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정원joon

예술정원을 산책하며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오솔길 세상이야기 66

너 돌아갈래?

3월이다. 새 봄이 시작된다. 봄은 기다릴 것이 없는 사람에게도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대를 하게한다. 취학이나 진학을 하는 학생들에게도 3월은 희망의 시간이다. 밀레니엄이 시작되던 해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을 봤다. 주인공 영호(설경구)가 마주오던 열차 앞에 서서 ‘나 돌아갈래’를 외쳤던 그 장면은 아직도 마음 속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다. 「박하사탕」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시나리오 구성 자체가 특이해서다. 영호를 덮쳤던 열차가 뒤로 밀려나면서 과거에서 과거로 즉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차적인 독특한 구성 때문에 스토리텔링을 강의하면서 모델로 사용해서다. 작품은 왜 주인공이 죽을 수밖에 없었는가를 7개의 챕터로 보여 주고 있다. 20년 전 소풍 장면에서 첫사랑 순임에게서 받았던 세..

새해 설날 복 많이 받으셨나요

금년 설은 여유로운데 어쩐지 허전하다. 아침에 차례상을 차리니 동생네 부부와 조카가 찾아왔다. 거리두기 6명 제한은 맞춘 셈이다. 작년 설엔 거리두기 때문에 집에서 차례도 지내지 못하고 과일 몇 가지, 빵 몇 조각, 소주 한병을 들고 조상들 모신 납골 묘를 아내와 찾았었다. 차례를 지내고 아침 겸 점심을 먹는데 서울 사는 아들네에게서 동영상 전화가 왔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손녀와 새해 여섯 살이 된 손자가 나란히 엎드리며 영상 속에서 새배를 한다. 새배를 받으며 덕담을 하면서도 영 마뜩지 못하다. 품에 안지는 못할망정 그래도 손이라도 잡아야 하는데 자그만 영상 속에서 웃는 손주들과 아들 내외의 얼굴이 왜 이리 서운하게 느껴지는지. 남의 식구들 같다. 하루가 멀다하고 부쩍부쩍 커가는 손자들 모습을 보..

2022년(임인년)의 계획

2022년에 나는 이런 계획을 세웠다. 우선은 제주문학관 관장의 임무에 충실해야겠다. 사실 작년 10월 23일 제주문학관을 개관하고 나서부터는 정신없이 바빴다.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집을 짓는 것처럼 새로운 출발이라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기존 제주문학의 집에서 하던 프로그램들은 제주문학학교라는 이름으로 지속한다고 하더라도 제주문학관을 이끌어갈 방향을 정하고 개별 사업들을 만들어내는 일은 오롯하게 내게 주어진 책무다. 운영의 방향은 ‘제주문학 진흥의 플랫폼, 창의적인 문학 아고라’로 정했다. 제주문학관을 매개로 해서 제주문학을 진흥시키고, 창의적인 프로그램들을 마련해서 문학의 광장으로 만든다는 의미다. 이러한 취지를 실현하기 위해 제주문학을 연구하고 도민들이 향유하기 위한 제주문학관의 상징..

자랑스러운 40년 연극인 부부 제자

40년 전 그러니까 1981년은 극단이어도를 창단한 지 3년이 되는 해다. 당시 극단이라고는 하지만 연극환경이 열악해서 연습실은커녕 사무실도 없던 상황이었다. 지금처럼 나라나 행정 당국에서 지원을 해 주는 것도 아니었고, 주머니를 털어 연습 후 주린 배를 라면으로 때우던 때였다.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고 전두환 군사정권이 들어선 때라 연극 공연에 대해서도 박해에 가까울 정도로 간섭과 감시가 심하고 대본은 검열을 받아야 했다. 대본을 암기하고 공연 준비를 마쳤는데 검열에서 공연불가 판정이 나온 경우도 있었다. 내가 세 들어 살던 당시 코리아 극장 맞은편 골목 두 칸 방 집에서 리딩 연습을 했고 동작 선 밟기는 중앙로 무용학원이 비는 시간을 기다려 공연 준비를 하던 때였다. 어느 날 잘 아는 교사가 소문을 ..

영원히 기억될 2020년이여 안녕

새해가 시작되었을 때 내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 생각은 나지 않지만, 부지런히 달려온 열차가 2020년 마지막 정거장에 들어섰을 때 내가 펼쳐든 문학 결산서는 역대급 흑자였다. 2월부터 시작된 바이러스 공세가 내 행동 반경과 생각을 위축시켰지만 용케도 포로가 되지 않은 건 크나큰 축복이기도 했고, 이에 대처하는 변화무쌍한 인간 군상을 목격하면서 내 문학의 주름도 조금 깊어진 듯하다. 4월도 중순이 되어서야 이천 부악문원 창작실 문이 열렸고 매일 숨이 가쁘게 뒷산을 오르며 체중을 줄이듯 생각들을 정리했다. 7월 말 까지 100여 일 동안 스스로를 가두면서 자발적 격리 상태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두둘겨 패고, 죽이고, 미워했던가? 그래도 살아남은 글자들은 그런대로 한 풍경 속에 용해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

잘못 쓰이는 제주 지명 새별오름과 화북

잘못 쓰이는 제주 지명 새별오름과 화북 제주 지명은 일제 강점 시대를 거치면서 아름다운 우리 지명이 한자어로 바뀌어 많이 변했다. 이는 한글을 말살하려는 정책의 일환이기도 하다. 제주라는 뜻은 물 건너(濟) 마을(州)이란 뜻이다. 한자어로 바뀐 제주지명 중에 시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름이 애월이다. 애월(涯月)은 ‘물가의 달’이라는 뜻이다. 고려 시대에 애월현으로, 조선 시대에는 제주목을 중심으로 좌면과 우면으로 나누면서 서면(西面) 또는 우면(右面)에 속했다. 18세기 중반 이후 신우면으로, 1914년에 제주군 신우면이라 했다. 1936년 에야 애월면으로 바꾸었다 이 애월읍 관할 지역에 들불 축제로 유명한 새별오름이 있는데 이 새별오름을 옛 사람들은 새벨오름, 새빌오름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이 오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