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제주어 문학 작품인가?
문학 작품에 사용된 언어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
언어는 사용자의 행동과 생활양식을 지배하고, 문화수준과 정서 상태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작년 의녀 김만덕에 대한 강의 요청이 있어 자료를 구하다 깜짝 놀랐다.
인터넷 상에 뜬 김만덕에 관한 문학 작품들(특히 동화)이 많았는데, 제주출신 작가의 책은 한 편도 찾을 수 없었고 모두 외지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기관이나 각종 단체에서 김만덕에 대한 이벤트 프로그램을 할 때, 교재로 그들의 책을 이용하고, 그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듣고 비싼 항공료와 강연료를 주며 우대를 한다.
세계화 시대에 출신지역이 무슨 소용이냐고 할 지 모르지만, 지역의 문제, 지역의 인물은 그 지역 정서와 문화를 체험적으로 익힌 지역 출신이 더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상에 뜬 자료만 가지고 쓴 작품과 제주의 언어와 문화를 체득한 작가가 쓴 작품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날 것인데, 제주의 작가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몇 년 전에 제주시에서 제주를 상징할 문화상품을 만든다고 오페라를 제작했다. 그런데 제주의 작가와 작곡가를 외면하고 서울의 명망 있는 작가와 작곡가에게 상상을 초월한 작품료를 주고 작품을 의뢰했다.
처음엔 제주를 만든 창조여신 설문대할망을 소재로 작품을 의뢰했는데, 그들이 설문대 할망을 알 리가 없다. 자료를 요청해 왔지만 자료라고 해야 고작 몇 가지 에피소드에 불과하니 작품을 쓸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조정철과 홍윤애의 이야기로 수정했는데 그 작품 역시 제주의 독특한 문화를 담아내는데 실패하고, 평범한 남녀간의 사랑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첫 공연 후,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있어서 몇 번 수정을 가했지만 여전히 제주를 대표하는 문화 상품으로 내세우기엔 부족함이 많다. 왜 그럴까?
문학 작품이란 당대 인간들의 삶과 정신, 바꾸어 말하면 환경이나 상황에 대처하는 행동양식을 담는 그릇이다.
아놀드 토인비의 말을 빌리면 ‘도전에 대한 응전’의 모습이다.
당대 문화에 대한 이해와 역사적 인식 없이 쓰여진 작품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외지 출신 작가가 쓰는 작품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그중에는 제주에 오랜 기간 체류하면서 연구하고 쓴 작품들도 더러 있다.
제주어에는 제주선인들의 얼과 문화가 살아 있다.
제주를 배경이나 소재로 한 작품은 제주어를 써야 제격이고 제 맛을 살릴 수 있는데 제주어를 모르고 쓴 작품이 완전할 리 없다.
이것이 제주 작가들이 제주어로 작품을 써야 될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김만덕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 속에 제주어가 들어간 작품이 없는 게 아쉽다.
요즘 제주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제주어 교육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제주어를 학교 교육과정에 포함시켜 필수적으로 배워야 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제주어 교육자료가 너무 단편적인 게 문제다.
속담이나 이야기가 재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주어를 잃어버린 청소년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학작품이 그래서 필요하다.
문학 작품에 단순히 죽은(?) 어휘를 살려 쓰는 차원이 아니라 제주인의 정서와 사상을 살려낼 수 있는 어휘들을 찾아내어 보편화, 일상화 시키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
타 시도의 지역어가 의사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듯이 제주어도 널리 파급된다면 상용화가 가능하리라 본다.
연초에 제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전국에 방송되면서 제주어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이제 제주어로 쓴 문학 작품으로 다가설 때다
* 제주논단(제주일보 2011.5.26.)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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