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제 나이만큼의 속도로 간다는 게 맞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언제면 이 지굿지긋한 학교 공부에서 벗어날까,
젊어서는 언제면 돈 벌어 마음대로 써보나.
이순의 나이가 되면 지나온 세월을 반추하는 것도 사치일 것 같은 조급한 시간이 된다.
그만큼 시간을 느끼는 감각이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것인데 난 무엇을 위해 썼는가를 생각하는 때가 왔다.
공(空)사상에 의하면 ‘시간이란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정체되어 있는 것이다.
시간은 인간이 필요해서 만든 추상적인 개념일 뿐 본래부터 존재한 것은 아니다.
시간은 고정되어 있으며 불변한다.
따라서 지금이 태초고 과거며 현재이자 미래다.
만일 시간이 변하고 흐르는 것이라면 분명히 시간은 유한할 것이다.
또 시간이 정말로 변한다면 변하고 변해서 언젠가는 진달래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그런 무한 시간을 나누고 잘라서 하루를 만들고 달과 해를 만들었다.
가는 해를 아쉬워 하며 송년회를 하고 제야의 종을 타종하며,
오는 해에는 모든 소망하는 것들이 이루어지기 바라며 연하장을 보낸다.
세모의 거리에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면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들도
괜히 마음이 들떠서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친다.
예전엔 정다운 사람에게 손수 그린 크리스마스 카드로 송년의 아쉬움을 전했다.
두꺼운 도화지를 자르고 그림을 그려 물감을 칠하고 은박지로 멋을 내고,
그 안에 얇은 미농지를 붙여 영어로 글씨를 써 정성과 사랑이 담긴 마음을 전했다.
헌데 요즘엔 그런 수고를 하지 않더라도 거리엔 예쁘고 반짝거리는 카드가 아주 많다.
그나마, 인터넷과 스마트폰 강국인 우리나라엔 종이 카드가 빛을 잃은지 오래 되었다.
연하장 조차도 간단히 SNS를 통하여 대신한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그 편리함이 인간을 외롭고 이기적으로 만드는 건 아닌지.
얼마 전 서울에 갔다가 재미동포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제주도에 산다니까 크리스마스트리를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무슨 소린가 했더니 외국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로 쓰이는 것이 구상나무라는 것이다.
구상나무의 원산지가 한라산이니 미국처럼 구상나무가 곳곳에 있는 줄 아는 모양이다.
미심쩍어 집에 돌아온 후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그말은 사실이었다.
1907년에 처음으로 한라산에서 군락을 이룬 것이 발견되었고
1915년 미국의 식물학자 윌슨에 의해 한반도에만 존재하는 희귀수종으로 분류되어
구상나무란 이름과 학명(Abies koreana Wilson)을 얻었다.
헌데 이 나무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미국으로 반출되어 품종 개량으로 많은 변이종이 생겨
개인 저택의 정원수로 인기 있는 수종이 되었다고 한다.
이 구상나무를 미국인들은 한국전나무라고 한다.
이 구상나무가 가장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트리로써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일 년에 수백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으나 정작 우리는 로열티 한푼 받지 못하고 있다.
제주에선 세인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나무가 외국에선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그것이 어디 구상나무 뿐이랴.
제주인의 눈에는 타성이 되어버린 경관이 세계인의 탄성을 자아내고,
우리가 매일 마시는 공기와 물이 장수의 섬을 증명하고 있는데.
이 아름다운 섬이 점차 외국인에 침식 당하고 있다는 소식이 2014년 세모의 화두가 된게 씁쓸하다.
제주논단(제주일보, 2014년 12월 23일자)게재
'오솔길 세상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려 놓아라 (0) | 2015.03.23 |
---|---|
고내리 해안가 얼굴바위와 스토리텔링 (0) | 2015.02.23 |
문자에 함몰된 사회 (0) | 2014.10.20 |
현대사회에도 신언서판은 유효하다 (0) | 2014.07.21 |
문화적 마인드가 충만한 지도자를 원한다 (0) | 2014.05.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