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연극 한 편을 봤다.
극단 세이레가 ‘찾아가는 문화활동’의 지원을 받아 제작한 ‘언덕을 넘어서 가자’란 작품이다.
실버연극이니 여러 수식어가 붙어서 그저 노인들 문제겠거니 생각하고 갔는데 역시 연극의 내용은 황혼의 로맨스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70을 바라보는 초등학교 동창생인 완애, 자룡, 다혜가 50년 뒤 만나게 되는데 세 사람의 뒤틀린 운명과 사랑을 확인하고 우정을 되찾는다는 내용이다.
물론 개연성은 있다고 보지만 현실성은 뒤떨어지는 얘기다.
초등학교 때 짝사랑한 사람을 잊지 못하고 50여 년을 결혼도 않고 혼자 살아간다는 설정도 그렇고 구두쇠처럼 돈을 쓸 줄도 모르는 사람이 선뜻 3천 만 원이라는 거금을 내주는 설정도 그렇다.
희곡 작가 이만희 씨는 참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끌고가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작가다.
그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작가다.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를 나와 김제 금산사에 출가했다가 파계하고서 고등학교 윤리교사를 하면서 희곡을 썼다.
동아일보 장막희곡 공모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바라속의 시체들’로 문단에 데뷔하고, 삼성문예상에 ‘그것은 목탁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가 당선되면서 일약 연극계의 주목을 받는 작가로 성장하게 된다.
처음에는 인간의 실존문제를 다룬 작품을 썼지만 그 뒤로 ‘불 좀 꺼주세요’란 작품으로 교단을 박차고 나와 연극 기획자, 제작자로 직업을 바꾸고 시나리오 ‘약속‘, ’박수 칠 때 떠나라‘ 등으로 영화계에 관계하기도 했다.
세이레의 연극 ‘언덕을 넘어서 가자’는 같은 작가가 쓴 ‘용띠 위에 개띠’만큼 재미는 있지만 감동이나 메시지는 약했다.
그리고 70이 다 된 노인들이라는 연륜을 보여주는데 의상이나 분장 등에 소홀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었다.
그럼에도 경력파 연기자들 완애역의 강상훈과 바람둥이 자룡 역의 임필종의 호흡은 여러 차례 공연을 통하여 매끄러웠고 다혜 역의 김이영도 연기가 한층 무르익었음을 알 수 있었다.
75분이라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무대를 이끌어 간 정민자 연출의 노력도 돋보였으나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고뇌가 좀더 가미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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