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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 세상이야기

자랑스러운 40년 연극인 부부 제자

강용준 2021. 7. 8. 13:37

연극 인생 40년 기념 공연 <먼데서 온 여자>를 보고

 

40년 전 그러니까 1981년은 극단이어도를 창단한 지 3년이 되는 해다.

당시 극단이라고는 하지만 연극환경이 열악해서 연습실은커녕 사무실도 없던 상황이었다. 지금처럼 나라나 행정 당국에서 지원을 해 주는 것도 아니었고, 주머니를 털어 연습 후 주린 배를 라면으로 때우던 때였다.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고 전두환 군사정권이 들어선 때라 연극 공연에 대해서도 박해에 가까울 정도로 간섭과 감시가 심하고 대본은 검열을 받아야 했다. 대본을 암기하고 공연 준비를 마쳤는데 검열에서 공연불가 판정이 나온 경우도 있었다.

내가 세 들어 살던 당시 코리아 극장 맞은편 골목 두 칸 방 집에서 리딩 연습을 했고 동작 선 밟기는 중앙로 무용학원이 비는 시간을 기다려 공연 준비를 하던 때였다.

어느 날 잘 아는 교사가 소문을 듣고 무용학원으로 찾아왔다. 성격이 너무 내성적인 학생이 있는데 연극을 하면 성격이 바뀔 수 있는지를 상담했다. 난 본인의 의지 여하에 달린 문제라고 했고, 며칠 후 수줍어 고개도 잘 들지 못하는 대학생이 연극을 배우고 싶다고 극단을 찾아왔는데 이름을 강상훈이라고 했다.

그 해에 제주대 영문과를 다니던 정민자도 극단에 들어왔다. 연극 활동을 함께 하면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들은 서로에게 끌린 모양이다. 적극적이고 호방한 성격의 여대생과 내성적인 성격의 남학생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 됐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연극활동을 지속하던 그들이 결혼을 한다며 찾아왔다. 극단 안에서 연극인 부부가 탄생한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어떻게 생활인으로 살아갈지 아득해 걱정도 되었다. 그들의 결혼은 집안의 반대에 부딪쳤다. 그러나 그들은 외도 월대 인근에 방을 구해 살면서 이미 아기를 가진 상황이었고 출산일이 다가오자 가까운 일가친척과 주변 사람들만 모시고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난 당시 교편을 잡고 있었고 집안 형편이 연극을 겸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극단 대표직을 내려놓게 되었다. 강상훈은 극단이어도 대표를 이어받아 활동하다가 독립을 했다. 그래서 그들이 만든 게 극단 세이레다. 그들은 웅변학원을 운영하고 아이를 기르면서도 억척스럽게 어린이극, 인형극, 청소년 극, 성인극 등 다각적인 연극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들이 제주 연극계에 남긴 업적 중 하나가 옮겨 다니는 곳마다 소극장을 만들어 제주 연극 소극장 운동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소극장은 지속적인 연극 연습이 가능하고 레퍼터리 공연과 장기 공연을 할 수 있어서 연극인에게는 지속적인 성장의 공간이 된다. 그들은 쉬지 않고 공연을 제작했고 소극장을 활용해 타 지방의 극단을 초청하고 교류하면서 제주 연극의 발전을 견인해 왔다. 참으로 어렵고 힘든 길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왔다.

그사이 송사에 휘말리면서 위기도 있었지만 40여 년을 한결같이 부부가 연극 활동을 함께 한다는 것은 전국적으로도 사례가 드문 일이다. 힘든 연극의 길로 인도했으면서 도움을 많이 주지 못한 미안함이 늘 가슴에 남았지만 굳세게 무대를 지키는 제자들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연극 인생 40년을 맞아 기념 공연을 한다니 그 지난 했던 시절의 감회가 새롭다. 내가 못 다한 일을 이어가고 있는 연극인 강상훈과 정민자의 의지와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