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들
극단세이레극장(정민자 연출. 2011년 12월 10일 )
세계 2차 대전을 겪은 일련의 예술가들은 전쟁의 후유증으로 허망감에 빠진다.
그리고 잔인하고 포악하게 살육하는 장면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으며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회의와 성찰에 빠진다.
그래서 그들은 야수성과 선량함의 양면성을 가진 인간에 대한 연구와 분석에 들어갔고,
그 결과 연극에서는 부조리연극이라는 하나의 사조를 만들어냈다.
부조리 연극이란 말 그대로 논리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조리가 없는 연극이다.
논리와 감정과 구조의 해체를 선언하고 소통이 불가능한 부조리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이 계열의 대표적인 작가가 ‘고도를 기다리며’를 쓴 사무엘 베케트, ‘수업’, ‘대머리여가수’를 쓴 유진 이오네스코, 그리고 장주네다.
장주네의 인생은 파란만장 그 자체다. 남창인 아버지, 산원에서 유기로 인한 빈민구제시설에서의 보육,
어려서부터 절도로 소년원 수용과 탈옥 후 외국 방랑, 남창, 거지, 마약운반 등 밑바닥 인생을 살았다.
그의 특이한 체험이 특이한 작품세계의 바탕이 되었다.
장주네의 ‘하녀들’은 두 자매 쏠랑주와 끌레르의 연극놀이라는 틀 속에 인간의 폭력성과 욕망, 구속과 자유,
저주와 경의, 신분 상승과 일탈 등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다 담고 있다.
이 극은 연출의 해석에 따라 무궁무진한 에너지를 공연 상에서 보여 줄 수 있는 실험 연극으로
극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없이는 이해하기가 난해한 작품이다.
극단 세이레의 하녀들은 기본적인 이야기 틀 속에서 비교적 관객들이 다가가기 쉽게 해석하고 있지만
마담을 여장남자로 연출한 부분이 오히려 관객들에게 혼동을 주었다.
자기도취에 빠져 허영을 좋아하는 마담,
자신들을 악취 나는 하수구처럼 무시하는 마담을 죽이기 위해 커피에 다량의 수면제를 타지만
마담은 커피를 마시지 않고 오히려 쏠랑주(명희)가 일부러 마시고 죽는다는 내용이다.
연극은 두 자매의 역할극으로 지루하지 않게 진행되었지만 감동을 얻기엔 2% 부족한 무엇이 있었다.
결국 일상이 지겨워지니까 독을 마시고 자결하는 걸까?
아니면 존재론적 결핍을 끝내 해결할 수 없어 자결로 출구를 찾으려는 걸까?
선택과 해석은 관객의 몫이다. 애초 조리가 없는 연극을 논리로 이해하려 들면 더욱 혼란에 빠지기 쉽다.
세계의 명작들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는 극단 세이레의 작업에 박수를 보내며,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은 관객과 재미 있게 교감할 수 있는 쉬운 작품을 선정해 달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