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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정원을 산책하며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제주문학관

문학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강용준 2022. 6. 10. 08:46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 이론에 의하면 생리적, 안전의 욕구가 채워져야 상위 단계의 욕구가 생긴다고 한다. 우리가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고 한국소설가협회에 가입한 것도 사회적 욕구와 자기존중의 욕구를 거쳐 최상의 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 때문이라는 논리다.

 

제주문학관은 코로나로 엄중한 상황인 202110월 개관 하여 겨우 6개월이 지났다. 거리두기가 해제 되고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문학관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이도 자아실현의 욕구 층이 늘어났다는 방증이 아닐까?

그런데 아직도 문학관이 왜 필요한 지, 뭐하는 곳인지 묻는 사람이 꽤 있다.

문학관은 단순히 박물관처럼 문학 사료를 수집, 보관하거나 전시하는 공간만도 아니고 도서관처럼 도서를 열람하는 공간만도 아니다. 문학관은 분류상 박물관에 속하지만 그 기능은 박물관과 도서관 기능의 일부에 생산광장이라는 특수한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선대 문인들이 남겨놓은 문학 사료를 수집하고 풍화 변질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수장고에 보존한다. 그리고 필요한 학자들에게 연구물 자료로 열람 제공되고 그 결과물들을 세미나나 심포지엄을 통하여 발표하고 책자로 발간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주도하고 지원하며, 지속적인 과업수행을 위해 부설 문학연구소를 운영하기도 한다.

또한 그 지역 문학의 역사나 문학 속에 흐르는 작가들의 사상과 가치관들을 재조명하기 위하여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하여 박제화 된 문학작품들에 생명을 불러 넣는 작업을 하는 곳이 문학관이다.

 

제주문학관은 신생 문학관이라, 모든 사업이나 프로그램을 새롭게 만들어내야 했다. 학예사들도 처음 하는 일이고 도민들도 이런저런 프로그램에 호기심을 가지고 처음 참여한다. 그 중에서도 올 봄부터 시작한 제주문학아카데미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제주 문학의 뿌리와 원천을 재제로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강좌를 만들었는데 수강접수 개시 이틀 만에 제한된 모집 인원이 다 찼다.

문학으로 만나는 제주란 주제로 제주의 구비문학(신화, 전설, 민담, 무속, 민요), 고전문학 (유림, 기행, 유배), 제주어문학(서정, 서사), 제주의 근현대문학, 제주4·3문학, 바당 문학(해양, 해녀, 표류)과 현장답사의 내용으로 전, 후반기 각 12강 씩 24강을 계획하여 매주 1회 씩 진행하고 있다.

제주문학관을 방문한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주문학은 한국문학의 하위 개념이 아니라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독립적인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섬이라는 고립적 환경과 생존을 위한 자연과의 쟁투, 외부 침탈에 대항하는 역사적 토양에서 타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장르들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제주문학의 유니크한 정체성을 만든 자산들이다. 가령, 천지를 창조한 천지왕 신화, 제주를 창조한 설문대할망 신화는 구약 성경의 창세기, 그리스 신화 등과 비견할 수 있는, 제주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제주인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증좌다.

제주문학관은 매년 3회에 걸쳐 기획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1월에는 근현대 제주작가 회고전 시리즈, 4월을 기점으로 4·3기획전, 가을에는 특정 주제를 선정해 전시를 한다. 현재는 사월의 기억, 사월의 말이라는 주제로 소설가 오성찬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아울러 제주문학관에서는 미래의 문학인을 발굴하고 문학인들의 재교육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미 동화작가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함영연 작가를 초청하여 4월에 시행하여 5월까지 성황리에 끝냈고, 5월에는 임철우 작가를 초빙하여 소설 창작곳간 14강을 개설해서 8월까지 운영하고 있는데 문학애호가들의 반응이 뜨겁다.

앞으로 시, 시조, 희곡, 수필 등 전 장르에 걸쳐 중앙의 문인 혹은 전문가들을 모시고 강의를 개설하여 문학인구의 저변 확대와 신인 발굴에 촉매 역할을 하려고 한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집필실이 필요한 문인들을 위해 제주문학관 내에 창작공간을 마련하여 2개월을 단위로 기별 여덟 명의 문인, 예비 작가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시범 시행하고 있는 이 창작공간은 내년에 중앙의 보조를 받아 타지에서 오는 문인들에게 원룸을 임대하여 숙소도 제공할 계획이다.

제주, 제주인을 소재나 배경으로 한 이년 내 전국에서 출판된 문학 작품집을 대상으로 제주특별자치도문학상을 시상하기 위한 조례도 이미 만들었고, 2023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이밖에도 인기 있는 중앙 문인 초청 강연과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인들의 북 콘서트도 매달 정기적으로 시행하여 문인들과 문학 애호가들을 연결하는 사업도 펼치고 있다.

제주문학관은 문학의 이슈들을 선점하여 그 해결책을 연구하고, 문학인과 애호가들이 모여 토론하는 광장의 역할도 하려고 한다. 하반기에 한국 문학의 이슈를 주제로 한 제주문학포럼도 계획하고 있고, 10월에는 제주문학난장이라는 이벤트를 마련하여 타 예술장르와의 융합 프로그램도 펼친다.

자유롭게 드나들며 북 카페와 문학 살롱에 비치되어 있는 신간 문학 작품집과 장르별 정리되어 있는 유명 작품집들을 조용하고 안락한 공간에서 읽을 수 있고, 만남과 대화도 나눌 수 있다.

 

이처럼 제주문학관은 문학작품이나 문학인들을 연구하여 재조명하고, 수집하고, 전시하고, 교육하고, 창작하고, 출판하고, 체험하고, 토론하고, 대화하고, 향유하고, 신인 작가나 우수한 작품을 발굴하여 시상하고 타 예술 장르와 협업하면서 문학의 부가가치를 확장 시키는 플랫폼의 역할을 하고 있다.

문학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문학관에 가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소설 >275호 (2022년 6월호) 권두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