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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 세상이야기

고내리 해안가 얼굴바위와 스토리텔링

강용준 2015. 2. 23. 09:00

하귀에서 애월까지 이어진 해안도로는 제주인이나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드라이브 코스다.

서울에서 손님이 오면 필자도 이 길로 안내한다.

햇빛 좋은 날, 수면에 튕겨 부서지거나 바다속으로 자맥질하여 속살까지 드러낼 때면

그 시시각각 변하는 환상적인 바닷빛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런데 얼마전 이 길을 가다가 고내리 개그미 해안에 기묘한 바위가 있다는 걸 알았다.

마치 보살과도 같은 거대한 여신이 바다를 응시하며 온화하게 웃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어이없는 건 그 부근에 세워 놓은 명판이었다.

스토리텔링과 함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큰바위 얼굴이라 명명되어 있었다.

첫 눈에 이 명판을 세운 사람은 제주의 신화와 역사를 모르는 분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신화의 섬 제주에 그리스 신화를 차용한 것이 너무 생뚱맞아서 애월읍사무소에 확인해 보았다.

담당자가 바뀌어 명판이 어떻게 세워졌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고 관에서 세운 것이 아니라고 했다.

고내리 사무소에 문의했더니 리장이 알고 있었다.

그 주변에서 장사를 하던 외지 출신이 개인적으로 설치 해놓은 것이라고 했다.

안델센 동화의 주인공을 어느 조각가가 덴마크 코펜하겐 바닷가에 만들어 놓은 인어공주 상이

관광 명소가 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인공적인 인어공주 상에 비하면 자연적으로 형성된 고내리 해안가에 있는 큰 바위는 또 하나의 관광 명소가 될 수 있다.

어느 누군가 명명을 선점하기 위해 명판을 세워 놓는다고 해서 공식적인 명칭이 되어서도 안되고 될 수도 없다.

그 자연물의 명칭은 그 고장의 역사나 제주인의 정서에 맞는 것이어야 하고 개인보다는 공식적인 과정과 절차를 통하여

도민들이 수긍할 수 있는 명칭이어야 한다.

필자는 그 바위를 보면서 영등할망이 문득 떠올랐다.

영등할망 전설은 제주도민이면 한 번 쯤 들었을 내용이다.

영등할망은 바람과 바다의 여신이다.

제주 어느 해안가에 고기잡이 하던 어부들의 배가 바람에 밀려 외눈박이들이 살고 있는 섬으로 표류하게 되었다.

그 외눈박이들은 사람을 잡아 먹는 거인들이었는데 그들이 떠밀려 온 것을 보자 그 부근에서 놀던 영등할망은

인간들의 위급함을 알고 섬 속의 동굴에 숨겨주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고향 포구에 도착할 때까지 가남보살(관음보살)을 외며 가라고 했는데

 고향이 가까이 보이자 안도하며 주문 외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 순간 바람이 일더니 또 다시 배는 바다 한가운데로 밀려 가고 외눈박이들의 눈에 띄게 되었다.

인간을 사랑하는 영등할망은 이번에도 숨겨 주고 거짓말을 했으나 외눈박이들은 영등할망을 죽여버렸다.

그 시신 중 다리는 한림읍 한수리에 몸통은 성산포에 머리는 우도에 떠밀려 왔다.

그래서 바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지금도 음력 2월 초하루가 되면 영등할망을 맞이하는 굿을 시작하여

2월 열나흘날 영등할망을 보내는 굿을 한다. 바다를 응시하는 큰 바위를 영등할망 신화와 연결시켜

스토리텔링화하면 어떨까 제안한다.

가령 구원받은 어부들이 영등할망에게 감사하며 그 생전 모습을 보고 싶어 간절히 기도했는데

어느 날 꿈 속에서 영등할망이 나타나 고내리 해안가에 가 보라고 해서 생겨난 바위라고도 할 수 있겠다.

고내리 해안가의 아름다운 절경에 걸맞은 이름이 필요하다.

영등할망은 영등할으방 등 여러 명칭으로 불리고 있으니 도민들의 예지를 모으면 좋은 이름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제주논단(제주일보. 2015년 2월 23일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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