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화 「내부자들」이 인기다. 과거에도 부패한 정치 권력과 정치 깡패가 등장하는 비슷한 내용의 영화가 많았지만
이 영화는 권력으로 성장한 언론의 힘을 통해 현실 정치의 한 단면을 고발한 점에 재미를 느끼게 한다.
사실 요즘 중앙 언론은 몇 신문을 제외하곤 대부분 한쪽으로 편향되었다.
과거 독재 정권을 감시하고 견제 했던 방송도, 신군부에 의해 폐간되고, 강제 해직 당하고,
끊긴 광고를 국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내는 성금으로 연명했던 신문들도 이제는 수구 보수 언론이 되어 버렸다.
일제의 혹정에 저항했던 민족 신문마저 친일파와 재벌의 편을 들고 권력의 편에 서서 보도 자료를 그대로 전달하는
나팔수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언론이 이렇게 변한 것은 정론직필 불편부당이라는 언론의 본분을 잊고 정권의 눈치를 보며 곡학아세 해서 성공한
일부 언론인들을 보면서 당근의 맛에 길들여졌기 때문은 아닐까?
예전에는 정부나 재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비리를 들추면 무마하기 위해 광고도 많이 주었지만 이제는 가만히 있어야
더 많은 광고를 몰아다 주니 애써 목소리 높일수록 손해라는 말이다.
그래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국민들을 잠재적 최면상태로 몰아넣은 것은 아닌지.
물론 개인의 능력이 출중한 점도 있겠지만 언론인의 힘은 대통령 후보, 국무총리 후보, 수많은 국회의원들을 배출하여
나라를 움직일 정도로 막강해졌다.
기사 한 줄에 기업이나 정치 생명이 왔다갔다 하니 언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런 힘은 결국 국민들에게서 나오는 것인데 실상 대다수 언론은 국민들의 한쪽 귀와 눈을 막아버렸다.
시민단체, 농민, 노동자, 학생들이 왜 거리로 나왔는지, 그들의 주장은 무엇인지엔 관심도 없고 시위대가 차벽을 친
경찰버스를 파괴하는 영상만을 방송한다.
경찰의 물대포에 다쳐 사경을 헤매는 농민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고 폭력시위 장면만을 문제 삼는다.
같은 시간에 일어난 동일한 사건도 본질을 외면한 채 의도된 현상만을 보여 준다.
언론이 사안의 본질을 파헤쳐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서는 것이 아니라 시위자들을 불순한 세력으로 만들어 통합보다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역사교과서 문제만 해도 그렇다.
전 세계가 지구가족이라는 글로발화 된 21세기에 교과서를 검인정으로 하는 게 세계적인 추세다.
그런데 정부에서 역사교과서 99.9%가 좌편향 되었다고 주장하면 보수 언론에서는 그대로 쓴다.
그 말이 팩트인지, 검인정을 승인한 정권은 누군지. 왜 편향된 교과서를 99.9%의 학교에서 선정하였는지 본질은 외면한 채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
역사교과서를 분석하거나 역사학자 99%가 국정화를 반대하는 이유를 심층 분석하는 언론이 몇 안 된다.
국민들이 생각하고 판단할 기회는 적어지고 언론이 비추는 것만을 진실이라고 믿게 만든다.
보수 언론의 편향된 기사만 보고 지방의 일부 오피니언들마저 여론을 한쪽 방향으로 주도하려 하고 있다.
국민의 알권리 통제가 정권의 언론 통제 시대보다 더 강해졌다.
종편이 생긴 이후 방송은 보수 논객들의 놀이판이 되어버렸다.
중도 진보를 대변하는 논객들은 일대 다의 구도로 논쟁하지만 결론은 참석자들의 찬반 투표로 백안시 되는 게 상례다.
결국 방송사의 면피용 구색 맞추기에 동원될 뿐이고 보수 논객들은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얼굴 알리기에 나선다.
그들도 곧 선거에 나서야 하니까.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 다가왔다. 대통령의 한 마디 때문 출마자들 모두가 자신만이 진실한 사람이라고 떠들고 있다.
정파를 떠나 인물을 검증해서 민의를 대변할 수 있는 진정한 정치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지방 언론의 몫이다.
언론의 불편부당한 역할이 막중한 때이다.
제주시론(제주신보, 2016.1,12.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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