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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정원을 산책하며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오솔길 세상이야기

선에게-별도봉을 오르며

강용준 2012. 4. 2. 12:48

 

 

4월의 시작이네요.

서울은 꽃샘추위로 싸늘하다는데

제주는 따스한 봄 햇살이 두터운 겨울옷과의 이별을 강요하네요.

이제 저도 30여년을 봉직해 온 직장과의 이별을 준비하려 해요.

아직 몇 년 남았지만

새로운 내 인생을 살기 위해서 명퇴를 하려해요.

 

요즘은 그런 생각 때문 무척 즐거워요.

마치 오랜 수형생활을 하는 장기수가 출옥 날짜를 기다리는 것처럼.

육신의 해방감과 영혼의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어요.


그래서 명퇴이후를 대비한 일환으로  아침운동을 시작했어요.

집 근처에 야트막한 산이 있다는 건 행운이에요.

그런데 몇 년간 난 가까이 가지 못하고 마음에 든 여인처럼

늘 추파만 던지면서 짝사랑만 해왔죠.

등대를 끼고 돌면 제주항에 정박한 커다란 여객선들,

화물선들이 한 눈에 들어오고

아침의 제주바다를 통하여 그날의 날씨를 예측하곤 했지요.


그리고 별도봉으로 가는 작은 오솔길로 들어서면

밤새 숲의 정령들과 수런대던 풀잎들이 생글거리고 있네요.

얼마나 헤어짐이 아쉬웠으면 이슬이 다 맺혔을까요?

후각을 톡 쏘는 삽상한 향기가

지난 밤의 열정을 짐작케 하네요.

그러나 시침을 뚝 떼고 아무 일도 없는 것 처럼

앙증맞게 앉아 해살거리는 모습이

젊은 시절 나를 홀리던 어느 여인을 생각나게 하네요.


그런 저런 생각에 ‘애기업은 바위’로 오르는 비탈길이 제법 바튼 숨을 내쉬게 하고,

몇 번의 마른 숨비소리로 마음을 진정시키면 앞에 나타나는 별도봉 오르는 계단이

내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어요.

퍽퍽한 다리를 이끌고 별도봉 정상에 오르면

나기철 시인이 쓴 ‘별도봉’ 시가 생각나고,

안개 낀 제주항을 바라보면 양중해 시인의 ‘떠나가는 배’가 생각나요.

참 ‘떠나가는 배’의 배경이 6․25 때 피난 왔던 박목월 시인과 관련 있다는 건 아세요?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떠나야했던 말 못할 속사정이 있었나 봐요.

그때 박목월 시인과 교유하던 양중해 선생이 이별의 아픔을 그린 시라 해요.


그리고 별도봉이 왜 별도봉인줄 아세요?

‘별’은 벼랑, 절벽을 뜻하는 말이고 ‘도’는 뒤가 변해서 된 말이에요.

별도봉에는 높은 절벽이 있는데 삶이 버겁거나

실연당한 많은 연인들이 목숨을 버린 곳이기도 해요.

별도봉은 절벽뒤 봉우리란 뜻이죠.

그 동네가 화북이란 마을인데,

화북은 일본 사람들이 한자식으로 개명하면서 억지로 만든 이름이에요.

화북은 벼화(禾)자 뒤북(北)을 쓰는데 ‘별뒤’가 ‘벼뒤’가 된 것이죠.


사라봉 오르는 길도 일곱 굽이나 되요.

그 길을 올라 내리막 계단을 내려 집에 돌아오면 1시간 10여분.

꽤 운동이 되었는지 런닝셔츠가 흥건히 젖었네요.

샤워 후의 상쾌한 기분.

 

종종 맛보러 가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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