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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나무 가지치기

언덕을 넘어서 가자

강용준 2014. 7. 21. 09:50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아상이 많아진다는 것.

회한의 세월에 켜켜이 쌓인 아픔과 아물 수 없는 생채기가 여기저기 문신처럼 남고

이루지 못한 아쉬움과 미련에 가슴 태우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으련만.

좀더 너그러워야 하는데도 자그만 일에도 쉽게 상처받고,

남을 탓하며 점점 자신 만의 성을 굳게 쌓고 외로움을 자초하는 건 아닌지.

 

 

오랜 만에 연극 한편을 봤다.

70이 다 된 초등학교 동창생 세 명의 사랑 얘기를 그린 「언덕을 넘어서 가자」(이만희 작/ 정민자 연출)다.

이 작품은 2010년 극단세이레극장이 처음 무대를 세운 후 재공연한 작품으로

연기자들도 바뀌고 무대도 깔끔하게 정리된 공연이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초등학교 때의 아련한 추억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50여 년이 지난 현재에 다시 추억이 재생된다면, 할 말도 못하고 상대를 오해한

 50여년을 지킨 사랑이 다시 앞에 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 작품이다.

그것도 삼각관계의 상황이 현재까지 지속되었다.

고물상을 하며 많은 재산을 모았지만 라면으로 끼니를 때울만큼 깐깐한 구두쇠로 홀로 살아온 김완애(강상훈 분)와

돈만 생기면 오락실 게임기에 목숨을 거는 바람둥이 최자룡(함창호 분),

여기에 초등학교 때 모든 사람의 선망이었던, 그래서 함부로 접근이 어려워 멀리서 짝사랑했던 윤다해(강춘식 분)가 고물상에서 만나게 된다.

윤다해는 이혼으로 생활이 어렵고 철부지인 아들한테 협박을 받듯이 돈을 마련해 주다 빚더미에 앉게 되고

보험설계사를 하며 근근히 살아가는데,

고물 오토바이를 타다 다친 최자룡을 만나게 되고 돈이 많은 김완애에 접근하지만 완강하고 고지식한 그의 말에 상처만 입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윤다해의 상황을 알게 된 김완애는 3천만원의 돈을 윤다해에게 주며 빚을 청산하라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과거 윤다해가 김완애를 좋아했던 사정과 김완애가 윤다해 주변을 겉돌며 서로 사랑했던 사실이 밝혀진다.

등장인물은 70이 다된 상황에 어쩌라고를 외치지만 작가는 사랑은 젊거나 늙거나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임을 말하고 있다.

그토록 갈망했던 터어키 여행을 셋이서 떠나면서 극은 막을 내리면서 인생의 막바지에 사랑보다

우정의 중요함을 말하고 있지만 관객의 입장에선 아쉬움이 남는다.

김완애와 윤다해의 50여년을 지켜온 사랑의 승리였으면 어땠을까?

나이가 들수록 외로움은 더 깊게 밀려오고 사랑에 대한 욕망은 갈증처럼 더 짙어진다.

 

 

넉살스러운 함창호의 연기나, 작품 속에 녹아든 강춘식의 자연스러운 연기,

김완애의 깐깐한 성격을 창의적으로 소화해 낸 강상훈의 연기가 시종 조화롭게 연결 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관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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