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문학사
해방이후의 제주문학(산문)
강용준(극작가/소설가)
1. 해방과 1950년대의 문학
가. 이 시대의 한국 사회 흐름
1) 해방 후 혼란
1910년 한일합병으로 대한제국을 통치하던 일본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천황이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36년 만에 대한민국은 일본의 압제 하에서 해방을 맞이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미국과 소련은 각기 한반도를 38도 선을 경계로 이북은 사회주의 정권인 소련이 이남은 미국이 주둔하여 신탁통치를 감행함으로써 해방된 한국을 양분시켜 놓았다.
해방이 되자 해외에서 많은 독립지사들이 돌아오고 일본에 유학했던 젊은이들이 귀국하게 됨에 따라 하나의 통일된 조국을 원했던 이들은 신탁통치의 부당함을 외치며 시위를 계속했고, 김구 같은 민족주의자들은 북한을 오가며 하나의 조국을 만들고자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당시 일본에 유학했던 지식인들은 세계적으로 일기 시작한 사회주의의 조류에 경도되었고 이상적인 조국 건설을 위해 신탁통치 반대 운동에 나서게 됐다. 처음에는 우익 인사들도 반탁운동에 참여했으나 미군정의 내세운 상해임시정부 수반인 이승만 세력의 설득으로 찬탁으로 돌아서게 되고 반탁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을 척결 대상으로 몰아가게 된다. 그러면서 정부수립을 위한 국회의원 선거에 돌입하게 되자 좌익 세력들은 이를 방해하게 된다.
2) 제주4·3 사건과 정부수립
제주에서는 남로당 일부 세력이 앞장서서 1947년 3월 1일 경찰발포사건의 진상규명과 당사자 처벌을 요구하며 파업동맹으로 몰아가고 이들에 대한 소탕을 위해서 북한에서 부르조아로 몰려 공산주의자들에게 재산을 몰수당하고 남한으로 온 사람들을 규합하여 서북청년회를 만들어 제주로 파견하는 한편 군대까지 동원하여 이들을 제압하려 하지만 제주도의 젊은이들은 한라산으로 숨어들게 된다. 한편 1948년 4월3일 기점으로 전도에서 일제히 파출소와 관공서를 습격하여 방화하고 살인하게 됨으로써 사건을 겉잡을 수 없는 형국으로 발전하게 된다. 1948년 11월 제주도에 계엄령이 내려지고 대대적인 한라산 무장군 토벌작전이 벌어지고, 토벌대와 무장대의 살육으로 인해 3만이 넘는 제주도민들이 희생 됐다. 한라산에 대한 금족령은 1954년이 되어서야 풀렸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제주도는 2개 선거구가 선거를 치르지 못한 채 1948년 8월 15일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하는 정부가 수립됐다.
3) 전쟁과 복구의 시대
1950년 6월 25일을 기하여 북한의 김일성 정권은 38도 선을 넘어 남침하여 전쟁을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많은 피난민이 생기게 되고 일부는 제주도까지 피난을 오게 된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1951년 제주도 모슬포에는 육군 제1훈련소가 생겨 군인들을 육성하게 되고 경찰학교가 개교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많은 문인과 예술인들이 군인들과 피난민을 위한 위문 행사를 열게 되면서 예술의 불모지였던 제주에 예술의 싹을 틔우는 역할을 한다.
전쟁은 수많은 살상과 기간 시설을 파괴하고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결과를 가져 왔다.
1953년 7월27일 휴전 까지 많게는 300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사망했으며 10만 명의 전쟁고아와 30만 명의 미망인, 그리고 천만 이산가족들을 만들었다.
4) 제주 사회의 문화적 동향
한편 1945년 12월에 제주신보가 창간되고, 1946년 8월 1일을 기해 제주도는 전라남도에서 분리 도(道)로 승격한다.
이런 가운데 문화적으로는 1951년에 오현고등학교가 개교하게 되고 1952년에는 제주시 용담동에 제주초급대학이 설립되며 1954년 4월에 4년제 도립제주대학으로 개편되어 국어국문학과와 영어영문학과가 개설됨으로써 제주문학의 저변확대에 많은 기여를 했다. 이때에 시인 김영삼, 문덕수, 박목월 등이 제주대학에 재직했다.
1955년 9월에는 제주읍이 제주시로 승격됐다.
1956년 10월에는 ‘문화인 전체의 권익옹호와 민족통일의 과업완수를 위한 반공문화전선을 형성하고 민족문화 발전에 기여한다.’는 취지아래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제주지부가 결성되어 기관지를 발간하고 종합예술제를 개최했다.
1957년 11월에는 제주도립도서관이 개관되었다.
1949년부터 간헐적으로 운영되었던 국내항공노선이 1955년부터 제주-부산, 제주-서울 간 안정적으로 취항하던 제주비행장이 1958년 정식비행장 체제를 갖추면서 한국민항(KNA)이 정기 운항을 하게 됐다. 1958년에는 광복후 처음으로 영국왕실의 아세아 학회회원 110여명이 제주관광을 왔다. 육지부는 전쟁으로 인한 파괴가 많았지만 제주는 다양한 피난민들에 의해 관광지로 알려지게 되면서 제주항이 국제항으로 승격되었다.
한편 1959년 9월 추석을 앞두고 사라호 태풍이 제주를 덮쳐 6만5천여 명의 이재민과 막대한 재산 피해를 냈다.
나. 제주 문단의 동향
1) 문학동인지의 등장
가) 『신생(新生)』
제주에서 처음으로 종합지 성격의 문학잡지가 나온 것은 1946년 1월『신생(新生)』(국판 66쪽)이다. 최길두, 이영복이 창간을 주도했으며 동인으로는 고일호(高日昊, 필명 高石志), 이시형, 최길두, 김병헌, 이영복(이영구) 등이다.
『신생』월간 도는 격월간을 표방했지만 종이 구하기가 어렵고 4·3 사건의 여파 등으로 창간호가 종간호가 되었지만 해방공간 당시 제주문학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신생』은 고석지의 「정신혁명」, 「신탁관리 절대 반대」등, 이일선(李一鮮)의 「종교와 사회사조」, 최일(최길두)의 「진리와 인생」, 김종윤(金琮崙) 「도의의 옹호」등의 논설과 김기환의 학생논단 「농촌개척의 새 각오를 가져라」가 실렸다. 특이한 점은 제주도 미군청정 장관 스타우트 소좌의 「연두소감」과 현상논문 모집 광고였는데 「농촌 건설의 구체적 방안」, 「실업자 대책」중 택일하여 응모토록 했다.
글의 체제로 보면 문학 작품 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등의 시사적인 것과 계몽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글도 많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신생』의 제작 경비는 광고비로 충당했으며 정가 6원(圓)의 유가지였으나 책방도 없었던 때여서 500부 정도 인쇄된 것을 가지고 도일주 하면서 구멍가게에 판매를 위탁했다.
여기에 실린 문학 작품은 시가 많았으나 이영복은 한글로 「야로(夜路) 」라는 소설을 썼다.
이 작품은 제주시 관덕정에서 한림행 만원 버스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해 해방 직후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애월읍에서 손님을 내려준 버스가 동산을 넘다가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트러과 충돌하는 사고가 나자 완장을 찬 조선 사람이 일본어로 운전기사를 꾸짖으며 행패를 부린다. 그것을 지켜보던 한 청년이 해방된 조국에서도 일본말을 사용하는데 대해 반감을 갖는다. 친일 잔재에 대하 비판의식이 형상화되었다. 한편 관덕정 옆과 비행장에서는 미군의 모습도 형상화 되면서 비군정 체재에 대한 의식도 토로했다.
감병택 평론가는 『신생』은 제주도 최초의 잡지였을 뿐 아니라 해방 직후 제주지역의 문학적 역량을 결집한 최초의 성과물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자못 크다. 아직 사회가 안정되지 못한 시대 상황 속에서 문학에 뜻을 두었던 제주지역의 지식인들이 한데 모여 잡지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경이적인 사건으로 볼 수 있다.(중략)『신생』이 없었더라면 제주도에서 어느 정도의 모습을 갖춘 문학적 결과물의 시작은 타율적으로 이루어지는 양상이 되었을 것이다. 『신생』에 대해서는 지역문학적인 차원의 관점을 견지하면서 일제 강점기 지역문학의 성과를 부분적으로나마 담아냈다는 점에서도 나름대로의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고 평가했다..(『제주현대문학사』제주대학교 출판부 2005. 「해방공간의 제주문학」 )
나) 『신광(新光)』
1946년 5월에는 애월읍 청년동맹에서 『신광』(40쪽 프린트판)을 발간했다. 이는 애월면 인민위원회 후원으로 제작되었는데 논문, 평론, 시 등의 작품과 함께 기고 환영의 원고모집 광고도 실렸다. 편집인 겸 발행인은 애월리 출신 장기우(張基佑)이며 정가 5원이다.
애월면의 『신광』과 함께 당시 일부 인민위원회와 청년동맹에 문화부 및 문예부를 두고 있다는 사실은 자생적인 제주문단 형성의 가능성을 의미하며 이는 일제 강점기와 1950년대를 잇는 제주문단의 과도기로 볼 수 있다.
2) 피난 문인들의 영향
제주도는 6·25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4·3 사건으로 이미 전시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전쟁이 일어나자 1950년 7월부터 제주·한림·성산·하순 항을 통하여 많은 피난민들이 제주도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피난민들과 함께 육군 부대와 해군, 공군 정훈실, 육군 제1훈련소 및 조병창 정훈실, 해군 병원, 경찰 등 전시 체제의 여러 기관들이 제주에 들어왔다. 1951년에는 피난민의 수가 14만 9천 명에 가까이 이르러 당시 제주도 인구의 절반을 넘어 섰다. 이들 피난민들 중에는 중앙에서 이미 이름을 날린 예술인· 학자· 언론인·체육인들이 많았다.
이 당시 대표적인 문인은 계용묵(桂鎔黙), 장수철(張壽哲), 옥파일(玉巴一), 김묵(金黙), 장지영(張志暎), 김창렬(金昌烈), 최현식(崔玄植) 등이며 이들은 문학잡지 『신문화(新文化)』와 『흑산호(黑珊瑚)』에 참여했다. 이중 1년 반 동안 제주읍에 거주했던 장수철과 김묵은 제주신보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양중해 시인은 “이 무렵 제주문단의 주요 인사들은 피난문인으로 말해지고 있지만 이것은 계용묵의 위치 때문에 붙여진 과도한 표현이다. 제주에 피난 왔던 문인들 중 계용묵은 상징적인 존재였다. 계용묵을 중심으로 제주 시내의 다방, 제주YMCA강당, 우생당서점, 학교 강당 등에서 시 낭송회, 문학 작품 합평회, 문학의 밤 등이 자주 열려 중·고등학교의 젊은 교사와 학생들의 문화적 관심이 고조되었다. 중앙 문인들은 이곳 문학도들에게는 신비스런 존재였다.”고 했다.(『제주문학』제19집(제주문인협회,1990), 「제주문단의 형성과정」)
또한 양 시인은 “계용묵 선생의 제주 피란시절 적막하기만 했던 제주 사회는 자그마하면서도 일종의 문예부흥기 같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고 있었다.”고 했다.
한편 문학평론가 김영화는 “6·25는 제주도에 하나의 문예부흥을 갖다 주었다고 보아도 좋다.”고 하면서 이 무렵의 제주문단을 1920년대 초기의 한국문단 상황과 비슷하다고 했다. (『제주문학』창간호(제주문인협회,1972))
가) 계용묵의 문학 활동
계용묵은 피난 생활 3년 동안 동백다방을 사랑방으로 삼아 살다시피 했다. 동백다방은 피난 온 여인이 운영했는데, 오현고등학교 피난분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아들 계명원의 혼레도 ‘동백다방’에서 치렀을 정도로 이곳을 애용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양중해 시인은 생전 1950년대 동백다방은 제주문학의 산실이었다고 회고 했다.(『제주문학』제31집(제주문인협회,1988)「계용묵 선생 지상회고」)
강통원 시인은 일제 강점기 정지용과 서정주가 일시 제주를 다녀간 이래, 계용묵 선생은 한국문단의 현역 작가로서 제주에 장기 체재한 최초의 문인이기 때문에 방도 초기에 그의 뜨거운 얼굴을 대면하고 문학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야말로, 그 당시로서는 정말 행복스러운 일이었으며 실로 감격스럽고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신문화·흑산호· 영실천(靈室泉)·별무리’ 등은 그 어느 하나 계용묵 선생의 손길과 입김이 있지 않은 것이 없다. 따라서 이것들은 초창기의 문단형성 과정에 초석이 되고 활력소가 되는 것으로서 오늘날의 제주문학을 현란하게 꽃 피운 원동력이며. 계용묵 선생의 이름과 함께 제주문단사의 초장에 새겨진 영원한 기념비적 의미를 갖는 것(『제주문학』제31집(제주문인협회,1988)「계용묵 선생과 제주문학」)이라고 했다. 또한 ‘동백다방’, ‘카네이션다방’, ‘청수다방’, ‘남궁다방’, ‘파리원다방’, 등은 예술인들의 담화 장소이며 집결지였다고 했다. 문학 감상이나 작품평과 같이 조용한 분위기가 필요할 때는 당시 칠성로 골목길에 있던 카네이션다방을 많이 이용했다. 고만고만한 다방과 소줏집이 밀집해 있던 칠성로에는 계용묵을 중심으로 한 피난 문인과 제주의 문학 동호인, 문학소녀들이 무시로 오갔다. 당시 동백다방 계용묵 선생 주변에는 최현식, 양중해, 이기형, 고영일, 강통원, 강군황, 발철희, 김성주, 김영돈 등이 모여 있었다.
계용묵은 피난 3년 동안 제주에 살면서 종합교양지 『신문화』, 문학동인지 『흑산호』의 발간을 주도했고 문학을 지망하는 학생모임인 ‘별무리’의 지도에도 힘써 제주문학의 기틀을 잡는데 공이 매우 컸다.
한편 그의 공을 기려 1998년 9월 26일 제주문인협회에서는 한국문인협회와 SBS문화재단 후원으로 제주시 일도1동 1294-2번지 칠성로 제일모직 하티스트 건물 (옛 동백다방) 앞에 ‘계용묵 선생의 문학산실 표상비’ 제막식을 가졌다. 표상비의 내용은 양중해 시인이 썼다.
3) 제주문학인협회(濟州文學人協會)의 태동
제주문학동호인회(회장 김영삼)는 1958년 해체되고 8월 제주문학인협회(회장 홍정표)가 결성됐다. 문화인의 총집중체인 문총지부 그 자체가 무기력한 존재로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활발한 사업전개를 못하고 있음이 지적되고 있던 바 작금까지 발간하던 기관지 『제주문화』가 1958년 중단되었으며 그해 10월에 개최된 문화제 역시 그 성적은 전년에 비하여 불량하다는 평을 받았다. 지부 개편에 앞서 제주문학인협회가 새로이 등장하였는데 그 구성을 보면 거의 문총지부 임원들이었고 그들의 행동은 문총과는 달리 한 방향을 보여주었다. 더구나 당시 남제주군에 새로운 문총 서귀포지부가 결성되어 남제주군 일원에 걸친 탐라문화제 행사가 거행된 이후 제주지부는 약화되기 시작했다. 결국 제주문학인협회가 결성되어 입장을 달리한 독자적 행동을 취하려 함은 결국 제주도 문화계에 마이너스를 가져 왔다고 평가하고 있다.(제주신보 1958년 12월 28일자 문화편 총결산)
당시 제주문학인협회는 시, 소설, 평론, 수필, 시나리오 분과를 두었다. 회원은 다음과 같다.
시 분과 : 강달수, 강통원, 김광협, 김성주, 김시태, 김영환, 김종원, 김종훈, 김태국, 문충성, 부택훈, 양중해, 오용수, 이봉준, 이치근, 정인수, 조응방, 홍성흠.
소설 분과 : 강영숙, 고영기, 오성찬, 장순용, 정영택, 최현식, 홍순만, 현길언.
평론 분과 : 강용현, 김시태, 김영화, 양순필.
수필 분과 : 조명철. 아동분과 : 전현규.
영문학 분과 : 김순택. 불문학 분과: 문충성
시나리오 분과 : 강군황, 김봉임
4) 중앙 문단 등단
최현식은 195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노루」가 당선 등단했다.
양중해는 1959년 『사상계』에 시 「그늘」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1950년대에 중앙문단에 등단한 제주문인은 이 두 사람 외에 1957년 『문학예술』을 통한 김종원과 1954년 11월 시집 『청사』를 발간 등단한 김대현이 있다.
5) 1950년대 문학동인지
1950년대는 피난 문인들의 영향으로 동인활동이 활발해서 동인지, 또는 종합교양지 등이 출현했다. 이 당시 문학 작품이 실린 잡지는 『신문화』(1952. 5), 『흑산호』(1953. 6), 『제주문화』(1957. 6), 『비자림』(1958. 6), 『문주란』(1959. 6), 『시작업』(1959. 10) 등이다.
가) 『신문화(新文化)』
계용묵을 중심으로 최현식, 장수철, 옥파일, 김묵, 임갑춘 그리고 제주 출신의 양중해, 고영일, 정하은 등이 참여하여 제주에서 간행된 종합교양지이다. 1952년 2월에 창간하여 그해 9월에 2호, 1953년 1월에 3호까지 발간됐다.
양중해 시인은 『신문화』는 자금을 대겠다던 독지가가 사업상의 어려움으로 그 창간은 벽에 부딪고 말았다. 모처럼 얻어놓은 원고를 버릴 수가 없어서, 창간호에 실리려던 원고를 셋으로 나누어 찍어냈다. 창간호의 원고를 가지고 제3호까지 내고 종간호가 된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최병일의 「오도롱하라방」, 최정희의 「낙화」, 승지행의 「결혼기념일」, 최종상의 「여름방학」, 이형근의 「재봉」등의 소설이 실렸다. 그러나 창간호에 실린「오도롱하라방」만이 유일하게 제주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오도롱하라방은 89대의 지관(地管)이다. 아내와 20년 전 사별한 주인공은 ‘함덕할망’ 장례식장에 갔다가 술을 마시고 잠에 빠진다. 사냥한 노루의 피를 마신 뒤 귀가해서 아내에게 어서 그 피를 마시라고 재촉하던 차에 꿈에서 깬다. 눈을 떠보니 상제 아주머니의 손목을 붙잡고 있던 그는 일행들에게 망신당하여 서둘러 귀가한다. “저놈우 하라방 두린생이로고” 등 제주어도 비교적 자연스럽게 활용하고 있는 소설이다.
한편 발간비는 전액 우생당(서점·출판사) 사장인 고순하 씨가 댔다. 계용묵과 교유하던 고순하 씨는 이외에도『흑산호』, 학생들의 문예동인지 『별무리』, 문총제주지부 기관지『제주문화』, 시 전문 동인지 『시작업』발간 제작비도 쾌척했다고 한다.
나) 『흑산호(黑珊瑚)』
1953년 6월에 발간된 순수문예동인지로서 계용묵이 편집 대표를 맡았고 양중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피난 문인들이었다.
옥파일, 김창렬, 김창수, 김형식, 박재식, 최영석 등의 시 29편과 계용묵, 전창은, 황성희, 김한근, 이형근 등의 산문이 실렸다.
양중해 시인은 『신문화』에 기대를 걸었다가 좌절한 제주의 문학 동호인들은 동인지를 내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표지는 경찰요원으로 제주에 체류하고 있던 김창렬이 맡았다. 고 했다. 정가는 150원(圓)이었다.
다) 『제주문화(濟州文化)』
1957년 6월에 발간된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제주지부(이하 문총 제주지부)의 기관지이다. 당시 제주대학에서 문학 강좌를 강의하고 있던 김영삼(金永三)의 주도로 1956년 문학동호인들이 모여 ‘제주문학동호인회’(회장 김영삼)가 조직되고 그해 10월 23일 신성여중 강당에서 문총제주지부가 만들어졌다. 이듬해 6월에 제주도 최초의 문화단체 기관지 『제주문화』(국판 182쪽. 발행인 고순하)이 창간되었는데 여기에 제주문인들의 작품이 발표되었다. 『제주문화』는 동인지는 아니지만 문화단체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주로 문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어서 편집이 이들 문인들에 의해 이루어져 동인지 성격을 갖추게 됐다.
『제주문화』창간호에 소개된 문총회원은 13개 분야 35개 분과에 141명이다. 문학분과는 시(양중해), 소설(김영돈), 평론(강통원), 수필(이기형), 희곡(고영일), 아동문학(이봉준), 번역(고영기), 고전(현용준), 시조(박영후) 분과 등 76 명이었다. 여기에는 홍정표, 양중해, 강통원의 시와 김용수의 수필, 이봉준의 「눈 내리는 날」, 조명철의 「말복날」의 소설과 김성태의 「문학 노오트」외에 논문이 실렸다.
라)『비자림(榧子林)』
1958년 6월에 나온 시 전문동인지로 제주대학에 교수로 재직한 문덕수, 양중해, 강통원 시인이 제주대학 국어국문학회 내의 시를 전문으로 하는 김종훈, 강시택과 함께 『비자림』창간호(국판 24쪽)를 발간했다. 9월에 나온 2집으로 종간됐다.
마) 『문주란(文珠蘭)』
구좌읍 출신 김대현, 이치근, 부택훈, 정인수, 오용수 등이 동인을 구성하고 1959년 동인시집 문주란을 발간했다. 이 시집에는 김대현의 「청아(靑芽)」, 이치근의 「별에게」, 「소년에게」, 부택훈의 「섬, 돌 사이」, 「벙어리 죄업」, 정인수의 「당신」,「그림자」, 오용수의 「고독」, 「나목의 시」등이 실렸다.
바) 『시작업(詩作業)』
1959년 10월 양순필, 김종원, 이치근 등이 중심이 되어 우생출판사(대표 고순하)에 의해 제작 발행된 동인지다. 필진은 도내 문학동호인은 물론 전국 기성 문인들의 작품을 실었다. 창간호에는 김춘수, 문덕수, 김우종, 양순필, 고석규, 김현승, 유치환, 설창수, 김관식, 허연, 박봉우, 조영서, 김남조, 신동문, 권일송, 허유, 황운현, 이재하, 유경환, 정규남, 조효송, 김대현, 김재희, 박정렬, 최휘림, 양중해, 곡천, 이관석, 강통원, 김종훈, 이치근 등의 시 26편이 실렸다. 1960년 제2집으로 종간되었다.
5) 학생 문학 활동
이 시기에는 성인들과 함께 학생들 사이에서도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문학 동인이 만들어지고 각종 문학 행사도 열렸다.
이는 당시 중앙의 청소년을 위한 문예지의 영향도 컸다. 『학원』, 『새벗』, 『학생계』, 『소년세계』에 학생들의 작품을 공개 모집을 하면서 제주의 많은 학생들이 입상을 했다. 또한 1954년부터 시작된 중앙학생호국단의 작품 모집도 있었고, 1954년 오현고등학교에서 주최한 전도 학생종합예술제의 일환으로 진행된 문학백일장 및 작품공모, 신성여자학원에서 실시한 전도초등학교 문학백일장도 문학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을 유발하는데 큰 몫을 했다. 1956년에는 제주대학 국어국문학회 주최로 전도 초·중·고 문학백일장이 열렸는데 이는 매년 개최되었다. 또한 이해에는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제주지부에서 주최한 제1회 제주문화제에서도 백일장 등 문학행사가 있었다.
가) 학생 문학동인
이 당시에는 도내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문학에 뜻 있는 학생들끼리 모여 동인활동을 했다. 그결과 학생들의 주도로 『영실천(靈室泉)』, 『별무리』, 『석좌(石座)』, 『창림(蒼林)』등의 동인지가 발간됐다.
(1) 영실천
1953년 9월 당시 오현고등학교 재학생이던 김상주, 강통원, 박철희, 김성주가 문학수업을 계속하면서 동인지 『영실천』을 창간했다. 창간호에는 강통원의 서문과 11편의 시가 실렸다.
(2) 별무리
도내 중·고등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계용묵 선생의 지도하에 중등학교 지도교사들에 의해 1953년 별무리 모임이 창립되었다. 대표는 대학생인 강군황을 선출하여 성장(星長)이라 불렀다. 동인으로는 시 부문에 오현고등학교의 강통원, 허재민, 김성주, 김미형, 박철희(수필), 김종원(동화), 제주사범학교의 임병규(수필), 제주상업고등학교의 김병욱, 신성여자고등학교의 김청신, 제주여자고등학교의 강추자, 문인자, 김상옥(수필), 제주농업고등학교의 부택훈(수필), 서귀농업고등학교의 김봉익(수필), 제주일중학교의 문충성, 김종두, 오현중학교의 최평근, 신성여자중학교의 김은희(수필), 제주여자중학교의 백달정 한림중학교의 고문웅 대정중학교의 장현기가 참가했고, 제주대학 고영기(창작), 강군황(방송극) 등이었다. 이들은 12월에 『별무리』(국판 84쪽)을 발간했는데 동인들 작품 외에 계용묵의 「신문학 50년 풍물지(1)」, 현평효의 「한국현대문학의 특질」, 정치근의 「세계 대호(大豪) 소개-세익스피어 편」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동인지의 제작비는 당시 우생당서점(우생출판사) 고순하 사장이 제공했다.
(3) 석좌(石座)
제주문단에서는 유일한 소설 중심의 학생동인지로 1957년에 『석좌』제1집이 발간되었다.
당시 제주시 칠성로에서 자취하던 남원 수망리 출신 제주사범학교 현길언의 자취방에 모여 동인지 발간에 대한 모임이 있은 후 오현고등학교 교사였던 김영돈 선생을 지도교사로 하여 『석좌』를 발간했다. 같은 해 12월 제2집이 나오는데 이때까지의 동인은 오현고의 현기영, 홍권홍, 홍희구, 김철희, 제주상고의 장순용, 고치문, 제주사범의 현길언, 전현규 등이다.
이후 정영택, 박호길, 조진춘, 서울의 김광협, 전달문 등도 참여했다. 제3집은 원고까지 마련되었으나 발간되지 못했다.
(4) 창림(蒼林)
제주상고 야간부 학생들로 구성된 동인으로 강총원, 현용준의 지도로 1958년 8월 『창림』을 발간했다. 정영택, 조진춘, 유춘원, 김융화, 이헌근의 시 작품 9편이 실렸다. 11월 제2집을 발간으로 종간됐다.
나) 작품집 발간
1950년대에는 학생들의 시집 발간도 있었다. 오현고 김종원은 『학원』으로 인연을 맺은 육지 학생들과 함께 4인 공동시집 『생명의 장(章)』(1954년)을 발간했고, 정인수와 오용수는 2인 시집 『풍란』(1958년)에 이어 오용수는 개인시집『열매』(1958년)을 펴내는 의욕을 보였다. 김영환과 박연자는 2인 시집 『기원(祈願)』을 펴냈다.
다. 제주문인들의 작품 활동
가) 최현식의 「노루」
이북(함경남도 흥원) 출신으로 해방 후 월남하여 교원과 기자 생활을 하다가 6·25때 종군하여 1958년 중위로 제대하였다. 제주에 건너온 최현식은 「해바라기의 추억」이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에에 입선한데 이어 이듬해 「노루」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는 제주 여인과 결혼하였는데 1953년 군에 입대하며 제주를 떠났다가 1961년에 다시 돌아와 애월에 정착했다. 앞의 두 작품은 물론 1959년 발표한 「435OP의 가족」, 「돼지와 SMG」(1960) 등은 군대생활 중에 쓴 작품이며 제주가 배경이 아니다. 다만 「화자시절」(1959)의 경우 주인공 나가 퇴역장교로 일자리가 없어 빈둥거리며 술집 창녀인 화자와의 섹스를 통해 탈출구를 마련하다가 아내와 딸이 제주도에서 상경하면서 제주도로 낙향한다는 다소 자전적인 작품이다. 「노루」는 1970년대 국어교과서에도 실렸다.
「노루」는 전방 어느 초소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방의 초소답지 않은 훈훈한 서정이 감돌고 있다. 전후파의 그 비정의 세계와는 분명 한 획(劃)을 그은 작품이다.
주인공 ‘철(哲)’ 일등병이 사로잡은 새끼노루에게 쏟는 애정, 그것은 비단 노루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생명에 대한 애정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인 자의 수를 헤아리기에 바쁜 전쟁은 물론 그러한 애정을 거부한다. 인간과 인간, 생명과 생명의 긍정적인 교류가 차단된 최악의 상태가 전쟁인 것이다.
그러나 애정은 인간의 영혼의 깊은 수맥(水脈)에서 솟아나는 샘물과 같다. 아무리 막고 억눌러도 언젠가는 밖으로 넘쳐흐르게 된다. 그 물줄기가 인간을 향하기 어려울 때는 하다못해 다른 생명체, 이를테면 동물이나 식물을 향해서라도 끝내 흘러서 마지않는 것이다. 이 작품 <노루>가 바로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애정의 발현(發顯)은, 그러나 우리가 전쟁의 와중에 깊이 휘말려들었을 때는 기대하기 어렵다. 전쟁이라는 일진광풍(一陣狂風)이 어느 정도 멀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장소는 비록 전방의 초소라 할지라도 ‘철’ 일등병의 가슴속에 애정의 수맥이 트이고 또 그것이 밖으로 번져 나오게 되면, 전쟁은 이미 여기 있지 않고 저기에 있다. 이것은 반드시 물리적인 현상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정신적인 여유를 뜻하기도 한다. 하여간 그 어느 쪽이 되었건 분명한 것은 어느새 전쟁이 서서히 물러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부터는 전쟁에 의해 차단된 인간의 교류를 회복해야 한다. 다시 본연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향을 지켜야 한다.”
라고 작가는 말하는 것 같다. 그는 전후의 황량(荒凉)이 아니라 전전(戰前)의 평화를 그리워하고 있다. (블로그 ‘재봉틀의 국어방’에서 발췌)
2. 1960년대의 문학
가. 이 시대의 한국 사회의 흐름
1) 혁명과 군부 쿠테타
1960년 3월15일 치러진 정부통령 선거는 곳곳에서 사전투표, 3인조 공개 투표, 대리투표 등 사상 유례 없는 부정 선거였다. 이에 마산에서 시작된 격렬한 시위는 유혈사태로 번지고 급기야 시위 중 실종된 김주열 학생의 시체가 부두 앞바다에서 발견되자 4월19일 전국의 대학생들과 중·고등학교 학생을 비롯하여 회사원 노동자 농민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제주에서는 4월 22일 관덕정 마당에서 오현고등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된 시위가 있었다. 5월1일에는 4·19희생학도합동위령제가 열리면서 제주의 중·고 ·대학생들이 참가해 시위가 절정에 이르렀다. 이를 후세는 4·19혁명으로 부른다. 이 사건으로 자유당 이승만 정권은 붕괴되고 민주당 허정 내각 정권이 들어서게 됐다.
그러나 이도 잠시 이듬해 5·16일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군사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하여 대통령이 된 후 전두환, 노태우까지 26년간 군사독재 정권이 이어졌다. 박정희 정권은 반공을 국시의 제1로 삼고 등의 혁명 공약을 내걸고 조국근대화를 내세우며 18년간 장기집권을 한다. 경제개빌5개년계획과 새마을 운동을 내세워 국민들을 강력하게 통치한다.
2) 제주 문화의 흐름
제주도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수성을 감안하여 전국에 내려졌던 야간통행금지가 1960년 10월 28일을 기해 해제되었다.
제주도에도 이 시기에 사회간접자본이 확충되고 감귤과 관광을 위주로 산업이 재편됐다. 1961년부터 10년 동안 일주도로 포장 공사가 이루어지며 1966년 6월에는 한라산 동쪽중허리를 관통하여 제주시와 서귀포를 잇는 5·16도로가 준공되었고, 1968년에는 제주시와 중문을 잇는 1100도로가 착공됐다.
제주에는 1950년대 중반부터 감귤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일본에서 묘목을 들여왔고 1960년대 중반부터 재배 면적이 늘어나더니 1967년에는 정부의 농업소득 특별사업으로 지정되어 많은 혜택이 주어지면서 감귤재배 농가가 늘어나고 고소득 농업으로 각광받게 됐다.
1962년 12월에는 대한항공(KAL)이 첫 취항을 했고 1968년에는 제주비행장이 국제공항으로 승격됐다.
1962년을 기해 제주도립대학이 국립대학이 되었으며, 1969년에는 제주교육대학이 , 1969년에는 제주간호보건대학이 개교했다.
1962년 5월에는 전국예술단체총연합(이하 예총) 제주도 지부 주관으로 제1회 제주예술제가 개막되었는데 이것이 한라문화제를 거쳐 탐라문화제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64년에는 제주시민회관이 개관되었으며, 1968년에는 제주MBC의 전신인 제주남양방송이 개국했다.
3) 제주 신문과 종합지 역할
제주에서 발간된 신문이나 잡지, 기관지 등도 제주 문학인들의 활동 무대가 됐다.
이들은 제주학생문예 현상모집, 독후감 모집을 하는 등 문학의 저변 확대에도 기여했다.
가) 제주신문(濟州新聞)
1945년 창간된 제주신문은 1970년대까지 주로 시와 소설을 게재했다. 특히 제주문인들을 위해 단편릴레이 난을 마련했고 정영택, 현길언, 김순이 등의 중편소설 연재와 최현식, 오성찬, 이강숙, 현길언의 정편소설 연재, 그리고 김형민의 번역소설을 연재하기도 했다. 그리고 1968년부터 제주도의 청소년 학생을 위한 ‘3월학생문예’ 현상모집을 시작하여 꽤 오랫동안 지속하면서 재능 있는 문학청년들을 발굴하기도 했다. 1968년에는 오성찬의 장편소설 「포구(浦口)」를 연재했다.
나) 제남신문(齊南新聞)
1967년 창간된 제남신문은 ‘전도여성독후감모집’ 과 아울러 제주문인들의 문학작품을 실었다.
다) 『새 생활』
월간종합지 새 생활은 1960년 6월 창간되었다. 창간호에 강대원, 김영돈, 전병훈, 문덕수, 김부자, 고수선, 한치문, 홍성목, 김진열의 글과 홍순만의 소설 「낙조(落照)」가 실렸다.
라) 『월간제주』
1968년 4월에 창간되어 120호까지 나왔다. 거의 매호마다 문학작품을 실었다.
마) 『제주도지』
이전 제주도정월보로 발간되던 제주도 기관지가 1962년 2월 『제주도』로 제호를 바꾸고 창간호를 냈다. 매호마다 제주 문인들의 문학작품만이 아니라 도외 출신 문인들의 작품도 게재했던 종합지이다. 원고료를 지급했기에 문인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시, 소설, 평론, 수필 등 다양한 글들을 실었다.
바) 기타
이밖에도 1967년 6월 창간된 『교육제주』(제주도교육위원회) , 『제주시』, 『남제주』, 『북제주』등에 제주문인들의 작품을 실었다.
나. 제주문단의 동향
이 시대 제주문단은 동인활동을 통한 동인지들이 지속적으로 발간되고 중앙문단에 진출하는 문인들이 여러 장르에서 나온다. 그러나 시대적인 상황과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작품은 많지 않았다. 4·3의 상흔으로 인한 아픔이 내재되어 있었지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위압적인 정치상황에서 허무주의적인 작품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4·19라는 격변기를 체험하면서 시대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이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제주문단이 활력을 보이던 시기였다.
또한 1962년에는 제주도 기관지인 『제주도』가 격월간으로 간행되었으며 여기에 제주문인들의 작품이 많이 실렸다. 최현식, 이치근, 고영기, 오성찬 등이 편집주간을 맡아 문학작품을 많이 수용했다. 『제주도』에 게재된 작품에는 원고료가 지급되었는데 이에 따라 동인지나 문예지에 작품을 게재하기를 꺼려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그만큼 동인활동이 뜸해졌다.
1963년 7월에는 서라벌예대 제주동문회 주최로 서정주, 김동리, 정태용, 임동권을 초청하여 ‘계용묵 2주기 추도의 밤’에 문예대강좌를 개최했다.
1) 문학 단체의 활동
가) 제주문학자협회(濟州文學者協會)
제주문학인협회가 1961년 1월 발전적으로 해체되고 제주문학자협회(대표 간사 문덕수)거 창립된다. 3월에는 ‘제주도문화상 추진 및 제반 사업계획과 임원 개선이 있었다. 집단체제로 바뀌어 문덕수, 양중해, 고영일 등 3명의 대표위원을 선출하였고 총무간사에 김영돈을 선출했다. 그해 8월에는 제2공화국 탄생 기념으로 문학제전을 개최하고 이후 수시로 작품발표회 및 합평회를 가졌다. 당시의 회원은 20여 명이었다. 그러나 5·16 쿠테타 이후 모든 단체는 해체됐다.
나) 제주문학협회(濟州文學協會)
1962년 1월 제주미국문화원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제주문학협회를 창립했다. 여기에서 양중해(대표간사), 김영돈(총무간사), 강군황(사업간사)를 선출하고 이치근(시), 강통원(평론), 현용준(수필), 이기형(희곡·시나리오) 등 각 분과 위원장을 선출했다. 1967년 3월부터 1968년 3월까지는 강통원, 1970년 8월까지는 양중해가 대표 간사를 맡았다. 1968년 10월에는 한국문인협회로부터 지부 인준을 받아 존속하다가 1970년대 초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에 의해 해체 상태가 된다.
1969년에는 제8회 한라문화제 문학의 밤 행사를 제주시 산호다방에서 열어 양중해의 「제주문학이 걸어온 길」, 김시태의 「제주도, 이 채석장에서 선 문학인이 반성할 점」, 김영화의 「제주문학의 장래」에 대한 문학 강연이 있었다.
당시 회원은 양중해, 정인수, 조응방, 김시태, 강통원, 고영기, 김영환, 문충성, 오성찬, 정영택, 최현식, 현길언, 홍순만, 조진춘, 김순택, 김영돈, 이기형, 조명철, 현용준, 강용현, 김영화, 양순필, 강영숙, 강군황, 김성주, 김종훈, 이치근 등이었다.
2) 중앙 문단 등단
한편 1960년대에는 10여 명의 문인들이 중앙에 등단했다.
○시
강우성(강대하), 1965년 『현대문학』12월호 「찬가」
김광협, 1965년 1월 「강설기(降雪期)」동아일보 신춘문예.
김용길,「대망(大望)」 1966년 7월 『문학춘추』에 추천.
부택훈, 1961년 시·수상집(詩·隨想集)『포도밭』발간
이봉준, 시집 『도시의 행렬』발간.
○ 소설
강금중, 1963년 6월『자유문학』「상흔」
오성찬, 「별을 따려는 사람들」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박철희,「에로스와 아가페의 의미」 1961년『현대문학』6월호
김영화, 1967년 1월 「동인소설의 구조」 중앙일보 신춘문예
김시태, 「현대시의 좌표」가 1968년 11월『현대문학』
○수필
강정희, 1961년 『여원(女苑 )』지 전국여성작품 공모 「교단주변」
○기타
강우성(강대하), 오용수가 중앙문단에 시인으로 활동했다.
임무홍은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수기부문에 「4·3폭동」이 당선 됐다.
3) 동인 활동
1960년대는 1950년대의 문학적 분위기가 이어지고 제주대학 문학부 학생들이 배출되면서 동인활동이 지속적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동인지가 등장했다.
이 당시 동인지로는 『절벽(絶壁)』, 『아열대(亞熱帶)』, 『동심공원(童心公園)』, 『오솔길』, 『인(人)동인』, 『수레바퀴』, 『토요구락부』등과 서귀포 지역의 문학동호인들이 중심인 『폭포』동인, 제주대학생 중심의『백파(白坡)문학회』, 제주시내 인문계 고등학생들로 구성된 『향원(鄕苑 )』, 『호심(湖心)』등이다.
가) 절벽
1961년 구성된 문학동인『절벽』은 김태국, 박성원, 정인수, 강대하, 오옥단, 오성찬 등 1958년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서귀포·남제주군 지역의 한라문화제 문학백일장 입상자 및 시화전에 참여했던 문학동호인들이 중심이었다.
나) 아열대(亞熱帶)
1963년 5월 제주도를 상징한 아열대 동인이 동명의 동인집을 냈다. 동인으로는 강통원, 고영기, 김종훈, 이치근, 박철희 등이다. 창간호에는 강통원의 「일요일」, 고영기의 「전신주」, 김종훈의 「가을 3제」, 이치근의 「돌」등의 시, 박철희의 평론「Physiognomic」이 실렸다.
다) 동심공원
동심공원은 1962년 4월 초등학교 교사들로 구성되었던 아동문학 동인회다. 월례회를 통한 토론, 작품발표 및 합평회를 가지면서 동시편 『들포도』를 간행했다. 동인들로 오성대, 오성자, 허계구, 김용해, 김광수, 김선숙, 김만옥 등에 의해 시작되었으나 중간에 활동이 중단되었다.
1968년 4월에 회합을 재개하면서 회원도 오성대 대신 이양수, 현영옥, 문정자가 새로 가입하고 그해 11월에는 『들포도』제2집을 발간했다. 여기에는 동시, 동화, 글짓기 이론, 어린이 작품 등 40여 편이 담겨 있다.
라) 오솔길
1962년 봄 제주교육대학 학생들로 구성되었던 아동문학동인회다. 동인으로는 강봉언, 강무중, 김순자, 고성의 네 사람이다. 작품발표회 및 합평회를 가지면서 그해에 첫 동인집 『오솔길』을 냈고 이듬해 3월에는 2집을 냈다.
마) 인(人) 동인
1966년 강석윤, 구성지, 김용해, 김용길, 김덕남, 김양수, 박일(박성원), 오추자 등이 ‘향토적 이미지 발굴과 제주문학의 순수성’을 표방하며 동인시집 『인(人)』을 창간했다. 1973년 12월 제5집 까지 발간했다.
바) 수레바퀴
1968년 문학동호인과 사진가들이 모여 시사진(詩寫眞) 동인회를 구성했다.1974년 까지 5회의 시사진회를 비롯하여 정기적인 작품감상회를 가졌다. 동인으로는 강순옥, 김성수, 김양수, 김정현, 신인후(이상 시), 서재철, 고정규, 강영림, 정창응, 김병돈(이상 사진) 등이다.
사) 토요구락부
당시 제주대학의 김시태, 김영화 교수와 작가 오성찬 등이 주도한 문학동인이다. 1969년 4월 첫 모임을 가진 뒤 매주 토요일 마다 다방에서 만나 국내외의 문학 작품에 대하여 회원들이 윤번제로 주제발표를 한 다음 토론을 벌였다. 가끔 회원들의 작품 낭독과 합평회도 가졌다. 1973년 까지 모임이 지속되다가 군 입대와 출가 등의 문제로 해체 되었다가 1982년 재회합을 가졌으나 동인집은 내지 못했다.
그 당시 회원은 고시홍, 김병택, 김관후, 김진자, 장일홍, 문무병, 문성숙, 정순희, 정복희, 홍희숙, 김영희, 강재수, 강정희 등이었으며 나중에 나기철, 고원정 등이 참여했다.
아) 학생 동인지
(1) 향원(鄕苑)
도내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던 김동훈, 문무병, 장일홍이 주축이 되어 1967년 만든 단체다. 학교별 학년별 한명 씩 회원들을 받아들였는데 오현고는 문정인, 김학렬, 강요배, 강법선, 제일고는 김재천, 김석희, 김대용, 김광렬, 제주여고는 정순희,김정옥(김가영), 정복희, 신성여고 강방영 등이 참가하여 네 번의 『향원』동인지를 발간하고 시화전과 문학의 밤을 개최했다. 김순이, 김원치, 송상순, 현길언이 지도를 했다. 이들 중 1980년대에 문무병(시), 장일홍(희곡), 김석희(소설, 번역), 김광렬(시), 정순희(소설), 김가영(수필), 강방영(시)이 등단했다.
(2) 호심(湖心)
호심은 1968년 조직되었는데 김창종, 김혜자, 현영순, 이기정, 나기철, 고운기, 고임순, 김미순(김지희) 등 제주시내 인문고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창립하였는데 나중에 김승립, 허영선 등도 참여했다. 세 번의 동인집 발간 외에 ‘문학의 제야’ 등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김영환, 정영택, 정인수 등이 지도했다. 이들 중 나기철, 김지희, 김승립, 허영선이 시인으로 등단했다.
(3) 폭포(瀑布)
한편 1965년 서귀포 지역 학생들을 중심으로 『폭포』동인도 있었다. 강갑길, 박경석, 김대송, 강영순, 현수남 등이 주축이었다.
다. 제주 문인들의 작품 활동
1) 소설
가) 최현식의 「안개 속에」와 「협죽도」
최현식의 제주작가로서의 활동은 1960년부터 본격화된다. 「안개 속에」(1962)에서 배를 타고 제주로 낙향하는 과정을 형상화 최현식은 「협죽도」(1962)를 통해 제주를 무대로 제주인의 삶을 그려낸다, 이 작품에서 ‘물숨이’는 제주도의 초원에서 말을 돌보고 있는 목동이다. 그는 같은 주인 ‘김영감’을 섬기는 ‘춘심이’와 함께 사는 것이 꿈인데, 그녀와의 사랑 이야기와 함께 주인 영감과의 갈등 등이 작품에 그려진다. 아침에 물질을 하고서 밭일에 나가던 래녀들의 삶이라든가 자리젓과 보리밥을 먹던 식생활, 허벅을 지고 방목장에서 말을 기르던 제주도의 풍속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작품에서 확인되는 최현식의 의식과 정서에는 함경도적인 것과 제주도적인 것이 혼재되어 있다. 최현식의 소설은 자전적 요소가 많은데, 작가 자신으로 볼 수 있는 작품 속의 화자(話者)는 함경도 사람이면서도 제주도 사람이기도 하다는, 반제주인(半濟州人)적인 인물로 형상화 된다.(김동윤, 『제주문화예술60년사』2008년, 제주특별자치도)
나) 강금종의 「상흔」과 「혈맥」
강금종의 등단작 「상흔」(1963)은 일제말기 어느 섬의 군항 공사장 주변 에서 일하고 있는 식민지 백성들의 고통을 그린 소설로, 중노동과 저임금의 실상을 폭로하고 있다. 남해 한복판과 대만과 일본의 중간에 있는 섬이라는 작품 속의 언급에서 볼 때 제주도를 배경으로 삼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혈맥」(1964) 역시 해방 직전의 제주도가 배경인 소설이다. 주인공 석홍은 서울에서 절도죄로 옥살이한 후 제주도로 귀향한다. 동네사람들은 행실이 좋지 않던 그를 경원한다. 한편 성실하게 살던 그의 동생 석이는 경방단 청년부장을 맡게 되면서 친일한다. 석이가 일본인 형사 가노의 심복이 되어 동네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는 반면, 불량한 청연으로 인식되던 석홍은 가노를 몽둥이로 패 줌으로써 동네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 낸다. 하지만 강금종은 제주와 관련된 작품보다는 충청도의 농촌을 배경으로 그 곳의 농민들을 등장시킨 소설을 많이 썼다.(김동윤, 위 책)
다) 오성찬의 「별을 따려는 사람들」과 「포구」
오성찬은 1940년 4월 제주 서귀포시에서 태어났다. 별을 따려는 사람들은 1969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작으로 당시 심사위원 김동리, 박영준은 이 작품을 다음고 같이 평했다.
...「별을 따려는 사람들」은 차라리 기성작가의 작품이 아닌가 싶게 문장력이 뛰어난 수작. 작가적인 수련을 많이 쌓은 흔적이 역력하여 능숙한 기술과 역량을 인정할 수 있다. 「별을 따려는 사람들」은 계급이 인간의 가치를 가름하는 군사회(軍社會)와 그리고 부대주변을 싸도는 여인의 생태 등 착잡한 상황 속에 던져진 한 ROTC 장교가 지적이고 예리한 눈으로 관찰한 고발문학이다.
처음부터 설정해 놓은 목표를 향해 일직선으로 끌고 가서 너무나 공식에만 얽매인 것과 같은 흠이 없지 않고, 군이라는 특수사회를 보다 애정을 갖고 봐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로 이 작품은 우선은 소설문학의 정석(定石)을 밟았다는 점에서 기꺼이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오성찬 중편집「별을 따려는 사람들」1973년. 현대문학사)
작가는 이 작품을 다음과 같이 해설했다.
...당선작의 제목인 「별을 따려는 사람들」에서 ‘별’은 얼핏 생각하면 꿈이나 이상 깥은 것으로 착가하기 쉬우나 여기서는 어깨나 모자에 다는 사실적인 ‘별’을 뜻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높은 계급을 향해서 매진하는 군대 사회의 이야기다. ... 사실 나는 이 소설을 쓰기 전 경기도 양평군에 주둔해 있던 모 부대에 졸병으로 근무한 적이 있으며 당시 이 부대에서는 ROTC 1기로 임관된 앳된 소위들이 배속받아 와서 함께 근무를 했다. 대학에서 공부를 하다가 바로 들어와서 아직 군대 물이 덜 든 사람들이라 갈등고 많았고 우리들 공부한 졸병들과는 나이와 아는 것도 비슷한 만큼 의기 상통하는 일면도 있었다. 이 때의 경험과 산물이 이 작품이다. 보고 느낀 대로 솔직히 기술했으며 이제 말하지만 일부는 작중인물의 이름까지도 실명인 경우가 있다.(오성찬 문학선집 11권, 「별을 따려는 사람들」과 「포구」,2006년 푸른사상사)
한편 이에 앞서 오성찬은 1968년 1,000 매 정도의 장편소설을 「포구」를 제주신문에 연재를 했는데, 이 소설은 작가의 소년시절 「절벽」이라는 조금은 절망적인 문학동인 활동을 할 당시의 활동상황과 갈등을 그린 작품으로 작가는 이 작품의 무대는 처음부터 끝까지 서귀포 아직 변하기 전의 아름다운 환경과 인정들이 깔렸기에 더욱 애정이 가는 작품이라고 말했다.(오성찬, 위 책)
2) 평론
1960년대는 박철희, 김영화, 김시태 등 3명의 평론가 의 등단으로 타 장르와 비교하여 본격적인 비평의 시대를 열었다.
박철희의 경우 196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서 「비평에서의 혀대적 방향」, 1961년 「문예 비평의 지표」가 입선되었고, 1961년 「에로스와 아가페의 의미」가 『현대문학』에 추천 완료되면서 평론활동을 시작했다.
김영화는 1967년 「동인소설의 구조」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김영화가 관심을 보이는 대상 중의 하나가 제주출신 소설가와 작품들이다.
김시태는 1967년 『현대문학』12월호 「시와 신념의 관계」, 1968년 12월호에 「현대시의 좌표」가 천료 되면서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시와 신념의 관계」에서 비평가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비평가는 동시에 철학가이고 도덕가이고, 사회학자이고 혹은 심리학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작품의 철학적인 체계나 도덕적인 입장을 결정하는 작업은 그 자체로서는 정당한 활동이지만 알고 보면 그것은 문학과는 극히 상이한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작품 비평이기 이전에 그 밖의 다른 어떠한 것이다. 반면 작품을 향한 비평가, 다시 말해서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피고 가는 비평가는 작품 자체를 밝혀준다. 이것이야 말로 실로 작품의 내용을 캐고 들어가는 유일한 활로이다. 김시태는 시와 시인의 인간적인 신념을 엄격히 분리된다고 주장한다. 시는 시인의 어떠한 인간적인 신념도 증명할 수 없으며, 또 그러한 신념의 여하로써 평가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왜냐하면 시는 시 자체로서의 정당성을 가질 분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관점은 시를 시로서 정립함과 동시에 우리들의 시 감상에 있어서 근본적인 가능성을 부여해 준다.(김병택, 『제주현대문학사』,2005년 제주대학교 출판부).
3) 수필
1960년대는 『제주신문』을 통하여 수필가들의 활동이 이루어졌다.
작품을 발표했던 사람들은 기존 문인뿐 아니라 학생들의 작품들도 있었다. 필자들의 직업은 교사, 공무원, 예술가, 일반시민 등 다양한 편이다.
당시에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사람은 김광수, 김순택, 김영돈, 공옥자 서경림 등이다.
3. 1970년대의 문학
가. 이 시대의 한국 사회 흐름
1) 유신정권의 시작과 종말
1970년대는 박정희 정권이 3선 개헌에 이어 종신대통령제의 기반을 위하여 유신쿠테타를 거행하면서 대학생들의 시위가 그치지 않았고 결국에는 부하의 총탄에 의해 박정희가 시해됨으로써 유신정권이 종언을 고했던 시대다.
유신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서 긴급조치를 발동해 시민들의 눈과 귀와 입을 봉쇄하고 학생들의 머리와 여인들의 치마 길이까지 통제하던 강압통치시대였다. 언론을 통제하기 위해 보도지침을 내리고, 대학에 위수령을 발동해 대학정문에 탱크를 동원해 학생들의 교내 출입을 막기도 했고 야간통행금지 등을 통해 인간의 기본권까지 침해했던 시대다.
1971년 4월 27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신민당 대통령후보로 김대중이 선출되고, 민주공화당 박정희와 겨뤘으나 결국 94만여 표 차로 박정희가 다시 대통령이 된다. 그리고 5월 25일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야당끼리의 심한 집안싸움에도 전국구 의석을 포함해 공화당 131석, 신민당 89석으로 야당이 개헌 저지선을 훨씬 넘어 단독으로 국회를 소집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박정희 정권은 두 차례 선거에서 드러난 민주화 요구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10월 초 대학생들이 학원병영화 반대와 부패 특권층 타도 시위를 벌이자 군인들을 동원 캠퍼스의 입구를 탱크로 막고 학원에 난입했으며 위수령을 발동하여 군대를 거리로 내보냈다. 그리고 시위 주동자들을 제적시키고 강제로 군에 입대시켰다.
그러나 대학생들의 시위가 더 격렬해지자 12월 8일에는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한다. 그리고 12월 21일에는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하여 전격 통과시킴으로서 광범위한 비상 대권을 갖는다.
1971년 8월에는 대한적십자사에서 남북적십자회담을 제의하고 1972년 7월 4일에는 남북간의 제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북조절위원회를 설치한다는 내용을 담은 7·4 공동성명을 발표한다. 여기에는 외세 간섭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하며,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한다는 통일 3원칙에 합의했다.
그러나 박정희는 1972년 10월 17일 국회의 해산, 헌법 일부 조항의 효력 정지를 내용으로 하는 특별선언을 발표하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한다. 소위 유신 쿠데타를 일으켜 유신 헌법을 만들어 입법, 행정, 사법의 3권을 장악했다. 대통령도 직접 선거가 아닌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기구에서 선출하도록 하여 자신이 의장이 되어 종신 대통령이 되는 통로를 만들었다.
이에 유신체제를 반대하는 투쟁이 벌어지자 박정희는 긴급조치 1,2호를 발동했다. 유신헌법을 부정 반대 비방하는 자는 최고 15년 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이는 보통군법회의와 고등군법회의에서 정할 수 잇도록 했다. 유신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반 유신운동을 제어하겠다는 의도로 박정희는 1974년 긴급조치 4호를 선포하여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가담자가 자수를 하지 않으면 최고 사형까지 처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유신헌법 반대자들을 빨갱이로 몰아 민청학련사건 및 인혁당 사건을 만들었고 이에 많은 학생과 민주 인사들이 희생됐다. 이 과정에 제주 출신 강창일 등도 연루 되어 복역을 했다.
1974년 8월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영부인 육영수가 흉탄에 돌아갔다.
유신헌법 선포 7주년인 1979년 10월 17일 부산과 마산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계엄사는 1563명의 시위자들을 연행하여 94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했다.
이에 10월 26일 청와대 옆 궁정동 중앙정보부 별관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박정희는 목숨을 잃는다.
그러나 12월 12일 전두환과 노태우 등 육군 내 사조직인 하나회가 주축이 되어 비상계엄사령관 정승화, 정병주 특전사사령관,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을 체포하고 군을 장악해 권력의 실세로 떠오른다. 그리고 1980년 5월 17일 국방부에 모인 군 지휘관들은 계엄의 전국 확대, 비상기구의 설치, 국회해산 등을 결의하며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군부 정권이 연장된다.
2) 관광개발과 산업화의 제주
그러나 제주도는 육지부와 동떨어진 섬이기에 상대적으로 야간통행금지 지역에서도 제외 되는 등 통제를 덜 받았다. 오히려 관광개발이 본격화 되면서 공항과 항만이 확장되고 교통수단이 확충되면서 일주도로 포장 완공 등 사회기반시설 정비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감귤산업에 대한 지원과 보급으로 감귤이 황금작물로 각광 받게 되면서 제주민의 생활도 넉넉해졌다.
1974년에는 제주KAL호텔이 개관하고 1973년부터 정부차원에서 제주도를 국제관광지로 만들기 위한 제주도관광개발계획이 수립된다. 이 계획에는 항만, 공항, 도로, 용수, 통신, 전력 등 기반시설을 완비하고 중문지구를 국제수준의 위락관광지구로 조성하고 휴양지의 제반 시설을 갖춘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계획에 의해 제주도는 국제관광지로서 뿐만 아니라 한국인이 아끼는 국민휴양지로 변모하게 됐다. 1977년에는 노형동과 연동을 기점으로 하는 신제주 건설공사의 기공이 이루어졌다. 이와 함께 장거리 자동전화 시설 완비, 추자면 횡간도에 전기시설이 완료되며 1973년 보잉727기의 취항과 1978년 이후 카페리의 취항이 이루어진다.
1970년에는 남양방송TV가 개국됐고, 이듬해 제주방송국TV가 시험방송을 했으며 1971년에는 한국방송통신대학이 개교했고, 1973년에는 제주실업전문대학이 개교를 했다. 1978에는 제주시 오라동에 종합공설운동장이 기공했다.
한편 감귤산업의 경우 1962년에 313ha에 불과했지만 1974년에는 1만 1200ha로 이 시기에 감귤농가가 최고조에 이르면서 제주경제 성장을 견인했다.
3) 제주 문화예술계의 흐름
1972년 문교부의 인가를 받고 제주대학교에 미술교육과가 설치되어 미술인재들을 양성하게 된다. 한편 제주신문사는 창간 30주년을 맞아 ‘제주미술의 중흥을 기하고 나아가서 민족문화의 발전에 기여하는 계기’로 제1회 제주도전을 개최했다. 제주도전은 이후 신문사 사정으로 한국예총제주도연합회로 이관되어 제주특별자치도미술대전으로 운영됐다.
한편 제주의 연극계도 1970년대에 개화기를 맞이한다. 한라문화제 연극제에 「이대감 망할대감」(1970)을 시작으로「꽁생원과 맹생원」(1971), 「왜 싸워」(1972) 등 매년 한두 편씩 연극공연이 이어졌다. 1975년에는 동호인친목모인이던 제주연극협회가 한국연극협회에 정식 인준을 받아 한국연극협회 제주도지부(초대 지부장 정인수)가 결성된다. 그리고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연극동아리가 구성되었는데 이들 중 일부는 1975년 제주YMCA 가람극회를 창립한다.
1978년에는 도내 처음으로 연극의 전문화를 표방한 극단 이어도(대표 강용준)가 「돼지들의 산책」으로 창단 공연을 가졌다.
1970년대에는 제주의 사진계도 활성화 된다. 제주카메라클럽을 중심으로 회원전과 개인전을 개최해 오던 사진가들은 1977년 한국예총 산하 한국사진가협회 제주지부가 결성되면서 공식적인 사단이 형성되어 서울 진출 기회가 마련되고 사진가들의 구심체 역할을 하게 된다.
제주 음악계도 1970년대는 성장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 들어서면서 활발한 연주활동이 이루어졌다. 학교 중심의 음악활동에서 벗어나 음악이 일반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YWCA어머니합창단의 창단을 시발로 Y하모니남성중창단, 포코글리클럽, 비바체중창단, 돌체칸토합창단, 한라합창단 등 민간 합창단이 창단되었다. 또한 여러 학교에 관악대가 창설되고 이들은 도외 경연에 참가 수차 입상하여 제주관악의 수준을 도내외 과시했다. 오현고등학교 관악대의 경우 제12, 13회 호남예술제 전 부문 특상, 제23회 개천예술제 관악합주부문 최고상, 1976년 제1회 KBS배 쟁탈 전국고교관악경연대회 은상을 차지했다.
나. 제주 문단의 동향
1) 4·3에 대한 문학 담론의 대두
이 시기 제주 문학의 커다란 흐름은 4·3에 대한 문학 담론이 대두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1978년 『창작과 비평』에 발표된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이 촉발했다. 문학평론가 김영화는 「순이 삼촌」이 성공한 배경에는 당시의 사회적인 분위기와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반체제적, 진보적인 독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고 진단했다.
“1970년대 제주문학의 두드러진 특징은 제주와 관련된 작품이 많이 나왔고, 그것이 문단의 관심을 끌었다는 점이다. 현기영의 「순이 삼촌」(1978) 등 일련의 4·3 사건 소재의 소설이 발표되자, 제주의 독자들은 충격을 받았고, 다른 지방의 독자들은 제주도에 4·3과 같은 비극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엇다. 현기영 이전에도 4·3 사건 소재의 소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독자들의 관심을 보인 데는 현기영 소설이 기폭제가 되었다.
4·3 사건은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거론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것이었다. 대다수 제주도 사람들은 가슴속으로만 앓고 있었을 뿐, 드러내 놓고 말할 수 없는 금기사항과 같은 것이었다. 현기영은 그것을 대담하게 소설로 썼다. 그것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고, 수난을 각오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잇는 제주의 독자들은 숨을 죽이고 이 작품을 읽었다. 특히 그의 작품은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등 1970년대에 젊은 독자들을 폭넓게 확보한 문예지에 발표했기 때문에 많은 독자들이 읽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대의 분위기가 그런 작품이 화제가 되었고, 반체제적, 진보적 성향의 독자들이 많았던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김영화, 『변방인의 세계』, 2000, 제주대학교 출판부)
2) 제주문인협회와 『제주문학』의 창간
1968년 제주문학협회는 한국문인협회 제주도지부로 인준 받으면서 (초대회장 강통원)활동을 하다가 1970년 2대 양중해 회장의 사의표명에 의해 표류하다가 1972년 제11회 한라문화제를 계기로 20여 명이 모여 제3대 회장으로 강통원 시인을 선출하면서 협회를 재정비하여 1972년 기관지 『제주문학』을 창간했다. 이후 연간지로 꾸준히 발간했다.
창간호에는 강통원, 강갑길, 고영기, 김양수, 김용기르 김영환, 박성원, 오용수, 정인수, 현춘식, 문충성(번역시) 등의 시가 실렸고, 박수일, 오경훈, 오성찬, 현길언, 홍순만의 소설과, 강군황, 김순자, 정순희의 수필, 김시태, 김영화, 송상일의 평론이 실렸다. 자료로는 창간호에 정관 및 회원명단, 제2집에 오성찬의 제주문학 20년, 제6집에 『제주문학』총목차가 실렸다.
한편 역대 회장은 4대 김시태(1974-1975), 5대 김영화(1976-1977), 6대 강통원(1978-1979)으로 이어졌다.
발족 당시 회원은 다음과 같다.
시 분과 : 강갑길, 강통원(시, 번역), 고영기(시, 소설), 김성주, 김양수, 김용길,
김영환, 김종훈, 문충성(시, 평론, 번역), 박성원, 양중해, 오용수,
이근, 정인수, 조응방, 현춘식.
소설 분과 : 고시홍, 김순이, 김영돈, 박수일, 오경훈, 오성찬, 이간숙, 정영택,
조진춘, 최현식, 현길언, 홍순만(소설,수필).
수필 분과 : 김순자, 김순택, 정순희, 조명철, 현용준.
평론 분과 : 강용현, 김시태, 김영화, 송상일.
희곡, 시나리오 분과 : 강군황.
3) 중앙 등단 문인
이 시기에는 시, 시조, 소설, 평론, 아동문학, 수필 등 다양하게 등단했다.
○ 소설
한림화, 중편소설 「밀물」 1972년 『카톨릭시보』
현기영, 단편「아버지」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 평론
송상일, 「한국적인 것의 순환적 이해」 197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김병택, 「시인의 현실과 자유」 1978년 『현대문학』
○ 아동문학
송재찬, 「찬란한 믿음」197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김종두, 「달려오는 아이들」1976년 월간 『소년』
○ 수필
고임순, 「육아일기」1970년 『여원』
4) 문학동인회의 활동
이 시기는 1960년대 보다 동인활동이 줄어든다. 이는 제주문인협회의 『제주문학』창간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1972년에 『제주문학』이 창간되어 해마다 꾸준히 발간됨으로써 고정적인 발표 지면이 확보되면서 동인 활동이 침체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제주문학』의 지속적인 간행은 제주 지역문학의 정립과 도약에 대단히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가) 정방문학동인회
1975년 결성된 ‘구쟁기문학회’ 동인이 그해 12월에 종합문예동인지 『구쟁기』창간호를 내고 1976년에는 제2집 발간과 함께 서귀포 원 다실에서 시화전을 열었다. 1977년에는 ‘정방시우회(正房詩友會)로 개칭하여 1983년부터 동인 시집 『정방(正房)』제6집을 간행한다. 이들은 시화전, 문학의 밤, 작품 감상회 등을 지속적으로 개최했다. 제6집 발간 당시 동인은 오승철, 김순남, 김석교, 고명호, 윤미경, 강농욱, 강한철 등이다.
나) 탱자꽃 모임
1976년부터 제주교육대학생 중심으로 『탱자꽃』을 7호까지 발간했다. 동인은 권재효, 고영철, 강순문, 김창원, 장승심, 장승련, 정익권, 고진숙, 김금희, 김영미, 양귀순 등이다.
다) 제연문학회(濟淵文學會)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생 중심으로 1973년 조직된 문학동인회다. 이들은 매년 시화전을 열었고 1975년에는 제대문학회로 개칭하여 시화전과 문학의 밤 등 활동을 지속했다. 나기철, 고권일, 김승립, 이석범 등이 참여했다.
라) 연지 동인
1970년 초에 제주교육대학생 중심의 연지 동인이 있었는데 그 활동은 알려져 있지 않다. 송재찬이 참여했다.
다. 제주 문인들의 작품 활동
1) 소설
1970년대에는 7권의 소설집이 나왔다.
강금종, 『먼 여로』(1972)
오성찬,『별을 따려는 사람들』(1973), 『탐라인』(1976), 『포구』(1977),
『한라산』(1979),
최현식, 『홍상(紅裳)』(1973)
현기영, 『순이 삼촌』(1979)
가) 오성찬의 「흐르는 고향」
오성찬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4권의 소설집을 내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소설집『탐라인』(1976년)과 『한라산』(1979년)에 수록된 「어부들」, 「돌챙이」, 「돌하르방」, 「한라산」등은 제주의 서민들의 삶을 주로 형상화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서민들이 제주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담담하게 살아가는 모습들을 오성찬의 소설에서 읽을 수 있다.
오성찬의 「흐르는 고향」(1973년) 등 일련의 고향 연작 소설은 제주 사회 변동기에 종래의 공동체적 삶의 붕괴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1970년 전후는 제주도의 현대사에서 획기적인 시기이다. 근대화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제주 사람들의 생활과 의식이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고, 도 종래의 촌락공동체적인 삶이 붕괴되기 시작햇다. 그것을 문학에 담아낸 것이 오성찬의 소설이다.(김동윤, 『제주문화예술60년사』2008. 제주특별자치도)
한편, 김병택은 “오성찬의 초기 소설「흐르는 고향」에서 발견되는 것은 고향 비판이다, 그에 의하면 고향에 배금주의 사상잉 만연하여 초등학교 학생들까지 다른 것에 앞서 돈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게 된 것은 순전히 마을 사람들이 몇 년 사이에 일어난 감귤 붐으로 많은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러한 생각은 「흐르는 고향」에서 의사인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교회 전도사 황혁에 의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황혁은 심지어 이 ‘마음’이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시킨다고 말하기도 한다. (...) 작가는, 시골 젊은이들이 감귤 과수웜을 해서 갑자기 부자가 되자 돈을 주체할 줄 몰라 별 수없이 허영에 들뜨게 되었고, 그 허영이 쉽게 그들을 파멸로 몰아갔다고 비판한다. 읍내에 느는 것은 다방과 술집이고 젊은이들의 허영을 노리고 대기 원정을 온 여자들은 그들에게 사장님이라는 굴레를 씌워 꼼짝달싹 못하게 묶어 놓는다는 것이다. 작가에 의하면, 거듭되는 이 악순환은 이 마을 정신세게의 밑바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 작품의 내레이터인 ‘나’는 자기 자신의 견해를 직접 밝히지 않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 내용 때문에 충격을 받는다.
‘나’는 의학 공부를 해서 의사가 된 후 고향에 와 일을 하고자 하는 지극히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나’는 비도덕적인 일들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된다. 어릴 적 친구가 형사와 담합하여 ‘나’로부터 돈을 뜯어내려고 사건을 왜곡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마을의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이들이 밀감 몇 개를 따먹었다가 감옥에 들어갈 정도까지 사람의 인심이 흉흉해져 버리기도 한다.“고 했다 (김병택, 『제주현대문학사, 2005, 제주대학교 출판부)
나) 현기영의 「순이 삼촌」
현기영은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아버지」당선되며 등단했다. 그런데 그가 중앙문단에 이름을 알린 것은 1978년 『창작과 비평』에 「순이 삼촌」을 발표하고부터다. 이는 제주에서 일어났던 4·3을 처음으로 문단에 등장시켜 세인들의 마음속에 묻혔던 비극적인 사건을 끄집어 낸 작품으로 이로 인해 현기영은 군부정권 정보기관에 끌려가 많은 고초를 겪었다.
김동윤은 “「순이 삼촌」은 억울한 양민 학살을 문제 삼음으로써 잊혀지기를 강요당해왔던 4·3의 비극적 역사를 사회적으로 인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이다. 전국의 많은 독자들이 제주에 그런 불행한 역사가 있었음을 「순이 삼촌」을 통해 충격적으로 알게 되었다. ‘북촌리 학살 사건’을 중심으로 4·3을 소설화한 이 작품에서 작가는 제주도 민중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이제 당당히 증언해야 할 때임을 역설했다.“고 했다. (김동윤, 위의 책)
한편 김병택은 『제주현대문학사』에서 “현기영은 제주 4·3이 제주도만이 지니고 있는 특유한 항쟁의 전통에다 급진적 이념이 접목되어 발생했다고 본다. 「순이 삼촌」의 ‘나’는 모처럼 이틀간의 휴가를 받고 고향인 제주로 내려간다. 가족 묘지 매입 관게로 상의할 일이 있으니 할아버지 제삿날에 맞춰 내려오라는 할아버지의 편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날은 두 집 제사가 있는 날이라 큰당숙 댁에서 초조녁에 제사를 치른 다음 모두 큰집에 모인다. 그런데 서울에 올라와 밥을 해주며 같이 살았던 순이 삼촌이 보이질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그 까닭을 물었더니 환청 증세가 심하고 신경 쇄약에 시달리던 순이 삼촌은 국민하교 근처의 일주도로변 밭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음력 섣달 열여드레 날 하루에 추렴돼지가 유난히 많고 한밤중이면 슬픈 곡성이 여기저기서 터지는 것은 순이 삼촌네 밭처럼 옴팡진 다섯 개의 밭에서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살해되었기 때문이다. 밭을 에워싸고 벼락같이 총질을 해대 순이 삼촌은 그때 죽을 사람이었는데 살 한 점 상하지 않고 살아났으니 참 신통한 일이라는 이야기를 실마리로 하여 봇물이 터진 것처럼 4·3 당시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현기영은 이 소설의 한 부분에서 그 당시 모든 상황을 명백한 죄악으로 규정하고 이 명백한 죄악이 한 번도 고발되어 본 적이 없음을 개탄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의 순이 삼촌도 그 사건의 후유증으로 환청 증세와 신경쇄약에 시달린다. 이에 대해서는 작가가 의도하는 궁극적인 메시지가 같은 방법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점보다도 두 사람 모두가 정신병에 시달릴 만큼 충격이 컸다는 점에 초점을 모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두 사람이 정신병에 시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정신병으로 인해 심리구조가 비정상으로 바뀌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순이 삼촌의 언행에 대한 여러 사람의 반응은 차라리 순이 삼촌으로서는 지옥과도 같은 체험이다. 이 소설은 수난과 한(恨 )을 근간으로 형성된 4·3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2) 평론
1970년대에는 세 권의 평론집이 출간됐다.
김영화, 『현대한국소설의 구조』(1977)
김시태, 『현대시와 전통』(1978)
송상일, 『시대와 삶』(1979)
가) 김영화의 「제주문학 서설(序說)」
김영화는 제주문학의 툭성을 제주문학과 다른 지역의 문학을 변별되게 구분하고 있는데 그 요소로 언어, 정서, 이야기, 소재 등을 들고 있다. 그는 『제주문학』창간호에서 「제주문학 서설」을 통해 지역 문학의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는 이글에서 제주문학에 대해 정의한다. 그것은 제주도의 것을 소재로 해서, 제주도민의 생활 감정을 여실하게 그리면서도 작품으로서의 문학적 향기와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그리고 제주문학에서 작가의 역할로서 제주사람들의 꿈· 이상· 생활감정을 그린 작품으로 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아일랜드의 문예부흥을 예로 들면서 지역문학의 발전 방향을 제시한다.
그래서 김영화는 아일랜드의 문예부흥이 구비문학의 부흥을 통해 영문학 일부를 차지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제주적인 소재의 재발견, 제주도 방언의 적절한 구사, 제주도 민요 특유의 리듬발견과 현대시에의 적절한 도입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창작방법의 새로운 발견과 제주도민 특유의 정신의 새로운 해석에 의한 창작 등을 통해 제주문학의 꽃을 피워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이런 주장은 제주문학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과 제주적인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개념을 정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김영화는 소설보다 시나 시조에 제주의 풍물을 노래한 작품들이 많이 있음을 환기시킨다. 한라산, 제주바다, 연북정, 정낭, 갈옷, 억새꽃, 동백꽃, 유채꽃, 협죽도 등을 노라한 작품들의 예로 시에 김대현, 양중해, 강통원, 한기팔, 김종원, 문충성, 정인수, 김광렬, 김용해, 김순이, 나기철 등을, 시조에 정태무, 김공천, 이인식, 오영호, 고성기, 고정국 등을 들고 있다.(강영기, 『제주문화예술60년사』, 2008, 제주특별자치도)
나) 송상일의 사유비평
김병택은 『제주현대문학사』에서 송상일의 비평을 사유비평이라 주장한다. 송상일은 인간을 분열된 존재로 인식한다. “그것을 소외라고 하든 타락이라고 하든지 인간은 본래적으로 그렇게 있어야 할 상태에서 분리되었고 그래서 자신을 유한하고 결핍된 존재로 느끼며 산다.”라는 주장을 통해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분열된 존재로서의 삶의 ‘근본적 불안’을 감내하면서 유한자로서 인간의 결핍된 존재를 자각하는 ‘움직임’이라고 파악한다. 따라서 “산다는 것은 현실을 거부하고 거기에서 떠나는 것이다. 삶은 근본적으로 불안이며, 지금의 자기와 본래적으로 있어야 할 자기와의 불일치를 느끼는 것이며, 그리하여 자기동일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운동“이라 주장한다. 즉, 인간은 부단히 훼손당한, 소외된, 타락한 자기의 본래성을 되찾아야 하며, 이것이 곧 ‘자기동일성을 회복하고자하는 ’운동‘과 다를 바 없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이것은 송상일의 초기 비평관과 연관된다. 이를 통해 그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확고한 인식 체계를 정립시켜 주었으며, 이것은 곧 문학에 대한 그 만의 독특한 비평적 사유의 주름을 만들고 있다. (강영기, 위의 책)
3) 아동문학
1970년대 제주의 아동문학은 제주신문에 동화를 연재하면서 부터다. 1969년에 현길언의 「꽃동네」를 시발로 1971년에는 이강숙의 「콩나물을 파는 할머니」가 연재되었고, 박경종 1973년부터 1975년 까지 「까치섬의 어린이들」, 「백마를 타고」, 「해님 달님 앞세우고」, 「아기다람쥐를 찾아서」등 장편을 연재했다.
한편 1978년에는 교사 단편릴레이가 시작되면서 제주도에 거주하는 작가들 작품이 독자들에게 알려졌다. 박재형의 「하얀 눈 하얀 눈」을 시작으로 김정배, 오남두, 김동호, 고창남, 김봉임 등이 매주 토요일에 동화를 게재하면서 제주아동문학이 시작됐다. 또한 도외에서 거주하는 제주 출신 작가 송재찬과 김종두가 등단하면서 제주아동문학의 이정표가 됐다.
김종두는 1977년 『해님이 사는 꽃밭』을 발간했다.
4. 1980년대의 문학
가. 이 시대 한국 사회의 흐름
1) 광주민주화운동과 신군부의 탄생
1980년대는 민주화와 함께 민중의 시대가 열린 기간이다. 1979년 12·12 군부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전두환은 국군보안사령관에 취임함과 동시에 비상계엄령을 내리고 계엄사령관에 취임한다. 1980년 4월에는 중앙정보부장을 겸직한다.
박정희 때부터 군부 내에서 세력을 규합해 온 전두환을 주축으로 하는 신군부 일당은 10·26이후 자신들의 집권 시나리오를 짜기 시작했다. 허나 모든 것이 자신들의 계획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랜 군사 독재에서 벗어나려는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 그것을 민주화의 봄이라 생각한 시민들은 거리로 나섰다. 이처럼 12·12이후 민주화세력들의 끈질긴 저항과 대학생을 비롯한 국민들의 시위를 신군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내야 했다. 이를 위해서 먼저 민주화 운동세력과 정치지도자들을 제거해야 했다.
시위가 격렬한 곳 중 하나가 광주였다. 이곳은 박정희 독재 정권 동안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곳이었다. 그래서 이곳 출신 김대중이 민주화된 사회에서 정권을 잡기를 열망했다. 다시 군부가 정권을 잡기 위해 억압하자 격렬하게 저항했다.
1980년 5월은 전국에서 “계엄철폐”시위가 있자 5월 17일 24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김대중, 문익환 등을 시위 배후 조종자로 연행했다. 그리고 김종필은 권력형 부정축재자로 체포하고 김영삼은 자택 연금했다.
그리고 5월 18일 10시경 계엄군은 전남대학교 정문 앞에서 등교를 하는 학생들을 막고 이에 항의하는 학생들은 ;계엄해제. 전두환 물러가라‘는 구호가 나왔다. 여기에 공수부대원들은 쇠심이 박힌 곤봉으로 학생들에게 잔혹한 폭력을 가하기 시작했고 이를 만류하는 시민들에게 폭언과 구타를 했다. 그리고 피흘리며 쓰러진 학생들을 질질 끌고 갔고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금남로로 진출해 연좌 농성을 벌였다. 공수부대원들은 시위대를 해산하는데 그치지 않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젊은이들을 남녀 불문하고 구타하면서 제압하고 발가벗겨 양손을 뒤로 묶고 끌고 갔다.
5월 20일 계엄군은 광주로 통하는 모든 전화와 도로를 차단하고 광주를 고립시켰다. 이윽고 시위대 8명이 난자당해 살해된 채 발견되고 4시 경에는 발포에 의해 고등학생이 쓰러졌다. 총격에 분노한 시민들은 전남 도청에 있던 무장 계엄 군인들을 몰아내고 5월 21일부터 항쟁을 벌인다. 이로부터 계엄군이 다시 전남도청을 탈환하기 까지 6일 동안 광주는 시민들이 사수하는 해방구였다.
5·18은 수많은 희생자를 내면서 독재에 맞선 민주화 운동으로 기록됐다.
광주를 접수한 신군부는 권력을 접수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5월 31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치안을 만들고 전두환이 상임위원장으로 취임한다. 그리고 스스로 육군 대장으로 승진했다.
7월 김대중을 5·18의 배후로 지목하여 내란음모·국가보안법·반공법 등의 위반 혐의로 군법회의에 이송해 사형을 내린 후 나중 감형하여 석방했다.
그리고 신군부는 사회악을 일소한다는 미명아래 노동자, 농민운동가, 학생 등 4만여 명을 연행하여 군대에 보내 ‘삼청교육’이라는 인권유린 사태를 자행한다.
8월 16일 최규하가 대통령이 사임하고,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된 통일주체대의원회의에서 99.9% 지지를 얻어 전두환이 제11대 대통령이 됐다.
2) 6월 민주항쟁과 대통령 직선제
1987년 1월 서울대 학생이던 박종철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란 해명을 했다. 이에 박종철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던 시민들은 대규모 집회를 계속해 나갔다. 3월 3일 고문추방 민주화국민평화대행진이열리고 동시에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집회가 전국적으로 열리자 전두환은 4월 13일 개헌논의를 금지하는 4·13 호헌 조치를 발표했다. 이 조치는 분노하는 시민들에게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됐다. 6월 10일 잠실체육관에서 민정당 대통령후보로 노태우가 지명되는 그때에 전국각지에서는 박종철 군 고문치사 조작·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가 열렸다.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6월 항쟁이 시작된 것이다. 6월 15일 부터는 시위가 커지기 시작했고 민정당 지구당, 시청 건물, 경찰차량이 화염병에 의해 불타면서 폭력적으로 변했다. 결국 이에 굴복한 전두환 정권은 민정당 대통령 후보 노태우로 하여 대통령 직선제 개헌 후 대통령 선거 실시, 김대중 복권사면과 시국사범 석방, 언론기본법 개폐 등으로 언론자유 창달 등 8개항의 시국수습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법 개정으로 시행된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김대중 등 야권의 분열로 군부 출신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1988년에는 서울올림픽이 열려 스포츠에 대한 열기로 국민을 하나로 만들었다.
3) 제주 사회의 문화적 변화
정치적인 격변기에서 제주 사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돼지 파동, 당근 가격 폭락, 가공용 감귤가격 폭락 등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1980년에는 제주도청이 신제주 청사로 이전했다. 이해 11월부터는 외국인 관광객이 15일 동안 비자 없이 관광할 수 있는 외국인 관광객 무사증입도 제도가 실시되기도 했다.
또한 이 해 12월에 제주KBS가 컬러TV 첫 방송을 시작했다.
1982년에는 제주대학이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었고, 1983년에는 제주시 중앙로 지하상가가 준공되었으며, 1984년에는 제13회 전국소년체육대회가 제주에서 처음으로 개최되어 전국단위 종합체육행사를 개최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웠다.
또한 1984년은 관광객 120만 명 유치 목표가 달성된 해였다.
1985년부터는 특정지역 제주도종합개발계획에 의해 각종 개발 사업이 전개됐다. 중문은 국제수준의 관광지, 표선은 제주고유의 해양민속위락단지로 개발되었으며
1986년에는 제주도 전역을 하나로 묶는 전화광역통화권역화가 이루어졌다.
1988년 서울올림픽 문화행사를 위해 전국적으로 문예회관이 준공되었는데 제주에서도 8월 25일 제주문예회관이 개관되었고, 현대식의 대극장이 생겨서 중앙의 우수한 연극, 음악 등 공연작품들이 제주도민들에 선보이기 시작했다.
1980년 이후 군부정권은 언론을 통제하기 위해 지방에 1개의 언론사만 두고(제주에는 제주신문) 거기다 구조조정에 의해 다수의 언론인들을 강제 퇴출시킴으로써 언론해직자들이 생겼다. 1989년에는 한라일보가 창간되었다.
1980년대는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시민의식이 싹텄다. 그래서 송악산군사기지반대운동, 탑동공유수면매립반대 운동이 뜻있는 지역사회 주민들과 재야운동단체들을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제민일보사를 비롯한 언론에서도 4·3에 대한 기획 연재물을 게재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4) 제주 문화예술계의 동향
가) 미술계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문화예술계에도 민중의식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미술계에서는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미술의 내부적인 반성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개인의 내면에 갇힌 형식주의 미술의 모더니즘적 권위적 안위를 비판적으로 극복하고 미술의 사회적 참여를 옹호하는 ‘새로운 미술운동’이라는 민중미술운동이 조직적으로 일어났다. 이 리얼리즘 미술운동은 민족민중미술, 혹은 민중미술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적으로 빠르게 확산되어 갔다.
1980년 11월 ‘현실과 발언 창립전’의 영향이었다. 이러한 민중미술의 파급은 이후 제주미술계에도 영향을 끼쳐 현실주의 미술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됐다. 즉 역사미술로서의 4·3미술의 탄생은 그간 제주미술의 정체성 찾기의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 받았다. 1980년 4월에는 제주 처음으로 미술전문 전시 공간이 대호다방 3층에 자리잡았으며 남양미술회관, 한국투자신탁 전시실, 동인미술관, 한솔갤러리, 세종미술관문예회관 전시실, 제주아트갤러리 등이 연이어 개관했다.
이런 전문 갤러리의 등장은 장르별 단체나 동문회 성격의 독립적인 단체들이 창립되기 시작하면서 미술 저변이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나) 음악계
1980년에 제주대학교 사범대학에 음악교육과가 개설되면서 전문음악인의 양성과 지도자가 배출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었다. 아울러 1982년 12인조 탐라관악합주단으로 출발하여 1985년 제주시립 관악합주단을 거쳐 1987년 제주시립교향악단(초대 지휘자 이선문)이 창단됐다. 한편 1984년에는 제주실내악단(지휘 김인규)이 창단되었고, 1985년에는 제주시립합창단(지휘 이춘기)이 창단되었고, 1987년에는 서귀포시립합창단(지휘 김군식)이 창단되어 합창음악이 활성화 된 시기였다.
1989년에는 초·중·고 학생들로 구성된 제주청소년오케스트라(지휘 장홍용)가 창단되었다.
이 시기는 다양한 음악회 활동이 이루어졌는데 학교음악과 교회음악 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1988년 제주문예회관 대극장이 개관되면서 서울, 부산 등의 유수한 음악가와 연주가의 뮤지컬, 오페라, 피아노독주회 공연이 이어져 도내 음악애호가들에게 격조 높은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다) 연극계
1980년에 들어서면서 제주연극계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중앙에서 불기 시작한 마당극운동이 제주에서는 마당굿 운동으로 변모하여 전개됐다.
이는 종래의 무대극에서 형식의 변화를 꾀한 것으로 단순히 극이 이루어지는 장소의 변화만이 아니라 내용도 중앙집권적인 제도권 문화에서 벗어나 제주의 역사와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크게 변모하여 대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있었다. 1980년 8월 ‘수눌음문화선언’을 발표하며 창단된 ‘극단수눌음(대표 김후배)’은 「땅풀이」를 창단 공연작으로 공연하였다. 이후 1983년까지 「항파두리놀이」, 「돌풀이」, 「녀풀이」, 「태땅」을 공연했으며 타의에 의해 해체됐고 이후 ‘극단한올래’. ‘극단 눌’, ‘극단올래’ 등으로 명맥을 유지했지만 공연법에 의해 문을 닫았다. 1987년 9월 ‘놀이패 한라산’이 수눌음 정신을 이어받아 창단하여 마당굿의 맥을 이었다.
한편 1980년 1월에는 ‘극단정낭극장’(대표 강한근)이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란 작품으로 창단했고, 1986년에는 ‘극단소리’(대표 문무환), 1987년에는 ‘극단가람’(대표 송윤규), 1988년에는 ‘극단무’(대표 김중효), ‘극단하늘극장’(대표 박세일), 1989년에는 ‘극단오름’(대표 오창순)이 창단 공연을 가져 극단 활동이 풍성했다.
1981년과 1982년에는 전도학생극연극경연대회가 열렸고, 1983년과 1984년에는 KBS제주방송국이 제주연극제를 개최했다.
지역연극의 활성화를 위해 설립된 전국연극제가 1983년 5월부터 부산에서 제1회 대회를 가졌는데 제주에서는 예선대회를 겸한 제주연극제를 개최하여 제주대표 극단을 선발하여 꾸준히 참가했다.
나. 제주문단의 동향
1) 제주문학의 특징
1980년대 두드러진 제주문학의 특징은 중앙문단에 등단한 사람이 급증했다는 점이다. 시와 시조, 소설로 등단한 사람이 많아졌고, 특히 희곡 부문에서도 처음으로 2명의 희곡작가가 등단했다.
평론가 김영화는 그의 저서 『변방인의 세계』에서 1980년대 제주문학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1980년대 제주문학의 특징은 첫째, 1970년대 말부터 나오기 시작한 4·3 사건 소재의 문학이 1980년대에 들어서 급증했다는 것이다. 현기영, 현길언, 오성찬, 고시홍, 오경훈, 김석희 등의 소설들과 재일 제주출신인 김석범의 장편소설『화산도(火山島)』가 그 예가 된다. 이 소재는 소설뿐만 아니라 시나 희곡에서도 많이 보인다. 이 작품들은 작품으로서도 의미가 있지만 4·3 사건을 역사의 전면으로 끌어올렸다는 데도 의미가 있다.
둘째는 제주도의 설화를 바탕으로 제주인의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작품이 나왔다는 것이다. 현길언의 『용마의 꿈』은 대표적인 것이다.
셋째는 제주 역사를 소재로 『변방에 우짖는 새』와 『바람 타는 섬』 등 제주민들의 저항정신을 그린 작품이 나왔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제주의 공동체적인 삶의 역사의 격변기에 어떻게 대응해 왔는가를 보인 이 소설들은 제주민의 삶의 문학적 형상화라는 점에도 의읭가 있지만, 한국 역사에서 제거되었던 제주의 역사를 전면에 끌어올렸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가 있다.
1980년대의 제주문학에서는 제주의 관련 소재를 가지고 쓴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그것은 제주 작가들이 제주인의 자아를 탐색한 데 따른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60년대부터 제주인의 자아를 탐색하기 시작하여 1980년대에 이르러 본 궤도에 진입한 느낌이다.
한편 평론가 김병택은 그의 저서『제주예술의 사회사』에서 제주문학의 경우 1980년대는 제주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문학작품으로 형상화되고 그 울림이 사회적으로 크게 증폭된 시기로 규정할 수 있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1980년대 제주문학의 특징은 우선 4·3문학이 급증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는 공산폭동으로 규정한 국가권력의 공식 역사가 흔들리면서 제주인들의 억눌렸던 진상규명 의지가 분출됨에 다른 현상인바, 당시 한국사회 전반에서 전개된 민주화 열풍과도 관련이 있다. 현기영은 『길』(1981), 『잃어버린 시절』(1983), 『아스팔트』(1984) 등을 통해 그 작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오성찬은 『사포에서』(1982), 『크는 산』(1984), 『단추와 허리띠』(1986), 『덫에 치인 세월』(1986) 등에서 4·3을 소설화했으며, 현길언은 『귀향』(1982), 『우리들의 조부님』(1982), 『먼훗날』(1984), 『신열』(1984), 『꿩 울음 소리』(1985), 『미명』(1987) 등에서 4·3을 형상화한다. 고시홍·김석희·오경훈·한림화 등도 1980년대 중반이후부터 『계명의 도시』(1989), 『땅울림』(1988), 『당신의 작은 촛불』(1988), 『불턱』(1987) 등의 4·3 소설을 발표한 작가들이다. 한편, 시의 경우 김수열의 『이장』(1983), 『조천할망』(1985) 등은 제주민중의 수난상을 고발하며, 김명식은 『유채곷 한 아름 안아들고-처형도』(1989)를 통해 반미 민족해방투쟁으로서의 4·3의 의미를 강하게 부각시킨다. 4·3만을 다룬 시집인 김용해의 『민중일기』(1989)는 수난사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가운데 4·3 논의를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낸다.
제주근대사를 다룬 작품들, 설화와 언어를 바탕으로 제주인의 정신세계를 다룬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변방에 우짖는 새』(1983)와 『바람 타는 섬』(1989) 등 현기영의 장편소설은 소외된 변방의 공동체를 역동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문충성의 서사시 『자청비』(1980), 현길언의 소설 『용마의 꿈』(1983), 『김년사굴 본풀이』(1984) 등은 제주설화를 문학화한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김광협의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1984)은 제주방언으로만 쓴 시를 엮음으로써 주목의 대상이 된다.
2) 문학단체의 활동
가) 한국문인협회 제주도지회
1980년대에 들어서 제주문인협회는 『제주문학』을 제9호부터 18호까지 연간집으로 발간했다. 특집으로는 작고 문인들에 대한 유고시집(제9호 박성원), 도외 거주문인 작품집(제12호 김대현(시), 김종두(시), 강금종(소설), 강정훈(동화), 김진자(동화), 송재찬(동화))이 실렸다. 제13호(1984)에는 자료로 고시홍의 제주문단사가 실렸다. 제16호(1987)에는 80년대 데뷔 신인 작품이 실렸으며 신간 서평도 게재했다. 제17호(1988)에도 90년대 데뷔 신인 작품Ⅱ, 작고회원 유작(강군황, 김공천, 정태무)과 추모 글이 실렸다. 제18호(1989에는 80년대 데뷔 신인 작품Ⅲ가 실렸다.
역대 회장은 7대 문충성(1980-1981), 8대 오성찬(1982-1984), 9대·10대 한기팔(1985-1989) 이었다. 행사는 주로 한라문화제 문학제를 담당하면서 전도학생백일장 등을 개최했다.
이 시기의 회원은 다음과 같다.
시분과 : 강방영, 강통원, 고성기, 고영기, 고응삼, 고정국, 김광열, 김석교, 김수열, 김순이, 김승립, 김양수, 김용길, 김용해, 김철수, 나기철, 문무병, 문충성, 문태길, 양중해, 오승철, 오영호, 이용상, 정인수, 조응방, 한기팔, 허영선, 현춘식
소설분과 : 고시홍. 김형민, 오경훈, 오성찬, 이석볌, 정순희, 정영택, 최현식,
한림화
수필분과 : 정영택, 김영돈, 부창민, 조명철, 현용준, 홍순만
평론분과 : 김병택, 김영화, 문성숙, 송상일, 양순필
아동문학분과 : 김영기, 김종두, 박재형, 이소영, 장승련, 장영주
희곡분과 : 강용준, 김기원, 장일홍
나) 한국문인협회 서귀포지부
1987년에 한국예총제주도지회 서귀포분회가 발족되는데 문학분과 회원으로 ‘서귀포 문학회]를 결성한다. 1987년 10월에 창립총회를 열고 초대 회장에 한기팔, 부회장에 김종두, 사무국장에 고정국과 한천민을 선출하고 1988년에『서귀포문학』창간호를 발간했다. 이 책에는 강통원, 한기팔, 김종두, 현주하, 이양수, 김용길, 고정국, 강문신, 이유순, 양영길, 강방영, 김순남, 권소영, 유영매, 강주호, 손미희, 송순자의 시, 윤미숙의 소설, 한천민의 동화와 아동극본 그리고 자료로 ’남국의 이상향 서귀포 이 지역의 인물사‘라는 제목으로 오성찬의 글이 실렸다.
창간사에서 한기팔은 다음과 같이 『서귀포문학』의 의의를 설파했다.
서귀포문학 창간호를 내보낸다. 어떤 의미에서건 설익은 생각이 없지 않다.
첫 숟갈에 배불랴 싶다. 이 지방문학의 산실로서 때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그 소임이 막중함을 통감하게 된다.
문학이란 어쩌면 필연적인 자유에의 몸부림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가장 자유롭기 위하여 우리는 괴로워하고 남다른 비상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고 처절한 이 시대적 아픔을 짊어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모름지기 우리는 이 시대의 파수꾼이다.
조그마한 서귀표의 바닷가, 수평선 너머 긴 그림자를 드리우로 서서 마지막 남은 자유에의 꿈을 꾸는 섬, 별이 되기까지 비상을 위한 날개를 퍼득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날로 오염되려는 우리들의 순수를 지키기 위한 오늘의 몸부림이야말로 가장 본질적인 문학정신에 입각한 참다운 자기 접근에의 가능성을 꾀할 수 있으라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같은 뜻에서 보다 떳떳하ᅟᅵᆫ 자부심을 갖고 이 지방문학을 내 보임으로써 부끄럼 없는 우리의 의지가 하나의 큰 자국으로 먼 미래를 향한 힘찬 발걸음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 장르별 문학회
(1) 제주아동문학협회
1980년 2월 제주아동문학연구회가 창립되고 이듬 해 북제주교육청 지원으로 동인지 『새벽』을 창간했다. 초대회장에는 김정배, 부회장 김봉임, 강려자, 총무 김영기, 섭외 박재형, 김원학, 감사에 홍성숙, 김동호 등이다.
1982년 제2호, 1983년 제3호를 발간했다. 1984년 제주아동문학회로 이름을 개칭하고 1985년 회보『제주아동문학』을 창간하여 매년 발간했다. 1987년에는 제주아동문학협회로 바꾸고 ‘교육과 아동문학’이라는 주제로 제1회 아동문학세미나를 개최했다. 1980년대에 발간된 연간집 제목은 다음과 같다.
『새벽』(1∼3호, 1982-1984년), 『동아리』(4호, 1985년), 『꿈꾸는 섬』(5호, 1986), 『이어도의 노래』(6호, 1987년), 『하르방 이야기』(7호, 1988년), 『낮은 목소리』(8호, 1989년)
(2) 제주시조문학회
1984년 3월 제주시조문학회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초대 회장에 정태무, 부회장에 김공천, 총무에 고응삼을 선출했다. 당시 회원은 정태무, 김공천, 김영홍, 고응삼, 이용상, 오영호, 고성기, 오승철, 등 8명이었다. 매월 월례회를 가지고 작품 합평회를 가졌으며 1984년 9월부터 전도 중·고등학교 시조백일장을 개최했고, 그해 6월에는 전국시조시인 세미나를 주관했다. 1987년에는 이태극, 장완영을 초청하여 청소년시조학교를 개최했으며 1989년 『시조문학』창간호를 펴냈다.
당시 회장인 고응삼은 다음과 같이 발간사를 썼다.
흔히들 우리 제주도하면 문화의 고장, 시의 고장이라고들 찬사를 보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마디로 신비의 섬나라, 대 자연의 아름다움이 시의 세계를 자아낸다고나 할까요. 옛 탐라 나라 때의 아득한 신화와 전설, 그리고 고유 독특한 사투리에서 구성진 민요가락에 이르기 까지, 시의 감흥을 늘 간직케 해온 향토문화가 짙게 깔려 있으니 말입니다.
이렇듯 섬에서 나서 섬속에 자라온 오늘의 제주문화의 꽃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만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에 우리 제주시조문학회의 모임도 이 땅에 우리 겨레 고유의 시조시(時調詩)의 씨앗을 가꾸고 키워 나아가는 일에 한몫을 다 한다는 바램과 전통성을 지닌 제주인의 문화에 이바지 하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라) 문학 동인회 활동
1980년대는 문학동인의 전성시대라 할 만큼 많은 동인회가 창립되었다. 이 시대는 정치적인 상황과 맞불려 시민의식이 되살아나고 문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자기표현 욕구가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결성된 대표적 동인회로는 경작지대, 한라산문학회, 제주청년문학회 등이 있다.
(1) 경작지대
1983년 8월 오경훈, 송상일, 김병택, 고시홍, 장일홍, 문무병, 나기철, 김광열, 김승립 등에 의해 창립되었으며 나중에 김용길이 참여했다. 1984년 『경작지대』첫 동인지를 발간했고 1989년 제4집을 내고 해체됐다. 그들은 발간사에서 다음과 같이 경작지대의 방향을 나타냈다.
우리가 「경작지대」에 모이게 된 것은 오로지 문학에 대한 열정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문학적 지방주의와 관련이 없다. 오히여 우리는 한구석에서만 뜨거워지다가 금방 식어버리고 마는 문학의 열기를 경계한다. 문학에서의 공감은 시간관 장소를 뛰어넘은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므로 우리는 이 상태에 도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우리의 의도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시대에 문학의 빛을 던지며 살아가는 데 있다. 문학 이념을 내세우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를 알고 잇는 우리는 시대에 대한 인식을 투철히 함으로써 얻어지는 공통분모만을 견고히 지켜 나갈 것이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경작지대」를 순수한 문학 작품의 발표장인 동시에 문학에 대해 열정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연출하는 치열한 무대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2) 말
1983년 문충성과 현길언 2인이 동인집 『말』을 창간했다.
(3) 풀잎소리
1983년 2월 제주도내 대학 문학동아리 신세대 출신들이 결성한 동인회다. 함승보, 김경훈, 강덕환, 김동욱, 김영희, 김정숙, 김재희, 박두원, 안창흡, 오승국, 한승민 등이다. 이후 변종태, 이명혜 오정훈, 문혜영 등이 참여했다. 1987년까지 4권의 『풀잎소리』동인지를 발간했다. 1984년부터 해마다 시화전을 열었는데 1987년에는 서귀포시, 모슬포, 제주시에서 순회 시화전과 작품토론회를 열었다.
이후 제주청년문학회로 통합 창립했다.
(4) 제주청년문학회
1987년 대학 문학동아리 ‘신세대’ 와 신세대 출신 문학 동인들이 주축이었던 ‘풀잎소리’ 동인들이 주축이 되어 ‘문예 대중화’와 ‘운동으로서의 문학’을 표방하며 제주청년문학회를 결성했다. 1988년 동인지 『잠깨어 일어나는 섬』을 창간하여 3호까지 냈으며 민족문학제도 매년 개최했다. 회원으로는 김수열, 김석교, 김규중, 양성자, 김홍철, 강덕환, 김경훈, 김동욱, 김영희, 김정숙, 김재희, 박두원, 안창흡, 오승국, 오재호, 한승민 등이다.
(5) 한라산 문학회
1987년 9월에 결성하여 1988년 동인지 『글왓』을 창간했다. 1987년부터 매년 시화전 및 시낭송회, 문학 강연회 , 문학 토론회를 개최했다. 초대 회장은 김종환, 양영재, 문복주, 양전형, 한성순, 송상, 강윤심, 이영숙 등이 참여했다.
(6) 문섬
1988년 서귀포문우회로 출발하여 1989년에 문섬 동인으로 개칭했다. 동인으로는 오승철, 윤봉택, 고권일, 강정만, 김창부, 김성진, 고명호, 이광종이 참여했다.
(7) 대학 문학동우회
(가) 신세대
1980년대 초 제주대학, 제주전문대. 제주간호대 학생들로 구성된 문학동아리다. 1987년까지 종합지 성격의 작품집 『젊음의 가능성』제10집을 냈다. 신세대 몇몇 동인들은 풀잎소리에 참여하기도 했다.
(나) 글된 소리
1980년 제주대학생 중심으로 구성된 글된소리는 1983년까지 동인집 4권을 발간했다.
(다) 초승
1982년 5월 제주대학 국문과 학생들이 동인지 『초승』을 내며 초승문학회를 결성했다. 그 후 국문과 출신들이 함께 동인으로 활동했다. 동인은 이정일, 김경홍, 이경춘, 현계철 등이며 시화전, 문학토론회를 개최했다.
(라) 한섬문학회
1988년 7월 한국방송통신대학 제주지역 국문과 학생들이 결성한 문학회다. 김양수, 고금희, 송인주, 지상호 등이 참여하여 동인지 『한섬문학』을 창간했다.
(마) 트임소리
1989년 임태진 등에 의해 조직된 문학동우회로 1991년까지 동인지 『글벗』을 4집까지 냈다.
(바) 기타
이외에 1980년대 결성된 문학동인은 ‘맥토문학’, 제주대학 학생들로 구성된 ‘글타래동인’ ‘바탕문학’ 서귀포지역 고등학생들로 구성된 ‘섬돌학생문학회’ 등이 있었다.
3) 문학 행사
가) 제주신문의 문학 활동
1980년대에는 정부의 언론통제로 인하여 지방에는 1개 신문사만을 두고 전부 폐간시켰다. 1968년부터 시행되던 ‘3월학생문예’가 ’1979년부터 ‘제주학생문예’로 개칭되어 1980년대 까지 계속 이어져 문학청년들을 키워냈다. 한편 당시 제주신문은 제주문협 회원들의 ‘단편 릴레이’에 이어 중편소설, 장편소설, 번역소설도 연재 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신문에 연재 발표된 소설은 다음과 같다.
중편소설로는 정영택의 「하얀 목마름」, 현길언의 「유자꽃」, 김순이의 「사계」, 「불새」, 장편소설에는 최현식의 「원색(原色)의 침묵」, 오성찬의「포구(浦口)」, 이강숙의 「환절기」, 현길언의 「바람꽃」이 있고 김형민의 「사운드 오브 뮤직」의 번역소설이 게재되었다.
나) 제주MBC주최 여성백일장
제주MBC문화방송이 1988년부터 제주에 거주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백일장을 시작했다. 제1회 때에는 산문 부문만을 시행했으나, 1989년 2회 대회부터 시와 수필로 나눠 시행하고 있다.
다) 학생문학 행사
(1) 제주대학교 ‘백록문학상(白鹿文學賞)’
제주대학교 제대신문사가 1981년 5월부터 제주대학교 재학생을 대상으로 백록문학상 제도를 만들어 시행했다. 처음에는 시, 단편소설, 학술논문 분야로 나눠 현상 공모하다가 1986년 제6회 대회 때부터 문학평론과 제주도와 관련된 주제 논문을 추가하여 백록학술문학상으로 개칭하고 전반기에는 백록문학상, 후반기에는 백록학술상을 공모하고 있다.
(2) 제주산업정보대 ‘삼의문학상(三義文學賞)’
제주산업정보대(현 국제대학교)학보사에서 1981년부터 삼의문학상을 제정하여 재학생 및 제주 도내 고교생을 대상으로 시, 소설, 수필, 시사평론 부문에 걸쳐 공모했다.
(3) 한라대학의 ‘한라춘추학술문학상’
1989년부터 시, 소설, 수필 작품을 재학생을 대상으로 공모하여 시상했다.
(4) 제주대학교 주최 문학백일장
제주대학교에서는 1956년부터 전도 초·중·고 문학백일장을 개최했는데, 1959년부터는 고교생, 대학생, 일반인을 대상으로 현상공모를 했고, 1960년부터는 국어국문과 주관으로 매년 개교기념 문학백일장으로, 1986년부터는 국어교육과 주관으로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10월 한글날 기념 문학백일장을 시행했다.
(5) 기타
제주외솔회에서는 1973년부터 전도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나라사랑작품을 시, 산문 분야로 나눠 현상 공모했다.
4) 중앙 등단 문인
1980년대에 중앙 문단에 등단한 사람은 시 8명, 시조 9명, 소설 9명, 희곡 2명, 수필 2명, 아동문학 6명 등 36명이다.
○ 소설
김진자, 「등대」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현길언, 「급장선거」1980년 『현대문학』
고시홍, 「죽음의 시작」1983년 『월간문학』
고원정, 「거인의 잠」198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오경훈, 「사혼」1987년 『현대문학』
김길호, 「영가」1987년 『문학정신』
김석희, 「이상의 날개」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이석범, 「적들을 찾아서」1988년 『문학과 비평』
정순희, 「닭터럭」1988년 『시와 시론』
○ 희곡
장일홍, 「제노비아」1985년 『현대문학』
강용준, 「방울소리」1987년 『월간문학』
○ 수필
김순택, 「우정에 대하여」1986년 『월간문학』
부창민, 「언어의 푸른 숲」 1988년 『시대문학』
○ 아동문학
강정훈,「맷돌」198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박재형, 「달나라가 그리운 토끼들」1983년 『아동문예』
김영기, 「등대」1984년 『아동문예』
장승련, 「색종이꽃」1988년 『아동문예』
이소영, 「바람의 시」1988년 『아동문예』
장영주, 「해바라기의 꿈 1988년 『한국아동문학세상』
김봉임, 「인어가 된 아이」1989년 『아동문예』
다. 제주문인의 작품 활동
1) 소설
현기영이 1979년 『순이삼촌』을 발표한 이래로 1980년대 중반이후에는 주로 4·3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 시기에 출간된 소설집은 다음과 같다.
현기영, 장편『변방에 우짖는 새』(1983), 『아스팔트』(1986), 장편『바람 타는 섬』(1989)
현길언, 『용마의 꿈』(1984), 『우리들의 스승님』(1985), 『닳아지는 세월』 (1987), 『우리시대의 열전』(1988), 『무지개는 일곱색이어서 아름답 다』(1989)
오성찬, 『습작우화』(1984), 장편『세한도』(1986), 『단추와 허리띠』(1988),
『한 공산주의자를 위하여』(1989), 장편『모래 위에 세운 도시』(1989)
최현식, 『흑묘일기』(1985)
고시홍, 『대통령의 손수건』(1987)
고원정, 『거인의 잠』(1988), 『회색의 손』(1988), 『빙벽』(1989)
김석희, 『이상의 날개』(1989)
가) 현길언의 「우리들의 조부님」
현길언은 1979년에 『현대문학』에 「성 무너지는 소리」가 초회 추천된 데 이어 1980년에 「급장선거」로 추천이 완료되었지만, 그는 1960년대부터 이미 제주 문단에서 꾸준히 소설을 발표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 기반이 탄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제주문학』에 「등애」(1972), 「건달개」(1973), 「피서기」(1974), 「상흔」(1975), 「빙의」(1977),「다락일기」(1978) 등을 발표했으며 제주신문에도 「호오이」(1964), 「신장개업하는 마을」(1969), 「유자꽃」(1970), 「목련 꺾어지다」(1971), 「바람이 분다」(1972), 「말젯삼촌」(1978) 등을 연재 했다.
등단 후 그는 1980년대에도 왕성한 활동을 벌인다.
『용마의 꿈』(1984), 『우리들의 스승님』(1985), 『닳아지는 세월』(1987), 『우리시대의 열전』(1988)을 펴냈다. 그는 특히 이 시기에 4·3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발표했는데「귀향」(1982),「우리들의 조부님」(1982), 「지나가는 바람에」(1984), 「먼 훗날」(1984), 「신열」(1984), 「우리들의 어머님」(1985), 「꿩 울음 소리」(1985), 「불과 재」(1985), 「껍질과 속살」(1986), 「미명」(1987) 등이 그것이다.
「우리들의 조부님」은 한 노인을 중심으로 그 가족과 이웃들의 사람을 통하여 제주인들의 비극적인 역사를 조명하고 있는 소설이다. 80대 중반의 노인이 임종을 앞두고 4·3 때 억울한 죽음을 당한 아들의 사연을 말하는데, 그것을 빙의(憑依)‘라는 독특한 현상을 소재로 하여 밝히고 잇다. 특히 4·3으로 인한 제주사람들의 한이 얼마나 골수에 사무쳐 잇으며, 해한(解恨)이 얼마나 어려운 현실인지를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김동윤, 『제주문화예술60년사』,2008, 제주특별자치도)
나) 1980년대 4·3을 소재로 한 소설
오성찬도 1980년대 들어 4·3에 관한 소재를 형상화 했다. 「사포에서」(1982), 「풀무에 관한 보고」(1984), 「공동묘지에서」(1984), 「크는 산」(1984), 「단추와 허리띠」(1986), 「표해」(1986), 「덫에 치인 세월」(1986) 등이 그것이다.
「단추와 허리띠」는 작가의 마을 시리즈 취재과정의 일을 바탕으로 소설화한 것이다. 빨치산들이 토벌대 중 한사람을 굴속에 떨어뜨려 죽인 사건이 있었는데, 37년이 지난 시점에서 마을 시리즈 간행차 취재하던 아들에 의해 그 유골을 찾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 만큼 4·3으로 인한 갖가지 사연이 제주 땅 곳곳에 묵혀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고시홍은 「도마칼」(1985)에서 4·3의 충격으로 인해 발작을 일으킨 여인이 도마칼을 들고 헤매는 현실을 그렸고, 「계명의 도시」(1989)는 4·3을 취재하려다가 좌절하는 언론인의 이야기가 그려지는데 진상규명 작업이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상황임을 강조하고 있다. 「해야 솟아라」(1987), 「저승문」(1989), 「유령들의 친목회」(1989), 「자서전 고쳐쓰기」(1991) 등에서도 제주민중의 수난사적 입장에서 4·3이 그려져 있다.
한림화는 「불턱」(1987)과 「여정들」(1993)에서 제주도의 고통스런 역사속에서 살아온 제주여인들의 수난사와 억척스런 삶의 한 부분에 4·3을 할애하였다.
김석희의 「땅울림」(1988)에서는 4·3 때 입산했다가 사태가 끝났음을 모른 채 보복과 처벌의 두려움 때문에 36년 가 숨어살던 사람이 나오는데, 그의 무리들은 4·3 당시에 ‘탐라공화국’을 꿈꾸기도 했다고 증언한다.
오경훈은 「당신의 작은 촛불」(1988), 「세월은 가고」(1989) 등에서 민중수난과 휴머니즘에 주목하며 차분히 4·3을 다루었다.
한편 이 시기에[는 4·3과 관련하여 그 전사(前史)라 할 수 있는 제주의 근대사를 다룬 작품들도 누길을 끌었다. 방성칠란과 이재수란을 다룬 『변방에 우짖는 새』(1983)와 1930년 대 해녀항쟁을 다룬 『바람 타는 섬』(1989) 등 현기영의 장편소설이 그것이다. 이 장편들은 저항하는 제주도 민중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이렇듯 1980년대는 현실 문제와 연관되는 제주의 역사를 다룬 소설이 그 주류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김동윤, 위의 책)
2) 희곡
1980년대에 제주도 출신으로 희곡작가가 2명이나 등단했다. 1985년 『현대문학』에 장일홍이 「제노비아」란 작품으로 추천을 받아 등단했고, 1987년에는 강용준이 『월간문학』에 「방울소리」란 작품으로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일홍의 「제노비아」는 육체적 쾌락을 마음껏 즐기던 제노비아가 염라대왕으로부터 끔찍한 형벌을 받지만 지옥에서 조차 간수를 유혹하는 등 신성을 모독하여 다시 암캐로 환생한다는 내용이다.
장일홍은 1983년 5월 부산에서 열린 제1회 전국연극제(전국지방연극제)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를 비롯 1987년 제5회 전주대회에 「인간은 인간에게 이리」를 발표했다. 「당신의 눈물을 보여주세요」는 1988년 월간문학에 발표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리」는 재벌가 이복형제들간의 재산 다툼을 소재로 혈육조차 안중에 없는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을 풍자한 작품이다.
강용준은 1978년 극단이어도를 창단해 이끌면서 번안극「장개 꼼 갑주양」(1979), 마임극「생명」(1980),「이어이어 이어도사나」(1984), 「야생초의 꿈」(1985), 「아프락사스의 새」(1986),「날개찾기」(1987),「잠수의 땅」(1989)「바람과 먼지」(1989)를 1980년대 무대에 올렸다.
강용준의 「방울소리」는 당시 군부 정권의 폭압적인 사회분위기를 배경으로 자아를 상실한 현대인들의 고독과 방황 속에서 자기를 구원하려는 두 노인이 무기력하게 쓰러져 가는 모습을 상징주의 기법으로 형샹화한 작품이다.
「장개 호꼼 갑주양」은 몰리에르의 「강제결혼」을 제주어로 번안 한 작품으로 제주 특유의 사투리가 전편에 깔려 있는 최초의 제주어 희곡이다.
「이어이어 이어도사나」(개제: 원형 冤刑)는 광주에서 열린 제2회 전국연극제 제주대표 참가작으로 일제 강점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근대사의 와중에서 상처받은 심학동이라는 인물의 일생을 그린 작품이다.
「잠수의 땅」은 제7회 포항에서 열린 전국연극제 출품작으로 순실이라는 해녀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통해서 산업사회로 치닫는 과정에서 인간들의 양상을 표상화한 작품이다.
3) 평론
1980년대에 발간된 평론집은 다음과 같다.
박철희, 『서정과 인식』(1982)
김영화, 『현대작가론』(1983)
김시태, 『문학과 삶의 성찰』(1984)
김병택, 『바벨탑의 언어』(1986), 『한국근대시론 연구』(1988)
4) 수필
김순택, 『억새의 노래』(1985)
5) 아동문학
1980년대에 7명의 작가들이 등단하면서 본격적인 동화와 동시 작품들이 발표됐다. 이 시기에 강정훈은 기독교아동문학상과 제3회 계몽아동문학상(1984)을 수상했다. 김종두는 한국아동문학상(1984)과 소청문학상(1986)을 수상했으며 박재형은 제14회 기독교 아동문학신인상을 수상했다. 이 시기에 발간된 동화와 동시집은 다음과 같다.
강정훈, 『할망바다』(1983), 『섬으로 간 아이들』(1987), 『산방산 독수리』
(1989)
김종두, 『달려오는 아이들』(1983)
박재형, 『장닭과 화가 아저씨』(1985), 『돌하르방』(1988)
5. 1990년대의 문학
가. 이 시대 한국 사회의 흐름
1) 시민단체의 출범과 IMF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영향으로 1990년대는 본격적인 시민단체가 결성되기 시작했다.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1990년 전국농민총연맹, 1993년 환경운동연합, 1994년 참여연대, 1995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탄생했다. 이들은 직선제에 의해 탄생한 노태우 군부정권과 김영삼 정권의 각종 정책에 반기를 들고 각종 시위를 주도했다.
김영삼은 대통령이 되자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 구성원들의 뇌물수수 등 비리를 밝혀 이들을 구속하고 조직을 해체했다. 그리고 고위공직자들의 재산을 공개하도록 하고 1993년에는 금융실명 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대통령 긴급 재정경제 명령(금융실명제)을 발표했다. 그리고 1995년에는 전두환, 노태우 등을 재임 중 불법 통치자금을 마련한 죄로 체포하고 12·12 쿠데타와 광주학살 등 내란수괴 혐의로 구속했다. 이러한 김영삼의 개혁은 국회를 무시한 채 이루어져 문민독재라는 비판을 받았다. 대표적인 것이 1996년 김영삼이 이끌었던 신한국당이 단독으로 국회를 열어 노동관계법과 안기부법을 날치기로 통과 시킨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불러왔고 1997년 결국 굴복하여 노동관계법을 전면적으로 수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997년 11월 IMF사태를 불러와 최악의 경제 위기를 맞았다. 주된 요인은 1994년부터 무리하게 세계화를 추진하는 과정에 닥친 외채위기 때문이었다. 1996년에 정상수지적자가 237억 달러에 이르자 외환보유고가 바닥이 났고 외채가 급증해 한보기업, 기아그룹 등 수많은 기업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부실채권이 증대했다. 그밖에 재벌과 권력의 정경유착, 관치금융특혜, 과다 차입으로 인한 재무구조의 취약함과 불투명성, 부동산 투기, 과도한 소비 등이 IMF를 불러온 주요 요인이었다. IMF로부터 195억 달러, 세계은행으로부터 107억 달러를 지원받으면서 그 대가로 한국의 시장 개방, 기업과 금융의 구조조정, 미국식 감사위원회의 무조건적 수용을 요구했다.
2) 김대중 정부의 탄생과 남북화해분위기
1998년 김대중 정부는 IMF를 탈출하기 위해 신자유주의 기조아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한국통신, 포항제철, 한구전력, 한국중공업, 가스공사, 담배인삼공사 등을 민영화하면서 외국자본을 끌어 들였다. 도산하거나 부실이 심한 큰 은행과 기업에 대규모의 공적자본이 투입되거나 외국금융회사 등에 매각됐다. 대량해고, 고용불안, 임금 삭감 등을 내용으로 하는 노동의 유연화가 수반된 구조조정으로 2001년 IMF 구제금융을 벗어나게 됐다. IMF 영향으로 대기업 하청업체가 줄도산 맞으면서 실업자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고 노숙자들이 양산되었다.
한편 김대중은 대통령에 취임한 후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햇빛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남북의 긴장관계를 해소하고자 했다.
1998년 6월에는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소 500 마리, 10월에 다시 501두를 트럭에 싣고 북녘 땅에 갔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금강산 유람선 운행개발에 합의했다. 그해 11월에 금강호가 관광랙 889명을 태우고 동해항을 출발 장전항에 도착하면서 금강산 관광이 이루어졌다.
3) 제주 사회의 문화적 흐름
1990년 제민일보가 창간되어 제주일보, 한라일보와 더불어 도내신문사가 3사가 됐다.
1991년 30년 만에 지방자치제도가 부활되어 도의원, 시군의원을 주민들이 직접 뽑게 되었고, 1995년부터는 도지사, 시장, 군수들을 주민 직선으로 선출했다.
1991년 소련대통령 고르바초프가 제주에 내도하고, 1996년에 미국 대통령 클린턴이 내도하면서 제주가 평화의 섬으로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1991년에는 제주도개발특별법이 공포되었으며 이를 반대하는 시위도 있었다.
1994년에는 제주도의회에 4·3특별위원회가 설치되면서 4·3진상규명이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으며 제민일보에서는 특별취재팀을 구성하여 4·3 사건 당사자를 취재하고 대담한 내용을 기획연재로 게재했다.
1994년에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제주도지회(이하 제주민예총. 초대회장 김광렬)가 발족하고 기관지『섬의 문학』을 발간했다. 제주민예총은 ‘4·3문학제’를 개최하면서 전국의 문인들에게 4·3을 알리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1995에는 제주CATV방송국이 개국하면서 도내의 문화예술계 소식을 전하고 중계하기도 했다.
1998년에는 제주에서 처음으로 제79회 전국체육대회가 개최되었다. 이 전국체전의 성공적인 개최로 제주체육이 한 단계 상승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4) 제주문화예술계의 흐름
가) 미술계
1990년대는 대형행사가 많이 치러졌으며 개인전도 많이 열렸다. 1991년에는 ‘제주미술제’가 열렸다, 이 전시회는 공모전 중심의 인식에서 전환하고, 학연과 지연의 벽을 깨어 어떤 특정 미학, 경향성, 연령도 초월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한 행사다. 그러면서 제주미술인들의 화합과 장르간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992년에 개최된 ‘제주민중항쟁사-강요배의 역사그림전’은 한국 화단에 4·3의 실체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강요배는 1998년 민족예술상을 수상했다.
1992년에는 한국화 전공자들로 구성된 제주한국화회가 결성되어 뇌뱍회를 계승하면서 창립전을 열었다.
1993년 탐라미술인협의회가 창립되어 새로운 미술운동을 표방했다. 탐라미술인협의회는 1994년 제주민예총 미술분과위원회로 재편되면서 제주지역의 민중미술운동을 주도했다. 『제주미술』을 발간하고 4·3미술제, ‘제주미술-맑은 바람‘전을 개최했다.
1995년에는 제주산업디자인협의회(회장 허민자)가 발족되어 제주디자인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1995년에는 제주적인 것을 세계적인 것으로라는 기치를 내걸고 ‘제주 프레 비엔날레’(위원장 백광익)가 열렸다. 한국, 일본, 오스트랠리아. 뉴질랜드,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6개국 60명이 참가했다.
1998년에는 ‘제주도옹기연구회(회장 허민자)’가 창립되었고, 1999년에는 한국미술협회 서귀포지부가 창립되었다.
나) 음악계
제주 음악계의 최대 행사인 ‘탐라합창제’가 1990년부터 제주도가 주최하고 KBS제주방송총국과 한국음악협회 제주도지부가 공동주관으로 개최되었다.
1991년에는 국내 유일의 민간소년합창단으로 한라소년합창단이 창단됐다. 1993년에는 제주시립합창단(상임지휘자 강문칠)가 창단되었고, 제주음악 30여 년을 정리한 회보 『제주음악』을 발간했다.
1995년에는 제주국제관악제가 한국관악협회 제주도지부 주관으로 창설되어 1998년부터는 제주시의 지원을 받아 공동 주최했다.
1994년에 제주한라대학에 생활음악과가, 1996년에는 제주관광대학에 음악예술과가 신설되어 음악인들을 양성했다.
음악단체의 창단도 줄을 이었는데 제주오페라단, 제주브라스 앙상블(리더 허성훈), 1994년 준트리오, 1996년 제주피아노트리오, 1998년에 한라어머니중창단, 1999년 제주YWCA유스오케스트라, 제주플루트협회(회장 문성집)가 결성되었다.
1999년에는 용연선상음악회, 우도동굴음악회도 열렸다.
다) 연극계
1990년대의 제주 연극계는 전국연극제에 입상하는 등 좋은 성과를 거뒀다. 특히 1992년에는 제주에서 처음으로 제10회 전국연극제가 열렸는데 제주극협으로 참가한 「붉은 섬」(장일홍 작, 김중효 연출)이 장려상을 받았다. 그리고 1994년 수원에서 열린 제12회 전국연극제에 제주대표로 참가한 극단이어도의 「좀녜」(강용준작. 연출)가 장려상을 수상했다. 1996년 제14회 광주에서 열린 전국연극제에서 양연기가 개인연기상을 수상했다.
전국연극제 제주 개최이후 도내에는 연극 붐이 조성되어 많은 극단들이 탄생했다. 1992년「극단자유」(대표 임필종), 1993년「극단세이레」(대표 정민자), 극동우회「다솜」(대표 변종수), 1995년에는 「극단아라」(대표 김정일), 「극단거리」(대표 장진호)가 창단 되었다.
1991년부터는 ‘소극장연극축제’, 1994년에는 ‘제주말 연극제’, 1997년에는 ‘제주청소년연극제‘를 창설하여 제주연극의 활성화에 한몫했다.
한편 1996년에는 ‘전국민족극한마당‘잔치가 제주에서 열렸다. 놀이패 한라산의 정공철은 1997년 과천에서 열린 국제마당극축제에서 ’한국의 광대상‘을 수상했다. 1994년에는 놀이패 한라산이 「4월굿 한라산」이란 작품으로 일본과 부산 등지에서 공연했다. 1999년에는 전국청소년연극제에 제주대표로 출전한 제주여상 연극부가 「오장군의 발톱」이란 작품으로 단체 우수상, 최우수연기상, 지도교사상을 수상했다.
나. 제주문단의 동향
1) 제주문학의 특징
1990년부터는 제주 출신들의 문단진출이 양적으로 크게 늘어났다. 이는 다양한 경향의 작품들이 발표됐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면도 있으나 자그만 마을에 한집 건너 문인들이 탄생하면서 작품 내용이나 질적인 수준이 낮아졌다는 평가도 있다. 이것은 제주만이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으로 김대중 정부의 문화예술정책의 일환으로 문학 잡지사에 대한 보조금이 확대되면서 무수히 많은 문학지들이 생겨났다. 문학 잡지사는 운영유지를 위해 많은 문인들을 배출하기에 이르렀다. 그만큼 등단이 쉬어졌기 때문 완성도나 문학성이 미흡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를 독자들이 외면하면서 출판계의 불황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사회적인 현상과도 직결된다. 1987년 6월 항쟁의 승리로 시민의식이 향상되었고, 제주에서도 쓰레기 매립장 반대운동, 제주도개발특별법 반대운동 등 시민단체가 조직적으로 활동을 하면서 시민들이 자신의 주장이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한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 여기에 대학이나 사회단체, 기업 등에서 시민대학을 개설하여 문학에 대한 입문의 길을 넓혔고 등단에 대한 욕구를 갖게 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1998년 제주작가회의의 출범으로 기존의 제주문인협회 중심이었던 제주 문단 조직이 2원화됐다는 점이다. 이것은 세계화, 다원화, 개성화의 사회변동 상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것은 1994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제주도지회가 출범하면서 그 산하에 있던 문학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사단법인 민족작가회의 제주도지회를 발족했다.
그리고 1990년대에 귤림문학회, 다층, 깨어있음의 시, 제주수필문학회, 제주신문학회 등 많은 동인회가 발족하여 활동을 했다는 점과 서귀포문학회가 한국문인협회 서귀포지부로 인준을 받았다는 점도 특기할 사항이다.
이 시기에 제주문인협회에서는 ‘제주신인문학상’을 제정하여 신인들을 배출하고 『제주문학전집』을 3년에 걸쳐 발간했다.
2) 문학단체의 활동
가) 한국문인협회 제주도지회 (제주문인협회)
제주문인협회는 1996년부터 ‘문학의 해’와 ‘제주도제 50주년 기념’ 사업으로 『제주문학전집』을 3년에 걸쳐 완간했다. 시(1,2권), 소설(3,4권), 아동문학(5,6권), 희곡·평론 선집(7권) 등 7권의 작품으로 당시 제주 출신 문인의 대표작들을 총 망라했다. 1991년부터는 ‘제주신인문학상’을 제정 운영하고 있는데 입상자는 다음과 같다.
제1회(1991) 당선 희곡 김중효 「상실의 계절」
가작 시 문상금, 소설 변종태, 평론 양영자
제2회(1992) 가작 시 고경범, 동화 안희숙, 평론 홍기돈
제3회(1993) 당선 시 이영숙 「탑」, 수필 김길웅 「그림 속의 집」
가작 소설 강병철, 동화 고운진, 평론 고명철
제4회(1994) 당선 시 부요섭 「어느 아침」
가작 수필 고문희, 시 고은진, 소설 장계용, 동시 고순덕,
동화 허순영.
제5회(1995) 당선 시 강동완 「붕어빵」, 수필 남상순 「눈물과 웃음」
가작 시조 김성수, 소설 김성탁, 동화 김준영, 평론 오순영
제6회(1996) 당선 시조 김상돈 「들깨 꽃」, 수필 김혜경
가작 시 김사라, 소설 좌순자
제7회(1997) 당선 시 양문정 「직녀 이후」, 시조 김정파 「다림추」,
소설 김미정 「우리를 자살케 하는」, 수필 홍관옥 「바둑과 친구」, 희곡 조인환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가작 동시 이명혜, 동화 한윤희.
제8회(1998) 당선 시 박미경 「발이 큰 남자」, 시조 문형철 「수산시장에서」,
소설 하정숙 「사막을 건너는 법」, 평론 좌지수 「부재에 대한 상황 적 역설의 논리- 김소월의 산유화 분석」, 수필 강명자 「아들의 손」, 동화 강나루(오지연) 「나는야 소사나무」
제9회(1999) 당선 시 고창남 「사랑카페」, 시조 김상기「마라도에서 바람은」,
수필 고춘옥 「갈걷이」
역대 제주문인협회 회장은 11대 김병택(1990-1992), 12대 정인수(1993-1994), 13대 이용상(1995-1996), 14대 조명철(1997-1998), 15대 문태길(1999-2001)이다.
나) 민족작가회의 제주도 지회(제주작가회의)
1994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제주도 지회(이하 제주민예총, 초대 회장 문무병)가 발족되면서 산하에 문학분과가 생겼다. 1998년 2월에 기존의 문학분과 회원들과 제주문인협회 소속 회원 중 일부가 이탈하여 43명으로 사단법인 민족작가회의 제주도지회(초대회장 문충성)가 결성됐다. 1998년부터 회지 『제주작가』를 창간했다. 시인 김시종의 문학과 삶을 특집으로 했고, 심규호, 김은희의 번역문학, 문충성, 문영종, 허영선, 김수열, 나기철, 조정국, 김광렬, 현안식, 양영길, 무무병, 진순효, 현춘식, 강덕환, 김순남, 홍성운, 김지연, 김규중, 김석교, 오승국, 김상신의 시, 항림화, 이명인, 김창집, 강금중의 소설, 김병택, 김동윤의 평론, 김정택, 문영택의 수필, 문무환의 희곡이 실렸다.
1999년부터 ‘시민과 함께하는 시 낭송의 밤’을 개최했다.
다) 한국문인협회 서귀포 지부(서귀포문인협회)
1987년에 결성된 서귀포문학회가 1993년 한국문인협회로부터 서귀포지부(이하 서귀포 문인협회, 초대 회장 강문신) 인준을 받았다. 1989년부터 『서귀포문학』을 꾸준히 발간해왔다. 1998년부터 이중섭거리에서 이중섭예술제 시낭송회를 개최했다.
라) 장르별 문학회
(1) 제주수필문학회
1994년 강건영, 강태국, 고권일, 김길웅, 김순택, 김영돈, 김정택, 서경림, 석혜경, 양정모, 조명철, 현화진, 홍순만, 홍판길 등 등단한 제주의 수필가들이 모여 제주수필문학회를 결성하고 그해 12월 『제주수필』창간호를 냈다.1997년부터 ‘제주수필 신인문학상’을 제정하여 운영하고 있다. 초대회장은 김정택이다.
(2) 제주시조문학회
1991년부터 제주일보사와 공동으로 제주시조 지상백일장‘을 공모했다.
(3) 제주아동문학협회
1990년대도 지속적으로 아동문학세미나, 아동문학의 밤, 어린이 글짓기 교실 운영, 우리이야기 독후감공모 등의 사업을 시행했다.
마) 문학동인회
(1) 귤림문학회
오현고등학교 출신의 등단한 문인들이 1990년 오현문인회(초대 회장 고영기)를 결성하고 『오현문학(五賢文學)』을 발간했다. 1994년부터는 동인 명칭을 귤림문학회로 바꾸고 동인집도 『귤림문학』으로 바꿨다. 1995년부터 오현고등학교 재학생을 대상으로 ‘귤림학생문학백일장’을 개최하다가 1999년부터 ‘귤림학생문학상’으로 바꿔 공모해서 시상하고 있다. 창립동인은 고영기, 강통원, 김순택, 박철희, 김종원, 문충성, 김시태, 문태길, 전달문, 오용수, 현기영, 오경훈, 송상일, 김병택, 문무병, 강문신, 장일홍, 강용준, 나기철, 양영길, 이석범이다.
(2) 다층 동인
1990년 양영길, 변종태, 김해원 등 11명이 ‘총체시의 창출’을 이념으로 내걸고 다층동인을 결성했다. 1994년부터 연간 동인지 『다층』을 발간하다 1999년부터 계간지로 창간했다. 제주대학교 윤석산 교수가 상임편집장으로 편집주간은 변종태 시인이 맡고 있으며 동인들은 전국에 분포해 있다. 1999년부터는 ‘따뜻한 시 시집총서’를 발간하고 있다.
(3) 깨어있음의 시
1991년 문무병, 나기철, 윤주상, 김광렬이 ‘깨어있음 시’ 동인을 조직했고, 나중에 윤주상 대신 김석교, 김수열, 문영종이 참여해서 동인지를 발간했다.
(4) 조엽문학회
1996년 고훈식, 부진섭, 이금미, 박정환, 현용식, 오영례 등이 조직한 동인으로 1998년까지 동인지 3호를 발간했다.
(5) 맷돌문학회
제주MBC 여성문학백일장 입상자 출신들이 1989년 동인회를 조직해서 1993년 『맷돌문학』창간호를 발간했다.
(6) 글터 동인
1991년 임태진, 윤재웅, 양유순, 강영란, 박숙자, 한문경, 김향란 등이 글터동인회를 조직하여 『글터』동인지 1992년 까지 2회 발간했다.
(7) 풀빛 동인
1992년 제주지역사회협의회에서 주최한 제1회 글짓기 교실 수강생 13명이 모임을 결성했고 1996년부터 ‘풀빛’동인으로 개칭했다. 임홍숙, 장영춘, 김은숙, 오영순, 이연실, 고해자, 강으리, 김인자, 고은영이 동인으로 참여했다.
(8) 벼리문학회
강맹옥, 강민순, 강상돈, 강중훈, 고정필, 김승길, 김연옥, 박미경, 성정자, 양시연, 이혜경 등이 벼리문학회를 조직하여 1995년 벼리문학 1 ‘망각 또는 기억상실을 위하여’ 라는 동인집을 냈다.
(9) 한국신문학회 제주지부(제주동서문학회)
처음에는 월간 『문예사조』출신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되었으나 제주에서는 1996년 한국신문학 제주지부(초대 회장 조명철)를 결성했다. 그해 12월에 『저슬사리』창간호를 발간했다. 창립동인으로는 강원현, 강윤심, 김가영, 김광수, 김정자, 양경림, 양전형, 엄영자, 오동욱, 윤세민, 이문규, 전영재, 정수현, 조명철 이다.
2008년에 제주동서문학회로 개칭했다.
(10) 영주문학회
1997년 한국공무원문학협회 제주지회로 시작했으며 회원은 강원현, 김철호, 이종억, 문창보, 이홍식, 변재천, 강성후, 이용익, 양태영, 김미경 등이다.
(11) 백록수필문학회
제주대학교 평생교육원 수료자들로 구성된 단체로 1998년 창립하여 1999년에 『백록수필』창간호를 발간했다.
3) 문학행사
가) 제주일보사의 ‘제주시조백일장’과 ‘장편소설 공모’
제주일보사는 1991년부터 전도 중·고교 시조문학백일장을 제주시조협회와 공동으로 주최하면서 ‘제주시조지상백일장’으로 바꾸고 초등부, 중·고등부, 대학생을 포함한 일반부로 나눠 시행했다.
한편 1997년에는 5천만 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를 했는데 이명인의 「사랑에 대한 세 가지 생각」아 당선작으로 뽑혔다.
나) 한라일보사의 ‘신춘한라문예’
한라일보사는 1989년 창간한 이듬해부터 시·단편소설 부문에 대한 신춘문예 작품을 공모했다. 여기서 많은 신인 시인 작가들이 탄생했다.
제1회(1990) 시 당선 진순효 「머리를 빗으며」
소설 가작 양진건 「여도일지(女盜日誌)」
제2회(1991) 시 당선 윤봉택 「제주 바람」
소설 가작 서안나 「눈의 축제」
제3회(1992) 시 당선 안호석 「어느 내과의사의 조언」
소설 당선 손재중 「탈각(脫却)」
제4회(1993) 시 당선 김지연 「뿌리에 관하여」
소설 당선 금나래 「솔잎 찾기」
제5회(1994) 시 당선 부유섭 「나의 주소」
단편 가작 김군산 「마지막 유산」
제6회(1995) 시 당선 김은형 「여섯 살 적 구엄리는」
단편 당선 박미정 「끝에서 오는 길」
제7회(1996) 시 당선 박주영 「헨젤과 그레텔」
단편 당선 현은정 「뮤직박스 댄서」
제8회(1997) 시 당선 김세홍 「폐동」
단편 가작 오지연 「웅크린 침묵 깨기」
제9회(1998) 시 당선 강영란 「유리창 닦기」
단편 당선 김현자 「숨은 별」
제10회(1999) 시 당선 박미경 「미로 속의 오갈피나무」
단편 당선 하정숙 「귀 울음」
다) 제주MBC의 전도여성백일장
1990년 대에도 제주MBC는 전도여성백일장을 꾸준히 시행했다. 그리고 이들 입상자들이 맷돌문학회를 구성해 1993년『맷돌문학』창간호를 펴냈다.
라) 학생문학행사
제주도 중등국어교육연구회는 1990년부터 전도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뫼문학백일장’을 개최했다. 1987년부터 해마다 『한뫼』지를 발간하고 있다.
4) 중앙등단문인
1990년대는 176명이 등단했는데 1989년까지 85명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시 73명, 시조 14명, 소설 4명, 희곡 2명, 평론 1명, 아동문학 19명, 수필 63명이다. 시인과 수필가가 대폭적으로 증가한 게 특징이다.
○ 소설
홍양순, 「떠도는 혼」1994년 문화일보
고영기, 「다랑봉에 달무지개 뜨면」1994년 『문예사조』
김관후, 「하얀 운동화」1994년 『사람의 문학』
김성아, 「그대 앞에 가는 길」1997년 『여성동아』
○ 희곡
김기원, 「사람을 찾습니다」1991년 『희곡문학』
문무환, 「아브나르의 양심」1995년 『자유문학』
○ 평론
양진오, 「새로운 연대의 노동소설 읽기」1993년 『비평의 시대』
○ 수필
고태우, 「도문에서 만난 어린이들」1990년 『수필공간』
양상민, 「할아버지의 애첩」1990년 『한국수필』
김가영, 「보석과 남자」1992년 『문예사조』
홍판길, 1992년 『문예사조』
김정택, 「육신의 질병과 마음의 질병」1992년 『현대문학』
김찬옥, 「아내의 손」1993년 『수필과 비평』
조명철, 「한란과 스승」1994년 『문예사조』
김길웅, 「눈물의 연유」1994년 『수필과 비평』
고권일, 「우리네 아이들을 위하여」1994년 『문예사조』
전영재, 1995년 『문예사조』
강태국, 「줄탁동기」1995년 『현대수필』
김광수, 「아름다운 우리 강산」1995년 문예사조
양정보, 「변화 속에서」1995년 『수필과 비평』
강원현, 「말」1996년 『한국시』
김인규, 「내 영혼의 요람, 호근리」1996년 『수필과 비평』
문승종, 「사람과 고품질」 1996년 『문학사상』
박길복, 「멍석과 보이차」1996년 『문학21』
서경림, 「사계의 향수」1996년 『수필과 비평』
서현석, 「편지」1996년 『수필과 비평』
윤세민, 「얼룩진 족보」1996년 『문예사조』
오동욱, 「메말라 가는 인정」1996년 『문예사조』
이문규, 「사람의 길」1996년 『문예사조』
양경림, 「작용·반작용의 법칙」1996년 『문예사조』
정수현, 「농촌계몽운동가」1996년 『문예사조』
김덕창, 「신산공원의 아침」1997년 『수필과 비평』
강영민, 「진료실에서 띄우는 편지」1997년 『문예사조』
이서원, 「절망에서 얻는 행복」1997년 『수필공원』
김광진, 「묘지 문화에 대한 유감」1997년 『ᄒᆞᆫ맥문학』
김명경, 「산채」1997년 『문예사조』
오남련, 「배근달기(培根達枝)」1997년 『문예사조』
양남수, 「보이지 않는 선을 넘은 지혜」1997년 『문예사조』
신용준, 「변방에서 부르는 찬가」1997년 『한국수필』
김철용, 「씩씩하게 사는 사람들」1997년 『문학21』
임창준, 「목욕탕의 소묘」1997년 『문예사조』
이금월, 「소박한 희망」1997년 『문예연구』
오안일, 「인간의 조건」1997년 『문예사조』
문영택, 「숨은 죄밖에 어수다」1997년 『자유문학』
김광진, 「세상 사무치는 어머님의 말씀」1997년 『ᄒᆞᆫ맥문학』
김찬옥, 1997년 『문예사조』
남상순, 「빵과 꽃」1997년 『수필과 비평』
김병돈, 「소리없는 통곡」1998년 『지구문학』
양경렬, 「압록회상」1998년 『문예사조』
홍관옥, 「달아 달아 밝은 달아」1998년 『수필과 비평』
김옥란, 「아버지의 방」1998년 『수필과 비평』
오영태, 「토종닭」1998년 『월간문학』
홍창국, 「아버지의 뒷모습」1998년 『문예사조』
오영순, 「남편은 초보운전사」1998년 『세기문학』
이연실, 「씀바귀를 찾아서」1998년 『세기문학』
김이종, 「꿩알 줍던 날」1998년 『예술세계』
정윤택, 「제주의 풍습」1998년 『수필과 비평』
강태일, 「자식농사」1998년 『한국시』
고봉환, 「수요일 아침」1999년 『문예사조』
최귀숙, 「나의 기쁨」1999년 『문예사조』
정우철, 「고독의 나무에 피는 사랑꽃」1999년 『지구문학』
김계숙, 「반지」1999년 『한국수필』
김창근, 「팽나무 그늘에서」1999년 『문예사조』
양수자, 「졸업장」1999년 『문예사조』
조정의, 「비어 있는 집」1999년 『수필과 비평』
고성중, 「고사리 꼼짝」1999년 『문예사조』
정창희. 「고향의 흙」1999년 『문학세계』
임무현, 「운동선수」1999년 『문예사조』
김창근, 「팽나무 그늘에서」1999년 『문예사조』
김새나리, 「어떤 의자 하나」1999년 『시와 반시』
○ 아동문학
홍우천, 「마지막 학예회」1990년 『아동문예』
오수선, 「무지개 빛깔의 꿈」1991년 『아동문학연구』
송상홍, 「소리굽쇠」1991년 『아동문학평론』
한천민, 「불과 생」1991년 『아동문예』
정창희, 「정방폭포」1992년 『아동문예』
오용관, 「늦가을」1992년 『아동문예』
오태열, 「인어공주와 조개목걸이」1992년 『동화문학』
이양수, 「봄」1992년 『아동문예』
김출근, 「하늘 향해 크는 나무들 처럼」1993년 『아동문예』
강순복, 「네발로 걷는 아이」1994년 『문예사조』
고운진, 「경아와 장미」1994년 『우리문학』
안희숙, 「봉숭아꽃물」1995년 『아동문예』
이동수, 「산동네 가로등 아저씨」1996년 『소년문학』
양길주, 「아침바다」1997년 『아동문예』
박희순, 「연」1997년 『아동문예』
홍수안, 1997년 『아동문예』
허순영, 「백년 만에 피는 꽃」1998년 『아동문학평론』
오경임, 「봄바람에 날아간 돌하르방 모자」1998년 『아동문학평론』
이명혜, 「엄마의 고향」1999년 『아동문학연구』
다. 제주문인의 작품 활동
1) 소설
1990년대는 오성찬, 한림화, 현기영, 현길언, 고원정의 저작활동이 두드러졌다.
특히 고원정은 13권, 오성찬과 현길언은 각 8권, 한림화는 5권의 소설집을 냈다.
평론가 김동윤은 ‘1990년대의 제주소설은 1980년대까지 등단한 다양한 경향의 제주작가들이 각기 그 역량을 발휘함으로써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4·3 소설’의 경우 한림화, 현길언, 오경훈의 장편과 현기영의 일련의 단편들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사회적 호소력은 7·80년대의 4·3소설에 비해 미약하였지만, 문학적 성취라는 면에서는 의미를 갖는 작품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 이 시기의 양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김동윤, 『제주문화예술60년사』1권, 2008, 제주특별자치도)
한편 재일 작가 김석범은 1998년 1월 제39회 마이니치예술상을 수상했고, 김성아는 「그 바다는 어디로 갔을까」로 1999년 제28회 삼성문학상에 당선됐다.
1990년대에 발간된 소설집과 장편소설은 다음과 같다.
고시홍, 『계명의 도시』(1991)
고원정, 『칼 한 자루의 사상』(1990), 『대감들 청문회에 불려오다』(1990),
『최후의 계엄령』(1991), 『숨어 있는 사람들』(1992), 『대권』(1992),
『사랑하는 나의 연사들』(1993), 『바다로 가는 먼 길』(1994),
『대한제국일제침략사』(1994), 『내일은 없다』(1995), 『외계인 살인사 건』(1995), 『마지막 대권』(1997), 『돌아온 대통령』(1998),
『횃불』(1999)
김관후, 『어허렁 달구』(1999)
김석범, 『화산도』(1997) 24권 완간
김석희, 『섬에는 옹달샘』(1991)
오경훈, 『유배지』(1993), 『날개의 꿈』(1997)
오성찬, 『칼과 보습』(1992),『그 짝글레기의 유품』(1993),
『어두운 시대의 초상화』(1993), 『크는 산』(1994), 『겨울산행』(1996), 『푸른 보리밭』(1998), 『종소리 울려 퍼져라』(1999),
『진혼 아리랑』(1999)
이석범, 『갈라의 분필』(1992), 『권두수 선생의 낙법』(1993),
『윈터스쿨』(1996)
정순희, 『가지치기』(1992), 『그리운 이름 하나 지우고』(1997)
최현식, 『먼 산』(1994)
한림화, 『한라산의 노을』(1991),『꽃 한 송이 숨겨 놓고』(1993),
『아름다운 기억(겨울)』(1998), 『풀잎이 바다에게 눕기를』(1999),
『아름다운 기억(여름)』(1999)
현기영, 『위기의 사내』(1991), 『마지막 테우리』(1994),
『지상에 숟가락 하나』(1999)
현길언, 『투명한 여름』(1991), 『여자의 강』(1992), 『회색도시』(1993),
『배반의 꽃』(1993), 『한라산』(1995), 『보이지 않는 얼굴』(1997), 『벌거벗은 순례자』(1999), 『잊지 못할 일들은 너무 빨리 잊어버린다』 (1999)
2) 희곡
1990년대 제주의 희곡작가들은 중앙무대에서도 두드러진 실력을 발휘했다.
장일홍은 1990년 강신무(降神舞)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됐고, 희곡집『붉은 섬』으로 1991년 대한민국문학상 신인상을 받았다.
강용준은 「좀녜」로 제21회 도의문화저작상(삼성문학상)(1992)을 받았으며 희곡집『폭풍의 바다』로 한국희곡문학상(1997)을 받았다.
한편 이 시기에 세 권의 희곡집이 출간되었다.
강용준, 『방울소리』(1990), 『폭풍의 바다』(1997)
장일홍, 『붉은 섬』(1991)
강용준의 희곡집『방울소리』에는 「캐터필러」, 「운명교향악」, 「잠수의 땅」, 「바람과 먼지」, 「방울소리」, 「신화시대」, 「아프락사스의 새」, 「야생초의 꿈」, 「원형(冤刑)」「장개 호끔 갑서양」등 10편이 실렸다.
『폭풍의 바다』에는 「우리의 관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안개주의보」, 「폭풍의 바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좀녜」, 「오돌또기」등 6편이 실렸다. 이 중「좀녜」는 1994년 수원 전국연극제에 제주대표 공연작이고,「폭풍의 바다」는 한국연극협회에서 주관한 창작극개발 1차 년도 채택 작품으로 문화예술진흥원 창작지원금과 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장일홍의 희곡집 『붉은 섬』에는 「강신무」, 「제노비아」, 「우리를 잠들게 하는 새들의 합창」, 「카나리아의 죽음」, 「어둠의 통곡」, 「인간은 인간에게 이리」, 「당신의 눈물을 보여주세요」, 「붉은 섬」등 8편이 실렸다. 이중 「귀양풀이」(1990), 「붉은 섬」(1992)은 전국연극제 제주대표 공연작품이다.
3) 평론
김병택, 『한국현대시인론』(1993), 『한국현대시론의 비평과 탐색』(1999)
김영화, 『분단상황과 문학』(1992), 『변방인의 세계』(1998)
문혜원, 『흔들리는 말, 떠오르는 몸』(1999)
송상일, 『천사의 풍문』(1999)
양진오, 『한국소설의 논리』(1998)
4) 수필
김가영은 이 시기에 왕성한 활동을 하여 8권의 수필집을 상재했다. 그 노력의 결과『다시 한번 사랑을』로 1995년 동포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시기에 제주 수필가들이 발간한 수필집은 다음과 같다.
고성중, 『사서의 명언』(1996)
고태우, 『북한사 100장면』(1996)
김가영, 『남자는 아름다워야 한다』(1992), 『다시 한 번 사랑을』(1993),
『강한 여자가 아름다운 이유』(1994), 『여자가 남자를 사랑할 때(1995), 『나 당신 사랑하였기에』(1996),『또 하나의 러브스토리』(1996),
『기가 센 여자』(1998),『강한 여자가 아름다운 이유』(1994)
김기오, 『이삭을 주우며』(1996)
김영돈, 『한국의 해녀』(1999)
김원정, 『슬픈 비가』(1995)
김유봉, 『건축은 삶과 둥지』(1998)
김윤숙, 『제주문화유산』(1998)
김익수, 『속음청사』(1996)
김찬옥, 『갈색의 계절』(1995)
신용준, 『여정 여정』(1998), 『세한 속의 동백』(1998)
양경림, 『하원의 맥』(1999)
양진건, 『그 섬에 유배된 사람들』(1999)
오용수, 『영리한 새는 좋은 나무를 가려 둥지를 튼다』(1996)
오차숙, 『콘크리트 속의 여자』(1998)
정수현, 『예원문집』(1988)
조명철, 『아내의 미소, 웅녀의 미소』(1994), 『신호등과 돌하르방』(1998),
『가는 바람, 오는 빛』(1999)
현용준, 『제주도민담』(1996)
5) 아동문학
1990년대 박재형과 장영주의 왕성한 활동이 돋보였다. 박재형은 7권의 동화책을 장영주는 5권의 동화책을 발간했다. 박재형은 제14회 계몽아동문학상(1991), 김종두는 박홍근문학상(1994), 장영주는 제20회 아동문학 작가상(1998)을 수상했다.
1990년대에 발간된 동시· 동화집은 다음과 같다.
강순복, 『키 크는 요술 안경』(1997), 『종이 피아노』(1999)
강정훈, 『우리들의 영등폭포』(1991), 『울고 있는 섬』(1991), 『바보새』(1997)
고운진, 『설이가 본 세상』(1997)
김봉임, 『얼굴로 그린 그림』(1992)
김종두, 『동그라미 하늘』(1992)
박재형, 『바람개비할아버지』(1991), 『맥그린치신부』(1993),『『이여도를 찾는 아이들』(1994), 『울다가 웃으면』(1995) ,『내 친구 삼례』(1996),
『검둥이를 찾아서』(1996), 『쌍둥이 행진곡』(1997)
송상홍, 『소라귀』(1995)
송재찬, 『돌아온 진돗개 백구』(1997)
오수선, 『뚱딴지 대소동』(1996)
오태열, 『해 뜨는 초록마을』(1996)
이소영, 『추억이 사는 연못』(1997)
장영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 있다』(1995), 『7학년0반 아이들』(1995),
『천재는 울지 않는다』(1995), 『하늘로 보낸 편지』(1996), 『소원의 열 쇠』(1997), 『잠자리 인공위성』(1999)
정창희, 『귤따는 돌하르방』(1994)
홍우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1994),『코털회장님의 비밀수첩』(1998)
6. 2000년대의 문학
가. 이 시대 한국 사회의 흐름
1) 남북 정상 회담
2000년 6월 15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 회담 이후 자주적으로 통일문제를 해결하고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의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한다는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후 남북관계는 급진전되어 이산가족방문단 교환과 경의선 기공식이 열렸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 증진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12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2) 2002한일월드컵
2001년 9월 11일 세계는 오사마 빈 라덴의 이슬람 테러조직인 알카에다의 테러에 의해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경악했다.
그리고 2002년에는 FIFA 한일월드컵이 5월31일 개막되어 한 달 동안 축구로 국민이 하나 되는 감동을 만들었다. 특히 한국이 세계 축구 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4강의 신화를 이루는 업적도 남겼다.
3) 노무현 정부의 출범
김대중 국민의 정부에 이어 2003년 2월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민의 참여가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참여정부라 불렀다.
정의롭고 효율적인 사회를 위한 합리적인 개혁 정부, 국가적 갈등 구조를 해결하는 국민통합 정부, 국민과 수평적·쌍방향적으로 소통하는 열린 정부, 모든 국민에게 꿈과 용기를 주는 희망의 정부를 지향하였다.
정경유착의 단절, 권위주의의 청산, 시민사회의 성장 등은 노무현 정부의 대표적인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성사와 한-미 FTA 타결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코스피지수가 175% 상승하는 등 주식 시장이 호황을 누렸음에도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등 서민들의 경제는 침체되었다. 또, '기자실 대못질'로 대변되는 언론 정책 등은 실패로 평가 되고 있다.
4)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시위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가 출범했다.
'선진화를 통한 세계일류국가'를 국가 비전으로 삼고,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창조적 실용주의'을 규범으로 삼았다. 변화와 실용을 바탕으로 신(新) 발전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국민을 섬기는 정부, 활기찬 시장경제, 능동적 복지, 인재대국(人才大國), 성숙한 세계국가를 5대 국정지표로 설정하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던 그해 2월에는 국보 1호인 숭례문(남대문)이 불탔고, 5월부터 7월까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가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다. 이명박 정부의 한미 FTA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에 반대해 일어난 시위로 처음에는 1백 명 내외였던 집회가 수백만이 참여한 대규모 집회로 확대 됐고 결국 이명박 대통령은 이에 굴복하여 협상 재개를 포기했다.
한편 2009년 5월 23일 친인척 뇌물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노무현 대통령이 경남 김해 봉화산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5) 제주 사회의 흐름
가) 4·3 사건 진상조사보고서 확정
1999년 12월 4·3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1월12일 유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2000.1.12)에 서명 발표했다. 2 년여에 걸친 조사 끝에 2003년 10월 4·3 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노무현 대통령이 서명하면서 공식 확정됐다. 노무현대통령은 제주를 방문하여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무고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하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2006년 4·3위령제에 참석했다.
나)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 제정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개발함으로써 국가발전에 기여함과 동시에 제주도민이
주체가 되어 향토문화와 자연 및 자원을 보전하고 지역산업을 육성하며 쾌적한
생활환경을 조성하여 제주도민의 복지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제주국제자유
도시 특별법이 2003년 7월 1일부터 시행 공포되었다.
이 법을 시행하기 위해 국무총리 산하에 국제자유도시 추진위원회를 두고 각종
시행법령을 심의 의결했다. 이 법에 의하여 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설립되
었고, 세계평화의 섬 지정 및 남북 교류 및 협력에 관한 사업, 국제회의 유치 등이 이루어졌고, 외국인의 자유왕래를 시행하기 위한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여졌다.
또한 국제화 교육환경 조성을 위해 학교 교육 및 운영의 특례를 두어 외국인 학
교의 설립이 가능하여 지고 내국인들의 입학이 허용되었다.
그리고 자연환경의 보존 및 관리를 위해 절대보전지역과 상대 보전 지역, 중산
간 보전지역을 지정하여 행위를 제한했고, 지하수 개발이용 허가 등에 관한 특례
등을 두어 도지사가 관리하도록 했다.
다)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제주도가 2006년 7월1일부터 특별 자치도로 새롭게 출범했다. 외교와 국방 등을
제외한 중앙정부 사무를 모두 넘겨받아 도지사가 고도의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
게 됐다. 제주특별자치도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 광역 지자체와 달리 새로운 행정
체제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기존의 기초 자치단체가 폐지되고 북제주군은 제주시로, 남제주군은 서귀포시로
각각 통합되고 기초의회도 폐지되어 제주특별자치도라는 하나의 광역체제로 바뀌
었다. 특히 교육, 의료, 관광 산업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해 제주도가 동북아의
허브로 발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제주국제자유도시 특별법에 의해 초, 중등 외국교육기관이나 국제 고등학교 등 차
별화된 교육기관이 설치되고 교육과정과 학교 운영에 대한 자율성도 대폭 확대되
었다. 또한 관광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제주도 전체를 국제 회의도시로
지정하고 무비자 입국도 대폭 늘어났다.
.
6) 제주문화예술계의 흐름
제주예총이 개최해 오던 한라문화제가 2004년부터 탐라문화제로 개칭되면서 탐라 천년의 문화에 대한 관심을 고양시키기 시작했다.
가) 미술계
1999년 7월 15명으로 창립된 제주판화가협회(회장 고길천) 창립전이 2000년 3월 세종갤러리에서 열렸다. 여기에는 회원 11명이 작품을 출품했다.
2002년에는 제주도예가회(회장 김미영)가 ‘제주 전통문화를 잇는 도가예술의 발아’라는 부제를 가지고 18명의 출품 작룸으로 창립전을 열었다.
2003년에는 제주만화작가회가 창립전을 열고 매년 정기전을 개최했다.
한라미술협회는 2004년 ‘바람의 신화 2004년, 제주현대미술전’에 회화, 한국화, 조각, 판화, 뉴미디어 등 55명의 작품을 전시했다.
2004년 11월에는 제주수채화협회(회장 김원구)가 결성되어 수채화의 저변확대와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고자 활발한 교류전을 펼쳤다.
한국미술협회 제주특별자치도지회는 미술전문지 『VIEW』를 2006년 2월 발간하여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나) 음악계
2000년 제주 음악계는 많은 장르의 기악 연주가 개최되어 관악 중심이었던 활동에서 피아노와 현악기 앙상블, 합창단 등 다양한 활동으로 폭이 넓어졌다.
제주국제관악제의 발전과 대형음악행사가 이어졌고, 제주여자중학교 오케스트라, 한라에코밴드, 제주리틀실내악단의 창단과 2000년 제주도 중등음악과 교육연구회 주최의 전도 중·고등학생 음악경연대회, 2001년 제주대학교 음악학과 주최 전국 초·중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아라음악 콩쿠르를 처음 마련됐다.
또한 2001년도에는 제주 음협이 주관하는 제1회 탐라전국합창축제가 창설되었다.
또한 제주컨벤션센터가 개관되면서 세계적인 음악인들의 연주회와 굵직한 공연들이 개최 되었다.
2004년에는 영혼의 소리, 오카리나 동호회 작은오리, 브라스앙상블 오름제주팝스앙상블, 실내악단 베가트리오 등이 창단 연주회를 가졌다.
2006년에는 숨비소리 합창단, 표선청소년합창단, 화음플루트오케스트라, 제주타악기 앙상블, 여성합창단 돌체우먼코러스 등이 창단 연주회를 가졌다.
특히 제주시립합창단의 활동이 두드러졌는데 2004년부터 2007년 10월 완료된 브르크너 교향곡 전곡 연주시리즈는 시억할 만한 연주회다. 그리고 2002년 12월 초연된 제주도 소재 창작 오페라 「백록담」의 공연은 제주시가 의욕을 보이고 제작했으나 극명하게 갈린 공연평과 관객들의 반응에 몇 번 개작을 하여 공연되었지만 제주브랜드 작품으로 정착되지 못하고 폐기되고 말았다.
다) 연극계
2000년대 제주 연극계는 울산에서 열린 제18회 전국연극제에 제주대표로 참가한
극단 가람의 「마술가게」(이상범 작/이동훈 연출)가 단체상 금상과 개인연기상 이동훈의 수상으로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2001년 5월에는 제주에서 제19회 전국연극제가 열렸다. 제주극협으로 참가한 제주팀은 「바이칼호로의 여행」(강용준 작/ 이석진 연출)으로 장려상을 수상했다.
2004년에는 장일홍의 희곡「초혼」(원제 이어도로 간 비바리)이 연희단 거리패(연출 이윤택)에 의해 국립극장과 제주문예회관, 서귀포학생문화원에서 공연되었다.
2000년 놀이패 한라산은 「아버지를 밟다」라는 작품으로 서울과 일본 공연을 햇다. 특히 이 해에는 제주대학교 극예술연구회가 전국대학연극제에 참가하여 은상과 특별상을 수상했다.
제주연극협회는 한라문화제 연극제, 제주말연극제, 제주연극제, 제주청소년연극제, 소극장 연극축제를 매년 개최했다.
극단 가람, 극단 무, 극단 세이레, 극단 아라, 극단이어도, 극단 정낭극장, 놀이패 한라산 등 7개 단체가 꾸준히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나. 제주문단의 동향
!) 제주문학의 특징
가) 제주문학관건립추진위원회, 제주문학의 집
제주에서의 문학관에 대한 논의는 2000년에 들어서면서 몇몇 뜻 있는 문인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2005년 8월에는 제주문인협회와 제주작가회의 공동으로 심포지엄을 갖기도 했다. 그리고 2005년 9월에는 이 두 단체를 대표하는 12인이 ‘제주문학관건립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강중훈, 오경훈)를 구성하여 2006년도 예산안에 제주문학관 건립 기본계획 연구용역비를 계상해 달라는 건의문을 채택하여 행정당국에 접수시키기도 했지만, 당시 제주도정은 아무런 답변이 없었고 자연 추진위원회의 활동도 지지부진해 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다시 2009년 3월 18일 제주문인협회, 제주작가회의와 제주도 문화정책과 간에 간담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제주문학관 건립추진위원회를 각 5명씩 추천하고 도의회, 문화관광정책국장으로 구성하기로 협의하여 2009년 4월 5일 제주문학관건립추진위원회 발족하여 추진위원 및 자문위원을 위촉하고 공동위원장으로 강용준, 문무병을 선출했다. 제주문학관 건립기금 3억 원이 마련되면서 2009년 11월 3일에는 제주문화예술재단 세미나실에서 제주문학관건립을 위한 토론회 개최했으며 이 자리에서 제주문학관 건립추진 거점센터의 운용활용방안 등이 논의 되었고 2010년 3월 13일 사라봉 서쪽 오거리 인근에 제주문학의 집(운영위원장 강용준)이 개관 됐다.
이 건물에는 북카페와 강의실, 소회의실, 사무실이 마련되었고, 3층에 추진위 사무실, 제주작가회의 사무실, 제주문인협회 사무실을 마련했다
2) 문학단체의 활동
가) 한국문인협회 제주도지회(제주문인협회)
제주문인협회는 2001년부터 당해 연도 우수한 작품집을 선정하여 제주문학상을 수여했는데 역대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제1회(2001) 오성찬 소설집『보재기는 밤에 떠난다』
제2회(2002) 강통원 시집 『돌하르방』
제3회(2003) 한기팔 시집 『말과 침묵 사이』
제4회(2004) 박재형 동화집 『다랑쉬오름의 슬픈 노래』
제5회(2005) 양전형 시집 『나는 둘이다』
제6회(2006) 송상홍 동시집 『땅콩』
제7회(2007) 김가영 수필집 『장미의 이름으로』
제8회(2008) 고훈식 시집 『아름다운 타인』
제9회(2009) 김영기 동시집 『붕어빵』
제주문인협회는 2003년부터 매년 ‘장애인을 위한 문학창작교실’을 운영하여 다수의 문인을 배출했으며, ‘찾아가는 문학강좌’를 시행해 한수풀문학회, 애월문학회, 구좌문학회, 성산문학회 등을 창립하는 기반을 조성했다.
제주문인협회는 2004년 정관을 개정하여 2005년부터 임기 2년의 회장 직선제를 실시했다.
2000년대 역대 회장은 16대 김종두(2002-2004), 17대 고성기(2005-2006), 18대 강중훈(2007-2008), 19대, 20대 강용준(2009-2011)이다.
2007년에는 ‘제주문학통신’이라는 소식지를 만들어 회원들의 신간 정보와 근황을 알렸으며, 홈피를 구축해 『제주문학』과 개인창작집을 전자화하기도 했다.
2007년 11월, 2008년 1월, 9월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르 클레지오가 제주문협을 방문하여 임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해 4월에는 원로시인인 양중해 시인이 별세했다.
2009년부터는 ‘제주문학동인축제’를 창설하여 문학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동인회를 홍보하면서 교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고, 중앙 문인들을 초청하여 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이 시기 제주문인협회는 제주문학관 건립기금을 모으는 등 문학관 건립에 앞장섰다.
한편 2000년대 제주신인문학상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제10회(2000) 당선 수필 공옥자「미운정」, 동화 부영선「은실이」
제11회(2001) 당선 시조 이경숙 「해동의 들녘」, 동화 김미라 「향기나는 빵집」
가작 시 조미경 , 소설 김수아, 소설 이유미
제12회(2002) 가작 소설 조미경, 수필 김애경, 동화 장수명
제13회(2003) 당선 시 양인숙 「바람의 운명」
가작 수필 안정희
제14회(2004) 당선 시조 고정숙 「억새, 비에 젖다」
제15회(2005) 당선 시 양영철 「플러그 인(人)」,
수필 문경선 「지친 새들 날아들다」
가작 시조 김영란
제16회(2006) 당선 시 송민호 「해부학실습」
가작 수필 고미영, 시조 오계아 「환장하는 아우성」
제17회(2007) 당선 시 이민화 「푸른 상처」
가작 수필 김태우, 동시 양순진
제18회(2008) 당선 시조 이창선 「송악산」
가작 시 김민수, 수필 오현진
제19회(2009) 당선 백명희 「겨울, 달팽이집을 그리다」
가작 시조 고봉선, 수필 이정자, 소설 박미윤
나) 제주작가회의
제주작가회의는 기본 사업으로 창립 초기부터 ‘제주작가신인 공모’, ‘제주청소년 문학한마당과 청소년문학상’을 공모해 왔으며, ‘가을시 낭송 및 시화전’, 제주평화공원에서 ‘제주 4.3 추념 시화전 및 추념 시집 발간’을 해왔다.
2005년에는 제14회 전국민족문학인대회를 유치 개최했으며, 2008년 창립 10주년을 맞이하여 제주시 열린정보센터에서 ‘제주4.3 60주년 기념 국제문학심포지엄’을 가졌으며 ‘도민과 함께 하는 4·3문학기행’을 해오고 있다.
당시 제주작가회의를 이끌어온 회장은 제2대 김병택(2000-2001), 제3대 고정국(2002-2003), 제4대 김광렬(2004-2005), 제5대 오영호(2006-2007), 제6대 문무병(2008-2009)이다.
제주작가회의는 1998년부터 『제주작가』를 반 연간으로 꾸준히 발간해오다 2008년부터는 계간으로 바꿔 2009년까지 27호를 냈다. 이와 함께 다음과 같은 비정기 간행물도 냈다.
2001년 4.3소설선집 『깊은 적막의 끝』
2002년 4.3희곡선집 『당신의 눈물을 보여주세요』
2003년 제주·충북작가회의 공동시집 『강을 낳고 바람을 길러』
2004년 4.3평론선집 『역사적 진실과 문학적 진실』
2005년 제주·충북작가회의 공동시집 『그 아이의 얼굴 속에 다른 한 생명이 맑 게 꽃피는 소리를 듣는다』, 공동작품집 『먼 그곳까지』
2006년 4.3산문 선집 『어두운 하늘 아래 펼쳐진 꽃밭』
2007년 제주·충북작가회의 공동시집 『사랑한다, 사랑한다는 말이』
2008년 제주4.3 60주년 기념 신작시집 『진혼』
제주4.3 60주년 기념 시선집 ?곶자왈 바람 속에 묻다?
한편 제주작가 신인상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2000년 당선작 없음
2001년 시 김문택 「공중전화」, 소설 고은주 「산불」. 이중근 「낮 한때 비」,
평론 강영기 「시의 현실인식과 동시적 인식」
2002년 시 김경주 「운동장」, 소설 양혜영 「틈」
시조 이애자 「송악산 염소똥」. 김경택 「홀로서기」
2003년 시 강창범 「겨울 산길에서」, 시조 홍경희 「어영마을」,
소설 조미경 「똥돼지」, 평론 문경기「수평선을 안고 눈물로 빚어낸 구 슬」
2004년 시 이종형 「진술 혹은 자화상」
2005년 시 김영미 「발톱을 자르며」, 동화 김순란 「나는 외계인」
2006년 시 김순선 「4월의 노래」, 시조 김진숙 「쑥부쟁이 씨를 받다」
동화 김진철 「세상에 하나뿐인 멜로디언」
2007년 시조 서순영 「양배추 응결을 풀다」
2008년 시 양동림 「마늘」, 소설 조중연 「무어의 집」,
동화 최희정 「야광별」
2009년 당선작 없음
다) 한국문인협회 서귀포지부(서귀포문인협회)
서귀포 이중섭 거리에서 이중섭예술제 시낭송을 2002년까지 개최했다. 2000년부터 ‘시로 봄을 여는 서귀포’행사를 매년 3월에 지속적으로 개최했으며, 2002년에는 전국문학작품현상공모를 의욕적으로 했지만 1회에 그쳤다. 당선작은 운문 손영자 「중문해변에서의 하루」, 산문 양명자 「귀소본능」이다. 한편 2002년 서귀포시 출신이거나 거주인을 대상으로 ‘서귀포 신인문학상’공모 제정했는데 4회에 그쳤다. 입상자는 다음과 같다.
제1회(2002) 당선 시 강애심 「친정 가는 저 마라도」
수필 김건일 「아이디(ID) 이야기」
제2회(2003) 당선 동화 김정배 「봄을 짝사랑하는 겨울」
가작 시 강진국, 소설 이경인
제3회(2004) 당선 수필 권미영 「손」/ 소설 조중연 「삼손의 초상」
가작 시 권소영, 양계순, 시조 서순영
제4회(2005) 당선 시 김진현 「일꾼」/ 수필 고수현 「버림의 미학」
2004년부터 ‘찾아가는 문학교실’을 개최했다. 그 외에 ‘여름 문학 강좌 및 창작세미나’ 사업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회장은 김용길(2000), 강문신(2001-2003), 강중훈(2004-2006), 오승철(2007-2009)였다. 2006년에는 ‘평화의 섬, 제주를 노래하다’를 주제로 도민과 함께하는 전국시인축제를 전국문학인대회를 겸해서 2008년 까지 개최했다.
2008년에는 서귀포시의 지원으로 ‘서귀포칠십리시공원’을 조성하여 김춘수의 「이중섭」, 구상의 「한라산」, 이동주의 「서귀포」, 박남수의 「정방폭포」, 정완영의 「바람」, 정한모의 「해양시- 해녀」, 정지용의 「백록담」, 박목월의 「밤구름」, 박재삼의 「정방폭포 앞에서」, 이생진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 양중해의 「마라도」, 강통원의 「수평선을 바라보며」, 한기팔의 「서귀포」등 13기의 시비를 세웠다.
라) 문학동인회
(1) 북제주문인협회
2004년 8월 북제주군 출신 문인들이 창립총회를 갖고 북제주문인협회를 출범했다. 선출된 임원은 회장 김관후, 부회장 홍창국, 양수자 감사 김성극, 김대홍이며 분과 위원장은 고병용(시), 강상돈(시조), 부명희(소설), 박서동(수필), 백규상(번역) 등이다.
2005년에는 『북제주문학』창간호를 발간했는데 시에는 홍창국, 김경홍, 김성수, 김학선, 김성주, 김명경, 김창호, 고광자, 김대봉, 양금희의 작품이, 논단에 강원호, 백규상, 수필에 홍관옥, 양수자, 송미경, 부진섭, 강원현, 이홍식 그리고 김관후의 중편소설이 실렸다.
(2) 구좌문학회
2002년 11월 제주문인협회의 ‘찾아가는 문학강좌’ 수강생들 13명이 「동녁독서 사랑모임」(회장 박은희)을 결성했다. 이들은 이후 문학기행, 시낭송회, 어린이 독서지도 문인 초청강좌 등을 운영하면서 2003년 구좌문학회를 결성했다.
그리고 2006년부터 『동녁에 이는 바람』이란 제호로 동인지를 발간했다.
김승범, 김여종, 김원종, 박은희, 조선희, 홍기표, 홍제선의 시와 김대봉, 신종영의 시조, 강영미, 고여생, 김양순, 김형주, 좌여순, 진해자의 수필, 강영임의 동화가 실렸다.
(3) 남제주문학회
2009년 남제주 출신 문인들이 모여 남제주문학회를 결성했다. 회장은 고권일, 부회장은 양남수, 이사는 이승익, 사무국장은 고명호, 감사는 김원욱, 오성자를 선출했다. 창립동인은 강애심, 강영란, 강윤심, 고정국, 김병돈, 김봉육, 신용균, 안정업, 양경렬, 양경림, 양인택, 오승철, 이승익, 정수현, 정윤택, 채바다, 허은호, 현용식.
2010년에 『남제주문학』창간호를 발간했다. 여기에는 이 지역 출신 강방영, 현길언, 김동윤의 글도 실렸다.
(4) 새별오름문학회
2002년 창립된 문학 동호회로 2007년 시낭송회와 시화전을 개최했다.
동인으로는 김건우, 김승범, 김은숙, 김향희, 김홍자, 노경영, 변성언, 양금희, 이종억, 이철화, 차영옥, 홍제선, 홍택균, 황금남(이상 시), 강옥희, 김성우, 김성훈, 김영춘, 문명숙, 소복자, 송미경, 양수자, 양은하, 오갑순, 오영희, 오인자, 이귀순(이상 수필), 강병철, 정찬일, 조중연(이상 소설)이 참여했다.
(5) 글밭제주
2004년 5월에 창립된 글밭제주동인회는 그해 『글밭제주』창간호를 발간했다. 2005년부터 부산 황령문학회와 문학교류도 가졌다.
동인으로 강경민, 강경식, 강연옥, 강연익, 고계추, 권재효, 김미정, 김영국, 김태일, 안상근, 양래정, 오병열, 오한욱, 이성윤, 이승익, 전춘희, 홍기표, 홍제선(이상 시), 김상호, 진해자, 박동일, 현윤경(이상 수필)이 참여했다.
(6) 공무원문학회
2005년 4월 대한민국공무원문인협회 제주지회가 창립(초대회장 고광자)되면서 결성되었다. 회원으로 김두성, 김옥란, 김종호, 김창화, 송남석, 송현우, 오문호, 장승련, 장승심, 진정수, 최창일이 참여했다.
(7)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제주문인협회가 주관한 ‘장애인문학창작교실’ 수료생을 중심으로 2008년 결성된 문학동인회다. 수료생 중 임경윤(2005), 이성복(2006), 부정숙(2007), 박형찬(2007)이 각각 『대한문학』에 등단하면서 조직을 결성하여 2008년 한국장애인재단 지원으로 동인지 『징검다리』를 창간했다.
동인으로 강문종, 김미현, 오영순, 이성복, 이경희, 임경윤, 한복섭, 현성철, 홍양진(이상 시), 강문종, 김미현, 김태우, 박영찬, 부정숙, 송복조, 이용언, 전덕순(이상 수필)이 참여했다.
(8) 성산포문학회
성산포문학회가 출범한 것은 2008년 6월이었다. 회장은 이승익, 총무 박인화를 선출했다. 창립회원은 김창후, 현윤조, 김정술, 오은숙, 김정배 등이다.
이들은 성산리 오정개 해안가에 이생진 시비 건립에 참여했고 여러 차례 시낭송회와 문학기행, 문학강연회를 가졌다.
2010년 10월에 『성산포문학』창간호를 냈다. 소농 오문복 한시감상, 특집으로 ‘「시의 바다」그리운 성산포 이생진 시비공원’, ‘성산읍관내에 남아있는 한시 모음’, ‘조정철목사의 숨결을 찾아서’를 게재했다. 김영화, 김정술, 박인화, 이승익, 한용택, 현복숙, 현윤조의 시와 김길호, 오은숙, 현윤조의 수필, 김정배의 동화 등으로 구성했다.
(9) 애월문학회
2009년 제주문인협회의 ‘찾아가는 문학강좌’를 수료한 직후 수료생을 중심으로 애월읍 지역 출신 문인들이 애월문학회(회장 김종호)를 결성했다.
그리고 2010년 『애월문학』창간호를 발간했다.
특집으로 이 지역 출신 장한철의 「표해록」에 대한 정병욱, 김지홍 교수의 글을 실었고 정희성, 이정환, 김정환의 초대 작품도 실었다.
양영길, 장승련, 홍성운, 강원호, 김성주, 문순자, 강상돈, 임애월, 변성언, 김종호, 김창화, 강연익, 김중식, 홍택균, 박우철, 강정훈, 홍은선, 문경훈의 시와 시조, 김찬옥, 강태일, 양수자, 강선종, 양부임, 김순신, 송미경, 김재훈의 수필, 홍창국, 이상춘의 소설, 김석희의 꽁트, 강용준의 희곡, 장영주의 서평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 장르별 문학회
(1) 정드리문학회
2000년 5월부터 시조를 중심으로 시 감상회, 작품 합평회를 갖다가 2005년 동인시집을 발간하면서 정식 출범했다. 회장은 오승철이며 동인으로는 김대봉, 김윤숙, 문순자, 조영자, 김희운, 김동훈, 허은호, 이경숙, 강애심, 김진현, 김향진, 강경훈이 참여했다.
(2) 녹담수필문학회
2000년 10월 제주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강좌 수료생 13명이 2001년 4월 동인회를 결성하면서 『녹담수필』창간호를 발간했다. 회원은 강선종, 김경호, 김려순, 김순순, 김영실, 문익순, 박순정, 부진섭, 양부임, 오세열, 이문웅, 이순자. 정신종, 홍창수 등이다.
(3) 제주여류수필문학회
2002년 제주 출신 여성 수필가들이 제주여류수필문학회(회장 김가영)를 결성했다.
그해 5월 『두 번 사랑한 여자』라는 제주여류수필문학 창간호를 냈는데, 고길지, 공옥자, 구귀남, 김가영, 남상순, 문순자, 양부임, 양수자, 오인자, 윤행순, 조옥순, 허경자의 수필 작품이 실렸다. 이후 『아름다운 이유』, 『오후의 티타임』, 『여자 나이』, 『제주여류수필』등 제목을 달리하며 지속적으로 동인지를 냈다. 이후 강미숙, 고공희, 고연숙, 고평숙, 김순신, 김영미, 김영춘, 부진섭, 오민숙, 이금미, 조영랑, 진현주 등이 회원으로 참여했다.
(4) 한수풀문학동인회(한수풀문학회)
제주문인협회 ‘찾아가는 문학강좌’ 수료 후 한림 지역 출신 문인들이 2005년 12월 한수풀문학동인회(회장 이중옥)를 조직하고 시선집 『바다를 사랑한 이유』를 냈다. 창립 동인으로 강명자, 고유선, 김성현, 김순덕, 김홍자, 김화선, 양민숙, 오계아, 정금자, 장옥수, 장혜정, 홍경희 등 13명이다.
이후 매년 동인집을 발간했는데 『필름 속에 갇히다』(2006), 『시인과 귀뚜라미』(2007), 『나는 오늘 음악가가 된다』(2008), 『해를 벗기다』(2009)를 냈다. 2012년에 한수풀문학회로 개명했다.
(5) 맥동인
제주에서 수필가들의 모임인 동인 맥(脈)이 2007년 3월 창립총회를 갖고 출범했다. 회장은 김길웅, 감사 이용익, 상임편집위원장 고연숙, 사무국장 김종희이고 그 외 창립동인은 고길지, 고앵자, 고연숙, 김광춘, 오민숙, 정희복이다.
이들은 2007년 『맥(脈)』창간호를 발간한 이후 매년 꾸준히 동인지를 냈다.
3) 문학행사
가) 한라신춘문예
제11회(2000) 시 당선 최병희 「봄! 밤 바퀴자국」
소설 당선 오상희 「사랑, 안개 속에 숨다」
제12회(2001) 시 당선 한성순 「윗니와 아랫니」
소설 당선 안리진 「날자, 한 번 날아보자꾸나」
제13회(2002) 시 당선 나정호 「종이비행기」
소설 당선 임순희 「벼랑 끝에 선 남자」
제14회(2003) 시 당선 오형석 「오래된 수목원」
소설 당선 강명희 「벼랑 끝에 선 남자」
제15회(2004) 시 당선 양인숙 「십일월의 진눈깨비」
소설 당선 김문수 「그녀의 아홉 번째 잠」
제16회(2005) 시 당선 최재영 「항아리」
소설 가작 노해옥 「물의 환각」
제17회(2006) 시 당선 김명희 「개성집」
소설 당선 김지희 「그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제18회(2007) 시 당선 김재근 「구포역」
소설 당선 문혜영 「전갈자리 아내」
제19회(2008) 시 가작 김은실 「오월의 잠」
소설 당선 김해민 「두더지 무덤」
제20회(2009) 시 당선 이민화 「오래된 잠」
소설 당선 선영동 「꽃감관」
나) 4·3문학상 공모
2003년부터 관음사 포교당 보현사에서는 4·3문학상을 공모했다. 장르는 중편소설과 체험수기 부문이다.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제1회(2003) 중편소설 당선 고은주 「산불」
체험수기 가작 김영수 「부처물 풍경화」
제2회(2004) 중편소설 당선 최영두 「가막창신 신고 옵서게」
체험수기 당선 김성수 「내가 겪은 4·3 사건」, 가작 김이종
제3회(2005) 중편소설 당선 양혜영 「귀향」
체험수기 가작 정수현「한 가족의 몰락」
다) 오현문학상
귤림문학회에서는 2001년부터 오현문학상을 제정 시상했는데 5회에 그쳤다.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제1회(2001) 문충성 『허공』
제2회(2002) 강통원 『돌하르방』
제3회(2003) 김병택 『한국문학의 풍토』
제4회(2004) 장일홍 『이어도로 간 비바리』
제5회(2005) 나기철 『뭉게구름 뭉개고』
4) 등단 문인
이 시기에 가장 많은 문인들이 등단했다. 시 부문에 백여 명, 시조에 20 여 명, 소설에 13명, 수필에 140여 명, 평론 6명, 아동문학 19명 등 300여 명이 등단했다. 특히 수필의 경우 1990년대 63명의 등단에 비해 갑절이상 늘었다.
이는 중앙의 문학잡지가 우후죽순 격으로 생기고 저마다 경쟁적으로 한꺼번에 많은 신인들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 소설
양영수, 「욕망의 숲」2002년 『소설시대』
양혜영, 「틈」2002년 제주작가회의
조미경, 「나무에서 나는 냄새」2002년 제주문인협회
강병철, 「카라브란의 왕」2003년 『문학21』
조중연, 「삼손의 초상」2004년 서귀포문인협회
김문수, 「그녀의 아홉 번째 집」2004년 제주문인협회
이을순, 「안개숲」2004년 『대한문학』
고길지, 「5월에 들려온 그대 목소리」2005년 『한국문인』
안춘식, 「성천봉의 종소리」2007년 『시사문단』
홍창국, 「신을 빌린 남자」2007년 『순수문학』
김영주, 「7병동 13호실」2007년 『문학저널』
조중연, 「무어의 집」2008년 제주작가회의
김영수, 「길을 꽃길이라 한다면」 2009년 『시사문단』
○ 평론
신승행, 「서정문학에 있어서 물의 상상력과 한의 미학」2000년 『문학세계』
강영기, 「시와 현실의 동시적 인식-김수영의 경우」2001년 제주작가회의
양영길, 「문화 변동시대의 청소년문학 담론」2004년 『순수문학』
장영주, 「전기문 재정립을 위한 대안, 김정호론」2004년 『순수문학』
고광자, 「황순원 초기 단편소설 연구- 소나기를 중심으로」2005년 『공무원문 학』
이 훈, 「지옥의 순례자, 역설적 상실의 제의-편혜영론」2007년 『실천문학』
○ 수필
양계운, 「가정이 행복해야」2000년 『소설과 비평』
오인자, 「단풍나무와 나」2000년 『문예사조』
김봉육, 「정낭돌」2000년 『문예사조』
한정심, 「변명」2000년 『현대수필』
오경숙, 「쌀밥의 추억」2000년 『맥문학』
박서동, 「삘기꽃」2000년 『수필문학』
김하선, 「두 길」2000년 『수필과 비평』
공옥자, 「미운정」2000년 제주문학상
이창식, 「나에의 도전의 값」2000년 『서울문학』
박순철, 「어머니의 무쇠 손톱」2000년 『지구문학』
이영운, 「교실 속의 삽화」2000년 『수필과 비평』
강선종, 「산록도로에서」2000년 『문예사조』
김경호, 「맹선생」2000년 『현대수필』
공옥자, 「미운정」2000년 제주문인협회
허경자, 「순종의 미학」2001년 『문예사조』
문부일, 「우리들과 돈」2001년 『오늘의 문학』
부희식, 「심정」2001년 『교단문학』
고길지, 「눈길을 걸으며」2001년 『서울문학』
문순자, 「덤불 속에 피어난 꽃」2001년 『문학세계』
조옥순, 「쥬니와 마미」2001년 『교단문학』
이경주, 「가파도의 아침」2001년 『수필문학』
박소윤, 「빨래줄」2001년 『현대수필』
김순신, 「추자도와 제주도를 오가며」2002년 『지구문학』
박순정, 「나팔꽃」2002년 『수필문학』
안춘식, 「이름 모를 작은 새의 지혜」2002년『문학세계』
이재옥, 「아름다운 의미」2002년 『한국문인』
김려순, 「동상과 병풍」2002년 『서울문학』
김애경, 「행복한 빨래」2002년 제주문인협회
오화담, 「고향」2002년 『한국문인』
오성자, 「저물녁」2003년 『농민신문』
조영랑, 「그리운 얼굴」2003년 『문학세계』
고앵자, 「동백꽃과 어머니」2003년 『수필문학』
양은하, 「개척의 황금 물결」2003년 『ᄒᆞᆫ맥문학』
오창홍, 「게난 어떵」2003년 『대한문학』
김영환, 「도솔산」(2003)년 『서울문학』
박정환, 「난관의 흔적」2003년 『좋은 사람』
오영례, 「소고와 키」2003년 『수필과 비평』
정한석, 「보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2003년 『서울문학』
현충남, 「나의 산심」 2003년 『문학세계』
김두은, 「신산공원의 아침」2003년 『지구문학』
고연숙, 「어설픈 교사의 초상」2003년 『한국문인』
이홍식, 「고사리를 꺾으며」2003년 『문예운동』
안정희, 「버스 안 풍경」2003년 제주문인협회
정희원, 「난과의 대화」2004년 『서울문학』
허영준 「인도 바라나시로 가는 길」2004년 『문예사조』
부진섭, 「잔디 한 삽」2004년 『한국문인』
문창보, 「월척을 꿈꾸며」2004년 『한국문인』
박계봉, 「젊은 날의 자화상」2004년 『서울문학』
시몽, 「토인비의 화두」2004년 『한국문인』
박동일, 「모범답안」2004년 『현대수필』
김상호, 「제비가족의 수난」2004년 『문학세계』
고평렬, 「오름을 좋아하는 사연」2004년 『대한문학』
부태림, 「실수」2004년 『한국문인』
이종곤, 「늦깍이 변」2004년 『지구문학』
고영순, 「향기 있는 수필가를 찾아서」2004년 『시사문단』
이종억, 「최후의 성찬」2004년 『수필문학』
김종희, 「단감나무 밭의 하루」2004년 『한국문인』
이금미, 「연꽃」2004년 『문예연구』
권미영, 「손」2004년 서귀포문인협회
강미숙, 「시어머님」2004년 『대한문학』
이동수, 「빈집을 돌보며」2005년 『한국문인』
진현주, 「단풍나들이」2005년 『한국문인』
김찬집, 「아내의 코고는 소리에 연민」2005년 『시사문단』
유태복, 「입학」2005년 『맥문학』
유승희, 「아름다운 황혼」2005년 『순수문학』
이창윤, 「골목길」2005년 『시사문단』
김영근, 「아버지와 경운기」2005년 『한국문인』
오민숙, 「설렘」2005년 『창조문학』
송미경, 「끼」2005년 『문예사조』
김승길, 「스위스 쯔리히 호반에서」2005년 『맥문학』
강승호, 「여다(女多)의 의미」2005년 『서울문학』
문인수, 「고봉산」2005년 『창작수필』
양상숙, 「우리 아버지」2005년 『대한문학』
임경윤, 「컴퓨터 탈출기」2005년 『대한문학』
문익순, 「한라산에 오르며」2005년 『서울문학』
양길주, 「반환점」2005년 『문예사조』
김양순, 「내 영혼에 꿩의 넋이」2005년『맥문학』
문경선 「지친 새들 날아들다」2005년 제주문인협회
조승철, 「인생의 향기」2005년 『지구문학』
이용익, 「열장군 차렷」2005년 『대한문학』
문태성, 「정든 고향언덕」2005년 『서울문학』
고석만, 「줄탁동기」2006년 『순수문학』
고정송, 「선운사 그 동백꽃은」2006년 『스토리문학』
김순신, 「이력서」2006년 『현대문예』
고성의, 「누드사진을 찍으며」2006년 『에세이스트』
정희복, 「20년 세월」2006년 『대한문학』
고공희, 「역할놀이」2006년 『한국문인』
김광춘, 「걷고싶은 그길」2006년 『대한문학』
김영미, 「자연으로 돌아가는 중입니다」2006년 『에세이스트』
오순덕, 「내 인생의 일박 일정」2006년 『한국문인』
이성복, 「생명의 소중함」2006년 『대한문학』
김효선, 「커피와 여인」2006년 『한국문인』
조옥순, 「주름」2006년 『현대문예』
고금순, 「밀레의 텅 빈 들판에는」2006년 『현대문예』
박은경, 「등대」2006년 『순수문학』
오승휴, 「어머니의 자리」2007년 『수필과 비평』
부정숙, 「고금선의 딸 고정아를 보면서」2007년 『대한문학』
현명자, 「숨비기 꽃이 필 때면」2007년 『에세이스트』
좌여순, 「가을 산책」2007년 『시사문단』
박영찬, 「성님, 이거 하나 갖다 먹어 봅써」2007년 『대한문학』
정순덕, 「어머니의 숨비소리」2007년 『에세이스트』
현태용, 「작은 항아리의 비밀」2007년 『수필시대』
안정혜, 「어머니의 시계」2007년 『에세이스트』
김상우, 「장마」2007년 『모던포엠』
현철종, 「먼 길」2007년 『현대문예』
오용순, 「음식문화 그리고 예지」2007년 『시사문단』
현민식, 「난을 치며」2007년 『대한문학』
김종식, 「맛난 만남」2007년 『시사문단』
강인자, 「어머니의 메주 등짐」2007년 『시사문단』
김영춘, 「이사」2007년 『한국문인』
조양임, 「홍어」2007년 『수필과 비평』
김성훈, 「새로운 길이 열리다」2007년 『스토리문학』
강미자, 「산행유감」2007년 『자유문예』
강문상, 「공짜의 추억」2008년 『문학저널』
강수미, 「우리 반 송기영」2008년 『수필시대』
강순희, 「목장소녀의 오름풍경」2008년 『수필과 비평』
진해자, 「세잎클로버」2008년 「대한문학」
고여생, 「엄마는 울지 않았다」2008년 『대한문학』
고헤자, 「귀뚜리 소곡」2008년 『수필과 비평』
김성민, 「거울 앞에서」2008년 『ᄒᆞᆫ맥문학』
김은숙, 「모두 다 내 새끼들」2008년 『대한문학』
김향희, 「어떤 편지」2008년 『스토리문학』
문인순, 「다드미 소리」2008년 『서울문학』
양인석, 「섬마을 까마귀」2008년 『현대문예』
오문호, 「담뱃대가 일으킨 큰 사고」2008년 『문예사조』
이용언, 「열여덟에 얽힌 사연」2008년 『대한문학』
이혜숙, 「아름다운 중독」2008년 『현대문예』
전승종, 「사랑니」2008년 『지구문학』
한순자, 「황혼의 사랑」2008년 『한국문인』
오춘미, 「아름다운 동행」2009년 『대한문학』
강명수, 「바람이 머무는 곳」2009년 『문학저널』
이순형, 「어떻게 그런 곳에 사느냐고」2009년 『수필문학』
현영식, 「겨드랑이꽃따기」2009년 『에세이스트』
백진주, 「배려」2009년 『수필시대』
고경희, 「아름다운 노년을 위하여」2009년 『수필문학』
문경숙, 「그리운 고향산천」2009년 『서울문학』
전덕순, 「주머니 속의 로또 번호」2009년 『수필시대』
김현숙, 「아버지의 흙」2009년 『에세이스트』
현성호, 「스쿠버다이버」2009년 『좋은문학』
김혜정, 「어머님의 다른 모습」2009년 『한국문인』
신태삼, 「대장장이 친구」2009년 『연인』
문생환, 「아름다운 남자」2009년『현대문예』
박선희, 「합장」2009년『현대문예』
○ 아동문학
부영선, 「은실이」2000년 제주문학상
김윤미, 「호야의 깨달음」2000년 『동시와 동화나라』
허순영, 「백년만에 피는 꽃」2000년 『아동문학평론』
김희정, 「제비」2000년 『어린이문학』
김섬, 「진짜 대장부」2001년 『동시와 동화나라』
오지연, 「보말줍기」2002년 새벗문학상
강학로, 「시집가는 우리누나」2002년 『아동문예』
장수명, 「해님이 사는 마을」2003년 『아동문학평론』
김정애, 「또또의 붉은 조끼」2004년 『아동문학평론』
김정배, 「봄을 짝사랑하는 겨울」2003년 서귀포문인협회
김란, 「나는 외계인」2005년 제주작가회의
채바다, 「별 셋 나 셋」2006년 『아동문학세상』
김정희, 「가을 이야기」2008년 『아동문예』
김정숙, 「한라짱 몽생이」 2008년 『해동문학』
김기원, 「별」2009년 『아동문예』
김진철, 「세상에서 하나뿐인 멜로디언」2006년 제주작가회의
김정숙, 「한라짱 몽생이」2008년 『해동문학』
최희정, 「야광별」2008년 제주작가회의
양순진, 「의자」2009년 『시인정신』
다. 제주문인들의 작품 활동
1) 소설
오성찬은 이 시기에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며 12권의 장편소설, 소설집과 1권의 동화, 1권의 산문집을 출판했다. 그는 『보제기들은 밤에 떠난다』로 제1회 제주문학상(2001), 『슬픈 몽골반점』으로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올해(2006)의 최고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정찬일은 2002년 토지문학제에서 단편 「꽃잎」으로 평사리문학대상 소설부문 수상, 오을식은 「새장을 열다」로 제31회 한국소설문학상(2005), 「비련사 가는 길」로 자유문학상(2008)을 수상했으며, 고길지는 『태양의 눈물』로 제24회 동포문학상(2009)을 수상했다. 한편 제주출신 재일교포 소설가 현월(본명 현봉호)은 『그늘의 집』으로 2000년 일본 아쿠다가와 문학상을 수상했고, 김길호는 『이쿠노 아리랑』으로 제7회 해외문학상(2005)을 수상했다.
이 시기에 출판된 작품집은 다음과 같다.
강병철, 『푸른소』(2007)
고길지, 『태양의 눈물』(2009)
고원정, 『한국인』(2000), 『아들과 나』(2002),『마지막15분』(2001),『네트워크』 (2002), 『블타는 빙벽』(2003), 『프레지던트 게임』(2007)
김관후, 『본풀이』(2006)
김길호, 『이쿠노 아리랑』(2006)
김시태, 『연북정』(2006)
김연화, 『피아노 소리』(2003)
김영주, 『우리는 아름다울 수 없을까』(2007)
김휘식, 『탐라춘몽』(2009)
양영수, 『마당 널ㅂ은 기와집』(2008)
오경훈, 『제주항』(2005)
오성찬, 『죽은 장군의 증언』(2000), 『보제기들은 밤에 떠난다』(2001),
『세한도』(2001)『우리 시대의 애가』(2002), 『버려지는 사람들』(2003),
『나비와 함께 날아가다』(2004), 『한라구절초』(2004), 『나비가 오지 않는다』(2005), 『아아 삼별초』(2005), 『바람난 마을』(2006),
『슬픈 몽고반점』(2006), 『꽃상여』(2007)
이명인, 『집으로 가는 길』(2000), 『치즈』(2002), 『낙타』(2006)
이석범, 『어둠의 입술』(2001), 『할로영산』(2005)
이을순, 『떠도는 자들의 섬』(2008)
현기영, 『젊은 대지를 위하여』(2004), 『지상에 숟가락 하나』(청소년버전,2009)
현길언, 『관계』(2001), 소년소설 『전쟁놀이』(2001), 『그때 나는 열한 살이었 다』(2002), 『못자국』(2003), 『우리집 식구들』(2005)
홍양순, 『자두』(2005)
2) 희곡
제주의 희곡작가들도 많은 결실을 보았다.
강용준은 2001제주세계섬문화축제 주제공연작품 공모에 「둥그대당실 여도당실」(2000)이 당선되었으며, 장일홍은 한국희곡문학상(2000), 전통연희창작희곡 공모 최우수상(2003), 『이어도로 간 비바리』로 월간문학동리상(2004), 제4회 오현문학상(2004)을 수상했다.
2000년대 발간된 희곡집은 다음과 같다.
강용준, 『파도에 길을 묻다』(2007)
김경훈, 『살짜기 옵서예』(2000)
문무환, 『이모티콘 스토리』(2007)
장일홍, 『이어도로 간 비바리』(2003), 『내 생애 단 한 번의 사랑』(2008)
3) 평론
2000년대 평론단도 많은 성과물을 냈다.
신승행은 『시가문학의 정체성』으로 해동문학상(2001)을 수상했고, 김병택은 『한국문학의 풍토』로 제3회 오현문학상(2003)을 수상했다. 고명철은 「1970년대의 유신체제를 넘는 민족문학론」으로 제15회 성균관문학상(2002), 『칼날 위에 서다』로 제11회 고석규비평문학상(2006)을 수상했다.
이 시기에 출간된 평론집은 아래와 같다.
강영기, 『한국 현대시의 대비적 인식』(2005), 『제주문학담론』(2006)
고명철, 『‘쓰다’의 정치학』(2001), 『칼날 위에 서다』(2005),
『순간 시마에 들리다 논쟁, 비평의 응전』(2006)
김동윤, 『산문소설의 재조명』(2001), 『4·3의 진실과 문학』(2003),
『우리 소설의 통속성과 진지성』(2004), 『기억의 현장과 재현의 언어』 (2006)
김병택, 『한국문학의 풍토』(2002), 『한국현대시인의 현실인식』(2003),
『현대시론의 새로운 이해』(2004), 『제주현대문학사』(2005),
『현대시의 예술수용』(2009)
신승행, 『시가문학의 정체성』(2001), 『문학과 비평이론』(2006)
양영길, 『한국문학사 인식 어떻게 할 것인가』(2001), 『지방문학과 문학사 인 식』(2006)
양진오, 『전망의 발견』(2003)
윤용택, 『생명평화의 섬, 제주를 꿈꾸며』(2009)
홍기돈, 『페르세우스의 방패』(2001), 『인공낙원의 뒷골목』(2006)
4) 수필
2000년대 제주 수필계는 140여명이 등단하면서 폭넓은 저변을 확보했으며, 그들의 활동 역시 왕성했다.
이 시기에 김가영은 왕성한 활동으로 9권의 수필집을 냈다. 그는 허난설헌문학상(2000), 황희문화예술상(2001), 열린문학상(2001), 제주문학상(2007), 매월당 문학상(2009) 등을 받았다. 조명철은 제5회 새한국문학상(2004), 대한민국향토문학상(2009)을 받았다. 고임순도 제5회 새한국문학상(2004)을 받았고, 이종근은 「베릿네」로 제1회 보령의사수필문학상(2005), 고길지는 『어머니』로 한국문인상(2007), 김길웅은 「제주에서 띄운 편지」로 대한문학 대상(2007), 고앵자는 「가설무대에서 얻은 아름다운 자유」로 소운문학상(2008)을 수상했다.
이 시기에 출판된 수필집은 다음과 같다.
강선종, 『님을 위한 고미사』(2008)
강영민, 『진료실에서 띄우는 편지』(2003),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2007)
강원현, 『삶의 길목에서』(2003), 『여로』(2008)
강철, 『해는 동쪽에서 먼저 뜬다』(2000)
강태국, 『추억의 조각들』(2000), 『너 그래도 돼?』(2002)
강형석, 『한라산 그 너른 품안에』(2009)
고길지, 『그대의 이름은』(2003), 『어머니』(2006)
고권일,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2002), 『돋보기를 닦으며』(2007)
고성중, 『도가의 명언』(2000), 『밤하늘의 별을 보라』(2005)
고성화, 『나의 비망록』(2001)
고연숙, 『내 삶의 아름다운 변주』(2009)
고영기, 『길, 돌 바람 파도』(2004), 『빛, 산바다 그리고 삶』(2004),
『종은 너를 위하여 울린다』(2005)
고임순, 『아, 섬이 보인다』(2003)
고정심, 『산에 올라서 바라보면』(2000)
고창실, 『산은 내려가는 게 어렵다』(2002)
고태현, 『야이 아직 어령 아무것도 몰라 마씸』(2003)
고태호, 『절망, 그리고 희망』(2004)
김가영, 『남자운이 좋은 여자』(2001), 『연상의 여자』(2004),
『사랑의 이름으로』(2005), 『왜 사랑하는 가를 안다면』(2003),
『불륜의 사랑이 어리석은 이유』(2003), 『에세이스트』(2005),
『꿈이 머무는 곳』(2006), 『행복을 전하는 사랑 바이러스』(2007),
『장미의 이름으로』(2007)
김광수, 『울타리 안팎 풍경』(2006)
김길웅, 『내 마음 속의 부처』(2002), 『삶의 뒤안에 내리는 햇살』(2004),
『문학작품 속의 어휘 500선』(2004)
김보경, 『나의 사랑, 나의 꿈 강강수월래』(2004)
김봉육, 『고향길 정낭돌』(2005)
김상신, 『세모의 이랑』(2004), 『마지막 고드름』(2006)
김시태, 『시간의 저쪽』(2005)
김영돈, 『제주도 제주사람』(2000)
김영수, 『당신과 마주한 세월은 축복이었습니다』(2005)
김윤창, 『작은 열쇠가 되어』(2001)
김이종, 『들꽃을 피우며』(2000), 『학생 독서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2003)
김찬집, 『상처 있는 영혼의 노래』(2007)
김하선, 『잊으려고, 지으려고』(2001)
남상순, 『아름다운 산책』(2000)
문순자, 『덤불속에 핀 꽃』(2005), 『조약돌의 노래』(2009)
문시종, 『가는 봄, 솔숲은 지금 송화 가루 해산중』(2001)
문익순, 『취미생활에 거는 작은 행복』(2006)
문인숙, 『76세 소녀병-시가 있는 수필』(2008)
부창옥, 『월산령에 진 별들』(2006)
서경림, 『전쟁과 놀이 그리고 지옥』(2004), 『가시나무 자루』(2007)
서명숙, 『놀멍 쉬멍 걸으멍-제주걷기여행』(2008)
석혜경, 『약간 삐딱하게 사는 것도 바로 사는 것이다』(2000)
송상일, 『국가와 황홀』(2001)
신승행, 『언어와 문학의 만남』(2000)
안창범, 『제정신을 차려야 나라가 산다』(2001)
양경렬, 『비야와 환희의 화음 속에서』(2000), 『자연의 심성』(2005)
양경림, 『하원의 맥』(2006)
양길주, 『여자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2007)
양명자, 『탐라의 억새』(2008)
양수자, 『눈꽃이 피면』(2004), 『머물렀던 자리』(2007)
오경숙, 『육농 초상』(2001)
오남련, 『나와 나는 둘이 아니다』(2001)
오성자, 『가파도에서는 사람이 풍경이다』(2004)
오성찬, 『세기말 제주밭 물밑을 흐르며』(2001)
오승휴, 『사색의 창에 스친 일상』(2009)
오태익, 『이루지 못한 사랑은 아름답습니다』(2003), 『착각 한 사발』(2006)
오차숙, 『가면축제』(2006)
윤세민, 『문턱에 얽힌 사연들』(2000)
이영자, 『겨울 나이테』(2004)
이용언,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2009)
이정희, 『땅끝에서 부는 바람』(2000)
이홍식, 『신구간』(2007)
임창준, 『식게칩 아이 몹씬다』(2001)
정문길, 『숲속의 향기』(2009)
조명철, 『그 사잇길에』(2003), 『까치가 우는 산』(2006)
조선희, 『제주바보이야기』(2005)
장영주, 『동화로 만나는 우리 속담』(2001)
정수현, 『머나먼 여로』(2001),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2003),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2006)
정윤택, 『산처럼 살고 싶었네』(2002)
진성기, 『그리스 신화보다 그윽한 신화와 전설』(2002), 『제주민속의 아름다움』 (2003)
진정수, 『무지개 피는 언덕』(2006)
채바다, 『성산포에서 띄우는 편지』(2004)
최현식, 『달빛은 천강에 비치더이다』(2007)
한림화, 『철학자 루씨 삼백만년 동안의 비밀』(2001)
한승철, 『사랑만들기』(2001)
허경자, 『아내의 비밀창고』(2003), 『이브의 팡세』(2006)
허영선, 『섬, 기억의 바람』(2003)
현기영, 『바다와 술잔』(2002)
현길언, 『제주문화론』(2001), 『홍콩에서 예루살렘까지』(2004),
『아름다운 별 이 지구에서』(2004)
현민식, 『청일원의 달빛』(2009)
현용준, 『한라산에 오르듯이』(2003), 『황혼의 언저리』(2006)
현임종, 『보고 듣고 느낀대로』(2003)
현태용, 『남기고 싶은 사연들』(2008)
홍관옥, 『파란 보리밭』(2001), 『여름에 핀 코스모스』(2003)
홍판길, 『바람아 바람아』(2000)
5) 아동문학
2000년대 아동문학가들의 활동도 좋은 결실을 얻었다. 특히 박재형은 9권의 동화집을 발간했으며, 장수명은 2005년에만 8권의 책 등 13권을 냈다.
송재찬은 제35회 소천문학상(2002), 제15회 방정환문학상(2005), 제39회 세종아동문학상(2006)을, 장영주는 제2회 아동문학창작상(2003), 제6회 한국동화구현가상(2006), 박재형은 제4회 제주문학상(2004)을, 김종두는 한국동시문학상(2005)을, 송상홍은 제6회 제주문학상(2006), 오지연은 새벗문학상(2002), 눈높이 문학상(2008), 장수명은 「호수에 갇힌 달님」으로 제24회 새벗문학상(2006)을, 장승련은 한정동 아동문학상을 수상했다.
2000년대 나온 아동문학 작품집은 다음과 같다.
강순복, 『네발로 걷는 아이』(2000), 『바이킹을 탄 엄마』(2001), 『종이피아노』 (2003), 『개구리 침대』(2003), 『금빛 아프리카』(2008)
강정훈, 『파랑도』(2000), 『어린이를 위한 탈무드』(2003)
고광자, 『밤하늘에 걸린 바나나』(2006)
고운진,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아이』(2001), 『꽃피는 지구식물원』(2002),
『하늬바람이 찾은 행복』(2005)
김남숙, 『도깨비 뿌뿌』(2000)
김미희, 『달님도 인터넷 해요』(2007)
김봉임, 『엽전아이들』(2002), 『뽀뽀꾸꾸의 망원경』(2006)
김순자, 『와치와 바치』(2006)
김영기, 『소라의 집』(2000), 『붕어빵』(2008)
김정애, 『나는 수호 천사다』(2004), 『형제는 함께 달리는 거야』(2007)
김종두, 『사는 게 뭣산디』(2000), 『해살이 나이테를 쌓는 나무들』(2005)
김출근, 『꿈 띄우는 아이들』(2002),『하늘 향해 크는 나무들처럼』(2005)
박재형, 『까마귀 오서방』(2000), 『슬기가 다시 만난 제주도』(2000), 『하늘나 라 꽃밭지기』(2001), 『다랑쉬오름의 슬픈 노래』(2003), 『마지막 말테 우리』(2003), 『짜장면』(2003), 『누렁이를 삼켜 버린 안개산으로』 (2006), 『이여도로 간 해녀』(2007), 『최정숙』(2009)
박희진, 『꿈꾸는 탐라섬』(2004)
송상홍, 『땅콩』(2006)
송재찬, 『주인 없는 구둣가게』(2006),『노래하며 우는 새』(2006),
『설문대할망』(2007)
오경임, 『교양아줌마』(2001), 『나는 바람이야』(2002), 『주희』(2005)
오성찬, 『꿈꾸는 섬의 아이들』(2000)
오지연, 『기억할까요』(2006), 『경찰서 담장안 딸기』(2006)
이동수, 『곰팡이 선생님』(2002), 『행복을 팔아요』(2008)
이혜용, 『그땐 나도 우주을 헤엄 칠 거야』(2004)
장수명,『동백꽃』(2005), 『까만코 돌하르방』(2005), 『큰 누나의 물허벅』 (2005), 『열손이 갈퀴』(2005), 『엿장수 아저씨』(2005), 『야광귀신을 울린 체』(2005), 『주막과 주모』(2005), 『각시망와』(2005),『내 이름은 아임 쏘리』(2007), 『도깨비 대장이 된 훈장님』(2008), 『끝나지 않은 방학』(2009), 『잠자는 땅콩』(2009), 『나는야 멋쟁이』(2009)
장승련, 『우산 속 둘이서』(2004)
장영주, 『동화로 만나는 우리 속담』(2001), 『맹물선생의 감춰진 비밀』(2004), 『왕, 왕따 옥황상제』(2005)
정창화, 『파랑도의 노래』(2001)
참고문헌
제주문인협회,『제주문학』창간호, 13집, 19집, 31집
『제주문협50년사』, 2008
예총제주도지회, 『제주문화예술백서』,1988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문화예술 60년사』, 2008
제주문화예술재단, 『제주문예연감』2002-2009
김영화, 『변방인의 세계』 제주대학교 출판부, 2000
김병택, 『제주현대문학사』제주대학교 출판부, 2005
『제주예술의 사회사』상, 하,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2010
고시홍, 『제주도지』6권 문학, 제주특별자치도, 2006
『북제주군지』하권 문학, 북제주군,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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