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나무 가지치기

제주 연극 환경과 공연의 완성도 제고를 위한 제언

강용준 2024. 6. 23. 10:37

                                            2024년 6월22일 문화예술연구소함덕32에서 열린

                                            2024제주연극연출비평심포지엄 발제자들과 함께

 

 

제주 연극 환경과 공연의 완성도 제고를 위한 제언

 

강용준(제주극작가협회 회장)

 

1. 전국연극제 제주 개최의 영향과 변화

 

. 10회 전국연극제

제주 연극이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한 계기는 두 번의 전국연극제와 제41회 대한민국연극제 제주 개최라고 할 수 있다.

1992년 제10회 전국연극제가 처음으로 제주에서 개최되었을 때, 연인원 2만 명이라는 최다 유료 관객이 극장을 찾아 전국적으로 화제가 됐다. 전국 각 지역의 예선을 거쳐서 경연에 참가한 수준 높은 공연에 제주 관객은 열광했고, 제주에 연극 붐이 일어났다.

전국연극제의 제주 개최는 제주 연극인들에게도 큰 자극이 됐다. 무대 메카니즘에 대한 눈이 뜨이게 되었고, 이러한 연극 붐은 신생극단의 창단 러시가 일어났다.

1992극단자유, 1993극단세이레, 극동우회다솜, 1995년에는 극단아라, 극단거리가 창단되었다. 한편 기존 극단 단원들이 이합집산의 형태로 창단되면서 연극인들 간 분열상을 드러내기도 했다. 극단세이레, 극단다솜을 제외하고는 지속적인 활동을 보이지 못하고 몇 년 안 돼 해산되고 말았다. 각 극단들이 연기자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젊은 연극인들이 공연에 참여하면서 연극 인구의 저변 확대가 이루어진 것은 고무적이었다.

극단이 많아지면서 소극장 운동이 일어났다. 소극장을 가진 극단은 장기 공연, 레퍼터리 공연을 하면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연기 훈련으로 작품의 완성도가 탄탄해졌다.

타 지역과의 활발한 교류로 제주의 연극을 육지부에 알리고, 중앙의 수준 높은 공연이 제주에서 성황을 이루게 된 것도 전국연극제 개최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 19회 전국연극제

2001년 제19회 전국연극제가 다시 제주에서 열렸다. 9년 만에 전국연극제가 제주에서 개최되면서 제주의 연극계는 다시 한번 도약의 기회를 맞이했다. 그러나 제주 연극은 극단의 분화, 전문화가 되지 못한 연극인력, 연기자와 제작자들의 안이한 태도 등으로 예전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전국연극제의 성공적인 개최 이후 전국연극제의 제주 상설화, 국제연극제의 창설, 공립극단 설립 문제가 부상했으나, 제주 연극인들이 총의를 모으지 못하고, 행정 당국의 무관심으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전국연극제의 붐은 엉뚱하게 상업적인 어린이뮤지컬의 범람을 가져왔다. 육지 극단들이 앞다투며 제주에서 어린이뮤지컬을 공연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대극장의 공연 일수가 늘어났다. 이는 제주 극단에도 영향을 주어, 한때 성인 상대의 정극을 도외시하고 돈이 되는 어린이 연극을 제작하는데 심혈을 기울이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또한 이 시기에 소극장과 대극장이 늘어났다. 2002년 대극장, 소극장을 갖춘 한라아트홀이 개관했고, 2004년 간드락소극장, 2006년 한국방송예술원소극장, 2007년 미예랑소극장, 세이레아트센터가 각각 개관되어 소극장 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2010년대에는 제주국제대학교 체육학부에 공연예술학전공이 생겨 연극인들이 양성되었고, 이곳 출신들이 2019극단공육사를 창단하여 활동하고 있다.

 

. 41회 대한민국연극제

2023년 제41회 대한민국연극제가 22년 만에 제주에서 개최되었다.

한국연극협회는 대한민국연극제 유치 기념 세미나를 2022년에 개최하면서 중앙의 연극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제주도립극단 설립의 당위성을 개진하고 행정당국의 긍적정인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이에 2023년 대한민국연극제 개회식에서 제주도지사는 제주국제연극제의 창설을 약속했지만, 2024년 윤석열 정부의 예산의 긴축재정 방침으로 제주의 연극인들은 한숨만 쉬고 있다.

41회 대한민국연극제는 제주의 연극인들에게 희곡과 연출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었다. 재료가 좋아야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듯이 연극도 희곡이 좋아야 연출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 희곡의 중요성을 절감한 제주 출신 극작가들이 제주극작가협회를 창립한 것은 대한민국연극제 개최의 성과라 할 수 있다.

제주극작가협회는 2022년 제41회 대한민국연극제가 제주에 유치된 이후 중앙의 극작가, 평론가 등과 함께 제주극작심포지엄을 가졌고, 협회 구성의 필요성에 동감했다. 이후 제주 출신이거나 연고가 있는 극작가 11명이 모여 2024쓰당보난 희곡제주극작가단편선을 발간하고 제주극작가협회를 공식적으로 출범시켰다. 젊은 작가들의 활동에 기대가 크다. 앞으로 제주극작가들의 지속적인 연수와 노력을 통해 독특하고 우수한 제주 관련 작품들이 발굴되기를 기대한다.

 

2. 행정의 연극공연 지원 실상

 

2023년 말 유인촌 문화체육부장관은 전국지역예술단체 10곳을 선정하여 10억 원씩 2년간 지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른바 지역예술단체 육성지원 방안인데 새로운 아이디어로 창의적으로 활동하는 단체를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제주연극협회에서는 제주국제연극제의 창설이나, 제주도립극단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도지사와 면담하고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했는데 실무자 검토 과정에서 막히고 말았다. 결국 1:1 매칭 방식인 것이 걸림돌이다. 10억 원을 지원받으려면 자치단체에서 10억 원을 부담해야 하는데 행정실무 당국에서 난색을 표해서 결국 신청도 하지 못했다.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로 말미암아 지역 예술지원행정은 더욱 쪼그라들었다. 그 여파로 2024년 제주의 연극계는 대단한 폭격을 맞은 셈이다.

제주소재개발 창작극공연더불어놀다연극제행사 지원 (8천만원) 자체가 없어져 버렸고, 대한민국연극제 예선, 본선 대회 예산이 7천만 원에서 42백만 원으로 축소되었다. 소극장축제는 거의 3분의 일 수준(45백만원에서 18백만원)으로 축소 되었다. 협회 소속 단체의 연극축제인데 극단(7)2백만 원도 안 되는 예산 지원으로는 행사를 기획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예산을 감축할 때마다 제일 만만한 게 예술 지원 예산이다. 어느 시대에 예술가들이 따슨 밥을 먹을 정도로 대우받은 적이 있었겠는가만은 항의 한 번 제대로 못하는 예술가들의 점잖은 심성을 행정 당국이 악용하고 있다. 예술이 고사하지 않기를 간절히 빌어야 하는 상황이다.

극단별 상황도 녹녹치 않다. 공연장 상주단체지원의 경우 예전에는 제주문예회관, 제주아트센터, 설문대여성문화센터, 예술의 전당, 김정문화예술센터 등을 활용하여 상주단체와 예비상주단체를 선정 지원하고 있었으나 2024년도에는 전국무용제 행사, 내부시설 정비 등으로 서귀포 2개 공연장만 운영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 극장은 물론이고 한라아트홀을 임대하여 공연단체에 대한 지원 대상과 기회의 폭을 넓혀야 한다.

정부의 예산 기조가 정상화되어 기존의 연극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이 회복되기를 기대한다.

 

3. 제주 극단의 실상과 완성도 제고의 조건

 

70여 년의 역사 있는 제주 연극계는 그 역사나 타 지역 연극계와 비교할 때 공연 수준이 결코 우수하다고 할 수 없다. 인구 비례로 따지면 극단의 수나 연극 공연 횟수는 많은 편이고 극장을 찾는 마니아들도 적은 편은 아니다. 10여 년 전에 비해 소극장도 많아졌고, 예산 지원도 다원화되어 인프라나 연극 환경은 매우 나아졌다.

그러나 극단의 공연 수준은 관객들의 기대치에 못 미치고 있고, 이는 제주 연극에 대한 외면 또는 폄하의 요인이 되고 있다. 결국 공연의 완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인데 이는 제주 극단의 구조적인 현실과 연극을 대하는 자세에서 기인한다.

제주의 기존 극단의 역사는 4,50년이 되는데 대표 1인 극단도 있고, 노쇠한 연기자들이 많다. 연극에 대한 열정은 사라진지 오래고 매너리즘에 빠진 연기자가 많다. 연기자의 순환이 원할치 못해 제자리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제주국제대학교에 공연예술학전공과가 생겨서 연극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전문연극인이 배출되고, 기존의 연극인들이 재교육을 받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연극 전공자가 많이 배출되어 제주의 연극이 한층 업그레이드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제주 극단들이 많기는 하지만 전문가가 부족하고 분업화가 덜 된 게 안타깝다. 극단 대표가 희곡을 쓰고, 연출하고 연기까지 겸업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분야별 전문화가 필요하다.

작가와 연출가의 겸업 문제는 극단의 공연을 매너리즘에 빠지게 한다. 작품의 수준이 고정된 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악순환을 지속하기 때문에 완성도 제고는 고사하고 공연을 위한 공연의 한계에 갇힌다. 자작 연출을 하면 작품은 작가의 시선을 벗어날 수 없다. 작가가 생각하는 의도를 연출가는 다른 시각에서 해석할 수 있고, 연출가의 창의적인 의도에 따라 윤색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제고시킬 수 있는데, 자작 연출은 작품의 다양한 해석을 차단한다는 면에서 한계가 있다.

완성도를 제고시키지 못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극단의 제작 기간이 너무 짧은데서도 기인한다. 어느 극단에서는 한 달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작품을 만들어 공연하기도 했는데 이는 연극예술과 관객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연기자들의 창조적인 캐릭터 창출은 고사하고 대사도 다 암기 못 하고 무대에 선 것은 뻔한 일이다. 이러한 일은 재정적 지원을 많이 받는 극단에서 일어난다. 계획된 공연을 예약해놓은 공연장의 일정에 맞추어야 하기에 늘 기한에 쫓겨서 생기는 일이다. 거의 동일한 연기자로 일 년에 일곱 작품을 공연하기도 했다. 연극은 상품 찍어내듯이 만들어지는 게 아닌데 과욕을 부려서 어느 작품 하나 완성도 높은 공연이 되지 못했다. 충분한 제작 기간을 가지기 위해 공연 작품 수도 줄여야 한다.

 

극작가가 내놓은 희곡은 공연의 재료다. 이 재료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형식으로 만들어 놓을 것인가는 연출가의 몫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오랜 역사를 가지면서 오늘까지 세계적으로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으며 공연되는 것은 희곡의 문학성 때문이다. 그런 문학성이 높은 희곡이 있어야 연출가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창의적인 무대를 만들 수 있다.

고전 명작은 시대, 인종, 국가를 초월하여 연출가마다 창의적으로 재해석해 내기 좋은 작품이기에 세계 여러 나라의 무대에 오르고 있다.

제주 연극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우수한 희곡 선정과 희곡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해 낼 수 있는 재능 있는 연출가가 많아져야 한다. 좋은 희곡을 선정하는 능력도 연출가의 몫이기 때문에 공연의 성패는 연출가의 손에 달려 있다.

연출가의 양성과 재교육 문제는 비단 제주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연극을 전공하지 않은 연기자가 많은 지역에서는 어느 극단이나 겪는 문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중앙의 연극협회나 연극교육기관에서 정기적으로 지역별 교육과정을 개설하여 연출가의 역량 강화를 위한 연수 기회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