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큐슈지방을 부관페리로 다녀왔다.
어렸을 적 제주에서 부산까지 14시간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그 때 제주바다를 다 벗어나기도 전에 멀미로 구토를 심하게 한 경험이 있어서 배라면
넌덜머리가 났다.
그리고 배에 대한 기억은 최근까지 좋지 않다.
몇 년 전 추자도에 갔을 때도 그랬다.
갈 때는 바다가 잔잔해 즐겁게 떠들며 갔으나
올 때는 바다가 사나와져 배를 탈 때부터 울렁거리더니 제주에 내리는 순간까지 멀미와 고투를 치렀다.
그런데 현해탄을 건너는 일이고 전장 140미터가 넘는 초대형 여객선이라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흔쾌히 여행에 동참했다.
정말 움직임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캄캄한 밤을 배는 미끄러지고 있었다.
현해탄.
그 희곡작가 김우진과 가수이며 배우인 윤심덕의 지상에서 못다 이룬 사랑을 너그럽게 끌어안은 바다.
일본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관부 연락선에서 그 둘은 현해탄에 몸을 던져 사랑을 완성했다.
한밤중 갑판에 나와 검푸른 바다를 보았다.
선상의 불빛에 부서지는 파도만이 그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1박 4일의 여행 중에 태제부와 아소산을 본 게 전부다.
그나마 운이 좋아 활화산의 연기가 짙게 피어오르는 아소산 분화구 밑까지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밤새 폭설이 내렸다.
제주도보다 아래에 위치한 구마모토에 몇 십년 만에 눈이 내렸다.
다음날 아침, 큐슈는 하얀 눈에 점령 당했다.
차창 밖으로 눈을 머리에 인 야자나무가 신기하다.
거리에 선 나무들은 가지마다 온통 하얗게 질려 있었다.
시모노세끼로 통하는 고속도로는 통제되고,
국도를 따라 늘어선 차량의 행렬은 우리를 길 한가운데 꽁꽁 묶어놓았다.
모든 일정은 취소되고
배 시간에 맞춰 항구에 다다를 수 있을까하는 인솔자와 가이드의 위기감.
그러나 일행들을 태운 버스 안은 그런 상황을 애써 무시하듯 흥겨운 이야기로 질펀했다.
일정이 취소 돼도 불평하는 사람 하나 없다.
정겨운 사람들끼리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여행은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게 어디 여행뿐이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면 막다른 절벽 윈들 두려울까?
김우진과 윤심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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