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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 세상이야기

정이 뭣산디

강용준 2011. 11. 28. 09:07

 


“생부모는 정자․난자 은행에 불과하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스티븐 잡스가 한 말이지만 세계적인 부와 명성으로 성공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 치곤 너무 충격적이다. 물론 젊은 시절 자신을 버린 친부모에 대해 한이 맺혀 하는 소리겠지만, 성공한 자신에게 부모가 의지할 까봐 만나지도 않았다는 말은 좀 심하다. 이는 서양인의 부자 관계에 대한 가치관을 여실이 보여주는 말이다. 그는 혼전 동겨녀와의 사이에서 난 딸을 궤변을 늘어놓으며 인정하지 않았다.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사고관이다.

자신을 버린 부모의 병환을 고칠 약수를 구하기 위해 험난한 여정을 감행한 「바리공주」나, 역시 자신을 버린 부모를 찾기 위해 잔치를 베풀고 부모의 눈을 뜨게 한 「가믄장아기」설화를 듣고 자란 세대들의 입장에서 보면 도저히 이해 안 되는 말이다.


언젠가 죽어가는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장기를 이식한 자식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공공의 적’이라는 영화에는 재산을 탐내는 패륜 자식의 칼에 의해 목이 잘려 죽어가면서도 자식을 위해 잘린 자식을 손톱을 삼키는 어머니의 모습이 나온다. 이게 한국의 부모관이다.

자식의 과외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자식의 잘못을 숨기고 대신해 감옥까지도 감수하는 게 전통적인 한국인의 가치관이다.

이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끈끈한 정으로 맺어져 있기 때문 가능하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육아를 하고, 유아원부터 대학교까지 교육을 시키고, 결혼까지 시켜야 하는 무한 책임을 지고 있는 게 불문율처럼 되어있는 현대 한국 부모의 보편적 자식관이다.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손자를 낳으면 맞벌이 자식들 위해 손자 양육까지 도맡아야하니 늙을 때까지 편히 허리 펴 볼 날이 없는 게 현대 부모의 팔자다.

자식에게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괜히 상전 모시듯 자주 찾아보지 못하거나 남들만치 못해주면 괜히 미안해 지는 게 부모다.

그렇게 우리의 전통적 부자관계는 정으로 연결되어 왔고, 자식이 부모에 대한 효도를 백행의 근본으로 삼았다.


얼마 전, 하나 있는 아들을 장가보냈다.

옛 부터 무릎엣 자식이라 했다. 부모의 무릎에서 뛰놀 때만이 부모의 통제권(?) 아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슬하(膝下)라는 말이 생긴 모양이다.

육지에서 직장 생활하는 아들을 한 번이라도 더 볼 심산으로 제주 출신 며느리를 바랐지만, 세계화를 부르짖는 세상에 그런 속 좁은 생각이 어디 있느냐고 기어코 대학교 다닐 때부터 사귀었다는 육지 며느리를 데리고 왔다. 하긴 말이 안 통하는 외국며느리를 안 데리고 온 것만도 다행이다.

장가라는 말은 처갓집과 관련 있는 말이다. 장(丈)은 어른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처가 부모를 장인(丈人), 장모(丈母)라고 한다.

 장가 간다, 장가들인다라는 말은 처갓집으로 보낸다는 말인데 예전에 혼인을 하면 며칠 간 처갓집 생활을 하던 유래에서 나온 듯하다.

그래서 아들은 나면 처갓집 자식이 되고, 며느리 남편이지 아들의 역할을 바라지 말라고 하는가 보다.

며느리는 시집온다고 했다. 예전 대가족 시대 아들이 혼인하면 안거리를 내어주고 밖거리에 살며 밥도 따로 해먹고 경제권도 분리하는 게 제주도 풍습이다.

요즘 세상에 부모 모시고 살려는 자식도 없거니와 상전 같은 며느리를 모시고(?) 살 뱃장 좋은 부모가 몇 명이나 될까?

떨어져 살면 손자 보고 싶어서 자식 집을 자주 왕래하고 싶은데, 그것도 계절 해산물과 밑반찬 해들고 가는 핑계를 대며 자식들 눈치를 봐야 하는 세상이니 부모 역할은 참 고달프고 외롭다.

 

제주논단(제주일보. 2011. 11. 28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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