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연기자의 등장과 연출력이 돋보인 무대
강용준(극작가/ 전 제주연극협회 회장)
제33회 전국연극제 제주예선대회가 지난 4월 23일부터 사흘간 도내 세 개 극단이 참가한 가운데 제주문예회관대극장에서 열렸다. 공연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 소감을 공연순서대로 적는다.
극단세이레극장
『그 가족이 수상하다』(김태수 작/ 정민자 연출)
가족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기초적인 사회공동체라면 가정은 울타리다. 유교적 전통 사회에서 공동체를 원만히 유지하기 위해선 규율이라는 것을 만들어 상하간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했다. 그게 전통적인 우리의 가정교육이었다. 자식들은 아버지의 권위를 무서워하면서도 존경했다. 아버지의 교육 방식이 다 옳은 것으로 생각했고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헌데 자신들의 울타리를 벗어나 타인과의 교류가 시작되면서 지금까지 자신을 옭죄었던 가풍이라는 규율이 가부장적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비인격적이고 몰개성적인 통제 수단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아버지의 권위에 저항하게 된다. 그리고 좀더 성숙해지면 그것이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관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가족을 사랑하는 서투른 방법이라는 걸 알게 되고 아버지에게 연민을 느끼는 게 부자지간의 관계였다.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그 울타리 안에서 자식을 낳으면서 가장은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어느 사회나 묵계에 의한 불문율과 질서를 위해 정해 놓은 규율이라는 게 있다. 질서라는 것이 지배나 통치의 다른 이름이기에 그것을 거북스럽게 생각하거나 귀찮아하는 곳에는 불화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느 가정이나 자식과 부모간의 갈등은 크든 적든 늘 걱정거리가 된다.
『그 가족이 수상하다』는 그런 가족간의 오해와 불신을 다루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고자 하는 연극이다.
주인공 엄일탁은 평생을 군인으로 살다가 사고로 인해 허리를 다쳐 퇴역한 원사 출신의 노인이다. 그는 군부대가 있는 마을에 집을 짓고 보일러 수리공사를 하며 딸과 아들을 키운다. 나이가 들어서도 군인정신이 몸에 밴 고집불통으로 가부장적 권위로 자식들을 교육시킨다. 장성한 딸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며 읍내에 자그만 옷가게를 운영하며 살지만 아들은 어머니의 죽음이 아버지 탓이라며 자신의 꿈을 짓밟아 버린 사람이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가출하여 사고만 친다.
엄일탁(강상훈 분)은 아침 6시가 되면 기상 나팔 음악으로 자식들을 깨우고 청소를 시키고 체력단련을 하게 한다. 11시가 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귀가하여야 하고 자식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잔소리를 늘어놓는 등 군대식으로 자식들을 교육시켜왔다.
그런 집안에 인근 부대에 근무하는 오 대위(조성진 분)가 방을 얻기 위해 찾아 온다. 엄일탁은 오 대위에게 가정의 규율을 지킬 것을 조건으로 아들이 쓰던 방을 내어 준다.
오 대위는 엄일탁의 딸 엄진주(설승혜 분)를 보고 첫눈에 반해 엄일탁의 오랜 친구로서 치킨 집을 운영하는 양춘식(문종선 분)의 도움을 얻어 청혼할 속셈이다.
진주도 오 대위가 마음에 들어 두 사람은 엄일탁의 눈을 피하면서 사랑을 키워나간다. 헌데 가출한 아들 엄테규(양해광 분)가 사고를 쳐 경찰서에 잡혀 있다고 연락이 온다. 엄일탁은 버린 자식이라고 내버려두라고 하지만 진주와 오 대위는 태규를 찾아가 마음을 다잡고 귀가하도록 종용하며 설득한다. 태규는 아버지는 무능한 군인이며 아버지의 고집불통인 성질때문 어머니가 죽었다고 원망한다. 일탁과 태규의 그런 갈등을 해결하는 역할을 한 사람이 양춘식이다. 양춘식은 테규의 오해를 풀기 위해 자초지종을 이야기 한다.
아버지가 허리를 다쳐 제대하게 된 것은 아버지가 무능해서가 아니라 겨울에 산악 훈련을 나갔다가 부하가 미끄러져 절벽으로 떨어지는 순간에 그것을 제몸을 날려 막아내고 대신 떨어져 허리가 박살났다는 것과 어머니의 죽음도 결국은 태규 탓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태규가 중학교 때 싸움을 하다가 한 학생을 때려 뇌진탕을 일으켜 입원하게 되고 그것을 알면 태규가 큰 상처를 받을까봐 몰래 피해 학생 부모와 합의를 하는 과정에서 엄일탁은 비상 소집에 응하게 되고 대신 어머니를 급히 병원으로 부른다. 병원으로 가는 중에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반성하게 된다. 결국 태규는 아버지처럼 멋진 군인이 되기 위해 간부후보생 시험을 보고 군대를 가게 된다.
한편 오 대위는 진주와의 관계를 털어놓고 엄일탁에게 결혼을 허락받게 되면서 해피엔딩이 된다.
이 작품은 엄일탁의 고집불통 성격과 능글능글한 양춘식의 관계, 그리고 사랑을 얻기 위해 어벙하게 행동하는 오 대위와 엄진주의 사이에 해학적인 요소가 많았다.
그러나 무대를 압도해야할 엄일탁이 무심하게 내뱉는 대사는 시종 무기력하게 보였다. 무대를 긴장시키고 이완시키는 치밀하게 계산된 연기로 상대 연기자를 이끌어가야 했는데 양춘식의 의뭉하게 치는 연기에도 무덤덤하게 반응하여 희극적 분위기를 상승시키지 못했다. 엄진주도 너무 경직되어 무뚝뚝하게 보였으나 오 대위와 양해관의 발굴은 큰 수확이었다.
보이스가 좋은 조성진과 기본기가 갖추어진 발성을 하는 양해광은 나름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무대활용에 있어서 중앙과 주로 상수 족에 치우진 무대 전환을 하수 쪽을 사용하여 다양하게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깔끔한 동선으로 무리없는 연출선을 보였다.
극단 가람
『어제도 오늘도 어쩌면 내일도』(김솔지 작/ 이상용 연출)
얼마전 TV드라마 ‘미생’이 화제를 일으킨 적이 있다. 만화에서 소재를 취한 드라마였는데 2,30대의 젊은 층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바둑에서 두 집 이상을 얻어야 완생이 되는데 아직 살아있어도 완전히 산 게 아니다는 뜻이다. 즉 젊은이들의 불완전한 삶, 안정을 담보하지 못하는 미래가 불안한 비정규직 삶이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면서 호응을 얻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선 5포 세대라는 자조적인 말이 유행하고 있다.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그리고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세대라는 말이다. 이것은 모두 돈과 연관이 있다. 돈만 있으면 다 해결 된다는 말인데 그래도 취업 포기란 말이 없어서 다행이다.
금년 1월 통계청 고용동향보고서에 의하면 취업포기자가 492,000명이라고 한다. 어떤 근거에 의해 산출된 결과인지 모르지만 50만에 가까운 2,30대 젊은이들이 취업을 포기했다니 그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겠다는 말인가? 그 많은 젊은이들이 재산이 있는 부모를 만나 얹혀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참으로 나라의 미래가 암담한 현실이다. 그 통계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2015년 1월 현재 실업자는 982,000명이라고 하니 실업자 1백만 시대에 우린 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을 유발한 책임은 정치가들에 있다. 그들이 선거 전 장밋빛 공약을 제대로 지켰더라면 상황이 이 지경에 까진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젊은이들을 위해 내건 공약만 봐도 그렇다. 반값 등록금. 군복무단축, 스팩을 초월한청년취업,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를 위한 행복주택 20만호 건설 등을 내세웠지만 어느 것 한 가지도 제대로 지켜진 게 없다. 결국 정치가들은 믿을 게 못된다는 교훈을 곱씹게 만든다.
『어제도 오늘도 어쩌면 내일도』라는 작품도 비정규직이라는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희곡의 기본적인 기능들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주인공 나사연(김미란 분)은 어느 회사에서 5년 간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회사의 경영 상황이 어렵자 해고를 당한 30대 초반의 여성이다. 그녀는 제주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학비를 스스로 조달해야 하는 어려운 환경에서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업의 난관에 부딪힌다. 여기저기 수백군데 이력서를 넣고 겨우 취직은 하였지만 결국 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해고를 당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사연은 분식집에 라면 먹으러 갔는데 거기서 사건이 발생한다. 분식집 주인은 가난한 나사연을 무시하고, 부잣집 대학생들과 시비가 붙어 결국에는 호신용 스프레이 하나로 식당의 모든 사람들을 제압하고 인질극 아닌 인질극을 벌인다. 그런데 이 설정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우선 스프레이 하나로 남자를 포함한 5명의 인질극이 가능하냐는 것이고, 그 위세 당당하던 여학생들이 스프레이가 무서워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무릎을 꿇는다는 설정 자체가 너무 작의적이고, 경찰이 대치하고 방송국에서 생중계까지 하는 상황은 개연성이 부족했다. 또한 인질극이 벌어지는 분식집이 방송국 기자가 드나들고, 주문한 피자가 배달되는 등 경비가 허술한 상황인데 경찰이 왜 대치를 하는 건지도 납득되지 않았다.
또한 기자(고가영 분)가 현장에 뛰어들어가 인질범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동조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주장을 웅변하는 장면이나 인질로 잡힌 사람들을 질책하는 상황, 그리고 생방송을 하는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웠다.
주인공의 입장에서 비정규직의 어려움과 고통을 얘기하려 했다면 해결 방법까지도 제시했어야 했다. 해결 방법이 없는데 상황만 나열하는 것은 관객을 답답하게 만드는 것이다.
희곡의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연출면에서는 상당히 세련되고 완성도가 높은 무대를 만들었다. 세련된 실내 공간과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상, 절제되고 치밀하게 계산된 조명,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만든 음악 등은 극단 가람이 가진 무대 매카니즘의 장점을 충분히 발휘했다.
극단 이어도
『지지고 볶고』(강종임 작/ 연출)
여성들이 세상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머리 손질하는 곳이 미용실이다. 그래서 미용실은 여성들의 휴게실이면서 가정 육아에 대한 고민 상담실이 되고, 때에 따라서는 음담패설이 난무하고 개인에 대한 온갖 소문과 비난 야유 등의 수다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장소이면서 갈등제작소의 역할도 한다.
극단 이어도의 『지지고 볶고』는 그런 미용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에피소드를 엮은 작품이다.
‘지지고 볶고 미용실’에는 고등학교 친구인 세 사람이 등장한다.
미용실 주인이며 헤어 디자이너인 숙자(강명숙 분), 레스토랑 운영을 꿈꿨던 정순(강종임 역), 아이를 5명 낳고 행복한 가정을 꿈꿨던 강심(홍진숙 역)은 매일 미용실에서 만나 신세 한탄을 하고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낸다. 여기에 경상도 출신 희야(고지선 역) 이렇게 네명이 미용실에서 만나서 세상에 대한 푸념을 털어 놓는다.
이들에게는 아픔이 있다. 숙자는 남편이 의논도 없이 거액의 은행대출을 받아 그걸 갚노라 낑낑대고, 정순은 툭하면 눈가에 먹물이 들 정도로 구타를 당하면서도 어린 자식때문 이혼도 못하고, 다산을 생각했던 강심은 7년이 지나도록 애를 낳지 못하자 남편이 바람을 핀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상황만 있지 내용이 없다. 그냥 여인네들이 흔히 하는 수다들만 나열되어 있다. 갈등 구조라면 강심의 남편이 바람 피는 사실이 동네에 소문이 나고 발설의 진원지가 정순이라는 걸 알면서 강심과 싸우는 장면 정도다. 결국 희곡으로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게 커다란 흠이었다. 그러나 네 명의 연기자는 각자의 성격에 맞는 개성적인 연기와 고른 하모니를 보여 주었다.
심사평에서도 지적 되었듯이 연극은 희곡의 완성도가 중요하다는 것, 전국연극제에 나갔을 때 경쟁력이 있는 작품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제주를 소재로 한 창작 초연작이 없는 게 아쉬웠다.
이번 연극제의 소득이라면 새로운 연기자의 발굴과 어떤 역도 소화해 낼 수 있는 연기자들의 역량이 확대 되었다는 점이고 연출의 작품 해석력이 제고되었다는 점이다.
극단 세이레의 『그 가족이 수상하다』가 제주를 대표하여 6월 울산에서 열리는 제33회 전국연극제에 참가하는데, 다행스러운 것은 극단세이레가 자체 소극장에서 이 작품을 장기 공연하고 출품한다는 사실이다. 공연이 거듭될수록 개인의 연기 역량이 제고되면서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본선에서의 좋은 결과 있기 기대한다.
<삶과 문화>제57호 (제주문화예술재단,2015년 여름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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