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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 세상이야기

카이로스의 시간을 위하여

강용준 2019. 1. 1. 09:17






카이로스의 시간을 위하여

- 2019년을 맞이하며

 

그리스 신화에 보면 시간의 신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리스 신들은 3기로 나눈다. 천지창조 전 혼돈의 시대 신들이 원초적 신들이다.

그 중 땅을 지배하는 신은 가이아였다.

여신인 가이아가 하늘을 이미지화한 신 우라노스를 만나 12신을 낳는데 이들을 티탄 신족이라 부르며 2기에 속한다.

그런데 우라노스는 자식들 중에 자신의 지배력을 빼앗는 신이 나올 거라는 예언을 믿고

 자식을 낳으면 가이아의 자궁에 가두었다.

땅의 자궁이니 아마도 이는 캄캄한 동굴이었을 것이다.

이에 화가 난 가이아는 그의 아들 크로노스에게 칼을 주며 아버지의 성기를 자르라고 명령했다.

크로노스는 어머니의 명령대로 숨어서 기다리다가 우라노스가 가이아와 잠자리를 하려는 순간 그의 성기를 잘라버린다.

이에 하늘과 땅이 구분되어 천지개벽되었다.

우라노스는 지배력을 상실했고 크로노스가 신들의 우두머리가 되는데 이때부터 세상은 시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크로노스가 절대적 시간의 신이 된 것이다.

크로노스는 누이 레아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는다.

이들은 올림포스 12신이 된다.

그런데 가이아는 크로노스에게 부친과 똑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라는 예언을 하게 된다.

자신의 절대적인 지배력을 잃고 싶지 않는 크로노스는 자식들을 낳는 대로 집어 삼켜버리고 만다.

시간은 세상 모든 것을 집어 삼킨다는 의미이다.

 

이에 레아는 막내 제우스가 태어나자 아기 대신 돌을 강보에 쌓아 크로노스에게 주자 그는 믿고서 단번에 삼켜버렸다.

그래서 살아난 제우스는 성장하여 크로노스를 죽이고 배안에 있는 형제들을 구출하여 신들의 우두머리가 된다.

크로노스를 죽임으로써 올림포스 신들은 불멸의 시간을 살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에겐 반드시 죽어야 하는 필멸의 시간이 여전히 존재하였다.

이 시간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이다.

이로부터 생명이 있는 것은 태어나면서 늙고 죽게 되는 운명을 안고 살게 되었다.

 

제우스의 아들 중에 카이로스라는 신이 있었는데 그는 인간들이 처한 처지를 보고 안타깝게 생각했는지

자신을 알아보고 붙잡는 인간에 한하여 기회를 주기로 했다.

즉 절대적인 시간의 허무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시간을 늘릴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런데 그의 모습은 기묘하게 생겼다.

앞머리와 옆머리는 길지만 뒷머리는 대머리였다.

인간에게 항시 나타나지만 함부로 알아볼 수도 없고, 아는 자는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지나고 나면 붙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는 오른손에 칼을 쥐고 왼손에는 저울을 들었다. 그리고 양발에는 날개가 달렸다.

정확하고 빠르게 판단을 하고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순간적으로 날아가 버린다는 뜻이다.

카이로스(기회)’를 붙잡은 자는 절대적인 시간 속에서 영원한 자유를 즐길 수 있다.

그걸 카이로스의 시간이라고 한다.

 

카이로스의 시간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이 사랑예술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은 길어도 언제나 짧다.

그리고 그런 시간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재생하며 아쉬워한다.

황진이가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 베여 내고 싶은그 시간이다.

영국과 유럽을 잇는 해저터널이 완공되자 어느 여행사가 런던에서 파리를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 공모를 했다.

당선작은 테제베도 비행기도 아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이라는 응모작이 뽑혔다.

늘 마음속에 사랑을 품고 사는 사람은 항상 카이로스와 함께하는 사람이다.

그가 있는 곳이 천국이고 무한한 시간을 사는 사람이다.

창작을 위해서 예술인이 겪는 어려움과 고통도 다 카이로스와 함께하는 시간이고,

지난한 어려움의 과정을 거쳐 남는 예술품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많은 사람에게 카이로스의 시간을 함께하게 한다.

 

카이로스의 시간을 함께하는 게 비단 사랑과 예술뿐이겠는가?

자신의 일에 즐거움을 가지고 행복을 느끼면 그들은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무엇을 즐길 것인가 생각하자.

시간이 빠르다고 한탄하지 말고 주어진 시간을 철저하게 즐기자.

그래서 2019년에도 카이로스와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