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스승, 차범석 선생님
강용준(극작가/소설가)
내가 처음 연극을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명동 국립극장에서 차범석 작 「산불」을 보고 나서 였다.
그때 나는 국문과 학생이었고 2학년이 되면서 전공을 선택할 때였는데 그 공연이 희곡을 선택하는 게기가 됐다.
그후 나는 연극을 알기 위하여 대학 연극반에 들어가 연극을 하다 극단 에저또에 견습생으로 들어 갔으며, 동아리에서 희곡을 써서 연출도 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제주에 내려와 극단이어도를 창립하고 자작 희곡을 발표하면서 연극을 계속했다.
차범석 선생님을 처음 대면한 것은 1980년대 말 제주연극제에 심사하러 내려오셨을 때였다.
차 선생님은 일제 강점기 학도병으로 참전하여 제주에서 군 생활을 했다고 했다.
그때 한림 어느 쪽에 붉은 이파리가 하나씩 떨어져 내리는 나무가 많던 곳이란 걸 기억해 냈다.
차 선생님을 모시고 한림 쪽으로 가서 기억을 더듬으며 그 주변을 찾아다니다가 담팔수 나무 군락을 발견하곤 여기라고 하셨다.
그때 돌아오는 차안에서 희곡 산불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작품 속의 배경은 지리산 자락의 어느 산골이지만
실은 제주 4·3 때 제주 어느 지역에 사내들이 많이 죽어 과부들이 많은 동네 이야길 들었고
그래서 산불이라는 희곡을 쓰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것이 늦게 시작한 대학원에서 「희곡 산불의 드라마트르기 분석 연구」라는 석사학위 논문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
차 선생님은 하얀 한복에 늘 정갈한 모습으로 나긋나긋 이야기 하시는 분이고 원래 무용을 하셔서 몸놀림도 가볍고 멋스럽다.
그때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젊은이들 못지않게 주량이 대단하고 건강하셔서 뒷날 거뜬히 일어나시곤 했다.
노래방에 가셨을 때 부른 노래가 김추자의 ‘님은 먼곳에’라는 노래였는데 노래도 잘하시고 가사에 맞춰 춤도 잘 추셨다.
그리고 십여 년 후, 이번에는 제주시가 의뢰한 뮤지컬 대본을 직접 쓰시고 공연을 보러 제주문예회관 대극장에 오셨을 때였다.
그때는 나도 이미 등단을 했던 터라 나를 보자 대뜸 “제주 작품은 제주 작가가 써야하는데 미안해”하고 말씀하셨다.
황송하지만 그건 맞는 말씀이었다.
선생님은 제주와 제주인에 대해 몰랐기 때문 처음 의뢰한 설문대할망을 소재로 한 작품을 쓸 수 없었고,
다른 소재로 작품을 썼지만 그것도 제주의 정서와는 거리가 먼 작품이었다.
외람되었지만 난 공연을 보고나서 차 선생님의 작품과 음악적인 부분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감상평을 써서 지방 언론에 기고를 했고
그것이 차 선생님 귀에도 들어갔던 모양이다.
하루는 서울 대학로에서 여러 연극인들과 선생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시큰둥한 표정으로 인사를 받곤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참 난감했다. 그렇다고 그때 의협심에서 한 일을 잘못했다고 빌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고서는 몇 년간 뵙지 못했는데 해외에 나갔다 왔더니 귀천 소식이 들렸다.
그래서 그 서운했던 감정은 영원히 풀지 못했다.
차 선생님 때문에 희곡을 쓰게 됐고, 학위논문도 쓰고 연극을 하게 되었는데 이승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배웅 못해 드린 자괴감 때문
지금도 차범석 선생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다.
한국희곡 69호(2018.봄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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