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정원joon

예술정원을 산책하며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문학의 옹달샘

나에게 희곡이란

강용준 2022. 6. 15. 11:32

희곡은 내 인생의 탈출구이자 종교

 

인생은 태양에서 와서 태양으로 가는 여정이다.’ 대학교 문학개론 강의 시간에 들은 말인데 그 말이 내 인생의 나침판이 되었다. 태양에서 와서 지구라는 정거장에 한 백년 머물다 태양으로 돌아가는 것. 그래서 지금 나는 생명체가 사는 유일하고 아름다운 행성 지구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그냥 머무는 게 아니라 수많은 시간과 공간에서 많은 상황과 환경과 인간을 만난다. ‘인생은 아름다운 여행이라고 규정하고 나니 인생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맞닥뜨리는 현실 문제들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우리가 한 곳에 머물든 떠나든 거기에는 늘 새로운 시간과 상황이 공존하기에 동일한 일상은 없다. 늘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일상이라 또 다른 내일의 세상이 기다려진다.

세계는 인종과 종교, 언어, 이념 등에 의해 많은 나라가 존재하지만 현대의 세상은 직종이나 취미, 운동, 게임 등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끼리 국경 없는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가상현실 같은 세계 속에서 예술의 나라, 과학의 나라, 스포츠의 나라, 게임의 나라 등 수많은 나라들이 존재한다. 물론 이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자유롭게 왕래하며 교류한다. 예술의 나라도 따지고 보면 여러 개의 도시들로 분화해 있다.

난 지구라는 세상을 떠돌다 예술나라 문학이라는 섬에 안착해서 희곡이라는 동네와 소설이라는 동네를 오가고 있다. 그곳에서 각기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또는 살아가는 여행자들을 만나고, 그들을 통하여 새로운 세상과 인물을 창조해 낸다.

희곡은 내 주변의 혼란스러움과 방황에서 벗어나게 해준 탈출구였고,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구원해 준 종교 같은 존재다. 내가 대학에 다닐 당시는 군부독재의 무력이 횡행하던 때였다. 머리 기르고 옷 입는 기본적인 인권마저 제약을 받았고 가정사에 있어서도 경제적 파탄에 직면해 있던 상황이었다. 왕성한 청춘의 끓는 피가 분노와 갈등으로 길을 잃고 방황을 하던 때, 그 탈출구가 연극이었고 구원해 준 것이 희곡이었다. 어찌 보면 그건 현실을 외면하는 도피의 방편이었지만 부조리한 현실을 글로 써서 고발한다는 면에서 보면 현실에 대한 외침이었다.

희곡은 이중적인 장르다. 문학으로 보면 희곡이지만, 연극으로 보면 공연의 대본이다. 결국 희곡의 생명은 공연에 있다. 작가가 쓴 대로 배우는 무대에서 관객을 대상으로 직접 말한다.

시가 노래이고 소설이 서사라면 희곡은 행동(동작)을 보여 주는 장르다. 문자로 되어 있는 문학이 핫미디어라면 희곡은 살아 움직이는 쿨미디어라는 점에서 내 성정에 맞았다.

작가는 현실을 직시하며 작품을 통하여 세상과 대화 한다. 초기의 내 작품은 다소 거칠고 정제되지 못한 언어와 내용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했고, 상징화 했다.

인생을 어느 정도 경험하고 알만큼 된 지금은 목소리를 낮추고 비켜서서 관조하는 작품을 쓰는데 그것이 더 힘들다. 모든 장르가 그렇겠지만 쓰면 쓸수록 어렵다. 독자나 관객의 기대치가 갈수록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판을 찍을 힘이 있을 때까지 고해하듯 써야하는 게 내겐 숙명이다.

 

수필 오디세이 10호 (2022년 여름호)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