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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나무 동산

모모는 어디로 갔을까

강용준 2022. 6. 8. 09:18

 

문학나무 2022 여름호(통권83호) 표지

 

스마트 소설

모모는 어디로 갔을까

강 준

 

- 야아옹

한밤중에 모모가 온 줄 알고 깜짝 놀라 유리창을 열어젖혔다.

- 모모? 모모.

부산스런 행동에 놀랐는지, 고양이는 잽싸게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추고 나타나지 않았다. 모모가 아닐 것이다. 내 목소리를 아는데 도망칠 리 없다. 나는 잠시 머리를 의자에 기대고 눈을 감았다. 아련한 기억이 스멀거리며 피어오른다.

모모를 만난 것은 작년 여름, 경기도에 있는 문학마을에 입주해 있을 때였다. 건물 이름이 문학마을이고 이 층 여덟 개의 방에서 문인들이 한시적으로 기거하며 글을 썼다.

시원하게 소나기 내리고 무지개 떴던 날, 산보를 나갔던 동화 쓰는 김 작가가 고양이 한 마리를 품에 안고 돌아왔다. 이웃 마을에서 네쌍둥이 중 하나를 무상으로 분양받아 왔다고 했다. 그녀는 모모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모모는 탁구공 하나에도 넉장거리하며 재롱을 부렸다. 시간만 나면 작가들은 모모와 놀았으나 난 눈을 마주하면 재채기가 나왔다. 그의 눈망울에서 눈 맞추며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외할머니가 보였다. 그때 모모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 왜 그래요? 나 알아요?

난 할머니 생각이 나서 모모를 일부러 피했다. 김 작가는 모모를 정성스레 돌봤다. 시내 데리고 가서 중성화 수술을 했고, 예쁜 목걸이에 전화번호가 적힌 이름표까지 달아주었다. 입주 문인 가운데 출간하는 족족 베스트셀러가 되는 윤 시인이 있었는데, 김 작가는 모모를 매개로 해서 그와 친해졌다. 그들은 고양이 간식과 장난감을 가지고 방 안팎을 가리지 않고 놀았다. 윤 시인은 즉석에서 시를 지어 낭송하기도 했다. 모모는 적요했던 문학마을에 활기를 일으켰으나 분열도 가지고 왔다. 두 사람의 정겨운 모습을 눈꼴사납게 여기는 여류 소설가가 있었다. 강 작가는 둘 사이를 노골적으로 험담하고 다녔고, 모모가 애교부리며 다가서면 질겁하며 모기약을 뿌려댔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늦은 밤. 복도에서 모모의 신음이 들렸다.

- 아이구 죽겠다. 나 좀 살려주세요.

모모는 김 작가의 방 앞에서 끙끙대고 있었으나 그날 김 작가와 윤 시인은 늦은 밤이 되도록 들어오지 않았다. 난 휴지로 콧구멍을 막고 마스크로 무장한 채 모모를 안고 방으로 향했다. 문틈으로 빼꼼하게 얼굴을 내밀고 바라보던 강 작가가 내 시선과 마주치자 얼른 문을 닫았다.

- 왜 그래? 엄마가 없어서 그런 거야?

내가 묻자 모모는 엄살하며 말했다.

- 아니에요. 강 작가가. . 난 심심해서 그 방에 들어간 것뿐인데. . 쫓아오더니 옥상 문 앞 층계참에 앉아있는 나를. . 발로 차서 떨어뜨렸어요. 계단 모서리에 부딪혀 아파 죽을 것 같아요.

세상엔 착한 사람만 사는 게 아니야. 악인은 교묘하고 힘이 세.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잡아 먹혀. 네 엄마가 그랬어. 할머니의 말이었다.

어느 날, 창밖이 어슴푸레 밝아올 무렵까지 작업하고 막 잠들었는데 창밖이 시끄러웠다. 모모가 없어졌다고 김 작가가 울고불고 난리였다. 입주 작가들이 온 동네를 뒤지고 다녔으나 모모는 찾지 못했다. 난 관리인 이 씨를 의심했다. 그는 문학마을을 청소하며, 관장님의 지시로 고양이 시중까지 들어야 했으니 모모를 볼 때마다 미간에 바늘을 세웠다. 자기 어머니가 신경통 앓고 있는데 저놈 잡아 먹이면 좋겠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 적도 있다. 모모의 행방을 물었으나 그는 모른다고 시치미를 뗐다. 모모가 없어진 이후 문학마을은 우울의 안개에 잠겼다. 이웃 마을까지 뒤져도 모모를 찾지 못한 김 작가는 끼니도 거른 채 몸져누웠다. 윤 시인은 외출한 채 오랜 기간 돌아오지 않았고 작가들은 묵언수행을 했다. 있다가 사라짐의 허전함, 쓸쓸함을 난 외할머니로 하여 깨단했다.

실종 나흘째 되던 날, 밖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목걸이에 달린 기다란 줄을 질질 끌며 모모가 나타났다. 그의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 관리인이 먼 동네로 데려갔어요. 기회 엿보다 겨우 도망쳐 나왔죠.

모모는 그 먼 길도 찾아왔는데 내 엄마는 어느 미로에 들어섰기에 돌아오지 못하는가. 문학마을에 따사로운 햇볕이 내렸으나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김 작가와 윤 시인의 관계가 소원해졌다고 문인들은 쑤군댔다. 그나마 막혔던 내 작품의 물꼬는 터졌다.

우리에게 정해진 기한이 다 돼서 각자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에 냉랭한 분위기의 실체가 드러났다. 모모를 누가 데려갈 것인가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당연히 김 작가가 책임질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녀는 난감해했다. 자신의 집에는 이미 여섯 마리의 고양이가 있어서 데려 오지 말라는 엄마의 엄중한 경고 때문이었다. 윤 시인은 자신은 자유주의자이기 때문에 어느 무엇에도 발목 잡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저번 모모의 실종 사건 때 큰 충격을 받았다고도 했다. 온전치 못한 몸 상태 때문인지 모모와 즐겁게 놀았던 나머지 문인들도 나 몰라라 했다. 알레르기가 있어서 나도 곤란하다고 했을 때 모모가 말했다.

- 나 좀 살려줘요.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할머니는 자식 다섯을 다 분가시키고 병이 들었다. 그런데 자식들 누구도 집에 모시기를 꺼려서 내 옆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난 동물보호센터로 데리고 갈 요량으로 모모를 케이지에 싣고 문학마을을 떠났다. 그러다 동네 어귀에 다다를 무렵에 생각을 바꿨다. 사람들한테 선택을 받느니 모모에게 선택권을 주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차를 세우고 케이지를 열며 말했다.

- 자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

- 고마워요. 복 받을 거예요.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그날 밤 잠을 못 이루었다. 새벽부터 모모를 찾았으나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알레르기를 치료하고 곁에 뒀으면 카이로스의 시간을 보내었을 텐데... 글이 막히고 잠이 오지 않는 밤, 모모가 그립다. 꿈결처럼 창가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 거기 누구 있어요?

 
문학나무 2022년 여름호(통권83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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