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제주문학상 심사 경위
신화와 역사를 통한 세상 보기를 격려함
제12회 제주문학상 심사 대상 작품집은 모두 24권이었다.
이는 해당 장르 등단 10년 이상의 작가가 최근 2년 내에 (2010.11.1~2012.10.31) 출간한 창작집의 총수로,
시 · 시조 · 소설 · 수필 · 아동문학 · 희곡 등 다양한 장르가 망라되었다.
양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예년에 비해 대단히 풍성한 소출이다.
1차 심사에서 기 수상자의 작품집 5권을 제외했고,
당연직 심사위원인 김길웅 협회장의 수필집 2권도 관례에 따라 심사 대상에서 내린 다음,
16명의 작가가 출간한 17권의 작품집을 본선에 올렸다.
본선에 오른 작품들은 '제주문학상 운영규정'에 의거,
무엇보다 치열한 작가정신이 투영된 문학성 획득 여부에 방점을 찍고 심사를 진행했다.
물론 장르의 특성상 작품만으로는 상대적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울 경우를 대비해서
제주 지역의 문학 발전 및 협회에 대한 기여도도 염두에 두었다.
난상토론 후, 최대한의 공정한 심사를 위해서 무기명 투표로 수상자를 결정하자는
한기팔 심사위원장의 제안을 받아들여 16명 전원을 투표에 부쳤다.
투표 결과를 보고 심사위원 모두가 놀랐다. 심사위원 6명 전원이 강용준 희곡작가에게 표를 던진 것이다.
강용준 작가는 1987년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아 등단한 이래 지난 25년간 희곡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제주를 굳건히 지키며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꾸려왔다.
이번 수상의 영예를 안은 그의 4번째 희곡집 『외할머니』는 표제작인 「외할머니」부터
「황금나무 과수원」, 「탐라순력도」, 「나순량 후보」, 「간병인」, 「귤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해경(解警) 무렵」에 이르기까지 작품마다 서사를 깐깐하게 굴려 테마를 세우는 솜씨가 빼어났다.
하여 심사위원들은 강용준 작가가 오랜 잠에 빠져있던 제주의 아름다운 신화와 설화,
비극적인 역사 등을 되작여 오늘날의 보편적 삶과 부조리한 현실에 절묘하게 접목하는데
발군의 능력을 발휘한 점에 주목했고, 작가의 이러한 능력은 창작의 처절한 고뇌를 통해 얻은
탁마(琢磨)의 결과물이라는데 인식을 같이했다.
또한 그가 변방에서 활동하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삼성문학상', '한국희곡문학상'을 수상했고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창작지원금'과 '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수혜한 사실을 통해
이미 탁월한 이야기꾼의 자질을 여러 차례 검증받았다는 점도 참고했다.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제12회 제주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강용준 작가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낸다.
'작가의 글'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이제 '또 다른 문학의 지평을 찾아 치열한 천착'의 길을 나선
강용준 작가에게 오늘의 이 영광이 앞으로 창작의 길 위에서 무시로 마주하게 될 고통의 순간들을 이겨내는
무한한 용기와 격려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더욱 정진해서 우리 문단의 우듬지에서 우뚝 솟아 빛나는 작가가 되기를 기원한다.
심사위원장 한기팔
심사위원 김길웅 고성기 박재형 정윤택 오을식
수상소감
직장을 다니다 퇴직한 사람들이 가장 큰 고민은 갑자기 할 일이 없어져 정체성에 혼란이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상황이 바뀌어서 막막한 시간 앞에 놓여진 자신에 대한 회의감과 위축감.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무기력함.
필자 역시 명퇴를 준비하기 전부터 이 시간 보내기에 대한 계획부터 골몰했다.
공직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 준비과정에서 무언가 획을 긋기 위한 작업이 필요했고
그래서 희곡집 『외할머니』를 묶었다.
그리고 가까운 지인들을 모시고 조촐하게 마련한 명퇴기념 출판기념회에서 공언을 했다.
지금은 4번째 희곡집이지만, 누가 읽든 읽지 않든 공연이 되든 안 되든
10번째 희곡집을 발간하는 날까지 치열하게 작가로서의 삶을 살겠노라고.
퇴직 후 일부러 마라도로 백담사 만해마을로 3개월 집을 떠나 유랑의 시간을 가졌다.
글도 썼지만 그간 읽지 못한 책을 읽으면서 사색과 명상의 시간을 많이 가졌다.
녹이 많이 슬어 있음도 자각하고 그 동안 게으름에 대한 반성도 했다.
발목을 쥐고 있던 많은 사슬에서 풀려난 자유로운 영혼과도 조우했다.
마라도 밤 바다의 정적과 쓸쓸함, 망망대해 앞에 보잘 것 없는 인간 나상.
만해마을 앞 냇가를 핥고 가는 사나운 물길도 만났고, 거침없이 떨어지는 폭포,
저 만치 혼자 숨어서 피는 이름 모를 들꽃을 만나는 시간도 좋았다.
그리고 창작집필촌에서 만난 젊은 작가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문단 세상의 변화도 읽었다.
세상사는 것이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제주문학상은 제주도 유일의 제주를 대표하는 문학상이다.
아직도 많은 등단 선배님들이 계시는데 내가 먼저 상을 받게 되어 송구스럽다.
필력으로 따지면 나는 아직 청춘이고 써야할 시간이 많은데,
커다란 매듭 하나 짓고 다시 정진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기쁘다. 매사가 일체유심조라 했는데 새로운 출발에 활력이 솟는다.
더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다.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리고 문우 여러분들과 내 이웃들에게 영광을 돌린다.
2012년 초겨울 볕 좋은 날
사라봉 기슭에서 강 용 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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