 물질처럼 나는 당신
안에 있고 당신은 내 안에 있어 충만한 집.
내가 알고 있는 숲은 결코 그런 집을 지은 적 없어 새장
같은 집을 그릴 때마다 영혼을 설계하는 목수처럼 종달새가
날아와 얼키설키 엮은 노래로 담장 쌓는 집.
수백 년 묵은 팽나무가 지탱하는 그 담장에 걸터앉아 떠
오르는 해와 지는 해를 바라보는 일. 그것이 빈집의 업業일
지라도
욕망의 가구가 놓여 있지 않은 그런 빈집이 나였으면 좋
겠습니다. 가슴 다친 새가 앉았다 가는 내 집이 멋지지 않아
서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