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나무 가지치기

2023 제41회 대한민국연극제 심사평

강용준 2024. 5. 4. 11:20

2023대한민국여극제 제주 대상 시상식

 

2023 41회 대한민국연극제 심사평

 

 

 

먼저 바다 건너 제주까지 와서 열연을 펼쳐주신 참가팀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대한민국연극제는 한국 연극의 현재를 가늠하고 미래의 발전 가능성과 방향을 점치는 판이자, 공연예술의 지역 간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41회 대한민국연극제도 우리의 수준과 발전 방향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로 인해 풍성한 축제가 되었습니다.

 

 

 

연극의 사명은 거울을 자연에 가까이 갖다 대는 일입니다. 따라서 인간과 사회의 민낯을 반영하는 거울로서의 연극이 다루어야 하는 소재와 주제는 대단히 폭이 넓습니다. 41회 대한민국연극제에 출품된 총 15개 극단은 그 소재와 주제, 형식에 있어 대단히 다채로웠습니다.

 

 

 

<<참가작 총평 및 수상 이유>>

 

1. 진실을 원하지만, ‘진실이라 불리는 것의 진위 또는 순수성에 대한 의문을 가진 마음을 파헤친 <천사를 보았다>, 가면을 쓰고 사는 인물들이 거짓과 진실이 뒤섞이면서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빌미>, 고객 응대에 목숨 거는 감정노동자들의 작은 거짓말이 폭력으로 귀결되는 과정을 묘사한 <불멸의 여자>는 현대인의 위선, 그리고 존재 조건의 부조리와 불안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흥미로웠습니다. 그러나 빈약한 개연성, 내용과 형식의 부조화로 인해 의도가 드러나지 않아 크게 아쉬웠습니다.

 

 

 

2. 제주 해녀의 고달픈 평생을 그린 <울어라, 바다야>, 포상 휴가 중 만난 가장의 난파와 신뢰와 애정을 잃어버린 그 가족의 난파를 다룬 <난파, 가족>, 아버지가 남긴 농가의 처분을 두고 벌이는 갈등을 다룬 <무좀>, 치매 할아버지의 고운 첫사랑의 기억에 대한 오해와 소동을 다룬 <옥이가 오면>은 모두 가족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 공감이 컸습니다, 이 중 <울어라 바다야>는 신파조의 대본의 한계에 갇혀 수상의 기회를 놓쳐 안타깝습니다. 두 가닥의 이야기를 재치 있게 엮어 하나의 주제로 끌고 간 <난파, 가족>, 주제는 약했으나 배우들의 고른 기량과 뛰어난 연기 앙상블이 돋보였던 <무좀>은 가산점을 받았고, 드문 소재와 깊이 있는 주제, 그리고 연출방식과의 조화가 돋보인 <옥이가 오면>은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3. <꿈속에서 꿈을 꾸다>. <끝나지 않은 시간>, <배소고지 이야기> <1945> <밀정의 기록> <간절곶-아린 기억> <산책, 신채호의 삶과 사랑이야기> <애관: 보는 것을 사랑하다>는 한국 근현대사를 소재와 배경으로 삼은 작품들입니다.

 

<꿈속에서 ...> <끝나지 않은 시간> <산책 ..> <애관>은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과 인물을 소재로 삼았으나 불분명한 주제와 개연성이 부족한 대본, 산만한 연출이 모두의 기량과 열정을 제대로 담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긴장감이 떨어지지만 흥미로운 이야기와 세련된 연출이 돋보인 <밀정의 기록>, 대본과 연출, 그리고 연기의 균형을 고루 갖춘 <간절곶..>을 수상작에 올렸습니다.

 

 

 

대상작 결정에 있어 즐거운 고민에 빠지게 했던 <배소고지 이야기><1945> 두 편은 각각 초연의 아성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각과 개성 있는 연출방식이 돋보였던 수작이었습니다.

 

해방 직후 귀향열차를 타기 위해 장춘의 조선인 전재민 구제소에 모여든 사람들, 그 중 해방을 맞았으나 과거의 행적에 묶인 명숙과 미즈코, 그리고 선녀의 사연을 중심으로 해방의 의미를 묻는 <1945>는 간결하면서도 스피디한 전개, 대도구의 재배치만으로 표현한 시공간의 변화, 안무와 제스처로 나타내는 상황과 심리 묘사, 공들인 조명과 음악, 소품의 활용 등이 돋보였습니다.

 

 

 

한국동란 당시 배소고지라는 작은 못을 배경으로 네 소녀가 겪어야 했던 전쟁을 다룬 <배소고지 이야기>는 대본, 연출, 연기, 무대 기술 모두 뛰어난 秀作이었습니다. 역사의 뒤안에 가려진 여성의 사연을 인간의 보편적 서사로 풀어내고 살기 위해 또는 살리기 위해 선택한 길과 그로 인해 달라진 여정, 그리고 마침내 고백으로 자신을 회복하는 네 여자의 이야기를 섬세한 교직으로 직조한 대본이 든든한 바탕이 되었습니다. 수시로 변하는 시공간과 불현듯 닥치는 위기 상황을 상징적 미장센과 코러스의 영리한 활용으로 세련된 무대 미학을 완성한 연출은 대단히 뛰어났습니다. 양민학살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추상적 무대 위에 우화 형식으로 풀어내어 보편성을 확장하고 완성도 높은 공연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을 대상으로 뽑았습니다.

 

 

 

<<희곡상>>

 

초연작을 대상으로 하는 희곡상을 두고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희곡은 문학에 속하지만, 이야기나 소설과는 다릅니다. 또한 공연을 전제로 하니, 고유한 문법이 엄연히 존재합니다. 희곡은 생생한 인물, 인과관계가 뚜렷한 플롯을 갖춰야 하며 주된 질문과 깊이 있는 주제를 담고 있어야 합니다. 아쉽게도 소재는 흥미로우나 주제를 끌어내지 못해 이야기에 머무른 경우도 적지 않았고, 개연성이 부족한 에피소드의 나열로만 이루어진 대본도 여럿 있었습니다.

 

마땅한 대상작이 없었지만 연극 공연에서 희곡의 의미와 가치를 고려하여, 그리고 더 좋은 작품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난파, 가족>에게 희곡상을 주기로 했습니다. 부디 관찰과 사유, 그리고 묘사와 통찰의 힘을 길러 더욱 감동적인 작품을 생산하길 바랍니다.

 

 

 

<<연출상>>

 

연출상 후보는 <1945>의 최종혁과 <배소고지 이야기>의 김희영이었습니다.

 

해방은 되었지만,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기차를 기다리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다룬 연극 <1945>는 숙이와 덕이라는 아이들을 해설자로 활용한 점. 큐브의 다양한 배치로 변화가 많은 공간과 동선을 표현한 점. 노련하지는 않지만 진심이 어우러져 조성된 연기 앙상블, 인간성에 대한 날카로운 해부와 페이소스의 균형, 모두가 간절히 원하는 해방으로 가는 기차를 몸짓으로 풀어낸 점 등 크게 칭찬할 점이 많습니다. 또한 효율성과 미학을 모두 갖춘 무대디자인, 현실적 배경과 심리적 상태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표현한 영리한 조명, 극적 상황과 심리를 담은 섬세한 음악, 정성 들여 만든 소품과 소품의 적절한 활용도 뛰어났다.

 

<배소고지 이야기>의 김희영은 최종혁의 미덕에 더해 코러스의 영리하고 세련된 활용이 돋보였습니다. 이 두 편의 아름다운 무대를 만든 연출가를 두고 즐거운 고민을 한 끝에 정교하게 다듬어 가슴으로 스며든 <배소고지>의 연출가 김희영을 연출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무대예술상>>

 

무대예술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일은 대단히 힘들고 또 즐거웠습니다. 작품의 배경이자 배우들이 노는 무대를 채우는 조명, 세트, 음악, 영상, 소품, 의상 등의 작업을 솜씨 좋게 해치우는 뒷 광대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 조명은 이 모든 것들이 없어도 장면의 정서와 인물의 심리를 나타내는 역할을 수행하기에 조명분야에서 수상자를 뽑았습니다. 특별히 <배소고지>의 김성구씨는 마루형 무대와 주변 공간을 입체적으로 채우면서 인물과 사건의 결과 색을 안개처럼 채워 정서의 질량을 시각화한 조명 덕분에 인물의 심리는 물론, 극적 전개와 장면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면서 미학적 완성도를 보여줬다. 그러나 <배소고지>는 조명 안에서 배우들이 연기가 놀았고, <1945>는 배우의 연기를 조명이 따라가면서 극적 분위기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1945>의 조세현 디자이너에게 수상하기로 했습니다.

 

 

 

<<연기상>>

 

최우수 연기상은 만장일치로 <배소고지>의 코러스팀에게 돌아갔습니다. 간결하고 상징적인 무대에 전쟁 중 자신을 지킬 수 없었던 세 여자의 기억을 풀어낸 고통의 서사를 강약이 섬세하게 조절된 합창에 담아냈고, 막대기를 이용한 절제된 군무와 제스처는 죽창의 폭력과 학살의 공포를 스펙터클하게 전달함으로써 그 어떤 배우의 연기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사건과 정서와 주제를 시각화했습니다.

 

신인연기상 후보들도 많아서 즐거웠습니다. <무좀>의 김채이, <1945>의 남태인, <꿈 속에서 꿈을 꾸다>의 이종화, <빌미>의 김정규, <옥이가 오면>의 조은진이 후보에 올랐고, 발군의 연기력으로 대사와 대사 사이를 메운 조은진과 김정규에게 상이 돌아갔습니다.

 

 

 

수상작과 작가들께는 축하의 박수를, 수상의 기회를 놓친 극단에게는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다시 한 번 기본에 충실하라는 당부를 드리면서, 대한민국 곳곳에서 연극인의 열정과 열심히 연극예술의 감동을 들불처럼 일으키리라 기대합니다. 연극 만세!

 

 

 

심사위원장 강영걸

 

심사위원 강용준, 김미정, 김성노, 박정희, 이동훈, 이현기

 

(대표 집필 김미정)

 

김성노, 김미정, 강용준, 강영걸, 박정희, 이현기,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