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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나무 가지치기

연극 순이삼촌

강용준 2013. 7. 1. 09:50

 

 

 

요즘 제주언론에선 현길언 소설가의 4·3에 대한 발언 때문에 때 아닌 논쟁이 한창이다.

현길언 선생은 『본질과 현상』32호(2013 여름)에서 제주4·3사건 진상보고서를 중심으로

진보진영으로 구성된 위원회 조직을 문제 삼고 이 보고서가 정치적인 의도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면서

4·3의 발발과 성격을 남로당에 의한 조직적인 폭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 근거로 남로당 제주도당 대의원인 김달삼이 해주에서 열린 인민대표자대회 연설문과

남로당 중앙위원회가 보낸 격려문과 제주위원회의 화답문을 예로 들고

정치권력으로 정치적 의도에 의해 역사를 왜곡하거나 조작하는 것은 범죄이며

이를 조작할 수 있다는 권력자의 의식, 여기에 편승하는 학자와 학계의 분위기를 문제 삼고 있다.

이에 제주4·3연구소, 제주4·3도민연대 등에서는 성명서를 내고 양식을 저버린 노작가의 추락 운운 하면서

현길언 선생을 비난하고 있다.

 

보수 쪽과 진보 쪽의 입장과 처지가 상이하고 4·3의 본질과 성격을 바라보는 시각이 상반되어 있다.

시각 차이가 좁혀질 수도 없기 때문에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게 4·3 문제 해결의 현주소이자 딜레마다.

진보 대통령이 집권하면 진보 쪽의 입장을 옹호하고 보수 쪽이 정권을 잡으면 우익의 입장을 옹호해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피해자는 도민이라는 것이다.

피해를 당한 도민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문제가 쉽게 풀릴 텐데,

진보·보수 양쪽은 서로가 피해자고 상대를 가해자라 생각하니 해결이 어렵다.

 

현기영 선생은 1978년 「순이 삼촌」을 발표하면서 많은 고초를 당했지만

그간 빨갱이들에 의한 폭동으로만 알려져 왔던 4·3을 공권력에 의한 학살이라는 관점에서

대중들에게 처음 알리는 역할을 했다.

북촌리 학살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그 학살의 현장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난 순이 삼촌이

죽을 때까지 학살의 트라우마에 갇혀 살다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의 극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김봉건 씨는 1년 전 쯤에 필자를 찾아와 자신은 유족 출신이고

 고려대 대학원 학생이라 소개했다.

그리고 순이 삼촌을 연극으로 만들어 보겠다고자문을 구한 적이 있었는데,

과연 작품으로 올릴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가졌지만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원주에서 일부러 시간 만들어 서울 충무로아트홀 중극장에서 공연된 마지막 날 공연을 봤다.

 

이 작품은 현재와 4·3 사건 당시를 동시에 담고 있다.

그래서 과거의 순이와 현재의 순이가 동시에 무대에 등장하여 당시의 분위기와

현재 순이의 심리 상태를 입체적으로 보여 준다.

순이 삼촌 역을 맡은 양희경 씨의 압축되면서도 절제된 내면 연기가 압권이었다.

 

그러나 연극을 보고 나오면서 마음은 편치 못했다.

65년이 지난 오늘도 수많은 순이 삼촌들은 고통 속에 있고

4.3에 대한 명쾌한 해결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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