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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나무 가지치기

변화를 모색하는 제주 연극축제

강용준 2017. 12. 15. 11:40




변화를 모색하는 제주 연극축제

-2017 소극장연극축제를 보고

강용준(극작가/소설가)

 

소극장 연극축제가 금년으로 26회를 맞이했다. 현재 제주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개최되고 있는 연극행사 중 제주연극제와 더불어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연극행사다.

제주연극제가 대한민국연극제에 나가기 위한 제주대표 극단을 선정하기 위한 행사여서 극단간 보이지 않는 경쟁심으로 긴장감이 조성되는 행사인데 비해 소극장 연극축제는 그야말로 극단마다 개성 있고 특색 있는 작품을 가지고 관객들을 찾는 연극인들의 축제라고 할 수 있다.

특히나 금년부터는 도내 극단만이 아니라 도외 극단의 초청으로 내용이 한결 다양해졌다. 아쉬운 점은 그동안 열심히 활동했던 전통 있는 몇 극단들이 자체 내의 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2017 소극장 연극축제에는 도내 3개 극단(극단 가람, 극단 세이레, 퍼포먼스단 몸짓)와 도외 2개 극단(전북연극협회 소속의 문화영토 판과 경남연극협회 소속의 극단 이루마) 5개 극단이 참가했다.

적은 예산으로도 육지부 극단까지 초청한 한국연극협회제주특별자치도지회(회장 이상용)의 노력에 변화의 의지가 엿보인다.

제주의 연극수준이 외부 지역 극단과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도내 연극 마니아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관극의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

다만 도내 극단은 3회 공연으로 일정의 선택이 가능했으나 도외 극단은 주어진 2회의 공연을 하루에 진행해 버려서 관객들의 선택권이 제한 된 것은 문제다.

 

극단 가람의 낮술

- 이상용 작/ 정현주 연출, 108-9일 한라아트홀 소극장

 

낮술은 극단 가람의 레퍼터리 작품으로 그간 수년에 걸쳐 여러 번 공연된 뮤지컬이다.

변사또라는 주점에 낮부터 사람들이 몰려들고 낮술을 먹게 된 사정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극의 전개가 복선 등 정통적인 구성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개인별 사정이 평면적으로 나열된다.

사창가 여인이 등장하여 낮술을 먹는데 전직 구의원이 나타나 각설이 흉을 보고 이를 목격한 각설이 딸이 아빠에 대한 존경과 살을 드러낸다. 그 광경을 보던 기러기 아빠가 외국에 유학 간 딸과 아내와의 갈등을 드러내며 돈을 버는 기계가 된 자신의 신세 한탄을 한다. 이어서 전직 구의원이 자신이 뇌물을 받아 감옥에 가게된 사정이 드러나고, 엄마와의 갈등으로 불효 아들이 가출하여 퀵 서비스 등을 하게 된 이유, 사창가 여인이 자신이 몸을 팔아 장애인 동생의 결혼을 도왔으나 배신당하는 장면, 그리고 주점 주인인 할매의 믿었던 아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자살을 감행하여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상황들이 펼쳐진다.

이 작품은 기획의도에서 스스로 인생을 타락, 비관하여 삶을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낮술 마신 것처럼 미친 척하며 살아보자는 것이다. 자살만이 최선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 (중략) 하지만 욕심을 버리고 한번 이를 악물고 살아보자고 하는 게 이 작품의 주요 메시지이다. 주변사람들에게 조그마한 관심을 기우리고, 희망을 버리지 말고 조금만 더 1%만 욕심을 버리고 산다면 아직까지는 그래도 살아볼 만한 세상이 아닌가?”라고 말하고 있다.

거듭된 공연으로 경력 많은 배우들의 연기력은 안정감 있는 조화를 이루고 있었으나 노래 부분에서 한두 연기자들의 가창력이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하는 장면이라든지 솔로의 가창 부분에 코러스가 너무 튄 부분은 아쉬웠다.

 

    

퍼포먼스단 몸짓의 그게 뭐라고

  -강종임 작/연출 1014-15일 미예랑소극장

 

이 작품은 정희라는 주인공이 한 요양원에 실버댄스교육 실습을 하면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요양원에는 독특한 성격을 가진 몽땅할멈, 똑순할멈, 팔봉할멈, 바로영감 등이 있는데 바로영감을 차지하려는 할멈들의 그렇고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 연출의도에서 황혼에 접어든 노인들이 아주 사소한 것에 대해 강한 집착과 소유욕을 나타낸다면 우린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아직까지 내려놓지 못한 인간의 욕심? 아니면 삶에 대한 미련? 이 작품은 그게 뭐라고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소한 것에 대해 집착을 드러내는 노인네들의 모습을 통해 늙은이가 아닌 삶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고자 하는 이야기다.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다시 한 번 삶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소유하고 집착하고 싶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으면 한다고 밝히고 있다.

연출의 글 속에도 많은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우선 제목 자체에서 그게 뭐라고하는 의미는 사소한 것에 집착하지 말고 의연하게 살아가자는 의미인 줄 알았는데 연출의 의도와 극의 내용은 너무 엉뚱해서 의아스러웠다. 분명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정희인데, 정희의 대사는 극의 전반적인 내용과 너무 이질적이었고 분위기를 주도하지도 못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드러나지 못했다.

특히 노인들에 대한 연구가 너무 피상적이어서 드러나는 내용들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극작술에 익숙하지 못한 아마추어들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가장 큰 문제가 등장인물들 간의 갈등을 입체적으로 엮어가지 못하고, 개인별로 나열시킨다는 점이다. 이 작품도 그 범주에 벗어나지 못해 관객들에게 감동이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극단이 지속해오고 있는 창작극에 대한 의지는 높이 평가한다. 허나 작가는 탄탄한 구성을 가진 작품들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로 대본의 완성도에 좀더 충실하기를 고언한다.

그럼에도 연기자들간의 호흡이나 앙상블은 잘 맞아서 지루하기 쉬운 장면들을 재미있게 연결했다는 점은 기억에 남는다.

   

 

문화영토 판의 헤이 브라더

- 오지윤 작/ 안대원 연출. 1021. 세이레아트센터

 

전북연극협회 소속 극단의 공연은 관극하지 못한 관계로 줄거리만 옮긴다.

갑작스런 사고로 부모를 잃고 혼자 남겨졌지만, 긍정적인 마인드로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배우지망생 이소룡. 촉망받던 체육특기생이었지만 가난 때문에 운동을 포기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직장인 이종석. 자취집에서 쫓겨나와 저렴하게 나온 집을 구하게 된 종석은 소룡의 집으로 들어온다.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동거생활. 까칠한 성격의 종석과 사람이 그리운 소룡은 매사에 부딪히면서 두 사람 사이의 벽은 점점 두꺼워진다. 가족을 원하지 않은 종석과 가족을 원하는 소룡, 과연 이 둘의 생활은 순탄할까?

   

 

극단 이루마의황소 지붕 위로 올리기

- 김광탁 작/ 이삼우 연출. 1025-26. 세이레아트센터

 

경남연극협회 소속의 극단이루마의 연극은 처음 접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어려운 상황임을 예감했다. 두 젊은 부부의 서로지지 않으려는 전쟁과 같은 삶을 아주 코믹하게 풀어낸 연극으로 아주 편안하고 재미있게 감상했다.

실직해서 5년 째 앞치마를 두르고 가사 일을 하는 남편과 중학교 과학교사인 아내가 매일 사소한 일로 끊임없이 부딪히면서 삭막한 관계가 된다.

이를 타개하고자 학교 개교기념일을 맞아 아내는 남편에게 여행을 제안한다. 둘은 자가용을 타고 불국사로 향하는데 남편에게는 과거 불국사에 얽힌 아픔이 있고, 담임에게서 상처받은 말 때문에 불국사의 종소리를 꼭 들어야한다고 고집한다. 매년 불국사를 여행할 수밖에 없는 교사인 아내는 양보하고 남편의 의도에 따른다. 여행지로 가는 과정에 과거의 일들이 되살아나고 둘은 다투면서 정이 들게 된다. “나에게는 마음속 성지가 있다. 그것은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는 편안한 가정이다라는 아내의 말은 공감을 주었다.

결국 두 사람은 자동차의 고장으로 불국사에 가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싸우면서 극이 끝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정의 모습이지만 세 연기자의 앙상블이 빛났다. 특히 다양한 역을 소화하는 멀티맨의 연기는 늘어지기 쉬운 극의 단조로운 분위기를 상승시키는데 주요한 역할을 멋들러지게 했다. 자동차의 앞부분을 회전시키면 집안이 되는 간단한 무대 장치도 아이디어가 기발했다. 판에 박힌 제주 극단의 레퍼터리 연극만 보아온 필자는 오랜만에 신선하면서도 흐믓한 기분을 느끼며 극장문을 나섰다.

    

 

극단 세이레의 하녀들

- 장주네 작/ 정민자 연출. 1027-28일 세이레아트센터

 

이 작품은 몇 년 전 이 극단에 의해 세계명작시리즈 작품으로 공연된 후 여러 번 공연되었다.

프랑스 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 준 이른바 파팽자매 살인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장주네의 대표작이다. 지난 1933년 하녀 크리스틴, 레아 파팽자매는 자신들이 7년 동안 일하던 집의 여주인과 딸을 살해한 뒤 방에서 동성애를 즐기다 체포됐던 사건이다.

장주네의 하녀들은 두 자매 쏠랑주와 끌레르의 연극놀이라는 틀 속에 인간의 폭력성과 욕망, 구속과 자유, 저주와 경의, 신분 상승과 일탈 등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다 담고 있다.

이 극은 연출의 해석에 따라 무궁무진한 에너지를 공연 상에서 보여 줄 수 있는 실험 연극으로 극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없이는 이해하기가 난해한 작품이다.

자기도취에 빠져 허영을 좋아하는 마담, 자신들을 악취 나는 하수구처럼 무시하는 마담을 죽이기 위해 커피에 다량의 수면제를 타지만 마담은 커피를 마시지 않고 오히려 쏠랑주가 마시고 죽는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연출자는 사회적 신분과 계급의 격차가 더욱 두드러지는 현 시대를 대변하는 작품으로 신분상승의 욕망과 갇힌 현실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욕망이 충돌하는 작품이라고 연출 방향을 소개했지만 쏠랑주가 독을 마시고 자결을 해야 하는 동기와 이유가 선뜻 와 닿지 않았다. 이번 공연에는 선희와 명희로 주인공의 이름을 바꾸고 장기공연에 대비해 두 팀으로 나누었다. 레퍼터리 작품으로 여러 번 공연을 거치면서 대본도 손질하고 극적 내용도 보완하여 완성도가 높아졌지만 팀 간의 연기력 차이를 좁히는 것은 과제로 남았다.


삶과문화 67호 (2017년 겨울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