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서귀포문학작품 소설부문 심사평
금년 소설 응모작은 33편이었다. 작년보다 10여 편 늘어났다. 서귀포는 섬이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다양한 인상과 기억을 품고 있는 매력적인 장소이다. 서귀포는 예로부터 남극노인성, 천사방성 같은 별이 비추는 장수의 섬이고 신들의 휴양지로 불렸다.
그러나 응모된 작품을 보면 이런 서귀포의 특수성을 다양하게 살리지 못하고 있다. 예년처럼 관광지 기행문 같은 응모작이 많았고, 장소만 서귀포이거나 아무 연관이 없는 작품도 많았다. 특히 제주 사람들이 쓰는 생활어를 제주어로 표기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법이나 표기법이 틀려서 오히려 작품의 완성도를 방해한 작품도 있었다.
응모 분량 규정에 어긋나거나 환타지 소설류는 제외했다. 이렇게 해서 본선에 올린 작품이 「어머니의 정원」, 「고래와 사진관」, 「빌린 옷」 등 세 편이었다.
「고래와 사진관」은 제주의 공룡화석을 찾아서 서귀포에 온 제주 출신의 방송국 PD가 어릴 적 헤어진 쌍둥이 언니를 찾는 이야기다. 개성적이고 아름다운 문체, 탄탄한 서사와 긴장감이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으나, 40년 만의 모녀 상봉이라든지, 쌍둥이 언니와의 만남을 굳이 돌고래에 대비한 점은 자연스럽지 못하고 작위적이라는 흠결이 됐다.
「어머니의 정원」은 정원에 얽힌 욕쟁이 할머니와 욕심 많아서 두렵고 미운 숙모에 대한 어린 시절 인호의 감정과 아이들의 심리적 갈등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돌배나무를 육지 년이 키운 귀신 씌운 나무, 할머니의 욕설, 짙은 갈색으로 변한 정원을 과거 4·3 시건 때 육지 사람들에 당한 고통으로 상징한 것은 이 작품의 장점이다. 그러나 작품 내용 대부분이 과거 회상에 머물러 있고, 현실로 돌아온 마지막 마무리는 산뜻함이 부족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서귀포적 특성을 찾아볼 수 없는 아쉬움이 남았다.
「빌린 옷」은 제2공항 문제, 부동산 과열 투기로 집을 빼앗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현장감을 살리면서 서귀포가 처한 당대의 그늘을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 내는데 성공한 작품이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는 주인공 영지가 무허가 건물에서 누워지내는 아빠, 공사장 일 나가는 엄마의 현실, 경계성 장애자인 순복의 행동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리하면서도 따스하다. 면접 보러 갈 옷을 친구에게 빌린, 그러나 정작 찢어져 걱정인 그 옷을 입고 공사장을 휘젓는 순복을 그리면서 어차피 세상은 잠시 시·공간을 빌려 사는 것을 암시하는 주제 의식이 선명했다. 개발 만능의 사회,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고통받는 소시민의 삶, 혼란스러운 제주의 현실을 아우르며 살자는 작가의 극명한 현실 인식을 높이 사면서 「빌린 옷」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심사위원 : 강준(소설가)/ 방민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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