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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정원을 산책하며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문화숲에 이는 바람

교과서 밖의 세상

강용준 2015. 7. 20. 18:56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연극반을 맡아 지도하던 어느날 학부모가 찾아왔었다.

제발 자기 아들은 진학 공부를 해야하니 연극반에서 빼달라는 것이다.

집에서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고 그 학생이 신청한 취미활동을 부모님이 반대한다고 다른 반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학생을 불러 상담했지만 자기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공연은 꼭 마치겠다고 했다.

부모님에게 전화 걸어 양해를 부탁했지만 노발대발이었다.

자기네 집안에는 딴따라가 없다는 막말까지 했다.

 

학부모나 심지어 교장선생님까지도 연극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다.

연극이 시간을 많이 요하는 건 사실이지만 오히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성취욕구를 만족시켰을 때

공부에 대한 집중도와 효율성이 더 향상될 수도 있다.

고등학교 때 연극활동을 한다고 해서 그들이 연극계통으로 진학하는 경우는 극히 소수이다.

그러나 그들이 연극활동에 참여하여 얻는 교육적 효용가치는 무한하다.

연극제작은 공동활동이기 때문에 규칙적인 생활습관과 협동정신을 앙양하면서 인내심과 사회성이 훈련되기도 한다.

그래서 수줍고 매사 소극적이던 학생이 적극적인 사고방식과 자신감으로 성격 개조가 이루어지는 예도 많다.

연극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시대와 상황 대처법을 통하여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자기를 돌아보면서 자아를 발견하게 되고,

인간 탐구를 통하여 올바른 가치관과 인격의 형성에도 많은 도움을 얻게 된다.

연극에 참여하면 자신이 하여할 임무가 주어지기에 그 역할에 대한 책임감이 배양되며,

배역을 맡게 되면 등장인물을 통한 대리 만족 및 정화작용(카타르시스)을 맛볼 수도 있다.

그리고 교과서에서는 얻을 수 없는 문학, 역사, 사회 등 다방면의 교양과 지식을 습득하면서 교과서 밖 세상에

대해서 눈이 트이기도 한다.

한 마디로 연극은 인간에 대한 학문이기때문 인간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정보를 얻고

지식을 함양하는 일이므로 학생시절 연극을 접해본 학생들은 사회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사회 생활에 대한 적응력이 강해 진다.

 

그런데 요즘 와서 고등학교에 문학반이 사라지고 연극반이 많이 없어지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

이를 사회적 현상으로 치부하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학부모의 예술의 효용가치에 대한 무지로 인한 강력한 반대가 아이들의 폭넓은 세상에 대한 이해의 기회와

자식들이 살아가야 할 삶에 대한 선택의 폭을 줄이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제주청소년 연극제가 벌써 18회째가 됐다.

더욱이 금년에는 도내 7개 고등학교가 참여하고 있다니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실제 학교장의 반대로 또는 학교 사정으로 인하여 참가를 포기한 학교가 몇 있다는 아쉬운 소식도 들린다.

이들은 연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많은 애로사항이 생기고 개인적 사정들에 의하여 배역이 바뀌면서도

오로지 공연이라는 공통 목적을 위해서 그 갈등들을 극복해 왔으리라 짐작된다.

한 번의 공연을 위한 수 많은 시간의 연습이었지만 그들이 느끼고 생각한 것은 너무도 많았으리라.

자신의 잠재력과 한계를 느끼기도 했을 것이며 인간관계가 다시 정립되기도 했을 것이며,

인간에 대한 애증을 확인하면서 사회생활이 생각하는 것처럼 녹록치 않다는 것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공연 후에 그들은 성취욕구를 느끼며 자신들이 그만큼 성장하고 성숙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지난한 과정을 극복했음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제주논단(제주일보, 2015.7.20.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