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되었을 때 내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 생각은 나지 않지만,
부지런히 달려온 열차가 2020년 마지막 정거장에 들어섰을 때
내가 펼쳐든 문학 결산서는 역대급 흑자였다.
2월부터 시작된 바이러스 공세가 내 행동 반경과 생각을 위축시켰지만
용케도 포로가 되지 않은 건 크나큰 축복이기도 했고,
이에 대처하는 변화무쌍한 인간 군상을 목격하면서
내 문학의 주름도 조금 깊어진 듯하다.
4월도 중순이 되어서야 이천 부악문원 창작실 문이 열렸고
매일 숨이 가쁘게 뒷산을 오르며 체중을 줄이듯 생각들을 정리했다.
7월 말 까지 100여 일 동안 스스로를 가두면서 자발적 격리 상태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두둘겨 패고, 죽이고, 미워했던가?
그래도 살아남은 글자들은 그런대로 한 풍경 속에 용해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냈다.
지역에 사는 내게 서울의 소위 메이져 문학지에서 원고 청탁이 올 리도 없지만,
그런 대로 중앙의 문학지에 네 편의 작품을 발표했으니 평가야 어떻든 그만하면 열심히 썼다고 자평한다.
그리고 그 작품들을 묶어 여섯 번째 희곡집을 냈고,
생각지도 못한 전영택문학상까지 받았으니
금년에는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상종가 문운이 펼쳐진 한 해다.
거기다가 몇 년에 한 편도 힘든 공연작을
한 해 두 편이나 무대에 발표할 기회를 얻었으니
코로나 상황에 고통받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이런 때가 있었는가 싶을 만큼 내 생애 최고의 해였다.
한 해 동안 격려를 해주신 분,
축하를 해 주신 분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아름다운 한 해가 되도록 도움을 주시고 응원 해 주신 분들 덕분이다.
감사드린다.
코로나 때문, 아니 코로나 핑계로 만나지 못한 분들,
출판된 책을 드리지 못한 분들께도 너무 죄송하다.
내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으신 분들,
내 무관심으로 섭섭함을 느끼신 분들,
마음속에서 나를 죽였거나,
죽임을 당하신 분들한테도 용서의 자비심이 충만하길 빈다.
이제 2021년 열차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먼 여정을 떠날 것이고,
365일이라는 새로운 선물을 싣고 우리는 달려야 할 것이다.
지금 창밖에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많은 눈이 새로운 여정을 축복하듯 은혜처럼 내린다.
2021년에도 많은 관심과 격려와 사랑을 기대한다.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도 신의 가호와 은총이 함께 하길 기원한다.
2020년 12월 31일
강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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