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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옹달샘

정미주의 맛있는 도서관

강용준 2026. 6. 15. 17:02
맛있는 도서관 <7>

​​​​​​​강준의 장편 소설 『말은 욕망하지 않는다』를 중심으로

1. 사실과 허구의 결합, 팩션의 미학
2. 말(馬), 욕망을 매개하는 상징 체계
3. 욕망의 이중 구조와 권력의 자기 증식
4. 알레고리 서사의 확장과 현재적 성찰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 보내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제주가 자연적으로 말을 키우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는 걸 보여 준다. 지금도 목장이나 오름에서 유유히 풀을 뜯는 말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척박한 섬에 적응한 제주마(馬)는 과하마(果下馬) 또는 토마(土馬)로 불리며, 작은 체구지만 강인한 체력을 지녀 밭을 갈고 짐을 나르던 거의 유일한 이동 수단이자 노동력이었다. 말(馬)은 섬의 역사와 제주인들의 삶이 응축된 상징적 존재이다.

강준의 장편 소설 『말은 욕망하지 않는다』(2025.강준)는 조선시대 조정에 전마(戰馬)를 바친 김만일의 삶과 보이지 않는 공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조선시대 마정(馬政) 중심지로써의 제주의 입지와 말을 키워내는 테우리들의 실정을 소설로 잘 구현해 냈다. 역사적 사실에 그친 것이 아니라 말 목장을 운영하는 김만일 집안을 체계적으로 구조화하고, 역사적 사실과 창작한 서사, 제주 지형의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작품의 탄탄한 구성으로 개연성을 높였다.

작가는 역사의 진실성을 살리기 위해 많은 사료와 연구 논문, 현지답사를 통해 자료를 수집했다고 한다. 김만일에 대한 기록이 ‘생략되거나 멸실한 부분을 소설로 되살려’ 조선 후기 살아있는 제주인의 삶을 구현하여 독자들이 서사에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 작중에서 김만일 이외의 인물들은 거의 창작된 허구의 인물들이지만 당시 제주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도 육지에서 온 목사들의 수탈을 통해, 처참한 백성들의 모습과 변방으로써의 제주의 상황을 잘 드러내고 있다.

작품에서 말(馬)은 제주 지역의 복합적 상징물이자, 김만일의 가치를 투영한 매개체로 작용한다. 이러한 김만일과 말(馬)의 관계를 통해 작품에서 말(馬)의 상징성을 고찰하며 작가가 역사를 소설로 구현한 가치를 조명해 보려고 한다. 전마(戰馬)를 키워내고 임금에게 말을 바치는 헌마(獻馬) 행위를 통해, 공공의 가치를 실현하는 김만일의 사회공동체적 욕망과 제주에 부임한 탐관오리들의 착취를 통해 왜곡된 개인의 욕망 대비가 이뤄지는 서사 구조를 살펴보려고 한다.


1. 사실과 허구의 결합, 팩션의 미학

 현실에서 일어난 역사를 소설화할 때, 사실에 기반한 진솔함이 주는 감동은 순수한 창조성이 만들어내는 감동보다 더 깊게 다가올 수 있다. 이러한 서사는 사실과 허구가 결합된 ‘팩션(faction)’의 성격을 지니며, 역사적 사실이 지닌 무게 위에 서사적 상상력이 덧입혀질 때 독자는 보다 입체적인 감정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전적으로 작가의 상상으로만 쓰여진 ‘픽션(fiction)’과 구별되며, 팩션은 사실의 진실성과 허구의 서사성을 동시에 작동시키는 방식으로 현실 인식의 깊이를 확장한다.

 제주도의 역사적인 사건을 다룬 작품 중에서 4·3 사건을 소재로한 작품들이 있다. 현기영 작가의 「순이 삼촌」은 1978년 출간될 당시, 이념의 문제로 금기의 역사를 다뤄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며 증언 문학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최근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 또한 제주 공동체의 역사인 4·3 사건을 현재로 끌고 온다. 이 작품은 역사가 개인에게 남기는 흔적을 통해 개인의 트라우마와 역사적 폭력성을 생각해 보게 한다. 이 작품들은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했지만 픽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4·3 사건을 제재로 하지만 가공의 인물과 사건을 구축하여 4·3의 역사를 이해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반면 『말은 욕망하지 않는다』는 조선시대 헌마공신 김만일을 중심으로 실제 역사의 진실성을 강조한 팩션이다. 김만일(金萬鎰, 1550~1632)은 역사 속 실존 인물로서, 조선이 위기에 처했을 때 나라에서 필요한 전마(戰馬) 수천 필을 바쳐 고위 관직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이러한 그의 행적은 주로 『조선왕조실록』 등 관찬 사료는 물론, 이외의 사찬 사료(김관철. "역사인물자원으로서 김만일의 생애와 헌마 업적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제주대학교 사회교육대학원, 2021. 제주특별자치도)에도 산재해 전하고 있다.

 제주도에서 역사상 가장 높은 관직에 제수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제주도민들은 김만일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김관철의 연구 논문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인지도가 약 29%정도 된다.) 작가는 김만일의 일생을 소설로 끌어들여 잊혀서는 안 될 인물을 재조명했다. 

 이처럼 김만일은 제주에서 양마(養馬) 사업의 기틀을 마련한 사업가이지 국가의 위기 상황에 수천 여필의 말을 헌마(獻馬)한 보이지 않은 공신이었다. 이러한 김만일이라는 인물을 작가는 소설로 소생시켜,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적인 공로와 제주인들과 공존하고자 했던 인간적 면모를 부각했다. 

 이 작품의 가치는 조선 중기의 제주 도민들의 살아있는 삶을 재현한 데 있다. 특히나 집을 짓고 지내는 성주풀이, 말 증식을 기원하는 마불림제 등 샤머니즘 요소를 통해 당시 제주의 문화를 사실적으로 구현했다. 집안의 대소사의 점을 치는 무녀(모지리네)를 통해 제주의 샤먼 신앙에 기반한 문화를 잘 드러냈다. 또한 인물들의 제주 사투리로 지역적 정체성과 향토적 리얼리티를 잘 구현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질인 욕망의 감정을 김만일의 행위를 통해 공동체의 욕망으로 구현되는 감정과 개인적 욕망이라는 본성을 윤리적 가치로 대비시키는 이중서사 구조를 소설 장치로 드러내다. 윤리적 가치를 실현하는 김만일과 사적 탐욕을 드러내는 탐관오리들을 대조적으로 구조화하여 현대의 독자들에게 인간의 본질을 생각해보게 한다. 작품은 욕망의 이중 구조를 드러내는 알레고리 서사로서, 영웅 중심의 역사 서사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는 공헌과 구조적 현실을 드러내며 인간의 윤리와 권력 구조를 성찰하게 한다. 결국 작가는 김만일과 말(馬)이라는 역사적 소재를 바탕으로 한 팩션의 방식을 토대로 욕망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서사에 투사한다. 이렇게 팩션의 형식은 독자들에게 사실의 신뢰성을 바탕으로 허구보다 더 진실하게 다가갈 수 있다. 


2. 말(馬), 욕망을 매개하는 상징 체계

이 작품에서 말(馬)의 다층적 상징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말은 역사·경제·정치의 복합적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다음을 보면 김만일이 벼슬을 마다하고 양마(養馬) 사업을 하게된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중림(김만일의 호)은 과거에 급제하여 ‘전라좌도수군절도사영 순천도호부 방답진첨절제사’ 교지를 받고 여수 돌산도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병조참의 성창륜 대감을 만나 벼슬을 버리고 또 다른 대의를 이루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 제주가 왜 말의 고장인지는 알고는 있소?
참의대감이 제주 섬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 고마웠다.
- 과문한 탓으로 자세히 들은 바가 없습니다.
- 하늘의 별들을 28개 구역으로 구분하고 대표적인 별들을‘수(宿)’라고 하지요. 그들을 7개씩 묶어 동서남북 4개 방향으로 나누었는데 이들 중 맨 처음 등장하는 동방 7수의 별자리를 연결하면 용 모양이 되므로 이를 청룡 7수라 했소. 이 청룡 7수 가운데 네 번째 별자리가 방성인데, 방성은 네 필의 말이 하늘의 수레를 이끈다 해서 천사방성(天駟房星)이라 부른다오. 제주는 예로부터 천사방성이 비추는 말의 섬이요.
- 그렇습니까? 섬에서 태어나고 자랐어도 방성 얘기는 처음 듣습니다. 

                                                         -본 책 48쪽-

 두 인물의 대화를 보면 ‘네 필의 말이 하늘의 수레를 끄는 천사방성’이 비추는 섬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는 제주는 ‘말의 섬’의 천부적 운명을 짊어진 곳이라는 신비성을 부여한다. 그뿐만 아니라 말을 키우기에는 최적화된 천혜의 자연 조건도 빼놓을 수 없다.

- 들어보시오. 섬에는 우선 맹수가 없지 않소? 말은 겁쟁이어서 맹수가 있다면 사육하기가 쉽지 않지. 그리고 사방이 바다로 둘러써여 외부와 차단된 환경 때문에 말이 도망치거나 도적으로부터 방어가 용이하고. 또한 비가 많이 내려 산림이 무성하며 한라산에서 내린 물은 약수가 되고, 더덕, 우엉 같은 각종 약초가 자생하니 말들이 그것을 먹어서 튼튼하지요. 해풍에 실린 염분의 영향으로 목초가 왕성하게 발육하기에 우량한 말을 육성할 수 있어요. 몽골은 그걸 진작 알고 있었단 말이지.
 증림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경험한 다른 이유를 들었다.
 - 말은 방목하여 키우는데 그들은 무리 지어 다닙니다. 경험이 많은 테우리들은 시절에 따라 말이 어느 지경에 있을 것이라는 걸 안 보고도 알 수 있습니다. 오름에는 키큰 나무가 없습니다. 해서 꼭두에 올라서면 만들이 어느 곳에 있는지 관리가 용이하고 평탄한 들판과 야트막한 언덕, 자갈투성이 흙길은 말을 단련시키기에 좋습니다.

                                                       -본 책 49∼50쪽-

 제주는 초목이 무성하고, 해풍의 영향으로 약초와 목초가 무성하니 말 사육에 최고의 입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방목하면서 전문성을 갖춘 테우리들이 말을 관리하고, 언덕과 돌투성이 흙길이 말을 단련시키기에 좋다는 것이다. 

 제주도는 화산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토양이 거칠고 바람이 강해 농경 조건이 열악한 편이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인간의 노동력만으로 농업 생산을 유지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말은 밭을 갈고 물자를 운반하며 이동을 돕는 필수적인 존재였다. 작품에서 김만일은 전쟁에 필요한 기승마(騎乘馬), 파발마(擺撥馬) 외에도 짐을 나르는 태마(駄馬)를 함께 키운다. 제주 고유의 말 품종은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강인한 체력과 뛰어난 적응력을 지니고 있어,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안정적인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었다. 

 제주도에서 본격적으로 말을 키우기 시작한 것은 고려 전기로 본다. 삼별초의 난 이후에 원나라는 탐라를 직할령으로 삼았고, 제주도는 원나라의 간섭을 받던 시기에 ‘탐라총관부’가 되었다. 고려 원종과 충렬왕 시기에 제주에 목마장을 설치하고, 몽골말이 들어오며 말 생산을 강화해 원의 말 수요를 충당하는 등 군사·경제적 통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조선 시대 제주도는 군사용 말을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말은 군사력의 핵심 요소였으며, 기병 전력의 유지와 확대는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이었다. 작품에서도 ‘세종 때 제주에는 10개의 국마장을 두었고 한 때 제주의 국마장에 2만여 마리의 말이 있었고 말에 딸린 사람도 2천여 명’(9쪽)이 됐다고 한다. 임진왜란 이후 전쟁으로 제주 외 다른 지역의 국마장이 피해를 보았기 때문에 김만일이 나라에 바친 말이 나라를 지키는 공을 세우게 된 것이다. 이렇듯 제주에서 생산된 말은 단순한 지역 특산물이 아니라 국가 운영에 필수적인 자원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병조참의 대감과의 대화를 통해 깨닫게 된 중림은 자신이 해야 할 대의가 외세의 침략에 대비한 제주 말의 종자를 개량해 전마(戰馬)를 키우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실행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말(馬)은 인간과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존재이다. 중림과 동고동락한 그의 말 ‘돌사니’는 깊은 정서적 교감을 나눈 동반자와도 같다. 장인에게 선물 받은 돌사니는 여수 돌산도에서 나랏일을 할 때도 함께하고, 그가 목숨을 걸고 한라산 중턱에서 눈에 고립된 말들을 찾으러 갈 때도 동행한다. 무엇보다 중림이 세상을 떠날 때도 함께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 못지않게 깊은 정을 나눈 존재라는 걸 알 수 있다.

 -경헌디 아부지. 아버지 말이 수천 마리나 이신디. 그까짓 말 세 마리 때문에 이치록 고생하는 이유가 뭐우꽈?
 인호의 질문에 중림은 코로 연기를 내뿜고 나서 궐련 꽁초를 눈 위에 꼽아 끄며 웃었다.
- 말은 우리 사람을 위해 고생하지. 작게 태어나면 작은 대로 수레를 끌고, 빠르면 파발마로, 튼튼하면 군마로 전쟁에 나가기도 하고 걸음을 대신하여 사람을 옮겨 주기도 하지. 그리고 죽어서도 인간을 위해 제 한 몸을 바친다. 가죽, 말총에서부터 살, 뼈까지 하나도 버릴 게 없다. 말은 죽어버리면 한 마리지만 살아 있으면 열 마리 스무 마리도 될 수 있다. 말도 자식인데, 너라면 많다고 해서 길 잃은 자식을 버리겠니?
- 경헐 수는 어십주 마씸. 생명은 소중한 거니까.
- 그래. 나를 여기로 이끈 건 욕망이다. 욕망은 언제나 심장을 뜨겁게 하지. 삶의 활력도, 인고의 투지도 다 욕망에서 나오는 거야. 욕망이 없으면 새날도 그리움도없다. 
 인호는 욕망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동정이라 생각했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본 책 177-178쪽-

   중림과 아들 인호는 겨울에 한라산에서 방목하다 눈 때문에 돌아오지 못하는 세 마리의 말을 구하러 간다. 그때 인호는 아버지 중림이 수천 마리의 말이 있는데도 자칫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중림의 생각을 보면 말은 자원적 가치도 있지만 ‘자식’처럼 생각하는 깊은 정서적 관계를 맺은 존재라는 걸 알 수 있다. 즉, 말은 실용적 가치와 정서적 유대가 결합한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말은 죽어버리면 한 마리지만 살아 있으면 열 마리 스무 마리도 될 수 있다.’라는 중림의 말은 양마(養馬)를 통해 대의를 이루려는 신념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핵심은, 말(馬)은 욕망의 투영 대상이라는 것이다. ‘나를 여기로 이끈 건 욕망이다. 욕망은 언제나 심장을 뜨겁게 하지. 삶의 활력도, 인고의 투지도 다 욕망에서 나오는 거야.’라는 말을 통해 사적 욕망이 아닌,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자기초월적 의지를 말(馬)을 통해 구현했다고 볼 수 있다. 공들여 키워낸 수백, 수천 마리의 전마(戰馬)를 국가를 위해 헌마하는 그의 행동은 자기초월적 의지가 숨겨진 공로로 구현된 것이다.

 이처럼 말(馬)은 국가 운영을 뒷받침한 전략 자원, 인간과 정서적 유대를 맺은 존재, 신념의 투영 대상으로써 다층적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복합적 가치는 제주라는 특수한 환경과 역사적 경험 속에서 형성된 결과이다. 말(馬)은 단순한 동물 이상의 존재로 써 작품의 주제를 이해하는 중요한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다.
 

3. 욕망의 이중 구조와 권력의 자기 증식

 임진왜란 이후 국토가 황폐해지고 혼란스러운 정세가 이어지면서 민중들의 삶은 점점 팍팍해졌다. 작품에서도 이미 임진왜란 이전부터 동인과 서인의 당파 싸움으로 병조판서 율곡의 ‘십만 양병설’을 가볍게 여겨 왜적의 침입에 대한 대비는 없었던 상황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조정이 이러하니 지방 수령들의 횡포와 수탈은 극에 달했다. 작품에서도 드러나지만, 제주에 부임한 목사, 판관, 수령들은 이곳을 ‘유배지’라 여기며 섬사람들을 괴롭히기 일쑤였다. 

 중림은 그의 대의를 이루기 위한 운명인 것처럼 백마를 비롯한 그 말의 무리를 거두게 된다. 방목하는 말 중에 무리를 이탈해서 수컷을 중심으로 집단을 이루는 ‘곶말’ 중, 백마의 무리 여든 여덟마리를 키우게 된다. 이성계와 조선 건국의 업적을 함께한 여덟 마리의 말 가운데 백마인 ‘응상백’의 혈통으로 보이는 말의 무리를 거둔 것이다. 목관에서 온 형리들은 중림을 잡아 가두고 연고 없는 말을 국마장으로 보내지 않았다는 명목으로 여든여덟 마리를 수탈한다. 이러한 이면에는 권력의 논리가 그대로 드러난다. 무엇이 공적인가를 결정하는 기준 자체가 이미 권력 쪽에 기울어져 있는 것이다.

‘버새는 말이 아니다. 수탕나귀가 암말과 교배를 시키면 노새가 태어나지. 노새는 힘이 좋아 주로 힘쓰는 일에 이용할 수 있거든 그런데 수말과 암나귀가 교미하면 버새가 태어나는데 이놈은 체격도 작고, 체질도 약하고, 성질도 어찌 사나운지 거기다 사내구실도 못 해. 아무 쓸모가 없는 놈이지.’

-본 책 106쪽-

 작품에서 ‘노새와 ‘버새’로 은유되는 존재들을 볼 수 있다. ‘노새’는 척박한 환경과 관리들의 수탈에도 꺾이지 않고 강인하게 살아가는 제주인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버새’는 탐욕으로 타락한 관리에 대한 풍자이다. 권력자에게 아첨하며 앞잡이 노릇을 하는 양시훈, 모친상 중에도 기방을 출입하던 송 판관, 뇌물을 받으며 과세로 축재를 일삼은 성윤조 목사, 재물에 눈이 멀어 수탈을 일삼은 이종생 판관, 좋은 말을 사정없이 약탈하는 양휘 목사 등이 있다. 이들은 버새처럼 쓸모없을 뿐만 아니라 거머리같이 백성들의 고혈을 착취하는 ‘버새’의 범주 안에 놓인다. 존재 자체가 공동체에 기생하는 방식으로 유지되는 사람들이다. 

 더 가혹한 것은 그들의 행위가 단순한 개인 비리가 아니라 권력 구조 속에서 반복된다는 점이다. 지방의 관리들은 중앙의 관리들에게 뇌물을 바치기 위한 수탈을 했다. 그러니 이런 부조리한 권력 구조 안에서 희망을 꿈꾸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탐관오리들은 사목장에서 키우는 말을 탐내며 수시로 앗아가고, 공물로 바쳐야 하는 귤의 할당량을 내지 못하면 태장을 가하고 엄벌을 내렸다. 좀수(해녀)들도 호구(戶口)당 거두던 건해삼과 건전복을 일 인(一人)당으로 바꾸니 도민들의 삶은 피폐했었다.  

 이처럼 제주에 부임한 탐관오리들은 동일한 권력 구조 속에서 중림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욕망을 표출한다. 이들은 권력을 사적 이익을 위한 도구로 전유하며, 말과 백성을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러한 모습은 조선시대 중앙집권적 관료 체제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유교적 민본 이념을 표방하는 국가 체제는 제도적으로는 공공성을 지향하지만, 실제 지방 통치 현장에서는 이러한 윤리적 질서가 무시됐다. 조정과 거리가 먼 제주로 부임한 관리들은 지방으로 좌천됐다는 것을 보상받으려는 왜곡된 권력으로 인해 사적 욕망을 스스로 정당화했다.

 반면, 김만일의 욕망은 제주 지역과 국가라는 공동체에 헌신하는 욕망으로 드러난다. 그는 씨수마를 착취당한 개인 목장에 자신의 씨수마를 조건 없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우량마를 확산하고 기마병을 육성하기 위해 경마대회를 열어 자신의 씨수마를 부상으로 주었다. 

- 사람은 근본을 알아야 하네. 내가 무엇 때문에 이 사업을 하고, 누구 때문에 돈을 버는가? 재물은 죽어서 가지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잠시 내가 맡아 있는 것 뿐일세. 난 이 섬에 많은 빚을 졌어. 이 짭잘한 공기, 맛있는 물, 무성하게 자라준 풀, 그리고 말을 돌보고 키우는 사람들 덕에 내가 이만큼 성공한 것 아닌가? 나 혼자 풀 한포기 나지 않은 섬이었다면 가능했겠는가? 은공을 갚는 건 인간의 도리 아닌가?

-본 책 205쪽-

 ‘섬에 많은 빚을 졌다’는 중림의 생각을 통해 그가 제주의 공동체적 가치를 자신의 대의로 구현하려는 마음을 알 수있다. 그는 아버지의 초상을 치를 때 모든 조문객에게 부조금을 일체 받지 않았다. 굶어 죽는 사람도 많았던 궁핍한 당시의 상황에서 타지의 이방인들에게도 따뜻한 음식를 대접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주편-돌하르방 어디 감수광』에서 유홍준은 “김만일의 헌마는 김만덕(金萬德)의 구휼(救恤) 못지않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자신의 부를 나누어 써야 한다는 제주 사람들의 각별한 생각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인류학적으로 규명해볼 만한 일이다.”라고 했다. 그가 재산을 나누는 행위는 단순한 기부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공동체와 공존하기 위한 행위이다. 

 말을 사육하고 이를 국가에 헌마하는 행위는 단순한 공납이나 개인적 입신의 수단으로 보기 어렵다. 그의 행위는 제주라는 지역 공동체가 유지해 온 생산 방식과 생존 전략을 국가적 차원으로 확장하는 과정이자, 공동체의 가치를 보존하는 실천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제주에서 말은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생업의 기반이자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자원이었으며, 이를 체계적으로 사육하고 관리하는 일은 곧 공동체 전체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만일이 제주 지역에 행했던 나눔과 헌마 행위는, 공동체가 축적해 온 노동과 시간,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를 공적 영역으로 확장하는 실천이다. 즉, 그의 행위는 공동체의 생산력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그것을 사적으로 독점하지 않고 공공의 가치로 전환한다는 점에서 사회 공동체적 윤리를 실현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김만일의 공동체 가치를 실현하려는 의지는 종마를 훼손하는 장면에서 극대화된다. 목사가 씨수마와 종마를 가리지 않고 수탈하자 중림은 제주 말의 품종 보존을 위해 종마들을 자신의 손으로 훼손하는 역설적인 행위를 한다. 이 장면은 조선 후기 탐관오리의 횡포를 보여주는 정약용의 시 ‘애절양(哀絶陽)’을 연상시킨다. 이미 죽은 이에게도 군포를 징수하는 백골징포와 갓난아이에게 징수하는 황구첨정이 횡행했다. 삼정의 문란을 견디지 못한 양민이 자신의 양근을 자르는 비극을 통해 비참한 백성들의 애환을 표현한 시이다. 중림 또한 자식 같은 말을 제 손으로 훼손해야 하는 비참함 속에서 나라에 바치는 양마(良馬)를 보존하기 위한 굳은 결의를 보여준다. 이는 탐관오리의 수탈로 인한 양민들이 겪는 가렴주구의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대업을 실현하려는 그의 절박한 분투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미학적 성취는 바로 이 대비 구조에 있다. 김만일의 욕망이 공동체를 향해 확장되는 ‘자기 초월’의 양상을 보인다면, 탐관오리들의 욕망은 권력과 재물에 수렴되는 ‘자기 집착’의 형태를 띤다. 동일한 매개물인 말(馬)을 둘러싼 행위가 한쪽에서는 공공의 가치를 실현하는 수단이 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착취의 존재가 된다는 점에서, 작품은 각기 다른 인간의 욕망이 사회적 결과를 어떻게 결정하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4. 알레고리 서사의 확장과 현재적 성찰

 역사적 실존 인물을 서사 속에 재현하는 작업은 단순한 과거의 복원이 아니라, 특정 시대의 가치 체계를 현재로 환원하는 행위에 가깝다. 김만일이라는 인물을 중심에 놓고, 다른 욕망과 윤리가 충돌하는 구성으로 독자에게 역사적 거리감을 해체한 채 윤리적 선택의 문제를 직면하게 만든다. 표면적 질문처럼 보이는 선(善)·악(惡)을 판단하는 이분법적 질문이 아니라, 동일한 구조 속에서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다른 방향으로 조직되고, 어떻게 구현되며,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해 보게 한다. 

 작품은 김만일의 자기초월적 실천과 탐관오리들의 사적 욕망을 병치함으로써, 가치 체계가 개인 내부의 도덕성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 구조와 긴밀히 결합해 있음을 드러낸다. 즉, 한 개인의 선택은 단지 성품의 문제가 아니라, 그 선택이 작동하는 제도와 권력관계 속에서 의미를 획득한다. 이러한 점에서 역사 속 인물은 단순한 본보기가 아니라, 가치가 현실 속에서 어떻게 실현되거나 왜곡되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실험적 장치로 기능한다. 작가는 김만일이라는 역사적 인물과 조선 시대의 부패한 권력 구조를 알레고리로 구현하면서 두 형태의 욕망을 대비시켰다.

 또한 이 작품이 지니는 의의는 과거의 윤리를 이상화하거나 현재와 단절된 것으로 처리하지 않는 데 있다. 오히려 조선시대라는 시공간을 통해 드러난 권력의 사유화, 공공성의 훼손, 그리고 공동체 가치의 붕괴는 오늘날에도 반복되는 문제이다. 김만일의 행위가 특별하게 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드러나지 않는 비현실적 이상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가치가 구조 속에서 얼마나 쉽게 소외되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작품은 영웅적 업적의 재현을 넘어, 보이지 않는 공헌과 구조적 모순을 통해 조선시대 권력의 이중성을 비판한다. 더 나아가 인간의 욕망이 공동체적 가치로 승화될 때 비로소 공적 권력의 정당성이 확보된다는 점을 환기하며, 현대 독자들에게도 윤리적 성찰의 지점을 제공한다.

 결국 역사적 인물을 통한 가치 체계의 충돌은 독자에게 하나의 윤리적 거울을 제공한다. 작품은 과거를 재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소설이라는 장르를 거울의 도구로 활용하며, 욕망과 권력, 그리고 공공성 사이의 긴장을 현재의 문제로 전환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현재의 체계 안에서 어떤 가치를 지향할 것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물음과 마주하게 된다.

 

 

미디어 제주 (인타넷 신문. 2026.06.15.자)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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