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에서 바라본 환바이칼호의 물안개
한국에서 바이칼호로 가는 길은 여러 가지 있다.
인천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항공편으로 가서 시베리아 횡단열차 74시간 타고
이르크츠크 역에 내려서 다시 버스를 5시간 타고 알혼섬으로 들어가는 방법.
선착장에서 알혼섬 항구까지는 10분 정도다.
비수기 때 여행사 상품을 이용하면 6박 8일에 260여 만원이 든다.
이 보다 저렴하게 가려면 배낭여행으로 속초에서 출발하는 배편과 동해에서 출발하는 훼리호를 타면 된다.
단 이 경우 역에서나 거리에서 영어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가이드가 있어야 한다.
가이드는 현지 한국유학생들이 가끔 알바를 하고 있으니 인터넷 상으로 찾으면 된다.
다음으로 인천에서 이르크츠크까지 가서 개인여행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르크츠크 공항에서 버스터미널 까지 버스나 택시를 이용한다.
물론 러시아 루불만 이용 가능하며 터미널 까지는 1만 원 정도가 든다.
터미널에서는 버스 기사가 알혼섬 가는 관광객을 수시로 모집하는데 버스 비용은 편도에 200루불 정도다.
알혼 섬으로 가는 배편은 30분에 한 편 씩 있는데 무료다.
몽고 울란우데를 통하여 이르크츠크까지 기차를 이용하는 경로도 있다.
알혼 섬에서 주민들이 기거하는 후지르 마을까지는 비포장 도로이며 10인승 봉고 버스가 운행되는데 유료다.
알혼섬에는 호텔이나 민박촌이 있는데 이용료가 비싸다.
깨끗한 호텔인 경우 1박에 10만원이 넘는다.
-알혼섬 도항선
알혼 섬은 비포장도로로 흙길이다.
다행이 바람이 없어서 먼지는 덜 날리나 봉고 버스가 낡아 기름 냄새가 멀미를 할 정도로 진동한다.
기사는 주로 동네 총각들이 하는데 운전 솜씨를 뽐내느라 속도계도 보지 않고 무장 달린다.
뒤칸에 앉은 사람들은 천정에 머리 부딪히기 일쑤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하도 찧어 차에서 내리면 엉덩이가 얼얼하다.
그렇게 흙길을 4-50분 달려야 인가가 나타난다.
가는 길에 세르게라는 신목이 나타났다.
그 앞에는 제단인 듯한 탁자가 놓여 있는데 그 위에 세계 각국 사람들이 바친 동전과 타다만 담배 꽁초가 수북히 쌓여 있다.
담배는 불을 의미하고 불은 영혼이 살아 있음을 상징하다고 하던가?
알혼 섬은 샤머니즘의 본향으로 매년 5월에 세계 민속학자들이 모여 세미나와 축제를 연다고 한다.
알혼섬은 일년에 4개월(5월부터 9월까지)만 생명이 자라고
8개월 동안은 눈과 영하 3-40도의 혹한에 묻혀 찾는 사람도 드물다고 한다.
바이칼호는 남북 길이 636km, 가장 넓은 곳이 80km, 가장 좁은 곳이 27km이며, 최고 수심이 1697m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호수의 나이는 3천만 년 이상이며 물범을 비롯한 3000종 이상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곳이다.
바이칼 호수가 시베리아의 푸른 눈이라면 알혼섬은 바이칼 호수의 심장이라고 한다.
알혼은 나무가 드문, 메마른 이라는 뜻이다.
섬은 동서 길이 72km, 폭이 15km인 기다랗게 생긴 섬이다.
섬주민은 1500 명 정도며 바이칼 호수에서 ‘오믈’이라는 고기를 잡아 주식으로 먹고 관광객들에게 음식으로 제공한다.
오믈은 손바닥만한 생선으로 튀기거나, 찌거나, 삶아 그 안에 야채 등을 넣어서 말아 먹는데,
맛은 담백했으며 시간이 지나면 비린내가 역하게 났다.
부랴트인들의 전설과 신화에 의하면 알혼섬에는 많은 신들이 거주했다고 한다.
인류학자들은 한 민족의 조상들은 바이칼호에서 몇 천년에 걸쳐 남하하다가 한반도에 정착했다고 한다.
바이칼호가 한 민족의 본향이라는 사실은 우리 생활의 여러 곳에 남아 있다.
우리가 죽으면 영혼이 가는 곳이 바이칼호라 믿고 있고 그 곳에 조상의 혼령들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성년이 되어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되면 조상에게 신고를 드렸는데 그 소식을 알리는 전령사가 기러기다.
그래서 결혼식을 거행할 때 기러기 모형을 앞세웠다.
옛날 샤만들이 솟대를 세워 그 위에도 기러기 모형을 달았는데 이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관직에 있다가 사약을 받게 되면 북향사배를 하는데 북향이라는 곳이 임금이 계신 곳이 아니라 조상에게 신고를 하는 의식이다.
이는 평양에 있는 신하가 북쪽을 향해 사배를 올리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사람을 장사 지낼 때 관 위에 칠성판을 덮는데 이는 북두칠성,
곧 바이칼호 가는 길을 상징하는 것이다.
우리 일행이 묵은 곳은 '바이칼 뷰'라는 호텔이었다.
나무를 이용하여 기다랗게 지은 숙소가 성냥갑 집처럼 늘어서 있다.
감자를 구입하면 바베큐를 할 수 있는 곳에 불을 피워 준다.
쉬슬릭이라는 양고기, 돼지고기 꼬치구이도 판매한다.
바이칼호는 호수라 할 수 없을 만큼 넓다.
바다처럼 보이는데 분명 물맛은 민물이고 바람에 따라 간간히 물결이 일뿐 파도가 없다.
7월에 해는 11시에야 졌다.
해질녁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달도 떴다.
죽은 영혼들의 구음처럼 어디선가 아름다운 음악이 들리는 것 같았고 잔잔한 호숫가는 석양을 받아들여 시시각각 변했다.
해가 지자 추위가 몰려왔다,
일출은 5시 30분 경이었다.
높은 산 위에 올랐으면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었으련만 마을에서는 나무사이로 솟아오르는 해를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어둠을 깨치며 서서히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저절로 마음 속에서 기도가 떠올랐다.
야트막한 숙소 앞 동산에 올라 심호흡을 하며 해의 기운을 받아들였다.
세상의 어느 아침보다도 상쾌하고 에너지가 솟는 듯 하다.
그리고 잠시 동산 바위 위에 앉아 명상을 했다.
아침에 알혼섬을 조망해 볼 수 있는 전망대에 올랐다.
잔잔한 햇빛을 받으며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말의 모습에서 고향 제주도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알혼섬에는 초중고가 함께 쓰는 학교가 있는데 마을 주택들도 그렇듯이 목조건물로 되어 있고 시설은 열악했다.
이 학교 울타리 안에 어느 독지가에 의해 만들어진 알혼섬 민속박물관이 있는데 바이칼 호수 일대의 생태에 관련된 수집물이 전시되어 있다.
후지르 마을에서 만드는 바이칼 관련 기념품 및 예술품을 전시 판매하는 갤러리도 있다.
여기서 네르파(바이칼 호에 서식하고 있는 물개 - 바이칼 호의 상징이며 마스코트라 한다)인형과
그 고장 출신이 그렸다는 미술품 한 점을 샀다.
가이드가 안내한 곳은 선녀와 나뭇꾼 전설과 비슷한 이야기를 간직한 부르한 바위 위쪽 언덕이었는데,
거기엔 나무에 형형색색의 천을 묶은 세르게 열대여섯개가 놓여 있다.
징기스칸이 묻혔다는 부르한 바위 옆은 넓은 백사장으로 일광욕을 즐기는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날씬한 여인은 없고 거의 뚱뚱한 러시아인들이 대부분이다.
언덕을 내려가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발을 물에 담그니 오래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찼다.
오랜 세월을 물결에 씻긴 조약돌들이 형형색색의 모습으로 맑은 물아래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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