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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현실인식의 혁명

강용준 2018. 8. 5. 16:16



2017년 10월 13일~ 15일 제주오리엔탈호텔에서
개최된 2017전국문학인 제주포럼 기조강연 원고


시는 현실 인식의 혁명
김시종 (金時鐘 ), 곽형덕 옮김
 
나와 일본어
 
저는 일본에서 살고 있는 이른바 , 在日 정주자이기에 작품 창작도 일본어로 하고 있습니다 . 하지만 일본에 살 수밖에 없었던 제 내력을 근거로 해서 보자면 창작 언어인 일본어는 제 존재성을 그대로 비추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 8·15 해방에 의해 일본어와 절연됐을 터인 제가 그 일본어에 다시 매달려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내력이야말로 제가 살아온 ‘재일 ’의 시작이었습니다 .
 
우리는 올해 여름 8 월 , 72 번째 해방 기념일을 막 지낸 참입니다 . 그 정도로 긴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무엇으로부터 해방된 것인지 저는 때때로 자신에게 되물어 왔습니다 . 저는 기대하지 못했던 날벼락과도 같은 ‘해방 ’과 조우하면서 감성의 샘이며 , 소중히 따로 간직하고 있던 언어인 일본어로부터 갑자기 격절 (隔絶 )되었습니다 . 그래서 한때 언어 상실에 빠져들어 헐레벌떡 모국어인 조선을 움켜쥐었습니다 . 그래도 지금도 여전히 조선어가 지닌 언어의 기묘한 울림에 영향을 받고 그것을 헤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 제 소년 시절은 식민지 종주국의 언어인 바로 일본어에 의해 조형됐습니다 . 
 
새삼스레 말할 것도 없지만 언어는 그 사람의 의식을 형성합니다 . 사물을 생각하며 , 판단하고 분석해 다시 종합하는 것도 언어가 있기에 가능합니다 . 제 의식의 밑바탕에는 인연이 뒤얽힌 특정한 언어인 일본어가 전면에 깔려 있습니다 . 확실히 저는 식민지 통치라는 멍에로부터 72 년 전에 해방되기는 했습니다 . 그것이야말로 명백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 하지만 자기의식의 밑바탕을 형성하고 있는 일본어에게까지 결별을 고했던 것은 아닙니다 . 그렇기는커녕 살아가기 위한 방도로 일본어를 쓰면서 옛 종주국인 일본에서 살고 있습니다 . 그 일본어는 응당 검증돼야만 하는 제 존재 증명의 눈금이기도 합니다 .
 
제가 일본에서 살아온 ‘재일 ’의 삶은 유려하며 정교한 일본어에 등을 돌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 감정이 과다한 일본어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은 저를 키운 일본어를 향한 보복이었습니다 . 저는 빡빡한 일본어로 70 년 가까이 시를 쓰며 살아왔습니다 . 일본 시단의 권외에서 살아온 제가 그 동안 시를 어떻게 생각해 왔으며 , 자신의 시를 어떻게 살아왔는지 ‘기조 보고 ’에서 말씀드리려 합니다 .
 
 왜 ‘현대시 ’인가
 
우선 이야기의 실마리로 일본의 근현대시를 제 나름대로 요약해보겠습니다 . 당연한 이야기지만 오늘날의 시는 ‘현대시 ’라 칭해지고 있습니다 . 오늘날이라고 말씀드려도 전후 (2 차세계대전 일본의 패전 -옮긴이 주 ) 이래 70 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 그럼에도 여전히 ‘현대시 ’라고 말하고 있으니 아주 오래된 옛 세월을 품고 있는 장르가 바로 현대시입니다 . 요컨대 일본이 15 년 전쟁을 저지른 후 그것이 결국에는 미국까지 전쟁에 돌입해 태평양전쟁이 종결된 이후 , 그러니까 전후로부터 시는 계속 ‘현대시 ’라 불려오고 있습니다 . 그런 구분은 유럽과 미국에서도 똑같아서 제 2 차 세계대전 후에 나온 예술 전반을 ‘현대예술 ’, ‘현대문학 ’, ‘현대미술 ’ 등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 그런 구분 방식에는 당연히 대량 살인 , 몇 백 몇 천 만 명이나 되는 인간의 죽음을 아랑곳 안 하는 무시무시하고 저주스러운 전쟁을 향한 비판과 , 그런 시대를 거쳐 온 시대 비평이 깊게 뿌리내려 있습니다 . 그것은 전쟁으로 질질 끌려갔던 정신주의로부터의 탈각을 지향한 자계 (自戒 )를 포함한 자기반성의 창조 행위이기도 했습니다 .
 
여하튼 제 1 차 , 제 2 차까지 벌어진 세계 대 전쟁은 모름지기 기독교 신앙이 널리 퍼져 있는 유럽에서 그 신도들이 벌인 전쟁이기에 , 자기성찰은 당연한 귀결점이었습니다 . 특히 일본은 구제할 수 없을 정도의 정신주의에 빠졌던 행적을 안고 있는 나라입니다 . 태평양전쟁 말기 , 일본에서는 죽창과 폭탄을 들고 자폭해서 본토 결전을 싸우겠다는 결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 그것은 신국 (神國 ) 일본의 국체호지 (國體護持 ), 만세일계의 현인신 (現人神 )인 천황이 다스리는 나라를 의미하며 , 이른바 그것을 ‘국체 ’라 했습니다 . 1945 년 7 월 26 일 , 일본에 향해 항복 권고를 했던 포츠담선언을 일본이 국체호지를 한다며 바로 받아들이지 않고 어물어물 대고 있다가 히로시마 ,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습니다 . 항복권고를 바로 받아들였다면 , 도쿄대공습 , 이오지마 , 오키나와 , 히로시마 , 나가사키에서의 터무니없는 대 참극은 없었을 터이고 , 소련의 참전과 조선반도 북쪽의 점령도 일어나지 않아서 조선이 남북으로 분단되는 일도 당연히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 단말마의 발버둥질인 ‘본도결전 ’은 일본의 독특한 정신주의가 국민의 정신을 완전히 물들여 놨기에 가능한 발상이었습니다 . 
 
인류의 일원으로서의 인간적 회오가 깊이 작용해서 ‘현대 ’라는 관사가 이토록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 지금까지의 감정을 주조로 한 심정적인 시를 정신주의의 온상이라고 판단해서 (이것은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 감각적 ·윤리적 사고의 미를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 시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견이나 생각은 제각각입니다만 , 그래도 시 그 자체를 사랑하는 마음은 넓으며 , 모두가 또한 이를 품고 있습니다 . 설령 시를 쓰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시를 좋아하는 마음은 마찬가지입니다 . 누군가로부터 배웠던 것도 아닌데 “시 ”에 대한 호감도는 인류의 공통된 의식처럼 널리 퍼져 있습니다 . 그때 시는 아름다운 것 , 거짓 없는 것 , 사람의 심정을 보듬어주고 , 감정을 온화하게 승화시키는 것 , 좋지 않은 것 , 그렇게 돼서는 안 되는 편에 절대로 가담하지 않는 것이라는 신뢰가 인류에게 전승된 것처럼 계승되고 있습니다 . 그 흔들림 없는 공감은 골똘히 생각해 보면 언어를 향한 끝없는 신뢰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시는 거짓 없는 언어이며 , 그 언어는 사람들의 바람을 품고 있는 구제의 계시 (啓示 )이기도 하다는 기원과도 흡사한 신뢰입니다 .
 
일본의 ‘근대시 ’
 
그렇다면 현대시 이전의 시는 어떠한 경로를 더듬어 왔던 것일까요 . 일본 근대시는 기타하라 하쿠슈 (北原白秋 , 1885-1942), 가와지 류코 (川路柳紅 ), 미키 로후 (三木露風 ) 등에 의해서 시작됐습니다 . 기타하라 하쿠슈는 천부적인 시적 재능이 엮어가는 탐미적 감각이 빛나는 정감의 세계를 열어서 1910 년 전후 일본 시단의 중심적인 인물이 됐습니다 . 기타하라보다 3 살 어린 가와지 류코 (1888-1959)는 일본 최초의 구어 자유시 (그 전까지는 구어가 아니라 문어조의 정형 , 음율의 시였다 )를 썼습니다 . 구어란 글을 쓰는 언어가 아니라 말할 때 쓰는 언어를 사용하는데 , 일상어로 정형 7·5 조에 음절을 맞추는 시입니다 . 요컨대 가와지 류코는 그 구어자유시의 창작을 시도했던 겁니다 . 그 시집이 세상에도 잘 알려진 『길가의 꽃 (路傍 の 花 )』입니다 . 이 시집이 나오자 일본 시단은 놀라서 충격에 빠졌습니다 . 시란 정형적으로 음절을 갖추고 , 문어조의 격조 높은 느낌의 글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 그런데 말하는 식으로 시를 쓰자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겁니다 . 
 
‘문어 ’란 일상의 대화와는 다른 특색을 지닌 언어체계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 특히 메이지 시대 이후에 표준화된 구어와 대조되는 것으로 문어의 위치가 정해졌습니다 . 또한 기타하라와 자주 비교되는 미키 로후 (1964 년에 타계했으니 꽤나 장수를 했습니다 )는 명상적이며 탐미적인 상징시를 확립했는데 , 그것은 문어와 구어 모두를 병용한 정형시였습니다 . 서정시로 사람들이 자주 읊는 <고추잠자리 (赤 とんぼ )>도 미키의 시입니다 . 널리 애창되고 있는 서정시나 초등학교 창가와 같은 노래 대부분은 문어로 가사가 적혀 있습니다 . 그 노래를 듣거나 부르기만 해도 여전히 눈가가 촉촉해지는 <으스름달밤 (おぼろ 月夜 )>등이 그렇습니다 . <저녁 하늘 개어서 (夕空晴 れて )>등도 모두 문어조입니다 . 격조마저 느껴지는 가사로 , 시라는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람들에게 대단히 친숙한 정형시입니다 . 그러한 형식의 시로부터 대화체 구어조로 시가 옮겨갔다는 사실은 생각해 보면 정말 엄청난 일입니다 .
 
그런 문어체시의 전통을 계승하며 구어 자유시를 완성시켜 시의 근대를 확립한 시인이 바로 다카무라 고타로 (高村光太郎 )입니다 . 이것은 제가 판단한 것이 아니라 근대시의 정설이 대략 그렇습니다 . 그의 첫 시집 《도정 (道程 )》은 기념비적인 시집으로 다카무라는 문어와 정형율을 거부하고서 구어로 내재율 (내재율이란 연이은 구어가 안고 있는 음조율 ), 그 내재율에 의한 리듬 , 음악성을 중시해서 삶 (生 )을 향한 찬가를 이상주의적으로 읊었습니다 . 잘 알려진 그의 시집으로 정신에 이상이 생긴 사랑하는 아내 치에코 (智恵子 )를 향한 사랑을 쓴 《치에코초 (智恵子抄 )》가 있습니다 . 이 시집이 또한 근대시의 기념비라 할 수 있습니다 .
구어체 자유시의 진정한 완성자로 그것을 정점으로 끌어올린 시인은 잘 알려진 것처럼 하기와라 사쿠타로 (荻原朔太郎 )입니다 . 병적이라고 할 정도의 예민한 감각과 괴이한 환상이 얽혀서 만들어내는 아파하는 심상풍경을 그린 《달에 짖다 (月 に 吠 える )》(1917 년 )나 , 내재율을 지닌 일상구어로 표현한 《푸른 고양이 (青猫 )》는 그 시대 시단에 다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 하기와라 사쿠타로는 실로 오늘날 회자되는 ‘현대시 ’에 다리를 놓은 시인입니다 . 문어로부터 구어로의 이행이 얼마나 큰 변화였는가를 말씀드리자면 , 잘 알려진 시로 요사노 아키코 (与謝野晶子 )가 남동생에게 지어준 유명한 단카 (短歌 )가 있습니다 . 반전시로 불리는 단카입니다 . 러일전쟁에 출정한 남동생을 생각하며 “그대 , 무슨 일이 있더라도 죽지마오 ”고 문어체로 노래하면 격조 높이 울리는 것만이 아니라 자못 시적입니다 .  그것을 구어체로 바꾸면 “너 죽으면 안 돼 ” 정도가 됩니다 . 도저히 이렇게 해서는 시 같지가 않습니다 . 요컨대 문어체는 음절을 맞추기가 쉽고 술어를 줄여서 짧게 말할 수 있는 특색을 갖추고 있습니다 . 이렇게 격조 높은 느낌의 문어체를 말하는 언어인 구어체로 바꾸는 것이니 실로 엄청난 실험입니다 . 
 
이외에도 무로 사이세 (室生犀星 )나 사토 하루오 (佐藤春夫 )라는 대가들이 즐비합니다 . 이런 대가에게 공통된 것은 정감 넘치는 심정의 시를 썼다는 것으로 , 그 기저를 이루는 심정은 자연 찬미의 공감이었습니다 . 근대 시인으로 이름이 난 대부분이 15 년전쟁으로 쏠려가는 1930 년대 이후 전쟁 칭송 (당시에는 15 년전쟁을 성전이라고 말했습니다 )을 하게 됩니다 . 뛰어나게 사적인 심정과 관련된 시를 썼던 시인들이 황위발양 (皇威発揚 )과 관련된 국가주의 , 군국주의 앞에서 정말로 쉽게 자신의 껍질을 벗어던질 수 있었습니다 . 이 근대 서정 시인들이 지은 “일본의 노래 ”라 여겨지는 초등학교 창가나 , 동요 , 서정가의 대부분은 15 년전쟁의 발단이 된 ‘만주사변 ’ 전후에 쓰인 것입니다 . 간략하게 정리했지만 , 현대시가 지나온 경로가 전전 (戰前 )에 나온 근대시에 대한 반성에 뿌리를 내리고 시작된 시 창작 행위였음은 그럭저럭 이해하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일본 시단의 권외에서
 
그렇다면 재일조선인 중의 한사람인 저는 일본의 현대시와 어떤 관련을 맺어왔던 것일까요 ?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는 일본에 온 이래로 일본 시의 , 아니 일본 시단이라고 해야겠습니다만 , 일본 시의 권외에서 살아왔습니다 . 헤이트스치피처럼 개개인의 인권 , 민족의 존엄을 훼손하는 움직임이 공공연히 일어나도 일본 내 시인들 대부분은 자신의 창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 그저 조선인들과 아주 작은 말다툼이 벌어졌다는 정도로 인식합니다 . 전전과 전후 , 무권리 상태를 강요받아온 ―정확히는 1970 년대에 들어서면서 재일조선인의 시민적 권익도 눈에 보일 정도로 개선이 되기는 했습니다만 ,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의식은 의식하지 않는 의식이 돼 대다수 일본인의 시민 감정 속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습니다 . 요컨대 그 정도로 관련이 없는 사람들끼리 창작을 하고 시를 쓰는 관계에서 , 저는 존재하고 있지만 일본 시의 권외에 위치한 사람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
 
꽤나 쓸쓸한 이야기지만 일본에서는 가게 앞이나 서점 가판대에서 시집은 잘 팔리지 않습니다 . 그런 시집이 천부가 팔린다면 눈을 크게 뜨고 모두가 놀라는 진귀한 일입니다 . 그 이전에 서점에서 시집을 들여놓지 않습니다 . 자비로 상당한 돈을 내 시집을 출판해서 동인들끼리 서로 나누는 등 동인들 사이에서 시는 창작되고 있습니다 . 문학이라고 하면 일본에서는 소설을 말합니다 . 
 
신문 등의 문예시평에서 다루는 것도 소설뿐입니다 . 그 정도로 일본의 현대시는 군색한 상태를 몇 십 년이고 맞이하고 있습니다 . 그것은 바꿔 말하자면 일본에서 예술이란 시의 쇠퇴 위에 성립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 그러면서 시는 현묘하게도 일본 소설의 본류인 사소설 속에서 숙성되고 있습니다 . 시를 쓴다는 것은 그렇게 무력함에 빠지기 쉬운 오늘날의 일본입니다 . 무엇보다 일본이라는 경제대국은 정묘한 하이테크 기술을 구사해 광범위한 정보 시스템을 완비하고 있으며 , 그 시스템으로 물류를 관리하는 거대한 기구를 갖추고 있는 문명대국입니다 . 이 난숙해진 나라 안에서 시란 하잘것없으며 , 실생활과는 동떨어진 개인의 조용한 사색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 시인 대부분은 상업주의와 연관된 카피라이터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거나 , 대망의 소설 한 편을 써서 일본의 표층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고작입니다 . 그럼에도 그런 시와 관련을 맺고서 떨어져 나가지 않는 저라는 사람을 물론 때로는 애처롭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 시를 쓴다고 하기보다도 시를 살아간다고 하는 편이 제게는 보다 절실한 바람으로 제 안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 이토록 난숙해진 경제력과 , 자의 (恣意 ), 다양한 자유를 누리면서도 일본이라는 나라에는 눈앞의 이익과 지식에만 사로잡히는 풍조가 만연해 있습니다 . 그래서 실리와는 부합되지 않는 것 , 특히 시를 문학이라는 범주로부터 멀리하고 있습니다 . 
 
왜 그런 것일까요 ? 시가 없는 것도 아니며 시인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 시중에 돌아다니는 명사나 시인 연감 등을 보면 몇 백 명도 넘는 시인의 이름이 늘어서 있습니다 . 시단 (詩壇 )도 월간지 등이 발간되는 것을 보면 그에 걸맞게 화려한 모양새로 번성해 있습니다 . 그러니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 시가 아니라 , 시 안의 무언가가 간과되고 있습니다 . 제가 쓰는 시가 일본의 현대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그것도 이와 밀접히 관련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 간과되고 등한시되는 무언가에야말로 그렇게 되면 안 되는 소중한 무언가가 잠재돼 있습니다 . 인권이나 공해 등의 문제도 간과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 
 
완성된 권위나 널리 퍼진 정의를 통째로 꿀꺽 집어삼켜서는 도저히 시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 제 시가 일본의 현대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음은 무엇보다도 일본의 현대시에서 실감을 느낄 수 없음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 어쨌든 일본 현대시는 어렵습니다 . 관념적인데다 대단히 추상적입니다 . 무엇을 근거로 해서 살아가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시를 쓰다 보니 , 무작정 인텔리가 쓰는 시만이 성행하게 됩니다 . 그런 시에 친근감을 가지라 해도 도저히 그럴 수 없습니다 . 현대라는 시대의 복잡함 속에서 인간의 사고가 굴절되는 현상을 저 또한 이해할 수 있지만 ,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일본의 현대시는 복잡한 것을 지나치게 복잡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 그렇지 않으면 본래 단순한 것도 복잡하게 다시 그리고 있다고 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시와 언어
 
시와 만나게 될 때 무엇을 시로 느끼는가라는 문제는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 다시 묻는 다면 여러분의 마음속에서도 이런저런 생각이 엇갈리고 있을 겁니다 . 그 중에서도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심정적인 정감 , 유로 (流露 )하는 서정 , 아름다운 정경과 같은 것이겠죠 . 사실 시란 그렇기도 합니다 . 그렇게 느낄 수 있는 마음속에 시가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틀림없습니다 . 그렇게 받아들이는 방식 , 느끼는 방식에 공통된 요소는 문장 첫머리에서 말씀드린 바처럼 시에 보내는 흔들림 없는 신뢰입니다 . 거듭 말씀드리자면 , 시란 거짓 없는 자기 증명의 독백이며 , 진실한 것 , 순수한 것을 향한 공감을 나누어 가지는 가장 사념 깊은 미디어 /매체로서 존재합니다 . 그렇기에 시는 모든 예술의 핵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예술을 낳는 원천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 일반적으로 말해서 , 우리가 그림이나 음악이나 , 연극 , 무용 , 영화를 접하고 감명을 받고서 무언가가 씻겨 나간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은 결국 그 예술을 만든 사람의 시에 감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 따라서 그 작품이 좋은 작품인가 그렇지 않은가는 , 그 작품에 시가 존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와 관련돼 있습니다 . 직인의 예술이 예술이라 불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아무리 뛰어나게 그린 영화 간판이라 해도 그것은 예술로서의 그림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 그 안에 창작자의 독창성이 없다면 시가 있을 수 없습니다 . 그렇게 보자면 시란 뜻밖에도 보편성이 있습니다 . 요컨대 시는 시인만이 독점하는 것이 아닙니다 . 시인은 어쩌다 언어로 시를 쓰고 있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 사람은 모두 각자 자신의 시를 품고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
 
인류가 이 세상에 태어난 후 언어를 공유하게 됐을 때부터 인간은 이미 시적이었습니다 . 태고의 언어 , 그 언어의 시작은 어휘가 매우 한정적이었기에 우선은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말부터 만들어졌습니다 . 예를 들어 , 물이나 불 , 비 , 그리고 그 비를 내리는 천체 , 그런 말이 처음에 만들어졌습니다 . 한정된 말밖에 없었기에 한 단어가 좋든 싫든 여러 용도와 의미를 띨 수밖에 없었겠지요 . 최근 수사학에서 말하는 비유적 표현의 ‘암유 (메타포 )’ 용법이 언어가 발생한 시초부터 쓰였던 겁니다 . 숲에서 자연 발화가 일어나서 동물이 타 죽거나 합니다 . 타 죽은 동물의 고기는 생으로 먹는 것보다 훨씬 맛이 좋았겠지요 . 하지만 불은 생명을 뺏기도 합니다 . 태워 죽이기도 하니까요 . 불은 무서운 것에서 무섭지만 식생활에서 활용하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것이 됩니다 . 무서웠던 불이 더러운 것 등 주위를 깡그리 태워버리면 깨끗해집니다 . 거기에서 싹이 터서 새로운 생명이 자랍니다 . 불은 모든 것을 태워서 무의 상태로 만들지만 , 초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불태워버린 자리에서 다시 새로운 생명이 소생합니다 . 불은 부정한 것을 정화하고 생명을 되살립니다 . 불이 고대로부터 제례의식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 그러므로 ‘불 ’이라는 말은 신성하며 부활을 바라는 기원으로 , 눈에 보이는 ‘신 ’을 증명한다는 생각의 연쇄가 예기치 않게 그런 의미를 띠는 말이 됩니다 . 그것이 암유를 쓰는 용법과도 겹쳐집니다 . 인간의 본성에 시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말도 반드시 억지는 아닌 셈입니다 .
       
시는 쓰지 않아도 존재한다
 
사람은 모두 각기 자신의 시를 껴안고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 , 또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관계에 있는 것 , 예를 들어 동식물이나 무기물 등 인간이 아닌 것과 마음이 통하는 사람은 이미 그 마음속에 시가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 어린아이가 쓴 글에 우리가 깜짝 놀라는 이유는 돌이나 꽃과 , 벌레 , 작은 새들과 아이들이 대화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어른들은 점차로 상식의 포로가 돼 모처럼 지니고 있던 동심을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 어릴 적 꿈까지 고갈시켜 죽어갑니다 . 인간도 살아 있는 생명 중의 하나입니다 . 모든 것과 마음을 통할 수 있습니다 . 시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 요리를 하며 평생을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 보선공으로 생애를 마치는 사람도 있으며 , 관리직은 거들떠보지 않고서 당당하게 아이들을 챙기면서 정년에 도달하는 교원도 있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 요컨대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이 “있는 그대로 살아가고 싶지 않다 . 놓여 있는 상태 그대로 있고 싶지 않다 ”고 하는 마음을 거듭하면서 사람은 그 마음속에 반드시 시를 싹틔웁니다 . 무용가는 자신의 무용으로 시를 표현하며 , 조각가는 정과 망치로 돌을 조각하고 , 나무를 파서 자신의 시를 표현합니다 . 그렇다면 왜 시를 쓰는 사람에게만 시인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것일까요 ? 앞서 양해를 구하자면 , 저는 시를 제 직업으로도 제 장기로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 모두가 시를 지니고 있으며 , 자신의 시를 살아가는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 그러므로 쓰이지 않은 소설은 존재하지 않지만 , 쓰지 않은 시는 존재합니다 . 
 
이미 돌아가셨지만 히로시마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그분은 살고 있었습니다 . 전후에 그 분은 미국과 프랑스가 어딘가에서 원수폭 실험을 하면 자기가 사는 곳 근처 사거리 모퉁이에서 이틀 동안 계속 앉아 있었습니다 . 원수폭 반대라고 쓴 피켓을 앞에 두고서 비가 오나 바람이 오나 그곳에 앉아 있었습니다 . 이제는 관광지로 변해 버렸지만 , 홋카이도의 철새를 구하려고 습지를 정비하고 먹이를 주고 철새 연못을 정비한 분이 있었는데 , 그분의 운동은 그 후 주민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 그토록 떠들썩하게 국회를 흔들며 안보법제 관련 법안을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 아베 정권은 재작년에 강제적으로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 이건 신문기사로 읽었습니다만 , 국회 앞에서 시위가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 70 살 가까운 부부가 ‘우리도 어떻게든 ’이라는 마음은 있었지만 창피해서 결심이 서지 않다가 마침내 등에다가 문구를 붙이고서 통근을 해 회사로 향했다고 합니다 . 지금도 92 살 된 분이 금요일 데모에 등 뒤에 항의 문구를 써넣고서 참여하고 있습니다 . 그런 존재는 존재만으로도 통째로 시를 발현하고 있는 셈입니다 . 시인의 언어는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 , 그러한 삶의 방식이 있음을 알고서 유대 속에 있으며 그 유대 속에서 발휘되며 발생하는 언어를 자신의 것으로 삼아갑니다 . 그렇지 않으면 관념적이며 자신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념의 세계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 그러므로 쓰이지 않은 소설은 존재하지 않지만 , 쓰이지 않아도 시는 존재합니다 . 그런 사상 (事象 ), 사물 , 움직임 , 호흡 , 그것과 만난 사람이 그 정도의 자애로움을 얻게 됩니다 . 요컨대 언어로 자애로움을 얻게 되는 셈입니다 .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마음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해서 어물거리는 경우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 인간이 살아가는 것은 대체로 그렇습니다만 , 그렇게 목구멍에 막혀서 나오지 않는 말 , 정체돼 응어리진 마음을 실을 뽑아내듯이 표현해내는 언어력 , 그것이 언어로 쓴 시입니다 . 
 
따라서 시를 쓰는 사람 ,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의 책무는 자신의 생각은 반드시 그 밖의 많은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는 자각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 . 요컨대 자신도 대중의 한 사람이므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필연적으로 갖고 있다고 생각해 합니다 . 주위를 보면 자신을 위해서 시를 쓴다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 확실히 그렇기는 하지만 , 주위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살아가는 것이 아닌 이상 , 많은 사람들과 연결된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 그러므로 시인은 불가분하게 타인의 삶을 나누어 가진 존재입니다 . 시인의 언어는 그러므로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 
 
초현실주의의 대두
 
1 차 세계대전 후 , 초현실주의라는 경악할만한 예술사조가 대두됩니다 . 천 몇 백 년에 걸친 유럽 전역의 신앙 규범을 만들고 , 윤리관 , 도덕율 , 세계관에 이르기까지 통괄하고 있었던 것은 천주교였습니다 . 세계대전도 이 천주교 교도에 의해서 벌어졌습니다 . 그런 천주교의 신앙 , 천주교나 기독교에 대한 불신과 반감을 계기로 전면 부정의 예술주의 , 행동력 있는 운동으로서 일어난 것이 일대 예술사조로서의 초현실주의 운동입니다 . 이 쉬르 (초 )의 예술사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예술인은 바로 시인들이었습니다 . 앙드레 브르통은 이를 대표하는 전위 시인입니다 . 저는 리얼리즘 시를 쓰지만 , 리얼리즘을 변혁할 수 있는 것을 이전부터 초현실주의로부터 얻어왔습니다 . 초현실주의는 알고 계시는 것처럼 자동기술법 (automatism)이라는 언어 기능을 주장했습니다 . 약 2 천 년 동안 기독교 , 특히 중세 이후의 천주교 등 종교적 제약이라는 엄혹한 규범 속에서 사람들의 윤리관이 만들어져 왔습니다 . 그 윤리관은 도덕율이나 철학관마저도 속박해 왔습니다 . 초현실주의자들은 그러한 윤리관 하에서 몇 백 년 동안이나 배양돼 온 의식 , 배양된 언어는 가장 불신해야 할 것이며 , 혐오의 대상으로까지 설정했습니다 . 언어라는 것은 생활규범까지 포함하고 있어서 때 묻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러므로 의식하지 않고서 표현하는 언어를 추구한 결과 자동기술법에 이르렀습니다 . 요컨대 몽유병 상태에서 발화되는 언어야말로 그 어떤 것과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언어인 셈입니다 . 그 정도로 이미 만들어진 권위 , 의식 , 도덕율 , 가치관과 대립해서 그것으로부터 빠져 나가는 것에 집착했습니다 . 그것은 즉 천주교주의 , 기독교의 정신주의로부터의 탈각을 의미합니다 . 
그토록 전위적인 예술사조 , 초현실주의를 지향한 사람들 중에서 운동의 신조를 지탱한 인물은 뛰어난 시인으로 박명한 로트레아몽 (Lautréamon)이있었습니다 . 그는 『말도로르의 노래 』라는 단 한 권의 산문시집을 남겼습니다 . 로트레아몽은 “시는 한사람에 의해서 아니라 만인에 의해서 쓰이지 않으면 안 된다 ”고 했는데 초현실주의자들은 그것을 이념으로 삼았습니다 . “누구나가 할 수 있는 수법으로 모두가 모방 불가능한 표현을 창출하 ”는 것이 창작의 기본이었기 때문입니다 . 요컨대 시는 모두와 연결된 것이지만 모두에게 공통된 마음을 지니면서도 독자적인 언어를 발화할 수 없다면 이미 시가 아니라는 겁니다 . 시란 인간의 본질에 뿌리내리고 있는 미입니다 . 그러므로 시를 자각하게 되면 부당한 것을 가장 증오하는 인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려 하는데 그 길이 닫혀 있을 때가 왕왕 있습니다 . 일본국헌법은 최소한의 문화적 생활을 사람들에게 보장하고 있지만 , 도쿄에서는 아사해서 한 달 동안이나 발견되지 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 이토록 풍요로운 나라에 풍요롭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욱 크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 빛의 세기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 뒤에 있는 어둠의 깊이는 깊습니다 . 가장하고 있는 것에 신경이 쓰이고 , 사람들이 신경조차 쓰지 못하는 것에 마음이 쓰이는 바로 그곳에 시가 머뭅니다 . 그렇기에 현재 난숙한 경제대국 일본 안에서 시는 오히려 소홀한 대접을 받는 운명에 처해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 그런 것에 관여하면 곤란해지도록 사회가 짜여 있습니다 . 타인의 의도가 무엇이든 , 타인의 인생이 어찌되든 , 자신만 좋으면 된다는 실리 찬양의 풍조가 완전히 만연해 있음도 이와 관련됩니다 . 다른 사람들이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을 겸비하고 있는 자로서 , 저는 시를 쓴다는 행위는 그러한 것임을 의심치 않지만 ,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표현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제한적이니까요 .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면서 솟구치는 마음을 언제고 그저 품고 삽니다 .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나누어 가진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 저는 , 시인은 언어를 갈고 닦으며 , 의식을 개척하는 존재여야 한다고 항상 제 자신을 타이르고 있습니다 .  
 
시는 현실인식의 혁명
 
시에 대한 생각은 그 사람의 인생관 , 세계관에 따라 다르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 그 가운데 공통된 요소도 있습니다 . 시에 대한 호오와는 관련 없이 시는 현실인식의 혁명이라는 것이 바로 그렇습니다 . 딱 잘라 말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 시는 인간 의식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는 언어를 응축해서 새겨 넣는 예술이므로 , 어떠한 입장에 선 시인이라 하여도 통상적인 일상어를 부단히 체로 쳐서 골라내야 합니다 . 일상에 익숙해져서 완전히 무지러진 언어로부터 탈피하고 쇄신해야 합니다 . 그 사고를 영위하는 것이야말로 이미 현실을 재검토하고 , 주어진 그대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의 시적 행위인 동시에 그에 대한 인식입니다 . 그러므로 현실인식을 바꿔나가야만 합니다 . 이미 성립된 정의조차 의심하며 , 선악과 미추를 즉각적으로 판단하지 않으며 , 대다수가 쏠려가는 지점으로부터 이탈한 인간 . 대부분이 찬동하며 흥겨워하는 것에는 머쓱해하며 ,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많은 사람들의 그늘에서 홀로 웃음을 짓는 사람 , 결코 심술쟁이가 아니며 평소에는 어느 누구보다도 사람이 좋으며 , 유연하게 반골적인 기골을 숨기고 있는 사색하는 사람 . 이것은 아무리 입장이 달라도 시를 살아가는 사람이 지닌 공통된 자질입니다 . 언어를 갈고 닦고 , 의식을 개간해가는 시인은 요컨대 현실 인식에 돌멩이 하나를 던지는 의식의 개척자이기도 합니다 . 
 
아무리 소설이 팔리고 각광을 받아도 , 소설가가 가장 주눅이 드는 상대는 시인입니다 . 그것은 소설의 로망에 내재된 것 중에서 문제시되는 핵심이 바로 시임을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사실 일본의 시는 , 일본적 자연주의문학 , 사소설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꽃을 피웠습니다 . 아무리 장대한 소설이라도 , 예를 들어서 《전쟁과 평화 》나 《안나카레리나 》정도의 장대한 이야기라 해도 , 읽고 나서 기억에 남는 것은 몇 장면이거나 , 몇 개의 문구 정도입니다 . 영화도 똑같아서 몇몇 신에 한정됩니다 . 하지만 시는 애초부터 매우 한정된 적은 글자를 새겨 넣었기에 기억에 남는 효율로 보자면 시가 최고입니다 . 
 
저는 일본에서 산 지 60 여년동안 한국 외의 나라를 방문한 적은 없지만 , 가능하다면 프랑스에는 꼭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 그것은 화려한 도시 파리에 가고 싶다는 진부한 목적이 아닙니다 . 일본에 왔을 무렵 청강하고 있던 대학에서 어느 선생님이 프랑스의 좋은 점에 대해 말해줬는데 지금도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 프랑스에서는 시인을 위해서 평론 부문의 직업을 보장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 평론 부문은 시인을 위한 직종이라는 겁니다 . 세계에서 가장 평론가가 많고 , 평론 부문이 다기에 걸쳐 있는 나라는 프랑스라 합니다 . 헤어스타일 , 미용 , 복식 등 어떤 장르의 평론가라 해도 동시에 시인이 아니면 사회적인 신용을 쌓을 수 없는 나라가 프랑스라고 했습니다 . 영화나 연극 , 미술평론도 마찬가지입니다 . 제게는 대단히 감동적인 이야기였습니다 . 그로부터 좀 더 신경을 써서 프랑스 책을 읽어봤습니다 . 물론 번역된 것이지만 확실히 그렇습니다 . 프랑스에서는 전통적으로 시인이 최소한 한 명의 연극인이나 한 명의 화가를 세상에 내보낼 책무를 운명처럼 짊어지고 있습니다 . 화가나 무대 예술가는 자신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 아폴리네르가 피카소를 세상에 내보냈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 장 콕토가 마리아 칼라스에게 했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 화가나 , 연극인 , 무언가를 창조하는 사람은 자신을 스스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 그런 사람들에 대한 논증이나 이론을 언어로 증명해 주는 시인들이 살아가는 나라 . 그것이 프랑스라고 들었습니다 . 아직도 동경하고 있습니다 .
 
상황과 시
 
“역사의 전환점 ”이라는 관용어는 시대 변동을 비유한 말인데 , 현재 일본은 커다란 커브를 돌고 있기보다 완전히 직각으로 꺾으며 나아가고 있는 것 느낌입니다 . 아베 수상은 일찍부터 헌법 개정을 공언하기를 꺼리지 않았는데 , 2 년 전에는 염원하던 안보법제 관련 법안을 고함 소리 속에서 강행해 채택해 헌법 9 조를 실질적으로 형해화 (形骸化 )시켰습니다 . 이미 교육기본법을 개정하고 여당만으로 그것을 강행했습니다 . 제 1 차 아베 정권 당시 학교 현장에서 “아름다운 일본 ”이라는 정서적인 애국의 심정을 가르치는 것 등을   정치 목표 슬로건으로 내걸었습니다 . 아베는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 3 분의 2 이상 의석을 점거했으니 더욱 그런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
 
제가 감수성이 다감한 수년이었을 무렵 , 일본은 ‘신주 (神州 ) 일본 ’, ‘신의 나라 일본 ’이라 칭해져 더 없이 아름다운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 일본 국민으로서 비천한 몸으로 천황의 방패가 돼 외적을 막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미덕으로 여겨졌습니다 . 전쟁을 거쳐 온 일본이 국가주의적 색채가 짙은 아베 수상 집권 시기부터 두드러지게 “아름다운 나라 ”, “늠름한 나라 ”를 내세우고 있습니다만 , 이 “아름다운 나라 ”라는 개념은 정말로 섬뜩합니다 .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을 불식시키는 데 힘이 들어갈 것 같아서 식민지인이라는 어두운 역사의 부산물인 저 , 조선인인 저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습니다 .
 
전후의 평화헌법 하에서 배양된 국가의 토대가 소음을 내며 흔들리고 있는 지금 , 시는 , 그리고 시인은 어떠한 위상을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 일본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재일조선인인 저는 무엇을 의거해서 자신의 시를 살아가야만 한단 말인가 ? 하고 자신에게 물으며 이곳에 서있는 참입니다 . 저처럼 지방의 끝에서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하루에 몇 권인가의 동인지나 시집이 옵니다 . 집이 우편물 때문에 찌부러질 정도로 책이 쌓아가고 있습니다 . 최근 4, 5 년을 돌아봐도 노아의 홍수를 연상시키는 동일본대진재 ,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파탄이라는 대진재가 있었고 , 안보법제 관련 법안을 둘러싼 소란스러움이 일본 열도를 흔들었습니다 . 그것만이 아니라 지금까지는 없었던 , 아니 있을 수 없었던 일들이 공공연하게 통과되고 있습니다 . 상당한 분량의 동인지와 제 방이나 복도에 산처럼 쌓아가는 시집 대부분은 평화헌법과 어긋나는 사태나 동향을 심각하게 사고하는 문장이나 작품을 조금도 싣고 있지 않습니다 . 그렇지 않으면 문학이 아니라는 것처럼 지극히 평온하며 평화로운 일본 안의 내가 일상에서 느끼는 심정이나 생각에 몰입할 뿐입니다 .
 
제가 경애하는 오노 도자부로 (小野十三郎 )의 《시론 (詩論 )》을 보면 시적행위 ―요컨대 시에 주력하는 의지적인 행위라 받아들여도 될 것 같습니다만 ,라 함은 “느슨하고 지루한 시간인 일상생활의 바닥에 보이는 항상적인 저항의 자세 ”라고 설명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 익숙해진 일상으로부터의 이탈과 그렇게 익숙해진 일상과 마주하는 것이 시를 낳는 원동력이라고 말하고 있음에 다름 아닙니다 . 적어도 자의적인 , 우연한 사념조작 (思念操作 )이 그려내는 , 혹은 그려낼 요량으로 있는 추상 능력으로 시적 행위는 만들어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일본의 현대시가 번영했다고 한다면 , 무엇을 근거로 해서 번성했는가가 문제시됩니다 . 개별 시인은 자신의 시가 성립될 정도의 장 (場 )이나 상황을 자신의 삶의 방식에 과연 비춰볼 수 있을 것인가 . 일본의 현대시는 어떤 범위에서 어떠한 사람에 의해 읽히고 , 지탱되고 있는가를 고찰해 현대시는 이런 것이라고 결정되는 내용을 행위로써 부정해 가는 것 . 그러한 시도가 없는 한 , 현대시는 흥미롭지 않다고 여겨지는 사고로부터 언제까지고 빠져나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인간적이다 , 이것이 시라고 여겨지는 내용을 , 행위나 사회와 겹쳐지는 지점을 의식하는 행위로써 부정해 가는 것 , 그것이 아니라면 시를 하는 행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 이를 위해서는 자신이 존립하고 있는 일상의 폭 속에서 스스로 나아가거나 , 그 폭을 자신의 의식 속으로 끌어들이지 않는 한 , 자신의 시는 지극히 사적인 매우 협소한 의식을 표명하는 수준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
 
어쨌든 시를 어떻게 생각하던지 , 대상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 자신의 존립만이 모든 것일 때 사회의 상태를 질적으로 높이고 , 풍부하게 만들려는 우리의 사랑은 엷어져갈 뿐입니다 . 우리는 좀 더 주변의 것 , 더 나아가서는 변동하고 있는 시대 , 꿈틀거리는 사회 상황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 일본이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소비 물질이 넘쳐나면 날수록 , 그 윤택함의 바닥을 향해서 시는 비평의 추를 가라앉혀가야 합니다 . 경제대국에 사니 우리가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 넘칠 정도의 윤택함으로 인해 오히려 피폐해지고 황폐해져 가는 사람도 가득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 그러므로 시는 성실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측에 있어야 합니다 . 이를 저해하는 모든 것과 응당 마주봐야만 합니다 . 그러므로 시는 대저 언어만의 창작이라고 한정할 수 없습니다 . 그렇게 살아가려 하는 의지력 속에야말로 , 그렇게 돼서는 안 되는 것을 향한 비평이 숨 쉬고 있습니다 . 그 자체가 이미 시라 해도 되며 , 그 비평을 언어로 발화할 수 있는 사람이 시인이기에 , 시는 좋든 싫든 현실인식의 혁명입니다 . 
 
시와 서정
 
주석을 다는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만 현대시와 근대시의 차이를 한마디 말하자면 표현할 것인가 노래할 것인가라 할 수 있습니다 . 근대시는 그러한 기분을 감정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면 의식이 굴절돼 작용하지는 않습니다 . 통상적인 인식과 서로 비슷한 정동 , 자연관과 계절 감각이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정감을 음조에 실어서 자아내서 읽는 사람의 감정에 맞물리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 이 모든 것이 인생의 애감을 풍기기에 안성맞춤인 공통의 제재입니다 . 그렇기에 근대서정시라 불리는 근대시의 기조에는 예정조화와도 같은 자연찬미가 담겨 있습니다 . 자연에 빗대어 자신의 생각을 노래하니 , 말하자면 자신의 심정의 투영을 자연 속에서 보고 있는 것이 됩니다 .
 
그에 비해서 현대시는 정감보다도 사고의 가시화에 힘을 쏟습니다 . 마음이라던가 , 생각하고 있는 것은 눈에 보여줄 수 없지만 , 그것을 정말로 눈에 비추는 것처럼 공간에 표현해 냅니다 . 언어는 본래 마음이 가득 담긴 말이면 말일수록 물체의 형상을 띠지 않으면 표현할 수 없습니다 . 일상어는 금방이라도 이해돼 받아 넘겨버리는 언어라서 , 듣는 이의 상상력을 부풀게 하거나 사고 속에 자리 잡기를 기대할 수 없는 편법적인 언어입니다 . 기쁘다 , 슬프다 , 아프다 , 괴롭다고 호소하게 되면 , 그 용어 자체가 심정의 전체라서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 끓는 물을 속아서 마셨다 (믿는 사람에게 배반당해 호되게 당했다 )거나 , 물이 떨어지는 곳에 돌이 막혀 있다는 등의 비유는 예부터 실생활에서 사용되던 언어의 지혜였습니다 . 그것이 사물의 형태를 들어서 표현을 하는 화자 , 표현자의 실감입니다 . 요컨대 비유된 것에 의해서 심정이 눈에 보이게 되는 이치입니다 . 사고의 가시화라는 현대시의 방법도 알기 쉽게 말하자면 같은 종류입니다 . 마음을 느끼게 하기보다 가시화해 그리기에 감정을 돋우는 표현은 최대한 피하게 됩니다 . 말하자면 정신주의 비판이 그 안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래도 일정한 리듬이 작품을 관통하고 있다면 , 그것이 그 사람 , 시인의 독자적인 서정입니다 . 요컨대 주정적 (主情的 )인 감정으로부터 끊어져 한층 , 유로 (流露 )하는 리듬이야말로 발견해야할 현대시인의 서정입니다 . 시의 , 시인의 , 더 나아가서는 사람들이 지닌 사상의 낡고 새로움은 그 서정이 지닌 질에 의해서 분간 됩니다 . 현대시를 쓸 요량으로 있으면서도 실은 근대시의 영역 안에 고착돼 있는 ‘서정적 ’인 사람은 지금도 여전히 많습니다 . 단카 (短歌 )나 하이쿠도 이 서정적인 면으로부터 본다면 시라는 것과의 차이가 명확합니다 . 
 
최근 몇 년 동안 , 지진과 풍수해 , 폭설로 인한 재해로 인명을 잃는 등의 엄청난 자연재해가 두드러지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에게는 매년 똑같은 겨울 풍경이겠지만 , 폭설 피해를 입은 지역의 어려움은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곤란합니다 . 도시 집중화 현상으로 고령자만이 남아 있는 시골 촌락은 더욱더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 눈이라고 하면 약간 동화와도 같은 울림도 있고 , 스키를 타러 가는 것처럼 즐거운 일입니다 . 하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자연은 남들보다 갑절이나 되는 노력과 검소한 생활을 거듭한 후에야 간신히 마주할 수 있는 대상입니다 . 
 
자연이란 그곳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탄생한 날부터 인간의 앞을 막아선 것은 압도적인 자연의 위협이었습니다 . 경작지 하나를 만드는데도 바위를 움직이고 숲같이 우거진 덩굴을 치우고 , 나무뿌리를 치우고 , 바람을 막는 울타리를 세워야만 했습니다 . 그런 가혹한 생활조건을 버텨왔기에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미칠 수 없는 것이 세상에 있음을 사람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깨닫게 됐습니다 . 인간의 언어로는 - 방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어서 그것을 신이라고 말하고 , 하늘이라고 말하면서 우러러 봤습니다 . 그러므로 자연이란 인간에게 외경의 대상이기는 했어도 치유를 받는 무엇이거나 , 비노동 (非労働 ) 그러니까 일하지 않아도 좋은 대가처럼 찬미되는 대상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 다시 말하자면 , 그곳에서 살아가는 의미를 지닌 사람에게 자연은 존재했다고 하겠습니다 . 사람은 자연이라는 압도하는 현실의 한복판에서 살아가야 했기에 , 자연과의 조화가 무엇보다도 요망됐습니다 . 현재는 어디에 가도 개발 , 개발이라고 하며 도시화 현상이 촌락의 발전인 것인 양 말해지고 회자되고 있습니다 . 끊임없이 계속되는 풍수해도 그 대부분은 도시화 현상에 의해 자연의 분노를 산 것이라 생각합니다 . 한신대진재 (阪神大震災 )도 편리함을 극도로 추구한 도시였기에 더욱 큰 대진재였습니다 . 
 
그 정도로 훼손되고 있는 자연 속의 향토를 그저 사랑하면 나라를 사랑하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아베 수상은 말하고 있습니다 . 알고 계시는 분도 있겠지만 , 어제 신문에 의하면 일본은 인도와 원전 수출 계약까지 맺은 모양입니다 . 확실히 일본은 자연의 혜택을 받은 나라입니다 . 아름다운 사계가 있고 , 노래에 나올 것처럼 산은 푸르고 물이 깨끗한 나라입니다 . 그렇기에 단카나 하이쿠는 국민적 시가의 지위를 전통적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 도시화 현상 속의 과소화 (過疎化 )라 함은 사람의 정감을 얽매는 자연이 , 사람의 마음을 치유해야할 자연이 흔한 곳일수록 사람이 사실 살아갈 수 없는 상태라는 것과 이어집니다 . 그러니 그것은 그대로 소중한 자연을 소외시키고 있음에 다름 아닙니다 . 그런데도 일본의 단시 형태의 문학 대부분은 그 자연에 마음을 가득 담아서 정감 넘치게 찬양하고 있습니다 . 그러므로 서정시라는 것은 , 정확히 말하자면 근대 풍의 서정시라 함은 자연의 아픔을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기에 ‘비평 ’을 안고 있는 창조 의식과는 동떨어진 미의 소산입니다 . 요컨대 정감이 빚어낸 ‘자연 ’입니다 .
 
서정이나 정감이라는 것은 그 자체는 개개인의 체감적인 리듬이며 , 감정의 꿈틀거림이므로 타인과 관련이 없습니다 . 그럼에도 그것이 예정조화적인 총화인 것인 양 , 누구에게도 의식되지 않고서 물들어버린 개개인의 심적 질서가 된 미의식의 리듬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일대 사상이라 불러야 할 정도입니다 . 자연을 사랑하여 , 금방이라도 감정이입이 가능한 , 그런 일본인의 정감이 과다한 감수성은 관련을 맺기보다는 바라보고 , 깊이 비평하기보다는 감상하는 방관자적인 기풍을 뿌리내리는데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 그런 기풍을 밑바탕으로 해서 일본의 시적 서정성은 이어져 왔으니 , 사회의 동향이라던가 , 자기 응시라고 하는 활동적인 문제의식은 시라는 형태로는 좀처럼 익숙하지 않아 이상합니다 . 대세로 기울지 않고 , 권위에 알랑거리지 않고 , 정의라 일컬어지는 것을 통째로 삼키지 않고 , 간과되고 소홀히 여겨지는 것에 시선이 가며 , 익숙한 것이 마음에 걸리는 사람 . 제게는 그런 사람이 시인으로 , 그 시인이 구석구석에 점재돼 있는 나라 , 골목길 서민들의 연립주택이나 , 촌마을 , 학교 , 직장에 슬며시 그런 시인이 살아가고 있는 나라야말로 , 제게는 가장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

(제주소리에서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