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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정원을 산책하며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제주문학관

제주도민도 모르는 '제주문학'이야기

강용준 2022. 9. 6. 13:31

월간 제주와 인물vol.19 (2022 09) 에서 전재

제주문학관 전경

전혜진 객원기자

 

제주 전역에 종일 퍼부은 비가 한여름 작열하는 열기를 식혀주던 8월의 어느 날, 한라산에서부터 이어진다는 제주문학관 뒤편의 하천은 졸졸 흐르던 평소의 모습과는 달리 흙빛이 된 물을 넘치도록 흘려보냈다. 강용준 제주문학관 관장은 개관 이래 이렇게 힘차게 흐르는 모습은 처음이라며 그 광경을 연신 자신의 휴대폰 카메라로 포착했다.

지난해 10월 제주시 연북로에 들어선 제주문학관은 그 부근을 지나는 이들의 시선을 한 번씩 잡아끌곤 있지만 많은 이들에게 아직까지 익숙하기보다 낯선 장소에 더 가깝다. 이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제주문인들이 염원하고 투쟁해온 시간이 무려 17년임을 안다면, 이곳은 설립 그 자체만으로 이미 기념비적인 장소가 아닐 수 없다. 강용준 관장은 2004년 최초로 출범한 제주문학관 건립추진위원회활동부터 시작해 그 이후로도 꾸준히 문학관 설립을 위한 노력에 동참해오다 제주문학관 초대 관장직을 맡게 됐다. 제주 출신 작가인 그는 제주문학을 전 세계에 내놓아 자랑할 만한 독특한 자산이라 강조한다.

 

의 특수한 문화 간직한 제주문학

제주문학관은 제주문학이라는 고유한 장르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고자 설립된 공공기관이다. 사실 제주문학이란 장르의 존재는 제주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게조차 생소한 것이 현실이다. 강용준 관장에 따르면 제주문학은 섬이라는 환경의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된 문학으로 역사와 성격에 따라 크게 구비문학 유배문학 제주어문학 바당문학 4.3문학 근현대문학 등으로 분류된다.

 

구비문학 전설 속 설문대할망은 바다 밑바닥의 흙을 삽으로 퍼 제주도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거인이다. 치마폭에 바다흙을 담아 한라산을 쌓았으며 이때 치맛자락에서 넘쳐흐른 흙더미가 수백 개의 오름이 됐다고 전해진다. 설문대할망 신화는 이른바 천지창조의 신화다. 이 밖에도 제주에는 하늘과 땅이 갈리며 세상이 시작됐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다수의 신화가 전승되어 오는데, 이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성으로 제주문학장르의 시작점이 되고 있다. 경기문학’ ‘전라도문학’ ‘충청도문학등은 없지만 제주문학은 존재하는 명백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구비 신화와 전설에 있다. 강용준 관장은 국내 뿐 아니라 아시아 문화권 전체를 둘러봐도 천지창조·천지개벽의 이야기가 구전돼 내려오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고, 이는 그리스로마신화 혹은 구약 성경에 가히 견줄 만하다고 말한다.

 

유배문학 유배문학도 섬이라는 특성에서 기인한 독특한 장르다. 육지와 차단된 제주는 유배지로서 최적의 장소였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모종의 죄를 지어 제주로 들어온 유배인들은 대체로 신분이 높고 머리가 좋은 이들이었을 터 이들은 제주의 독특한 문화와 찬란한 절경에 관한 감상, 또는 유배지에서의 소회 등을 문학작품으로 남기며 유배문학을 꽃피웠다.

 

제주어문학 소멸 직전의 제주어로 쓴 제주어문학은 제주어 보존을 위한 최후의 보루인 동시에, 토착 언어를 통해서라야만 비로소 완전히 표현해낼 수 있을 제주인의 정서를 가장 생생하게 담아낸다.

 

바당문학 예부터 제주도민들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이었다. 목숨을 담보로 한 물질로 자식들을 키워낸 해녀 이야기, 일하러 나간 바다에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뱃사람들의 이야기 속에는 제주도민의 역사와 한이 서려있다.

 

4.3문학 제주도민들에게 영원히 뼈아픈 4.3이 잊히고 말 불운의 사건으로 묻히지 않은 데에는 단연 4.3문학의 영향력이 결정적이었다. 소설가 현기영의 순이삼촌(1978)4.3문학의 출발점이다. 서슬 퍼런 군사독재정권에서 현기영 작가는 금기시되어온 4.3이란 주제를 세상에 내어놓음으로 인해 모진 고문을 받아야 했고 책은 금서가 됐다. 이 책을 읽었다는 사실이 적발되면 모두 철창신세를 면치 못했던 암흑의 시기를 지나, 제주 출신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부르짖는 그날의 기억은 대대로 역사에 남게 됐다.

 

근현대문학 본토와 단절된 섬 제주는 근대화와 산업화도 여타 지역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제주의 산업화는 감귤농업과 관광개발 등으로 대표된다. 이를 새로운 삶의 기반으로 삼게 된 제주도민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장르가 근현대문학으로 분류된다.

 

제주문학관 2층 상설전시실에서는 제주문학을 이루는 이 모든 장르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도록 각 장르의 특징과 대표작 등을 소개하고 있으며 입장 및 관람은 무료다.

 

1층 기획전시실
1층 북카페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의 아고라가 될 제주문학관

강용준 관장은 "문학관의 존재 유무는 해당 도시의 문화적 성숙도를 가름할 수 있는 요소"라 말한다. 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도서관, 영화관, 미술관 등 다양한 공공예술시설이 필요하겠지만 글자를 매개로 하는 문학은 그 자체로 역사를 내포하고 있기에 문학관의 존재 여부는 해당 도시가 문화 전반을 중시하는지를 증명할 수 있는 특성이라고 강 관장은 설명했다.

강 관장은 "문학관의 성패는 자료를 수집하고 보관하는 단순 기능을 넘어 얼마나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새로운 문학적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지에 달렸다"고도 덧붙였다. 이를 위해 제주문학관은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드는 아고라(Agora), 즉 광장이 되고자 한다.

현재 제주문학관은 제주문학 관련 다양한 자료를 수집·보관하는 박물관의 역할, 시민들이 다양한 도서를 자유롭게 읽고 쉬다 갈 수 있도록 하는 도서관의 역할, 유명 문인이나 강사를 초청해 제주문학 혹은 문학 전반에 관한 강연을 여는 강연장의 역할, 신인 문인 양성을 목표로 훈련을 제공하는 교육기관의 역할, 기성 작가들이 집필할 수 있는 창작 공간의 역할을 모두 수행하고 있다.

올해 3월 시작한 제주문학 아카데미는 제주문학에 관심을 둔 이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 프로그램이다. 상반기에는 구비문학과 제주어문학, 하반기에는 바당문학, 4.3문학, 근현대문학을 다루고 상하반기 각 12강으로 구성됐다. 강용준 관장은 이처럼 제주문학을 하나의 큰 틀로 보고 여러 하위 장르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소개하는 교육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의의를 설명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내년에도 이어질 예정이며 이 밖에도 다양한 기획전시와 문학 강연을 개최해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이는 아고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제주문학관은 타 지역의 대다수 문학관이 주로 유명 시인이나 소설가 개인의 이름을 따 작가 개인의 문학적 자산을 보존하는 방식인 것과는 달리,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규모의 종합 문학관이란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문자가 없던 시대의 설화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 시대를 통시적으로 아우르며 모든 장르를 포괄하는, '제주문학'의 진정한 보고(寶庫)인 셈이다.

 

2층 상설전시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3층 문학살롱

 

바다와 4.3은 제주문인의 숙명

  강용준 제주문학관 관장

 

Q. 문인으로서 걸어온 길을 소개해주세요.

1987년 희곡으로 등단했는데, 희곡 습작을 시작한 건 대학교 1학년 때부터였습니다. 극작가가 되고 싶어 극단에서 연극을 배우며 꾸준히 습작을 했고 습작한 작품을 무대에서 상연하고 잡지에 발표도 하던 중 15년 만에 등단했습니다. 등단작은 해녀들의 이야기였고, 제주 출신만이 다룰 수 있는 이 주제가 먹혀들었다고 생각합니다. 1996년에 발표한 폭풍의 바다4.3 이야기인데 이 역시 특수한 주제 덕에 큰 호응을 얻고 수상의 영예도 안았던 거라 생각해요. 문학적 자산이 많은 제주에서 태어난 것이 큰 행운이라 여기고 있어요.

 

Q. 전업 작가 생활을 하셨나요?

제주여상 교감으로 명예 퇴직하기까지 34년간 교편을 잡았습니다. 서울에서 시작한 교직 생활을 제주에서 마무리했죠. 1978년에는 제주 최초의 극단인 극단 이어도를 창단했는데, 낮에는 학교로 출근하고 저녁엔 극단에서 연극을 가르치는 생활을 20여년 하다가 제자들에게 물려준 뒤론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퇴직 후에는 희곡이 아닌 소설을 쓰고 있어요. 아무래도 희곡은 시대의 요구를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가 많고 관객도 젊은 층이 많은데, 나이가 들면서는 젊은 세대의 욕망과 욕구를 감각적으로 쓰기 어려워지더라고요. 그래서 소설을 돌파구 삼아 10년째 소설을 집필하면서 4권의 소설집을 발표했습니다.

 

Q. 처음부터 제주를 소재로 작품을 쓰셨나요?

제주 사람들은 제주가 좋은지 잘 몰라요. 제주만의 이야기가 얼마나 큰 경쟁력이 있는지도 모르죠. 저 역시 그랬어요. 그런데 해녀를 주제로 한 제 작품을 읽고 한 교수님이 제게 당신은 남들이 쓸 수 없는 것을 쓸 수 있다며 서울에서 교직 생활 중이던 저더러 제주로 돌아가 제주를 쓰라 조언하셨어요. 이를 계기로 귀향해 교사 생활을 하면서 제주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썼어요. 앞서 언급한 폭풍의 바다4.3을 다룬 최초의 희곡이었습니다.

 

Q. 앞으로는 어떤 것을 주제로 집필을 이어갈 계획이신가요?

제주에서 시작한 나의 작품은 제주로 끝날 것 같아요. 지금도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아요. 제주는 말의 고장이기도 하잖아요? 조선시대의 한 헌마공신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이를 주제로 소설을 써보고 싶어 자료 조사 중이에요. 현대사적으로는 재일교포와 조선족 등 경계인에 관심이 많아요. 그들은 한인의 뿌리를 갖고 있지만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해 완전한 한국인도, 완전한 일본인·중국인도 아닌 경계에 서 있죠. 지난해 발표한 제 소설 제주랩소디는 조선족인 주인공이 제주에 정착하는 내용이에요. 이처럼 경계인의 이야기를 다루되 제주는 반드시 연관돼있죠. 재일교포 이야기의 경우 4.3과 연관된 간첩단 사건을 주제로 써보고 싶어요. 사실 4.3은 이젠 너무나 헤어나고 싶은 주제예요. 하지만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쳐도 모든 소설의 기어코 어느 한 부분은 4.3으로 연결되더군요. 제주 사람들에게 4.3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자 숙명 같은 화두일 거예요. 또 앞으로 우리가 숙명으로서 가져가야 할 주제는 바다죠. 국내에서 해양문학을 잘해낼 수 있는 곳은 제주뿐이지 않을까요? 제주문인들은 필연적으로 이를 다뤄야 해요. 우리 어머니, 우리 할머니의 삶은 거기에 있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