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과 제주, 그리고 김만일
강준(극작가/소설가)
조선 시대 해남은 전라우도수군절도사영(전라우수영)이 자리했던 곳으로 지금도 문내면에는 영성 등 그 사적이 남아 있다. 전라우수영은 임진왜란 시기에는 8관 13포가 있었다. 나주목, 영광군, 함평현, 영암군, 해남현, 무안현, 진도군, 장도호부가 8관이며 목에는 목사, 군에는 군수, 현에는 현감, 부에는 부사가 관할 했다. 그리고 서해와 남해의 포구를 중심으로 임치진(무안군 해제면), 목포, 다경포(무안군 운남면), 법성포(무안군 해제면), 검모포(부안군 진서면), 군산포, 가리포(완도군 완도읍), 회령포(장흥군 회진면), 마도(강진군 마량면), 이진(해남군 북평면), 어란포(해남군 송지면), 금갑도(진도군 의신면), 남도포(진도군 입학면) 등 13포에 진성을 쌓고 왜군의 침입에 대비했다.
지금은 큰 섬들이 다리로 육지와 이어졌지만 조선 시대 제주와 육지를 이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이 해남 이진이었고 바람의 방향에 따라서 강진의 마도(마량항)가 이용되었다.
이진은 수심이 낮아지고 갯벌이 쌓여서 포구로서의 기능이 사라졌는데, 과거에는 완도와 달도가 풍랑을 막아주고 완곡하면서 길게 이어진 해안선이 어느 곳이라도 배를 대기 수월했던 천혜의 포구였다.
이진에는 지금도 진성이 남아 있고, 임진왜란 당시 제주에서 공마선으로 말을 실어 나를 때 쓰였던 제주산 돌들이 민간 집 정원 경계석과 울타리로 사용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제주산 돌은 배 위에 무거운 짐이나 말들이 한쪽으로 쏠려서 배가 전복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금은 평형수라는 것을 사용하지만 당시에는 돌을 사용했다. 그리고 말을 하선하면 다시 평형을 잡기 위해 제주에서 실어온 돌도 내려야 했으니 말을 실어나를 때마다 제주산 돌이 이진포구에 버려졌던 것이다.
제주는 한때 단군조선의 적통을 이은 고려의 관할에서 벗어나 1백 년 동안 몽골의 직접 통치를 받은 적이 있다. 고려의 삼별초 병사가 진도에서 항전하다 제주로 거처를 옮기고 몽골과 대치하다 결국은 여몽연합군에 의해 진압당했다. 몽골은 제주에 달로화적을 보내 고려의 간섭을 받지 않고 직접 통치했다. 그것은 제주가 말의 수호신인 천사방성이 비추는 곳이었고 말을 기르기에 최적의 환경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1374년 고려가 목호의 난(원나라 목자들이 일으킨 난)을 평정하기까지 100년 동안 제주에서 말을 길러 육지로 실어 날랐다. 그 이후에도 제주에서 공마선이 드나들던 곳이 이진이었다.
1582년 제주에는 김만일이라는 청년이 과거에 급제하여 전라좌수영 소속인 방답진(여수 돌산)첨절제사로 임명을 받아 3년을 근무한다. 그는 뜻한 바가 있어 벼슬길을 그만 두고 귀향하여 말을 기른다.
그는 말 산업을 기획적으로 경영하여 조선 시대 최초의 성공한 경영인(CEO)이 된다. 속담에 전해오는 ‘말을 나면 제주로 보내라’, ‘조선의 명마는 내 손에서 만들어질 것이다’고 호언했던 장본인이다. 그가 기른 말은 조정뿐만 아니라 사대부 양반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었다.
조선 시대의 말은 오늘날 자동차나 마찬가지였다. 승마(승용), 파발마(통신용), 전마(군사용), 태마(밭 갈이, 무거운 짐 나르는 일)까지 말은 두루 쓰였다.
김만일이 벼슬길을 마다하고 귀향한 것은 왜와의 전쟁에 대비하여 전마를 육성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귀향하여 말을 기르기 시작한 8년 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그는 흔쾌히 2백 필의 우수한 전마를 진상했다. 그리하여 전쟁이 끝난 후 헌마공신이라는 칭호를 받는다.
광해군 때에는 여진과 명나라의 싸움에 전마 진상을 핑계로 제주 관리들의 종마 수탈까지 이어지자 이런 현실을 타개할 목적으로 5백 필의 말을 직접 이끌고 한양으로 올라가 임금을 알현한다. 그 오백 필의 말을 기십 척의 공마선에 태우고 조천포를 떠나 육지에 닿은 이야기를 여수 흥국사, 돌산, 마량항과 이진을 여러차레 답사하여 장편소설의 초고를 쓰고 해남 토문재와 백련재에서 마지막 퇴고에 임하고 있다.
땅끝순레문학관/백련재문학의집 2024년 여름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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