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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정원을 산책하며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제주문학관

제주에 부는 문학의 바람, '제주문학관'

강용준 2021. 12. 21. 10:20

제주문학관 야외공원

 

제주에 부는 문학의 바람, ‘제주문학관

 

강용준(제주문학관 명예관장/극작가/소설가)

 

제주문학관의 이름으로 꽃피운

제주문화의 집성체

 

문학은 문화의 꽃이자 예술의 심장이다.

문학 작품은 고귀한 인간 정신의 영롱한 산물임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인간은 문학을 통하여 위로받고 미지의 세상을 만나며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문학관은 단순히 이런 문학 작품을 모아놓고 전시하는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다. 이미 출간된 유용한 문학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고, 문학을 향유하며 교육하고, 창작을 지원하는 등 문학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컨트롤하는 센터가 문학관이다.

2016년 제정된 문학진흥법에 의하면 문학 진흥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지원하고, 문학 창작 및 향유와 관련한 국민의 활동을 증진함으로써 문학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문학진흥법 제3조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밝히고 있는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문학 진흥에 관한 시책을 강구하고, 문학 창작 및 향유와 관련한 국민의 활동을 권장·보호·육성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하고 있고, 8(비영리법인 또는 문학단체의 육성)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문학 진흥이나 문학 관련 학습활동을 지원할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법인이나 문학단체를 육성하기 위한 시책을 마련하여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볼 때 제주문학관은 지역 문화의 진흥을 도모하는 집합체이자, 지역문학 유산들을 후대에 전하는 매개체이며 지역문학의 정체성을 전 국민과 나누는 조직체가 될 것이다. 여기서 지역문학의 정체성은 독자적인 고유성을 말한다.

제주문학은 과거 절해고도라는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고유한 형태의 문화가 발생하였고 전승되어 왔다. 그래서 타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개벽신화(천지왕본풀이), 섬을 만든 여성 거인 창조신화(설문대할망신화), 탐라개국신화(삼성신화) 등이 있고 육지부와는 다른 민요, 전설 등 구비문학이 독특하다. 그리고 조선조에 나라에 중죄를 지어 유배되었던 선비들과 목관들이 남긴 유림문학, 제주어로 된 문학, 바다에 관련된 문학, 그리고 미군정 하에서 벌어진 4·3을 배경으로 한 4·3문학, 피난지 문학 등은 제주만의 정체성을 드러낸 독특한 문학 자산들이다.

이런 점에서만 보아도 독창적이고 독자적인 제주문학은 한국문학의 하부구조가 아니라 독립구조로서 한국을 대표할 만한 문학이다. 이런 문학 유산들을 관리하고 문학으로 재생산하고, 교육과 연구를 통한 제주문학의 우수성을 널리 파급하고 향유하고 체험할 수 있는 제주문학관은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전문 문학관으로 성장할 것이다.

 

 

 

제주문학의 집에서 제주문학관까지

십여 년의 여정

 

2000년 문화의 세기에 들어서면서 전국적으로 문학인들 사이에 문학관 설립이 화두가 되었다. 1992년 부산에 추리문학관이 처음 개관되면서 개인 문학관이 전국 각지에서 속속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제주에서도 제주문학관 건립에 대한 논의가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2004제주향토문화예술진흥중장기계획에 공식적으로 제주문학관건립 계획이 확정되면서 2005년 제주문인협회와 제주작가회의 양 단체가 주체가 되어 제주문학관건립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2008년 제주도 예산에 제주문학관 건립기금 3억 원이 배정되었고, 2009년 제주도에서 제주문학관건립추진위원회를 재조직하여 공식 출범시키면서 제주문학관 건립 논의가 활기를 띠게 되었다. 그러나 3억 원이라는 예산은 문학관 건립을 위해서는 턱없이 모자라는 액수다. 행정 당국의 생각은 시골 폐교된 학교를 리모델링 해서 운영하라는 뜻이었는데, 제주문학인들은 그것으로 성이 찰 리 없었고 도심에 반듯한 문학관을 요구했다.

그래서 그 예산으로 사라봉 자락에 건물을 임대 리모델링 하여 20103제주문학의 집을 개관하였고, 제주문학관 건립 거점센터로 삼았다. 제주문학관이 건립되면 할 수 있는 북 카페와 교육프로그램들을 일부 운영하면서 제주문학관의 건립을 준비해온 것이다.

이후 건립추진위 주최의 토론회와 제주도의회 문화관광포럼에서 제주문학관의 역할과 콘텐츠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했다.

2016년 제주문학관 건립 타당성 조사 용역비가 마련되었고,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에서 용역을 맡아 그해 11월 용역안을 제주도에 제출했다.

이를 바탕으로 2017년 제주도에서 제주문학관건립추진위원회를 재조직했고 이후 설계용역비가 마련되고, 여러 차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건축용지가 현재의 제주시 연북로 339로 확정되었다.

국비를 확보하는 사업도 어려운 과제 중 하나였는데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인 도종환 시인과 친분이 있는 문인들이 앞장서서 장관을 면담하여, 행정에서 따내지 못한 국비 38억 원(당시 총 공사액의 40%) 지원 약속을 받아냈다.

드디어 20201월 제주문학관 기공의 첫 삽을 떴다. 제주 문학인들의 숙원이었던 제주 문학관은 추진위원회를 구성한 지 16년 만인 20211023일 비로소 개관식이 열렸다.

 

 

비로소 한눈에 마주하는

제주문학의 어제와 오늘

 

제주문학관은 숲속에 한천을 끼고 있으며 뒤로는 한라산이 자리 잡고 있어서 건물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 경치가 일품이다. 개관식에 참석한 서울의 문학 관계자들이 모두 부러워했다. 근처에는 한라도서관과 제주아트센터가 있어서 문화 벨트를 형성한다.

규모는 약 33m2(1천여 평)의 대지에 지하 1, 지상 4층으로 되어 있으며 외벽은 현무암으로 둘러싸였고, 건물 북쪽 면은 유리로 되어 숲과 계곡으로 이루어진 바깥 경치를 볼 수 있게 설계되었다.

제주문학관에 들어서면 마치 성안으로 들어가듯 현무암의 높은 벽을 지나야 하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시야가 훤히 트인 북 카페가 있다. 북 카페 선반과 책장에는 제주 문인들의 작품집과 근래 출간된 유명 문학책 1천여 권을 비치할 예정이다. 이 책들을 편안한 의자에 앉아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읽을 수 있다.

건물 밖으로는 현무암으로 성처럼 높고 둥글게 에워싸인 야외 공원이 있는데, 여기서는 소공연, 북 콘서트, 각종 전시회가 가능한 공간이다. 가운데는 연못처럼 물이 고여 있고 주변에 계단식 돌의자가 환상형으로 놓여 있으며 군데군데 자리한 나무와 야생초가 운치가 더한다.

1층에는 기획전시실에서는 202112월 말까지는 개관기념 특별전으로 , 바람, 바다가 품은 문학이란 주제로 제주현대문학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소설가 최현식, 시인 김광협, 양중해 선생의 생애를 새겨놓았고, 그들이 남긴 작품들과 유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 공간은 앞으로 1년에 3번 주제를 바꾸어 가며 기획전시를 할 예정이다.

2층은 수장고와 상설전시실이 자리하고 있다. 상설전시실은 제주문학의 역사와 정체성을 드러내는 장르로 구성돼 있다. 입구로 들어서면 구비문학, 즉 전설과 민담, 신화, 민요 내용을 전시해 놓았다. 키오스크를 설치해 관심 있는 내용에 관한 보다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도록 했으며, 민요와 본풀이는 직접 들을 수 있도록 헤드폰도 마련했다.

두 번째 굽이를 돌면 제주의 고전문학을 유림문학, 유배문학, 기행문학으로 나누어 전시했다. 유배 왔던 김정의 시문집인 <충암집>, 최익현의 <면암집> 원본을 전시하고 있다. 기행문학으로는 1770년 제주에서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떠났다가 난파를 당해 조류의 흐름에 유구까지 다녀온 체험을 일기체로 쓴 장한철의 <표해록> 필사본이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은 해양문학의 백미로 알려져 있다.

제주어문학 코너에서는 제주어 작품을 연대별로 정리해 놓았으며 제주어 작품 시낭송을 직접 들을 수 있다.

제주4·3문학 코너에서는 현기영의 인터뷰 내용을 상시 들을 수 있도록 했으며 연대별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바당문학 코너에서는 제주 바다를 소재나 배경으로 하는 현대 제주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제주근현대문학 코너에서는 1910년대부터 2021년까지의 주요 문학 사건들과 동인지, 장르별 단체별 변화를 소개하고 있다.

3층은 문학 살롱으로 항시 살아 있는 공간이다. 여기에는 42석의 가변형 세미나실이 있고, 소모임공간 3개 실, 시청각실, 창작공간 4개 실이 있으며, 여기에도 북 카페를 설치할 예정이다.

4층은 147석을 갖춘 대강당으로 객석이 계단형으로 되어 있고 무대와 조명시설이 갖춰져 있어 강연과 심포지엄, 영화 상영, 소규모의 공연이 가능한 공간이다.

 

 

제주문학의 큰 걸음을 위해

 

제주문학관의 운영방향을 제주문학진흥의 플랫폼, 창의적인 문학 아고라라고 정하고 도민들과 함께할 여러 사업을 준비 중이다.

제주문학관 부설로 제주문학연구소 설치가 바람직하지만, 현재 여러 여건상 부설기관을 두고 인력을 운용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선은 제주문학 연구에 관심이 있는 연구생들을 모집하여 가칭 제주문학연구회를 조직하고 지원할 계획이다. 이들의 연구 성과를 정기적으로 발표할 수 있도록 하고, 필요하면 학계의 전문가를 지도위원으로 두어 체계적으로 지도도 병행해나갈 계획이다.

아울러, 제주문학관만의 상징성을 살릴 수 있는 행사를 제정하려고 한다. 가칭 제주문학관포럼을 창설하여 국내·외의 문학 이슈를 주제로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학술대회를 열 계획이다. 제주문학관이 한국문학의 이슈를 선점하고 이를 통하여 한국문학 발전의 플랫폼 역할도 하고자 한다.

제주문학난장이라는 이름의 행사도 계획하고 있다. 제주만의 특색을 드러낼 수 있는 행사를 통해 다른 도서관이나 문학관에서 하는 행사와는 차별화된 내용으로 매년 도민들과 함께하는 정기적인 문학축제로 만들고자 한다.

다음으로 작가 발굴 및 창작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제주청년작가상을 제정할 계획이다. 39세 미만의 대한민국 청년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발간한 제주를 소재로 한 작품집을 심사하여 시상하고자 한다. 또한, 제주의 자연과 문화,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집을 대상으로 탐라문학상도 제정 시상할 계획이다.

창작공간에서는 입주 작가를 공모하여 타지 문인과 제주 문인, 문학 지망생들을 적정한 배분 방식을 통하여 일정 기간 입주시켜 창작을 지원할 예정이다.

문학 인구의 저변 확대와 제주 문인들의 재교육을 위해서도 여러 가지 사업을 준비 중이다. 우선, 기존 제주문학의 집에서 운영해 오던 프로그램을 도민문학학교로 개편하여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을 통해 도민들의 문학아카데미가 되도록 할 계획이다. 그리고 유명 문인 초청 강연과 제주 문인들의 국내·외 문학관 탐방을 통하여 체험교육도 시행할 예정이다.

정보교류를 위하여 전국 문학관 및 문학단체, 문학인 네트워크를 구축할 예정이며, 도내 문인들과 동아리의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할 생각이다.

아울러 홍보 책자와 웹진을 발간하고 홈페이지를 활용한 아카이브도 구축할 계획이다.

 

 

제주문화의 산실 제주문학관

 

문학관이 자료만 모아놓은 박물관이 되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연중 여러 가지 프로그램과 이벤트를 만들어 도민들과 문학애호가들이 즐겨 찾을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또한, 문학 애호가만이 아니라 사진, 미술, 음악, 연극 등 인접 예술인과 문학인의 협업을 통하여 그 결과물을 전시, 공연하고 제주문학관이 제주문화예술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제주문화의 산실이 되게 하겠다. ·장기적으로는 제주문학진흥계획수립을 위한 용역사업을 시행하고 제주문학관 부설로 레지던스 사업을 할 수 있는 창작관 건립도 준비해야 한다.

제주문학관은 문인들만이 아니라 제주도민의 문화 자산이다. 도민들이 자랑스러워할 공간, 제주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서 제주문학관 구성원뿐만 아니라 도민과 머리를 맞대어 지혜를 짜내야 하겠다. 아울러 행정적인 인력 보강과 재정의 뒷받침도 필수적이라 하겠다.

 

제주문학관이라는 판이 생겼다. 이제 시작이다. 잦은 발길과 성원 바란다.

 

제주특별자치도 도정소식지 <제주>(2021년 겨울호. 통권25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