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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정원을 산책하며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문화숲에 이는 바람

참 용기를 가진 장인이 그립다

강용준 2012. 6. 7. 08:13

 

 

물건을 만드는 사람 중 고도의 숙련된 기술자를 장인(匠人)이라 하는데,

한 분야에 일생을 바치며 일인자가 되는 일은 대단히 영광스럽고 존경받을 일이다. 

하지만 요즘 이런 장인들을 보기가 힘들다. 학자가 학자로 남을 때,

스포츠맨이 스포츠맨으로 남을 때 그 명성은 후대에 남는다.

그러나 한 분야에 일가를 이룬 사람이 다른 분야에 욕심을 부리다

이루어 놓은 업적을 일순간에 무너뜨리고 망신을 당하는 꼴을 지난 번 총선을 통해서도 보았다.

 

그 반면에 진정한 장인으로 존경 받는 사람도 있다.

소설가 이문열 씨는 한 때 진보세력에게 타도의 대상이 되어 그의 책들이 불태워지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그는 보수논객으로 잘 알려져 여당 공천심사위원장까지 지냈고,

늘 정부의 중요 자리 하마평에 오르내리곤 했는데,

지난 총선에서도 비례대표 제안을 받은 모양이다.

그런데,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 나이에 초선의원이라니? 당치도 않다” 는 것이 거절 이유다.

그는 1948년 생, 우리 나이로 올해 65세다.

대학 교수도 정년퇴직 할 나이긴 하지만 그의 철학이나 능력으로 봐서

그 일을 맡아도 개혁적으로 일을 잘 할 수 있는 나이다.

헌데 그는 최근 ‘나이가 들면서 예전에 안 보이는 것도 보입니까’란 기자의 질문에 그 반대라고 답했다.

예전에 보이던 게 안보여서 걱정이라는 것이다.

그 전엔 세상일에 대해 이해하고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독자들의 취향을 따라가기도 힘들다고 했다.

그것은 곧 소설 쓰는 일에만 전념하겠다는 말이다.

자신이 없다는 표현은 겸손이라기보다 장인장신의 참 용기다.

연극배우, 탤런트, 방송인으로 활동 중인 송승환 씨도 일전에 문화부 장관 제의를 거절했다.

자신은 그런 직책에 어울리지도 않고 자신도 없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이제 50대 중반이다.

이들의 이야기가 지금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들이 보인 대단한 용기와 결단 때문이다.

범부들은 무슨 자리를 차지하려고 백방으로 줄을 대고 나 아니면 안 된다고 촐싹거리는데,

저절로 굴러오는 떡(?)을 걷어차다니 진정한 장인들이요 군자들이다.

  

나이가 들면 모든 능력이 떨어진다. 우선은 기억력과 사고력이 떨어진다.

70을 맞이 한 어느 소설가는 옛날엔 작품 하나를 쓰려면 생각이 너무 많아 그걸 추려내느라 걱정이었는데,

요즘엔 생각이 모자라 작품이 안 된다고 했다.

창의력이 모자라니 욕심과 고집만 늘어나고 굳건하게 성을 쌓아 자기 방어에 급급해진다고 했다.

 공직자로서 고위직에서 은퇴한 사람도 또 다른 무엇이 되고 싶어 자리를 기웃거린다.

심지어 묘비에 작가, 시인이라는 이름을 달기 위해서 은퇴 후에 등단하는 사람까지 생겼다.

나이가 많다고 능력이 없다는 소리가 아니다.

자아 갱신을 위해 공부하고 베풀고 봉사하며 자기 세계를 넓혀 나가는 노익장들에겐 박수를 보낼 일이다.

허나 남을 움직여야 하는 선출직은 다르다.

명예욕 때문 젊은 사람들이 더 잘할 수 있는 자리를 꿰차고 목에 힘을 주는 사람들은

이문열과 송승환 같은 경우를 어떻게 생각할까?

젊은이들의 앞길을 막아서며 욕심을 부리는 것은 개인과 가족친지들에겐 영광이 될지 모르지만

창의적인 미래나 사회, 단체의 발전을 위해선 손실이 더 많다.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망상, 분수를 모르는 과욕이 이 사회를 우울하게 한다.

한 우물만 파며,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참 용기를 가진 장인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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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논단(제주일보. 2012. 6.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