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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 서평

강용준 2012. 12. 18. 08:54

 

 

- 이 글은 제주문화예술재단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삶과 문화>2012년 겨울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강용준 희곡집 <외할머니>


내가 사는 세상과의 화해


정민자 (세이레어린이극장 대표, 한국연극협회 제주지회 부회장)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2년 전, 필자가 극단 이어도 문을 두드리고 당시 극단 대표였던 강용준선생님을 처음 만난 건 1980년 겨울이었다. 당시 공연준비를 하고 있었던 선생님께서는 나를 무척 반갑게 맞아주셨다. 학교와 집, 그리고 과외하러 다니던 집과 도서관 말고는 갈 곳도 없던 나로서는 연극은 새로운 도전이었고 모험이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연극 활동을 해 올 수 있었던 건 선생님의 서글서글한 눈매와 허허 웃는 웃음소리가 큰 몫을 하지 않았나 여겨진다. 물론 함께 활동을 했었던 동료들의 연극에 대한 열정이 나로 하여금 함께 할 수 있게 자리를 내어준 것도 크다. 당시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으로 근무하시면서도 매일 공연 연습하러 오시는 선생님은 참 부지런하신 분이라고 생각했다. 극단 사무실이 따로 없어 늘 무용학원의 수업이 끝나야 연습할 수 있었던 그 당시 우리로서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암담한 연극현실 속에서 자기와의 투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선생님과의 인연은 11년 극단에서의 활동과 이어도를 나와 극단세이레극장를 창단하고 20년 넘게 창작활동을 해오면서도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그건 아마도 나를 꽤 아껴주시고 믿어주신 선생님의 배려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선생님께서는 네 권의 희곡집을 내셨다. 1987년 ‘월간문학’에서 희곡 부분 신인상을 타면서 등단해, <방울소리, 1990.3>, <폭풍의 바다, 1996.6>, <파도에 길을 묻다, 2007.8>, 그리고 <외할머니, 2012.8>.

선생님은 제주시 애월읍에서 태어나 오현고와 경희대 국문학과와 동 교육대학원에서 희곡을 전공해 고등학교에서 교편으로 후학들을 가르치며 극단 이어도 창단, 제주연극협회 회장, 제주문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지난 8월에 제주여상 교감으로 명예퇴직을 했다.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셨지만 그처럼 많은 활동을 하시면서도 4권의 희곡집을 내신걸 보면 정말 선생님은 부지런한 분이시다.

선생님의 작품의 주 소재는 제주의 역사와 신화, 그리고 제주바다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연극은 그다지 많지 않다. 희곡작가도 몇 안 되고 그들이 써낸 희곡 중에서 제주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공연으로 올린 작품이 몇 되겠는가? 강용준선생님의 작품은 그나마 다른 이들보다 많은 작품이 공연되었다. 극단 이어도를 창단하고 대표로 10년 넘게 활동을 해 오셨으니 그럴 만도 하다. <좀수의 땅>, <방울소리>, <좀녜>, <이어이어 이어도 사나>, <외할머니>, <탐라순력도> 등등. 나는 같은 극단에 있다는 이유로 선생님의 작품에 많이 참여를 했다. 그중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작품이 <이어이어 이어도사나>가 있다. 광주에서 열린 제2회 전국연극제에서 초연된 작품인데 일제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거친 근대사의 와중에서 상처받은 심학동이라는 인물의 일생을 다룬 작품이다. 일제치하에서 부역하는 조선인 ‘기무라’의 모함으로 고향을 떠나게 된 심학동이 해방이 된 후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제주의 4.3사건에 다시 연루되어 고향을 뜨게 되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정신이상의 상태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이해관계가 얽힌 동네사람들의 반목으로 안주하지 못 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제주도 신화와 역사, 제주민중의 삶을 꾸준히 극화해온 강용준선생님은 이번 희곡집 <외할머니>에서도 독특한 제주신화와 역사, 토속문화와 제주인의 생활정서, 강인한 제주사람들에 대한 자긍심이나 애정을 부각시킨다. 특히 작가는 <외할머니>라는 작품에서 우리 사회의 산업화로 많은 부분이 파괴되어 갔음을 밝히면서, 생태계 파괴와 더불어 인간성의 파괴를 가져왔고 급속히 서구화의 물결을 타면서 향토적이고 전통적인 것들을 잠식해 나갔음을 그리고 있다. 제주도에 골프장이 들어서면서 그 피해는 바닷가까지 오염시키는 결과로 이어졌고 골프장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포섭하려고 얄팍한 보상비를 내세우면서 주민들 간의 갈등을 초래한다. 그러나 옛날부터 제주사람들이 삶의 터전으로 여겨온 바다이기에 이를 지키려는 외할머니의 끈질긴 노력을 통해 인간성 회복문제를 다루고 있다. 외할머니는 바다가 친구이고 부모라 생각한다.


외할머니 : 바닷물이 짠데 왜 심심해? 바당이 내 친구고 어멍이야. 바당에서 났으니 물질하다 바당으로 돌아가는 게 이치고, 살만큼 살았으니 지금 당장 저승사자가 데려간대도 미련 없다. (중략) 평생 짠물에서 뒹군 년이 물 멀리하면 병나.


이렇듯 외할머니는 바다를 어머니뱃속처럼 따뜻하고 안정된 곳으로 여기고 있다. 왜 그러지 않겠나, 그 바다에서 억척스럽게 물질해서 아이들 기르고 시집장가 보내고 살림을 불렸으니 제주바다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일까, 그뿐이 아니었다. 제주여인들은 물질하고 나와 불턱에 앉아 사는 얘기며 남편 흉이며, 하물며 시부모 흉까지 가슴속에 응어리까지 다 쏟아내야 다음 날을 살 수가 있었다. 밭일을 하다가도 물때가 되면 바다로 향했던 제주여인들이다. 그런데 외할머니는 그 바다에 딸을 묻었다. 자식먼저 저 세상으로 보냈으니, 어미의 마음은 또 얼마나 찢어질 것인가. 그 바다를 막으려는 무리에게 할머니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를 악물고 바다를 지키는 것뿐이다, 바다마저 빼앗긴다면 삶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고 살 가치조차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었다. 그런 바다이기에 억울하고 분통 터져도 말을 못하고 한이 맺혀 가슴이 아릴 적마다 그 바다에 들어가 숨 비우며 달랬다. 그런데 그 바다마저 없다면 살지 말라는 말 아니겠는가.     

할머니는 엄마도 없는 외손녀하정을 길렀다. 하정은 어릴 때는 할머니를 따라 물질을 배웠으나 어머니가 바다에서 익사했다는 말을 듣고 물질을 그만두고 간호사가 되었다. 봉구와의 결혼을 앞두고 외삼촌네랑 함께 저녁을 먹자는 하정 말에 할머니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자식이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얼굴 한 번 맘대로 못 보는 며느리가 야속하기만 한다. 그런데 교사인 외삼촌은 불미스러운 일로 학교를 그만두게 되는 사건이 생긴다. 그 때 행방이 묘연했던 외할아버지 시신이 골프장 개발 현장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4.3사건 때 행방불명 됐던 외할아버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조차 몰랐던 외할아버지, 아직 살아있을 거란 바람은 없었지만 할아버지 유골이 나왔다는 말에 할머니는 억장이 무너진다. 하정은 석주모를 통해 자신의 부모님의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하정 아버지는 원양어선을 타던 사람이었는데 노름과 술로 세월을 보냈다. 어머니를 때리는 일도 예사였고 그걸 견디지 못했던 하정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이고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외할아버지의 장례식 날, 외삼촌은 술에 취해 땅문서를 찾으러 나갔다 되려 흠씬 두들겨 맞고 말도 못하는 불구가 된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할머니도 몹쓸 병에 걸렸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어떡하든 바다를 지키려는 외할머니를 도와 봉구가 진상조사를 하면서 주민동의서가 조작된 것임을 알게 되고 마을사람들은 시위를 한다. 결국 골프장 허가는 취소가 되지만 외할머니는 치매까지 보이고, 외삼촌이 깨어나자 외할머니는 이대로 있다가는 하정의 짐으로밖에 쓸모가 없다고 여기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하정 : 그렇게 외할머니는 바다가 되었습니다. 평생을 가슴에 못이 박힌 채 살아온 한 맺힌 과거도 파도에 묻혔습니다. 할머니 궤 속엔 한 벌의 무명 물옷과 새로 짠 망사리와 테왁이 들어있었고 제 이름으로 등기된 집문서가 있었습니다. 그건 저를 묶어놓은 끈이었습니다. 외할머니가 왜 그렇게 바다를 지키려했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바다는 할머니의 생명줄이자 위안처였으니까요. 저도 이제 바다에서 할머니의 품을 느낍니다.

 

제주여인네의 강인한 정신력과 생활력이 그려진 <외할머니>. 필자는 이 <외할머니>를 2010년과 2011년에 공연한 바 있다. 늘 희곡은 열린 텍스트로서 평론가나 관객이 읽기에 따라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고 또 공연될 때마다 연출가에 따라 새로운 시의성이나 해석이 덧붙여져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필자도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선생님의 동의를 받고 각색을 하고 공연을 했었다. 게다가 내 어머니도 해녀였다. 외할머니라는 작품이 마치 내 어머니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 더 열심히 매달렸던 걸로 기억한다. 세이레아트센터에서 공연했는데, 60석 작은 규모의 극장이 대부분 다 찼던 걸로 기억하고 관객의 호응도 또한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해경 무렵>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이렇게 다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인

물들이다. 작가는 이막순이라는 인물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통해 세파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늘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며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아름다운 인생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새로운 도전은 늘 도전으로 끝이 나는 게 안타깝다. 도전이 결실을 맺고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면 얼마나 좋겠나.  

<황금나무 과수원>은 제주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역사, 4.3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해방이라고는 하지만 남북으로 나뉘어 또다시 열강의 통치아래 놓이게 된 우리의 처지는 신탁통치 반대와 찬성 쪽으로 나뉘어 사회는 분란이 일어나고 국회를 구성하기 위한 선거 또한 제대로 치러지지 못했다.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친구인 세 젊은이들은 갈림길에 선다. 한 사람은 죄익으로, 한 사람은 우익으로,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는 무지렁이로, 누가 선택한 것도 아니고 그저 잘못된 권력이 그들을 갈라놓은 것이다.

<나순량후보>는 요지경 속 선거판의 단면을 희극적으로 그린 단막극이다. 돈을 가진 사람은 권력을 갖고자 하고 군림하고 싶어 한다. 말로는 국민을 위하고 주민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상 당선되고 나면 안하무인이고 제왕처럼 군림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영달보다 정의로운 사회, 정말 사심 없이 국민을 위해 일할 능력 있는 인재가 많이 출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고 한다.

<간병인>은 제주의 신화를 새롭게 재창조한 작품으로, 사랑의 농신으로 알려진 자청비와 사랑을 약속한 문도령의 이야기이고 <귤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는 조정철과 홍윤애의 사랑이야기다.

<탐라순력도>는 무용극이다. 제주도립무용단의 정기공연으로 올려진 극인데

필자는 운이 좋게도 조연출로 합류했었다. 탐라순력도 조선시대 이형상 목사

가 제주도내 고을을 순시하는 41장면으로 구성된 화첩이다. 탐라순력도는 조선 중기 제주사회의 풍속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이것을 무용극으로 극화한 작품이다. 작가는 41장면을 모두 무대화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서 몇 개의 장면을 창조적 관점에서 재해석했노라 작가의도에서 밝히고 있다.

자연재해와 척박한 풍토를 슬기롭게 이겨내며 자연 속에서 풍취를 즐겼던 제주 선인들의 멋과 풍류를, 외세의 침입에 대항했던 유비무환의 정신과 노인을 공경했던 미풍양속을 통해서 제주 선인들의 화합 의지와 삶의 지혜를 표현하려고 했다고 한다.  


연극은 사회의 거울이고 그 사회의 흐름을 가장 민감하게 투영시키는 예술이라고 한다. 우리의 모습, 그중에서도 현재의 자신이 아니라 현실이나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어 가는 우리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거울이다.  다시 말하면 연극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수히 느끼고 경험하고 슬퍼하고 좌절하고 하는 많은 경험들을 재료로 사용하면서 보다 포괄적이고 깊이 있는 의미와 색채를 부여하여 제시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단순히 시시하고 지루한 것이거나 평범한 것이 아닌 중대한 문제로 충만하고 감동으로 빛나는 것으로 만든다.

우리 자신을 비춰내는 거울이라는 예술관에 동의한다면 그 기능에 가장 충실한 연극이 리얼리즘연극이라는 것도 동의할 것이다. 리얼리즘 연극은 우리의 삶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하는 표현 능력 외에도 우리의 개인적, 사회적 삶의 모습과 영혼에 대한 탐구가 힘 있게 드러나야 한다고 한다. 동시대 한국인의 삶이라는 디테일을 구체적으로 그리면서 동시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생활의 억압을 폭로하며, 또한 인간의 내면적 세계를 깊이 있게 드러내야 한다고 한다. 그것이 리얼리즘 연극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연극계에서는 이런 리얼리즘연극이 설 자리가 없는 것 같다. 국적불명의 리얼리즘 연극들이 축제를 벌이는 것 같다는 어느 평론가의 말이 생각난다. 노란 가발과 사양의상만 벗어던지고 한국인의 모습 그대로 무대에 섰다뿐이지,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우리 삶의 모습이나 존재를, 혹은 우리의 정서와 심성, 언어를 진실하게 그리는 연극이 너무나 드물다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사실 모든 게  불확실하고 뒤죽박죽인 타락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리얼리티는 바로 이러한 타락한 시대를 타락한 방식으로 그려내는 데 있다. 우리는 연극에서 자기 자신을 보는 대신에 낭만적 허위만을 보게 되는 게 아닐까?

강용준 선생님의 작품은 표준어로 된 극, 표준어와 제주어를 혼용으로 사용한 극, 제주 민중의 토속적 대사들(제주어)로만 이루어진 극, 세 가지로 희곡을 창작하고 있다. 점점 사라져가는 제주어를 작품 속에 사용하는 것은 우리의 정서와 시적 리듬에 적합한 언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고 모든 지역사람들에게 소통되는 언어가 될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가장 지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라는 말이 진리일 수 있는 것은 그 특수하고 이질적이고 지역적인 것 속에 인간과 삶의 본질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적인 것의 보편화를 추구하는 선생님의 시도가 늘 존경스럽다. 부디 건강에 유념하셔서 창작에 전념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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