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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흐르는 특성화 마을

강용준 2011. 12. 31. 10:23

 

 

‘시가 흐르는 특성화 마을’


작년 여름 한림읍 금능 해수욕장에서 열린 ‘길위의 인문학’이란 전국도서관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석양이 지는 해변에서 비양도를 배경으로 펼쳐진 ‘시 속을 걷다’란 시낭송 행사는 잔잔히 부서지는

해조음에 시 향기가 어울려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동네 주민과 문학애호가들, 관광객이 어우러진 축제의 마당이었다.


며칠 전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특성화 마을’이라는 단어에 눈길을 두게 되었다.

특성화 마을 사업은 소외된 농어촌의 생활환경을 개선하여 삶의 공간을 문화적으로 가꾸기 위한 일환이다.

삭막한 도심환경을 창조적인 공간으로 재생하기 위한 공공미술사업도 마찬가지다.

살기 좋은 쾌적한 환경과 경제적으로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사업이 특성화 사업이라면

마을마다 가지고 있는 자연적 환경과 특산물을 활용한 특성화가 자연스런 현상이다.

   

제주도에서도 오래전부터 자연생태우수마을, 풍력발전지구 마을 지정하여

특성화 마을 조성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읍면 단위마을의 리모델링이나

주거지 미관 개선 차원에서도 대단히 좋은 사업이다.

그러나 똑같은 마을이 여러 개 있다면 그것은 특성화가 아니다.

특성화란 독창성과 적합성, 정체성과 공감이 요체다.

제주는 어느 마을이나 똑같은 구조와 색채를 갖고 있지만,

그 고장의 자연환경과 특색에 맞는 특성화로 마을마다 차별성을 둔다면

제주는 더 다양한 모습을 갖춘 살아있는 문화의 도시가 될 것이다.


금능을 ‘시 마을’로 특성화 시켜보면 어떨까?

금능은 푸른 바다 저편의 비양도를 품에 안은 맑은 모래의 긴 해수욕장과

한림 공원의 우거진 숲과 멀리 한라산이 내다보이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이곳에서 바다를 보노라면 시인이 아니라도 시를 읊조리고 싶을 만큼 자연 속에 시가 녹아 흐른다.

이 마을엔 작은 도서관이 있고, 돌을 시처럼 다룬 석물원이 있고,

이런 자연 환경 속에서  여러 명의 시인을 배출한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


마을 곳곳에 시화 작품을 아담하게 만들어 전시하고, 집집마다 시가 쓰여진 문패를 걸어 놓으며,

식당이나 커피숍의 메뉴 판에도 시를 써놓고, 소월의 거리, 떠나가는 배 횟집, 아무개의 나무,

아무개 바위 등 시인과 시 제목으로 명명해 놓고

스토리텔러 등을 통해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낸다면 금상첨화 일 것이다.

주말이면 시 콘서트가 열리고, 저명한 시인들을 초청하여 만남을 주선하고,

시집과 시를 활용한 기념품을 파는 가게, 시 체험 공간,

여름이면 해변에선 전국 시인 축제가 열리고, 시낭송대회,

바다와 섬을 소재로 한 시공모전, 전시공간을 마련하여 365일 시 전시회가 열리고,

시집과 시인에 관련된 사물들을 수집하여 시박물관을 만들고,

시인들이 정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든지,

시 창작스튜디오를 개설하여 외부 시인들이 거주를 한다면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으로 몰려올 관광객들의 입을 통하여 금세 관광 명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회화의 마을, 조각의 마을, 소설의 마을, 민요의 마을 등으로 세분화하여

국제자유도시를 마을마다 개성이 넘치는 예술문화 도시로 가꾸어 보면 어떨까?

 

특성화 마을의 구상과 계획은 하루아침에 이루어 질 수는 없다.

마을마다 테스크포스 팀을 만들어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행정 당국의 행․재정인 지원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선 마을 주민의 공감과 적극적인 참여가 전제 조건이다.

주민들의 하나 된 마음이 큰 자산이기 때문이다.

강용준(희곡작가, 제주문인협회 회장)

제주논단(제주신문 2011.12.28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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