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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서 남은 샘

강용준 2020. 11. 22. 10:09

한담일몰

사라져서 남은 샘

 

강 준

 

등장인물

 

농부

호종단

멀티 맨(황제, 시종)

멀티 녀(수신, 주민)

 

 

1

 

중국 황제 궁전.

전통적인 중국의 음악이 들리면서 황제와 호종단이 등장한다.

그들은 무대를 돌며 무엇인가 찾는다.

황제는 손을 눈썹 위로 들어 하늘을 살피고,

호종단은 손을 눈썹 위로 들었으나 관객들을 샅샅이 살피며 때로 장난과 익살을 부리기도 한다.

 

황제 : (알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거 참 이상하네.

호종단 : 거 참 요상하게 생겼네.

황제 : (왔다갔다 하면서) 거 참 이상하네.

호종단 : 거참 볼수록 요상하네.

황제 : (호종단의 궁둥이를 걷어차며) 요놈도 이상한 놈이네.

호종단 : 아이고 황제 폐하. 뭐가 잘못 돼서 이상하단 말씀만 하십니까요?

황제 : (멀리 하늘을 가리키며) 저기 보아라. 저기 반짝거리는 놈의 정체가 뭐냐?

호종단 : (관중들을 살피며) 반짝거리는 놈이라? 오라 저기 다이아 목걸이 한 여인네 말씀이옵니까요?

황제 : (호종단의 뒤통수를 치며) 이놈이 제 버릇 개 못 준다더이. 저기 하늘을 보라 했더니 왜 관객들을 스캔하고 지랄이야?

호종단 : 하이고 죄송합니다요. 하늘이요?

황제 : 이놈. 너 뭐 하는 놈이야?

호종단 : 저요? 에이 황제 폐하 왜 이러십니까요. 잘 알면서.

황제 : 네 직책이 뭐냔 말이다.

호종단 : 아 직책요. 별 자리도 보고 풍수지리에 능통한 우주학의 도사 아닙니까?

황제 : 그래서 무얼 하는 거냐구,

호종단 : 그것으로 앞으로 나라에 일어날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일을 하고 있습지요.

황제 : 잘 알면서 왜 근무 태만 하는 거야?

호종단 : 근무 태만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말씀이옵니다요. 맨날 보는 하늘인데 무슨 변고라도 생겼습니까요?

황제 : 이 녀석아 밥줄 끊기지 않으려면 한 시도 하늘에서 눈을 떼지 말아라.

저기 똑바로 보아라. 저기 남쪽에 예전에는 안보이던 수상한 별이 나타났는데. 네 눈엔 안 보인단 말이냐?

호종단 : 수상한 별이요? 어느 별이 감히 내 허락도 없이 하늘에 얼굴을 찡 박았단 말입니까? 어디 봅시다. (눈을 비리고 다시 보며) 하이고 이놈의 눈깔이?

황제 : 이놈이 못 볼 걸 하도 많이 봐서 벌써 동태눈이 되었구나?

호종단 : 폐하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커다란 돋보기를 꺼내 보며) 아 이제 보입니다.

황제 : 그래 저기 남쪽 하늘에 유난히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생겼는데 무슨 징조냐?

호종단 : 그러게요? 이 무슨 징조일까요?

황제 : 이 자식이 인생 종 치고 싶어 환장했나? 밥 그릇 치워 버릴까?

호종단 : 아닙니다. 잠깐만요. (주문을 외우며 엄지로 손마디를 센다) 수리수리 마수리 니올라 쉬올라 저리 쑥가. 이노므 자슥 허운데기 심엉 양지패기 왼노단쪽 부치다가 용심 안 패와지믄 곡주아불라.

황제 : . 너 지금 나 욕하는 거지?

호종단 : 아닙니다요. 제가 외우는 주문입니다요. 황제 폐하 나왔습니다요.

황제 : 그래 뭐냐?

호종단 : 아이고 큰일 났습니다요?

황제 : 허어 답답하다. 무슨 큰일이야?

호종단 : 저것은 남극성이라는 별인데 섬나라에 날개 달린 장수가 태어날 징조입니다 요.

황제 : 날개 달린 장수?

호종단 : 그렇습니다요. 그 장수는 장차 민심을 얻으면서 천하의 평화를 위협할 형국입니다요.

황제 : 천하의 평화를 위협해? 그게 도대체 어느 섬나라라는 거냐?

호종단 : . 동방에 아름다운 섬 탐라라는 곳입니다.

황제 : 탐라라?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인데? 탐라가 도대체 어떤 곳이냐?

호종단 : . 예전에 진시황제께서 불로초를 구하려고 서불과 동자 기백명을 파견했던 곳입죠.

황제 : 올커니. 이제 알겠다. 불로초가 자라는 곳. 장수의 섬이로구나?

호종단 : 맞습니다. 가운데 한라산이 우뚝 솟아있고 자연 경관이 하도 아름다워 신선들이 자주 놀러 다니던 곳이기도 합니다요.

황제 : 그래 아주 탐나는 곳이군. 그건 그렇고 날개 달린 장수가 태어난다면 세상이뒤집힐 것 아니냐? 이거 문제로군?

호종단 : 문제도 아주 골치 아픈 문젭지요. 폐하께서도 어찌 해 볼 수 없는 일이 생길 겁니다요.

황제 : 허면,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게 네 직무 아니냐?

호종단 : 그럼입쇼. 아무 걱정 마시고 소신을 탐라로 보내 주십시오. 제가 가서 날개 달린 장수가 태어나지 못하도록 지혈과 수혈을 다 끊어 놓고 오겠습니다요.

황제 : 그 말 믿어도 돼?

호종단 : 왜요?

황제 : 그게 가능한 일이냐고?

호종단 : 가능하고 말고요. 폐하. 제가 누굽니까? 천하의 지혈과 수맥도는 이미 만들어서 제 손안에 있습니다.

황제 : 그래? 그럼. 너만 믿는다. 당장 떠나라. 탐라라는 곳에 가서 날개달린 장수만이 아니고 아예 인재가 태어나지 못하도록 다 틀어막고 오너라.

호종단 : (허리 굽혀 예를 표하며) 예이 꼭 성공하고 돌아오겠습니다.

황제 : . 세계의 평화를 지키는 일이 나의 임무야.

호종단 : 그럼입쇼. 폐하는 천하에 군림하는 통치자시니까요.

황제 : 암 난 세계의 지배자지. 온 천하가 내 것이란 말이야. 으하하하.

 

황제, 흐믓한 웃음을 날리면서 퇴장하는데 음악이 흐르면서,

암전.

 

 

2

 

탐라국 정의현 토산마을.

농부가 제주의 민요(또는 트롯)를 간드러지게 부르는데 수신이 함께 등장하여 노래 부르며 춤을 춘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제주임을 드러낼 수 있는 노래면 좋겠다. ‘제주도푸른밤같은 현대곡도 괜찮다.

노래를 부르면서 무대를 설치한다.

뒤쪽에 노단새미와 거슨새미를 상징하는 두 개의 파란 천이 가운데를 중심으로 하나는 왼쪽으로 하나는 오른쪽으로 놓여 있다.

그 앞쪽으로 길마(쇠 잔등에 얹는 기구)가 놓여 있고 그 속에 햇볕을 가린 밥 차롱(대로 만든 도시락)이 놓여 있다.

 

잠시 후, 수신 퇴장하고 농부 땀을 닦으며 놋그릇을 들고 뒤쪽 노단새미로 간다. 물을 떠 마시며 가운데로 온다.

 

농부 : (놋그릇에 남은 물을 바닥에 뿌리며) 어 시원하고 물맛 좋다. (관객들에게) 잘 들 오라수다. 이 물 먹어 봅디가? 한번 먹어 봅서 돌코롱 허멍서도 가슴이 써능헌 게 천하제일수우다.

헌디, 제주물이 어떵 생겨나는 진 알암수과? 모르크라 마씸? 곧걸랑 잘 믈어봅서 양. 제주에서 비가 내리믄 곳곳에 이신 곶자왈을 통해 땅 쏘곱으로 스며 듭니께. 곶자왈은 알아지지양? (모른다면) 쉽게 말하믄 숲에 땅 쏘곱으로 난 숨골이랭 생각허면 됩니다. 그 빗물이 화산석 암반수를 거치멍 정화되다가 땅위로 솟아나는 것이 제주 샘물이우다. 경허난 제주물이 일등입주.

여기가 노단새미 즉 중력의 법칙에 의하여 바다를 향하여 똑바로 흐르는 샘물이곡, 저기가 거슨새미 즉 한라산 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샘이라는 뜻이우다. 경헌디 종달리서 토산까진 샘물이 읏고 여기 제우 두 곳만 남아신디 양. 무사 경 된 줄 알암수과? 그거 다 사연이 이서 마씀. 자 게믄 그 사연 알아보게 양. (잠시 퇴장)

 

시종 등장. 시종은 몸에 중국제 악세서리로 치장했다.

 

시종 : (노단새미를 보며) 바로 여기로구나. 우리가 찾던 수혈이 여기가 맞아.

(개처럼 킁킁거리며 여기저기를 냄새 맡다가) 어 여기 마혈도 있네? 내 후각은 속일 수 없지. 이건 날개 달린 장수가 타고 다닐 말이 태어날 형국이야. 히히 오늘 재수 억세게 좋은 날인 걸. 헌데 이건 무슨 냄새지? (길마 속을 향해 킁킁 거린다.)

농부 : (들어오며) 누게네 집 똥강생이가 남의 점심을 탐냄신고?

시종 : (농부의 등장에 놀라며) 여보시오 이거 사람 잘못 봤다 해이서. 나가 똥강생이로 보이남?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내가 이런 시골 음식이나 탐낼 인물로 보이냔 말이야?

농부 : (시종을 살피며) 어라 이거 외국 사람이구나. 요즘 코로나로 외국 관광객 보기도 힘든디 넌 어떵허연 오라시?

시종 : (제주 사투리를 못 알아듣는 듯) 허어 이거. 나 여기 오려고 한국말도 배웠는데 못 알아 먹겠다 이거. 표준말 쓰라 해.

농부 : 어라 너 중국산이구나?

시종 :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나 중국서 왔다 이거.

농부 : 한때 중국 사람들 제주도 땅 사래 몰려들언 땅값 하영 올려 놓아신디. 무사. 느도 땅 사래 오란디야?

시종 : (고개를 저으며) ? 땅 띵호아 맞다, 그런데 사는 게 아니라 뜨러 왔다 이거.

농부 : 이거 저거 하지 마랑. 졸바로 고라보라. 뜨긴 뭘 뜬단 말이고? 자리를 뜨컬랑 볼목리로 가곡 방어를 심으컬랑 모슬포로 가라. 번지수 잘못 찾아 왔져.

시종 : 이런 거 (모션을 취하며) 날개 달린 장수 (목에 손가락 그으며) 안 된다 이거.

농부 : 에이 귀눈이 왁왁허연 무슨 거엔 고람신지 하나도 모르켜. 저리 가라.(몽둥이를 들고 때리려는 시늉) 나 땅 안 팔아. 저리 안 가? 농사 방해 마랑 저리가.

시종 : (쫒겨 나가며) 어어 이거 왜이래? 인심 좋다고 했는데 손님 박대한다 이거.

농부 : 고배시 왔단 가는 건 좋주만 우리 것 빼앗젠 허는 놈은 필요 읏다. (내려칠 기세로) 저리 안 가?

시종 : 알았다. 이거. 너 후회하게 될 거다.

농부 : 후회? 땅 팔앙 나간 사람들이 후회할 거여. 지키는 사람들은 후회 안해. 절대로 안해. 우리 땅 터럭 끝만큼도 넘보지 말라.

 

시종 나가면 반대편에서 아리따운 처녀로 변신한 수신, 누가 좇아오는 듯 뒤를 돌아

보며 등장한다.

 

수신 : 여보세요. 농부님. 저 좀 살려 주세요.

농부 : 누게우꽈?

수신 : 저는 노단새미와 거슨새미를 지키는 물의 신입니다.

농부 : (놀라며) ? 물의 신? 경헌디 마씀.

수신 : 지금 중국에서 호종단이라 사람이 이 섬에 도착해서 지혈과 수혈을 다 끊어놓고 있습니다.

농부 : 그건 무사 마씀?

수신 : 지금 한가하게 사연을 말한 때가 아니니 저 좀 숨겨 주세요.

농부 : 이 소시에 고블 곳 어신디?

수신 : (놋그릇을 찾아 들고) 이 행기에 저기 물을 떠다 저 길마 속에 감추어 두면 됩니다.

농부 : 그거 어려운 거 아닌게 마씀. 경헙주.

수신 : 아까 앞잡이 놈 염탐하러 온 거 보았지요?

농부 : 아 그놈이 염탐꾼이었구나게?

수신 : . 수혈, 지혈을 끊고 다니는 호종단이란 놈의 시종입니다.

농부 : 기우꽈? 난 땅 사래 댕기는 부동산 중개업자인줄 알아신디.

수신 : 그런 놈들을 조심해야 헙니다. 고자질에 이간질로 먹고 사는 놈들이 우리 주변에도 많습니다. 어떻게 인간들이 그렇게들 사는지. 자 그럼. 농부님만 믿고 저 갑니다. (퇴장)

농부 : 예 걱정 맙서.

 

농부가 뒤로 가서 놋그릇에 물을 뜨자, 파란 천이 사라진다.

농부는 신기한 듯 바라보다가 놋그릇을 길마 속으로 감춘다.

 

잠시 후, 중국 노래 요란하게 울리며 시종을 앞세우고 호종단 등장한다.

시종은 커다란 쇠말뚝을 들고 호종단은 커다란 망치를 등에 졌다.

그들은 과시를 하듯 때로 위협적이고 호전적으로 관객석으로 으스대며 한 바퀴 돈 후

무대에 들어선다.

 

호종단 : 소문에 듣던 대로 참 경치 좋은 곳이로구나.

시종 : 경치 뿐만 아니라 공기 좋고 물맛도 기가 막힙니다.

호종단 : 그래서 여기 사람들이 장수를 하는구나.

시종 : , 여기서는 남극 노인성의 기운을 받아 그리 한다 하옵니다.

호종단 : 어라? 남극노인성을 네가 어떻게 알아?

시종 : 제가 지관 어르신 따라 다닌지 10년도 더 되었습니다.

호종단 : 식당 개 삼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더니 그 녀석 기특하구나.

시종 : 그럼입쇼. 제가 누구 제잡니까? 천하제일 호종단 나으리 수제자 아닙니까?

호종단 : 그래 그래 따라다니면서 잘 배워라. 헌데 마혈 자리가 이 부근이 맞느냐?

시종 : (지형을 살피다 어느 한 곳을 정하여 말뚝을 놓는다) 여기 맞습니다.

호종단 : (지도를 꺼내 보며) 아니 아니, 그만큼 따라다녔으면 이젠 알아서 척 척 할만도 한데. 아직 멀었구나. 멀었어.

시종 : (애교를 떠는 동작을 하며) 헤헤헤. 왜 이러십니까? 나으리. 제가 지관 나리 실력 잠깐 테스트 해 본 것뿐입니다요.(눈치보며 말뚝을 옮긴다) 여기 아닙니까?

호종단 : 아니 조금 옆쪽. 그래 거기. 잘 잡아라. (망치를 빼내 들고 말뚝을 박는다) 요놈의 망아지가 어디로 튀어나오려고. 에이. 죽어라.

 

사이

 

농부 : (지켜보다 다가서며) 아니 누군디? 남의 땅에 함부로 쇠말뚝을 받는 거요?

시종 : (막으며) 어허 무엄하게. 어느 안전이라고 나으리 하는 일에 토를 다느냐?

호종단 : 나 멀리서 황제 폐하의 명을 받고 온 호종단이다.

농부 : 호종단인지 호로 새낀지 무사 남의 땅에다 말뚝 박느냔 말이오.

시종 : 어 이거. 지엄하신 우리 나리한테 무슨 행패냐 이거?

농부 : 여긴 내 땅이란 말이야. 내 땅. 이놈들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는 일본놈들보다 더 악독한 놈이구만. 남의 땅을 빼앗으려 하다니.

호종단 : 거 말이 심하다. 우리 대국 황제 폐하는 천하의 주인이다.

시종 : 폐하의 명을 받고 지금 지구를 지키러 온 사신한테 무슨 행패냐?

호종단 : 황제 폐하의 말은 곧 법이다. 말이 필요 없다. 즉각 강제 수용 표지를 부쳐라.

시종 : . 분부 거행 하겠습니다. (주머니에서 스프레이를 꺼내 말뚝 주변 멀리까지 경계를 그린다) 잘 봐라 여기서 저어기 까지. 저 멀리 여기가 안 보이는 곳까지 접근 금지 구역이다.

호종단 : 앞으로 여기는 평화시설 보호 구역이므로 접근을 금한다.

농부 : 지금 남의 땅에다 무신 자파리하는 거꼬?

시종 : 여긴 방금 발견 된 세계문화유산지역이다.

농부 : 세계문화유산? 거 무슨 강생이 하우염하는 소리고?

호종부 : 여기는 세계적인 역적이 타고 다닐 명마가 태어날 마혈이 있는 곳이란 말이다.

시종 : 그래서 태어나지 못하도록 혈을 막은 것이니 함부로 접근 금지하라.

농부 : 참나. 말이 땅에서 태어난다고?

호종부 : 어허! 너희 조상도 땅 속에서 태어나지 않았느냐? 고양부 삼성혈 몰라?

농부 : 아무튼 여긴 내 땅이요. 이건 사유재산 침해란 말이야. 민주주의 국가에서...

호종단 : 아직은 민주주의 아니거든? 설사 그렇다 쳐도 나라의 안전과 천하의 평화를 위해서 우리가 강제 수용 하겠다는데 무슨 헛소리야?

농부 : 아니 밭 한가운데 말뚝을 박고 사방에 금줄을 치면 우리 농사는 어찌 짓고 농사 못 지면 우린 뭘 먹고 살아?

호종단 : 우리 그렇게 쩨쩨하지 않아. (시종에게) 여봐라. 대금 지불해.

시종 : . (주머니에서 금붙이를 꺼내며) 자 이거면 지금 네가 마음에 드는 땅을 살 수 있고 먹고 사는 데도 문제 없을 거다.

농부: (받으며) 배포가 크기는 크구나. 이런 식으로 우리 땅값 올려 놓은 거 다 알아. 경헌디 난 안 팔켜. 물려 받은 땅 팔아블곡 저승에 가민 무슨 낮짝으로 조상을 보느니. 난 말다.(금붙이를 내동이 친다)

호종단 : 너 같은 필부의 생각은 중요치 않아. 세계 평화를 위해서 하는 일에 가타부타 하지 마라.

 

머릿수건을 쓴 주민 들어온다.

 

주민 : 영철이 아방 이거 무신 일이우꽈? 우리 밭에 들어가지 못하게 누게가 금줄 처 놔수다.

시종 : (말리며) 어허, 아줌마 여기 들어오면 안 돼. 여긴 신성한 곳이야. 어서 나가.

주민 : 우리 땅인디 당신들이 뭐라서 못 들어가게 한단 말이우꽈?

호종단 : 여봐라. 그 부인한테도 값을 치르고 내보내.

시종 : (금붙이를 주며) 자 이거 가지고 얼른 나가. 다른 곳에 가서 잘 살아.

주민 : (금붙이를 던지며) 난 마우다. 세상에 돈 주고도 할 수 어신 게 인간도리 아니우과. 조상들이 누워 이신 땅을 팔아뒁 어디 강 부재로 산들 마음이 편하쿠가? 그게 무신 소용이우꽈. 난 마우다.

시종 : 어허 이건 당신네 왕 한테도 다 허가를 받은 일이야. 나라를 위해서 천하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 하는 일에 협조하지 않은 놈들은 다 잡아다 능지처참 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

주민 : 가여. 차라리 날 죽이라 이 놈들아.

농부: 세계 평화보다 우린 목숨 줄이 달린 땅이야.

호종단 : 너희들 개돼지 같은 목숨 줄은 중요치 않아. 대다수 천하 시민들의 행복이 중요하고 세계 평화 유지를 위해서 소수 주민들의 불편과 개인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

시종 : 우린 충분한 가격을 치렀으니. 이 말뚝을 뽑아서는 안 된다.

주민 : 그건 무사라?

호종단 : 이건 지혈을 뜬 것이다. 여긴 날개 달린 장수가 탈 말이 생겨날 혈이다.

시종 : 우린 종달에서부터 여기까지 오면서 수혈을 전부 뜨고 왔다.

농부 : 무사 그런 쓰잘데 어신 짓을 허영 다념서?

호종달 : 물과 땅의 기운이 천하의 순리를 거역할 역적 장수가 태어날 기운을 갖고 있으니 세계 평화를 위해서 미리 차단하자는 것이다.

농부 : 세계가 다 느네 꺼가?

시종 : 그럼. 세계 평화를 위해서 영감님도 일조해야 하는 거야.

주민 : 난 협조할 수 없다. 목숨 같은 땅을 빼앗으컬랑 차리리 날 죽이라.(드러눕는다)

호종달 : 이봐. 뭐 하고 있어? 데려가 조용히 처리해.

시종 : 예 알았습니다.(주민을 끌고 가며) 이리와.

주민 : (끌려가며) 난 못해, 날 죽이기 전에는 절대 안돼. 그래 날 죽이라 이놈들아.

농부 : (호종달에게) 이거 무슨 짓이요?

호종달 : 당신도 저꼴 당하고 싶지 않으면 순순히 우리 명령에 따르시오.

농부: (주민이 끌려 간곳을 따라가 보며 안타까워 한다) 아이고 순댁이 어멍.

시종 : (손바닥을 털며 들어온다) 섬 사람들 순 한줄 알았더니 독종들이구만.

농부 : 그거 다 당신네들이 그렇게 만든 거요.

호종달 : 수고했다. 다음 과제를 처리하자. (지도를 보고 사방을 둘러보며) 그런데 꼬부랑 낭 쏘곱에 행기물이라. 이게 무슨 말이지?

시종 : 꼬부랑 낭아래 행기물요?

호종달 : 그래, 여기 이렇게 쓰여 있지 않느냐?

시종 : 가만 있자 꼬부랑은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인데? 오라 알았다. (노래부르며) 꼬부랑 할머니가 고부랑 고갯길을~ 할 때 꼬부랑은 구부러졌다는 말 아냐. 맞지?

농부 : (혼잣말로) 아니 이 녀석들이 어떻게 알았지? 맞소. 헌데 아까부터 초면에 나이든 사람한테 무사 반말이라?

시종 : (눈치를 보다) 어허 그건 미안하게 되었소, 아직 여기 예법을 다 못 익히어서. 영감이 양해 하셔요.

호종달 : 여기 제주도말은 독특해서 영 알아들을 수가 없어. 이거 현지어가 분명한데. 맞아 이건 분명 현지 사람을 찾아 물어보라는 뜻이야. (농부에게) 무슨 뜻이오?

농부 : 꼬부랑 낭은 구부러진 나무가 맞소. 헌데 이 주변엔 그런 나무가 없잖소?

호종달 : 분명 이 근처가 확실한데?

시종 : 저도 방금 전 저기 샘 솟는 물을 보았습니다.

호종달 : 그게 어디로 사라졌냔 말이야?

시종 : (샘이 있던 곳으로 가보며) 거 참 이상하다.

호종달 : 그러면 행기물은 뭐요?

농부 : 행기물?

호종달, 시종 : (다가와서 큰 소리로) 그래 행기물?

농부 : 아이고 화통을 삶아 먹었나 귀창 떨어지켜. 너무 커.

호종달, 시종 : (다정하게 그러나 이직도 크다) 행기가 뭐요?

농부 : 조금 더 작게.

호종달, 시종 : (작은 소리로) 행기가 뭐요?

농부 : (같은 작은 소리로) 나도 몰라.

호종단 : (떨어져 나가며) 에이.

농부 : (시침 떼며) 게매 양? 난 처음 듣는 말이우다.

시종 : 지금, 장난하자는 거야?

농부 : 나 경 한가한 사람 아니우다. 날 저믈기 전에 밭 갈고 씨 뿌려야 헙니다. 제게 저 말둑 뽑아뒁 여기서 사라져 줍서.

시종 : (관객석에 가서) 혹시 행기물 아시오? 행기가 뭐요?

호종달 : 행기가 뭘까? (시종에게) 야 생각 좀 해봐.

시종 : 행기? 아 생각 났다. 비행기에서 날 비자가 빠졌으니 날지 못한 비행기 아닐까요?

호종달 : 임마, 우리 시대에 비행기는 또 뭐야?

시종: 아 그렇지. 그럼 행기가 뭐지? 혹시?

호종달 : 혹시?

시종 : 향기? 향기가 행기? 형님이 성님이 되듯 생기가 행기? 생기는 또 뭐야? 발랄한 생기?

호종달 : (머리를 주먹으로 박으며) 에이 멍충아? (무대를 돌아다니며) 도대체 행기가 뭐야?

시종 : (뒤따라 다니며) 행기가 도대체 뭐야?

호종달 : (책자를 보이며) 분명 여기에도 노담샘이 거슨새미 물의 원천이라고 적혔는데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농부 : 전 이 밭을 삼십년 째 갈아먹고 있지만 그런 샘을 본적 어수다.

시종 : 가만 있어 봐. (킁킁거리며 길마 쪽을 가리킨다) 저기에서 물 냄새가 나는데요?

농부 : 이 사람이. 아까부터 내 도시락을 탐내다니. (도시락을 들고 오며) 보세요. 이건 내 점심밥이고 저건 내가 마실 물이요.

호종단 : 그렇구만. (시종을 탓하며) 야 이놈아 니 뱃속엔 거렁뱅이 귀신이 들어 앉았냐? 아까 배터지게 먹은 게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왜 또 남의 밥을 탐내?

시종 : 그게 아닙니다. 제 후각을 믿으십시오 나으리. 전 이제껏 틀려 본 적 없는 걸 나으리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호종단 : 그 개보다 더 예민한 후각 능력을 익히 믿어 왔다만 이젠 녹이 슬었는지 아주 쓸모가 없어진 듯하구나.

시종 : 아이쿠. 나리 내 코는 아직도 쓸만 합니다요.

호종단 : 그래. 믿자. 헌데 어디 있단 말이냐?

시종 : 그럼. 그 지도가 잘못된 것이겠죠.

호종달 : 그런가?

시종 : 그럴 수도 있죠. 하루가 날아가는 활촉같이 변하는 세상인데. 옛날에 만든 지도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요.

호종달 : (지도를 찢으며) 에이 이런 엉터리를 누가 만들었어. 가자.

시종 : 헌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분명 저 길마 안에서 냄새가 나는데?

농부 : 어허.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니까.

호종달 : 네 코도 이젠 병들었나 보구나. 어서 다른 곳으로 가자. 에이 오늘 일진이 더럽다더니 이런 꼴을 당하려고 그런 모양이다.

시종 : 난 마혈도 찾고 재수가 좋았는데?

호종달 : 영감님 실례 많았소. 어서 다음 장소로 가자.

시종 : (나가다가) 잠깐만요. (금붙이를 줍고) 줄 때 받지. 금 싫어하는 놈 처음 보네? (메롱하고 혀를 내밀어 약올 올린다)

농부 : 아유 저걸 콱.

시종 : (재빠르게 호종달 곁으로 가며) 다음은 어딥니까요?

호종달 : 산방산 앞에 있는 용머리다. 거기가 용을 타고 날아오를 장수가 태어날 혈이야.

시종 : 제가 앞장서서 틀림없이 찾아내겠습니다요. 가시죠.

 

호종달과 시종 퇴장한다.

 

 

3

 

농부 길마 속의 놋그릇을 들고 객석을 향하여 말한다,

 

농부 :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수다. 꼬부랑 낭은 소 등에 얹는 길마를 말하는 거고. 행기는 바로 이 놋그릇을 부르는 제주말이우다.

봐수게 양. 힘 있는 나라, 힘 있는 자들의 행태란 다 저렇게 오만방자하고 무례합지요. 헌데 저들이 무사히 저들나라로 돌아가져시카 마씸? 아니우다. 한라산신이 가만 둘리 어서십주. 제주도 이곳저곳 다니멍 쑥대겨 노난 부애가 용심 조꼬디 와십주. 경허난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호종단 일행이 탄 배가 차귀도 앞을 지날 때 매로 변한 한라산신이 노여움으로 커다란 날개를 파닥이니까 순간 집채만한 파도가 솟구치고 소용돌이가 일면서 배를 덮칬수다. 경허난 바당에 가라앉안 익사를 한 겁주. 그래서 그들이 돌아가지 못하게 막았다 해서 막을 차 돌아갈 귀자를 써서 차귀도라 부른답니다.

 

수신이 음악소리에 맞춰 춤을 추면서 등장한다.

그리고 농부 앞에 서서 고마움을 표시한다.

 

수신 : 고맙습니다. 영감님. 영감님 덕에 노단샘이와 거슨샘이 물은 다시 솟아나게 되었습니다.

농부 : 아니우다. 이 섬에 살면서 나가 의당 할 일을 한 겁주. 저 샘이 어시민 우린 무얼 마시곡 농사는 어떵 짓습니까? 헌디 저 말뚝은 어떵허코 마씀.

수신 : 여긴 영감님 땅이니 영감님 마음대로 하십서.

농부: : 저걸 뽑아부러도 될 건가 양?

수신 : 뽑아부러사 이 땅에 말도 나곡 인재도 나곡 헙니다. 제가 도와드릴테니 어서 뽑아버립서.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말뚝을 뽑아내자, 그 자리에서 붉은 물이 솟아오른다.

 

수신 : 영감님. 어서 빨리 저걸 막으세요.

농부, 주변에 있는 도시락통의 밥을 비워 막는다.

 

농부 : 아이고, 막았다.

수신 : 아쉬긴 합니다만 그래도 다행입니다. 말의 몸을 만들 피가 조금 부족하니 제주에서는 육지보다 작은 조랑말이 태어날 겁니다.

농부 : 조랑말 그것만도 다행이우다.

수신 : . 이젠 저 행기물을 다시 제자리에 비워 주십시오. 원래 한 구멍에 솟는 물이지만 하나는 아래로 솟아 노단새미가 되고, 또 하나는 한라산 쪽으로 거슬러 올라 거슨새미가 될 겁니다.

농부 : 노단새미와 거슨새미라.

 

농부, 놋그릇을 들고 뒤로 가서 붓자.

신비스럼 음악이 흐르면서 두 개의 물줄기가 살아난다.

 

농부 : 물줄기야 철철 솟아 올라 끊임없이 흘러서 우리 인간들의 생명수가 되어라. (관객들에게 돌아오며) 잘 봤지양? 이렇게 지켜낸 귀한 물이니 잘 알고 드십서 양.

 

음악이 흐르면 등장인물들이 모두 등장하여 춤을 추다가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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