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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옹달샘

2025년 가을의 기도

강용준 2025. 11. 6. 09:35

 

2025년 가을의 기도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는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가을에 읽어야 제맛이 난다.

특히 인생 백세의 가을을 넘어서는 요즘에는 마지막 구절이 울림으로 다가온다.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뜨거운 햇살에 엿가락처럼 늘어졌던 일상이 스산한 찬바람이 불면서 다시금 단단해진다.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지난 여름은 위대했습니다라는 릴케의 싯구처럼 나의 여름은 위대했을까?

지나온 과거에 더 많은 생각과 미련이 남는 것을 보면 이제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런데 나이듦을 인정하지 못해서 상처받는 일이 또 있다.

 십여 년을 한결같이 매년 2~3개월 씩 집을 떠나 강원도 인제에서 마라도까지 창작집필실을 찾아다녔었는데, 금년에는 두 군데 입주신청서를 넣었는데 다 떨어졌다. 새로운 문인들을 위해 양보하라는 위로가 있었지만, 이젠 나이가 들었다고 밀려난다는 생각에 상심하게 된다.

 내가 자택 서재라는 집필 공간을 놔두고 전국의 집필실을 찾아다니는 이유는 안존함에 머무르지 않고 불편함과 외로움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다. 세상 일에 간섭하지 않고 관심에서 멀어지기 위해서다. 오로지 작품에 일념으로 집중하기위해서다. 새로운 작품은 낯선 공간, 환경에서 쓰자는 게 신조다. 그래서 내 책은 주제와 내용이 다른 것처럼 집필 장소, 퇴고 장소가 다 다르다.

 

  교직을 조금 일찍 정리했을 때, 난 다섯권의 희곡집(위 사진 오른쪽에서 순서대로)을 출간했다. 등단 25년에 희곡집 다섯 권이라는 건 좀 부끄러웠다. 핑계를 찾자면 직장과 연극 활동을 겸업하다 보니 작품 쓸 시간이 부족했고, 또 희곡집을 내도 팔리지도 읽는 사람도 없다는 거다.

 조기 퇴직을 마음 속에 두면서부터 인생 2막을 계획했다. 그리고 주변에 친지, 문우 등을 불러서 명퇴 기념회라는 것을 열고 전업작가를 선언(?)했다. 앞으로 소설을 쓸 것이며 열 권의 책은 채우겠다는 목표까지 공언했다. 그래야 들판을 어슬렁거리는 방탕아가 아니라 문학에 나를 옭아맬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리고 십여 년이 흐른 지금 열 권을 넘어 15권의 문학책을 출간했다. 희곡집 8, 장편소설 4, 단편소설집 2, 칼럼집 1권이다.

 

  어느 문학 애호가가 그렇게 문학에 대한 열정을 지속적으로 견지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내게 물었다.

 난 대답했다. ‘부지럼함과 끈질김그리고 인간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그것에 답을 구하기 위하여 난 매일 문학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문학가는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서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문학인인가를 매일 자문해야 한다. 하루라도 독서를 하지 않으면 입 속에 가시가 돋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하루라도 글을 쓰거나 읽거나, 인간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문인이라고 하지 마라. 그게 문학인에게 주어진 소명이다.

 

 나는 이 가을에 다짐한다. 앞으로 4권은 더 상재할 생각이다. 19권 정도면 문학인으로서의 책무, 후원해 주신 분들에게 대한 보답은 한 것이 아닐까? 그러한 연후에 여력이 있다면 그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서 매일 스스로 채근하며 인생을 여행해야겠다.  그 여정에 명징한 의식과 두 다리로 꼿꼿하게 걸을 수 있는 건강이 허락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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