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무엇을 쓸 것인가
강 준(극작가/소설가)
아일랜드의 노벨문학상 작가인 예이츠가 프랑스 파리에 머무르고 있을 때 같은 아일랜드 출신 문학청년 존 밀링턴 싱을 만났다. 예이츠는 다섯 살 연상이었고 그의 작품에 대한 성가와 명성이 문단에서는 잘 알려진 때였다. 이에 싱은 자신이 쓴 작품을 예이츠에게 보이면서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작품을 잘 쓸 수 있느냐고 물었다. 싱의 재능을 알아본 예이츠는 당장 당신의 고향인 아란 섬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가서 아란 섬사람들의 생활과 언어를 연구하고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라고 했다.
결국 존 밀링턴 싱은 아일랜드의 아란 섬으로 돌아와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공연해서 독특한 작품이라는 평가와 함께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에이츠 역시 겔트 민족의 신화와 전설, 환상 세계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복원하고 그 속에 전해 내려오는 아일랜드 영웅들의 모습에서 아일랜드의 미래를 찾았고 그런 작품을 무대에 올리며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근래 제주문학사에 대한 원고를 쓰면서 제주문학의 범주와 제주 문인들이 무엇을 쓰고 있는지를 살펴볼 계기가 있었다. 자그만 섬이지만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제주를 다녀갔고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겼다는 것을 알았다.
섬은 멀리서 보면 서정이지만 들어가서 보면 서사다.
자연과 외세의 도전에 응전한 섬사람들의 생존 기록이다.
제주는 섬이어서 본토와는 다른 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세 언어의 뿌리를 간직한 고유한 제주어가 통용되고 있고, 돌과 바람 많은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풍랑에 목숨을 걸고 바다를 경작하며 이상향을 꿈꾸는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전설과 신화, 민요 같은 구비문학이 생겼고, 바다와 공생하는 해양문학, 유배 온 양반과 목관들이 남긴 유교문학, 4·3과 피난지로서의 전쟁문학 같은 독특한 문학 장르가 생겨났다.
이러한 다양한 장르가 제주문학의 경쟁력이다.
많은 선배 문인들은 제주의 이런 문학적 자양분들을 시와 소설, 희곡 작품으로 녹여내면서 독특한 자기만의 문학세계를 구축했다.
근래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을 거두고 있는 헐리우드 영화를 보라. 그 스토리텔링의 원천은 어느 시골 마을의 신화나 전설에서 가져온 것이 많다. 인디아나 존스, 반지의 제왕, 아더왕 이야기를 다룬 원탁의 기사, 카멜롯의 전설이 그렇고 그리스 신화에서 차용한 타이탄, 토르, 트로이, 신들의 전쟁 등이 그 예이다.
제주의 신화나 전설에서 이러한 대작을 만들어 낼 소재는 없을까? 천지개벽을 다룬 천지왕 본풀이, 신과 인간이 교류하는 자청비 신화, 해상의 다툼을 다룬 영등할망 이야기 등 찾아보면 무수히 많다.
제주 민요의 배경설화나 마을마다 자잘하게 전해 오는 전설들도 현대적인 상상력으로 각색을 하면 독특한 작품들이 될 수 있다.
제주 선인들은 바다를 경작하며 살아 왔다. 러시아와 중국 일본 등으로 물질을 다녔던 해녀들의 이야기, 해상왕국이었던 탐라국 시절 본토를 정복했던 역사적 이야기 등 해양문학의 소재들이 널려 있다.
또한 나라에 대역죄를 지어 귀양 왔던 유배객들의 이야기며, 이 섬에 종교가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박해를 받았던 성직자나 그 배경에 프랑스와 일본의 갈등도 좋은 소재가 아닌가?
제주는 섬이기 때문에 일본 왜구들이 침략한 기록들이 남아 있고 탐관오리들의 학정에 못 이겨 일어선 민란들도 문학작품으로 형상화시킬 수 있다.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는 4·3에 대한 이야기도 많은 성과를 이루긴 했지만 아직도 해방 공간에서 속절없이 산화한 수많은 젊은이들의 이야기들이 문학 작품으로 부활되어야 한다.
제주는 이렇게 서사 문학의 보고인데 왜 소설가가 많지 않은가 하는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시인은 넘치는데 소설가가 너무 부족하다.
문학청년들에게 소설 쓰기를 권한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문학의 원석들이 젊음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상상력으로 가공되어 보석같은 작품들이 탄생되길 기대한다.
섬 안에서는 섬을 볼 수 없어서일까?
현재 제주에는 기 백 명의 문인들이 활동하지만 의외로 제주의 역사와 문화, 제주인의 삶에 천착해서 작품을 쓰는 문인들이 많지 않음에 놀랐다. 오히려 육지에 사는 문인들이 제주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쓰고 있다.
도서관에 가서 김만덕, 홍윤애에 대한 작품을 찾으면 제주 출신 문인들의 작품은 열 권에 한 권도 안 된다. 그럼 그 많은 제주 문인들은 무엇을 쓰고 있는가?
기도 하듯 문학을 해야 한다. 기도가 타인의 기복을 소망할 때 온전한 것이 되듯 문학도 자신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통해 우리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을 때 효용가치가 크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과 느낌을 객관화하지 못하고 혼자 만족하며 자신만이 아는 기호 같은 문장을 나열하는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
제주의 역사와 선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우리면 거기엔 더 넓은 세계가 있다.
작가는 시대와 역사의 파수꾼이어야 한다. 시대의 어둠에 눈감지 않고 작품을 통해 부당함을 지적하고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
작가에겐 드러난 현상보다 그 속에 감추어져 있는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비난과 비판을 두려워해서는 좋은 작품을 쓸 수 없다.
모두에 거론한 존 밀링턴 싱도 아일랜드 국민성에 대하여 신랄하게 풍자한 작품을 발표하였으나 극우적인 성향의 사람들을 분노케 하여 폭동을 당한 적도 있다.
4·3 문학의 화두를 처음으로 세상에 던진 현기영 소설가도 유신이라는 서슬이 시퍼런 군사정권에서 ’순이삼촌‘이라는 소설을 발표하여 곤욕을 당하기도 했다. 그가 아니었으면 4·3이라는 우리 시대의 불행한 역사가 세상에 알려지는데 한참이 걸렸을 것이다.
그는 ‘문학은 순응주의가 아니라 이의제기다’라는 강연에서 ‘문학으로 형상화되지 않은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되어 버린다. 그러기 때문에 과거의 역사에 대한 비판과 반성 이의제기를 해야 하는 것이 문인들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 속에 제주의 시대와 역사를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가 하는 지향성이 제시되어 있다.
제주 문학이라면 당연히 제주 사람과 그들의 삶을 그려야 한다. 때문에 제주문화에 대한 깊고 넓은 성찰 과정을 통해서 제주인의 정체성, 제주문화의 본질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
그러지 못해서 실패한 작품도 많다. 이들 작가들은 겉으로 드러난 피상적인 것만을 대상으로 작품을 썼기 때문 제주의 독특한 정서와 제주인을 형상화하는데 많이 부족했다. 그러한 현상은 제주 소재 작품을 전국 대상으로 공모한 작품들에서도 잘 나타난다.
제주에 살아보지 못한 작가들은 인터넷을 통한 자료를 중심으로 작품을 쓰기 때문에 많은 오류를 범한다.
가령, 지칭인 아방, 어멍, 할망 등을 호칭으로 쓴다든지, 해녀들의 숨비소리를 음악가락에 맞춰 아무 때나 낼 수 있는 소리로 표현한 작품도 있다. 무늬만 제주 작품이지 다른 지방 사투리를 쓰면서 갈중이 임고 제주 사람 행세하는 격이다.
그러나 근래에 제주에 몇 달씩 기거하면서 자료를 수집하거나 취재를 하고 치열하게 작품을 쓰는 작가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주변에 널려 있는 문학 자료들을 주어 담으며 제주인이 몰랐던 새로운 정보들을 발견하고 재해석하여 감동을 주는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제주를 소재로 한 작품은 살아오면서 부딪히고 귀동냥으로 들은 것이 많은 제주 문인들이 더 잘 쓸 수 있음에도 이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제주 문인들이여 제주를 노래하라.
삶과 문화72호(2019. 봄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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