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정원joon

예술정원을 산책하며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소설 나무 동산

후안

강용준 2023. 3. 9. 14:28

베트남 꽝아이 한국군증오비

 

 

후 안

강 준

 

촤라락. 커튼을 젖히자 봉 위를 구르는 고리의 경쾌한 소리와 함께 유리창 너머로 파란 하늘 흰 구름이 싱그럽게 다가온다. 잠을 설친 탓에 화장이 먹지 않는데도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온다. 눈썹 손질을 마치고 립스틱을 집어 들었을 때 내 꿈의 열매가 안방으로 들어왔다. 지연이는 혼혈이어서 더 예쁘다고 한다. 하얀 피부와 또렷한 얼굴의 윤곽, 검은 눈썹 아래 커다란 눈동자는 나를 닮아 유난히 맑다.

엄마, 아침부터 무슨 꽃단장이야? 애인이라도 생겼어?”

초등학생인데 못 하는 소리 없이 맹랑하다.

. 엄마 오늘 아주 찐 사랑하는 사람 만나러 가거든?”

호기심 많은 지연은 거울 속에서 눈살을 찌푸렸다.

엄마 정말 바람났어?”

아이구 내 딸 그런 말도 알어?”

엄마. 초딩이라고 무시하지 마. 알 건 다 안다고.”

그랬어? 이제 다 컸구나.”

식당은 어떻게 하고? 장 안 봐?”

주방 이모에게 다 지시해 놓았으니 걱정 말고 학교나 가셔.”

엄마! 오늘 개교기념일이라고 말했잖아?”

아이고 그랬지? 내가 요즘 정신이 없다. 예쁜 우리 공주님 미안해요.”

지연의 엉덩이를 토닥거리는데 제법 살집이 올라 통통하다. 지훈이가 가석방자 명단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는 정말 첫사랑을 그리워하듯 정신없이 지냈다.

지훈이는 엄마를 지키기 위해 살인을 했다. 나를 겁탈하려는 사내를 본 순간 남편은 눈이 뒤집혀 씽크대 위의 칼을 집어 사내를 찔렀다. 격투 끝에 칼을 빼앗은 사내는 남편을 난자했고, 피를 보고 흥분한 지훈은 태권도로 그 사내를 제압하고 죽였다. 영화 같은 이야기지만 재판 결과 드러난 서지훈의 죄상이다.

면회 다니던 초기에는 얻어맞은 상처를 보고는 가슴이 미어졌다. 저능아라고 놀리는 동료 수형인들에게 덤벼들다가 머리가 터지거나 눈덩이가 왕방울처럼 부은 채 나타나기도 했고, 팔을 깁스하고 다리를 절뚝이며 들어오기도 했다. 그렇게 사회와 격리된 공간에서 지훈은 성장했다. 근래에는 자기를 따르는 똘마니들이 많다고 자랑까지 했다. 애처롭지만 대견한 내 아들이다.

혼자인 것이 외로운 지연은 앨범 속에 있는 풋풋한 오빠에 대해서 늘 관심을 보였다. 난 감옥이라는 것에 편견을 가진 어린 지연이가 상처받을까 두려워서 베트남 할머니 집에 산다고 둘러댔다. 그러나 이젠 지연이도 엄마를 지켜준 오빠를 자랑스럽게 여길 나이가 됐다.

. 너 오빠가 보고 싶다고 했지?”

지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베트남에 사는 지훈이 오빠?”

그래. 지훈이가 돌아온단다.”

그럼 우리랑 함께 사는 거야?”

그렇지. 우린 가족이니까.”

와 신난다.”

지연이는 두 팔을 올리고 펄쩍펄쩍 뛰며 좋아한다.

엄마랑 함께 가고 싶으면 얼른 옷 갈아입고 와.”

지연이는 소리 지르며 춤을 추듯이 제방으로 뛰어갔다. 여자만 있는 집에 장성한 아들이 함께 산다는 건 생각만 해도 든든하고 활기가 넘치는 일이다.

사람은 나이테만큼의 아픔을 켜켜이 품고 산다지만 남편과의 마지막 며칠을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고 몸서리가 쳐진다. 창가에 서서 산 위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을 바라보노라니 한국인으로 산 십여 년 세월이 주마등처럼 펼쳐진다.

 

도대체 어떤 놈이야? 밤낮을 모르고 전화질 하는 놈이?”

술에 취해 날이 어둡기도 전에 잠에 곯아떨어졌던 남편이 휴대폰 통화 소리에 깨어났다. 베트남에서 오는 중요 인사와 도지사와의 대화 통역 가능 여부를 묻는 급한 일로 밤중에 쯔엉이 전화를 걸어왔으나 남편이 끼어들면서 모든 게 흐트러졌다.

쯔엉이에요. 우리 학원 원장님.”

우리? 그따위 학원 집어치우라고 했잖아? 너 왜 말 안 들어? 개 같은 년, 내가 만족시켜주지 못하니 젊은 놈과 놀아나는 거지?”

어이없는 모욕적인 말이었지만 내가 섹스를 밝힌 건 사실이다. 남편은 하루가 멀다고 삼십 대의 내 튼실한 육신을 탐했다. 사랑받는 생각에 나도 좋아서 적극적으로 몸을 놀렸다. 그런데도 애가 들어서지 않았다. 남편 몰래 산부인과에 가보았으나 내 자궁은 튼튼했고 문제가 없다고 했다. 사업이 부진해지자 남편은 잠자리에 대해 흥미를 잃어 갔다. 그런 남편을 위해서 침실의 커튼과 침대 커버도 바꾸고, 정력에 좋다는 음식을 구해다 요리하고, 식후 자양강장제도 꼬박꼬박 챙겼다. 그런 치성에도 남편의 그것은 발기되지 않는 날이 많았다.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손을 가져다 대면 남편은 그렇게 하고 싶어?’, ‘음탕한 년이라고 욕하며 돌아누워 코를 골았다. 상처 난 자존심을 달래느라 소리 없이 베갯잇을 적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어떤 날은 새벽녘에 잠이 덜 깬 나를 끌어안고 격렬하게 섹스 했다. 냄새 나고 기분이 더러웠으나 난 억지 교성까지 지르면서 장단을 맞췄다. 오로지 임신을 위해서.

말해봐. 너 그놈과 같이 잤지?”

그런 사이 아니에요.”

거짓말하지 마. 몇 번 잤어? 너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연놈 다 배때기 쑤셔버릴 거야. 말해 이 화냥년아.”

남편의 눈빛이 변하기 시작했고 독기를 품은 투사견처럼 나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남편의 화난 목소리에선 쇳소리가 났다. 소리는 몽둥이로 변하여 속이 빈 동물의 갈비뼈와 부딪치며 퍽, 퍽 소리를 냈고, 목울대를 긁어 올리는 개의 비명으로 길게 이어졌다. 이윽고 알루미늄 야구 방망이로 타격하는 굉음이 들리더니 개의 머리에선 피가 솟구치고 낑낑대던 소리가 잦아들었다. 공포에 질린 눈동자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내 의식도 서서히 허물어져 내렸다.

아빠. 그만해. 엄마 때리지 마.”

눈을 감고 벽에 기댔는데 지훈이의 소리가 들렸다. 이성이 마비된 남편은 아들이 보는데도 난동을 멈추지 않았다. 맞아서 아픈 것보다 지훈이가 지켜보는 것이 더 참담해서 울음은 참는데 콧물,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병신아. 너 이거 안 놔?”

엄마. 어서 도망가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떴는데 지훈이가 남편의 등 뒤에서 두 팔을 껴안고 있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그래 소나기 내릴 때는 우선 피하고 봐야지.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까무룩 쓰러지면서도 엄마 편을 드는 아들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독약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눈을 떠보니 병원 응급실이었다. 팔에 꽂힌 링거줄을 통해 수액이 들어오고 있었다. 침상에 기대어 코를 골던 지훈이가 나의 몸짓에 깨어나 고개를 들었다. 혼절한 나를 업고 이리로 달려왔구나.

엄마. 괜찮아?”

. 괜찮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기저기 쑤시고 욱신거려서 손가락조차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찡그린 내 얼굴을 보고 지훈이가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았다.

아빠 나빠. 아빠 무서워.”

지훈이는 손수 요리 실습하며 잘 먹어댄 탓인지, 태권도를 열심히 다녀 근력이 늘어난 덕인지 부쩍 큰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마침내 유리구슬같이 투명한 눈물을 소리 없이 뚝뚝 흘렸다. 나는 지훈이를 달래어 아빠가 오기 전에 어서 피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리고 평소 알아둔 곳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아닙니다. 금방 남편이 나타날 거예요. 순진한 지훈이가 호통을 못 이겨 벌써 발설했을지도 몰라요.”

여긴 안전합니다. 안심하셔도 돼요. 헌데 아드님이 참 착해 보였어요.”

다쳐서 지능이 약간 모자라긴 해도 엄마를 끔찍이 생각하는 아이예요.”

그런 큰 아드님 두시다니. 후안 씨 나이가 너무 젊은데요?”

상담 선생님은 컴퓨터에 내 신변에 대해 열심히 입력하다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코에 걸친 검은 뿔테 안경을 올려 쓰며 내 얼굴을 멀뚱하게 바라봤다. 내가 당당하게 시선을 마주하자 그녀는 흘러내린 앞머리를 올리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 미안해요. 후안 씨. 내가 아픈 곳을 건드렸다면 사과할게요.”

상담사는 말은 그렇게 했으나 속으로는 나를 경멸하고 있을 것이다. 자격지심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년을 한국에 살면서 터득한 경험에 의하면 내 판단이 맞을 것이다. 구박받던 며느리가 시어머니 되면 더 무섭다더니, 한국도 한때는 원조를 받던 가난한 나라였으면서 동남아 여성들에 대한 편견이 심하다.

눈 주변 상처도 맞아서 생긴 거 맞죠?”

간밤의 악몽이 다시 떠올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 평상시에는 농담도 잘하고 자상한 좋은 사람인데 술만 마시면 눈에서 광기를 내뿜는 괴물이 되는 게 참기 힘들었다.

후안 씨. 이런 일은, 그러니까 남편이 폭행을 한 것이 처음은 아니죠?”

그 말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물 한줄기를 주르륵 뽑아냈다. 난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말을 잘하는데 한국에 온 지 얼마나 됐죠?”

“3년 째에요. 그리고 저 한국어 강사예요.”

그녀는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내 눈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럼 먹고 사는 것은 걱정 없겠군요.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어요? 여기선 일주일 이상 있을 수 없어요. 거처가 필요하다면 보호시설로 안내해 드릴게요.”

고맙습니다만 곧 집을 따로 구할게요.”

 

내가 한국으로 결혼 이민을 결정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반대했다. 오죽하면 제 나라 여자를 놔두고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 여자를 구하겠는가? 베트남 여자를 구하는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다. 성공해서 정착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으나 핍박을 견뎌내지 못하고 떠돌다가 연락이 끊기거나 빈털터리로 귀국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알고도 난 한국행을 고집했다.

베트남에서 처음 소개받은 한국의 남편감은 삼십대의 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도중에 무슨 사정이 생겼는지 결혼 상대자가 바뀌었다. 돈이 많은 사십대라고 했으나 중매업자가 내민 사진 속엔 늙수그레한 사내가 웃고 있었다. 정작 베트남에 결혼하러 나타난 서광남 씨는 대머리까진 늙다리로 아버지보다 겨우 여섯 살 아래였다. 그래도 아버진 입꼬리를 귀에 걸고 목발을 집고 다니며 나이 많은 사위를 하객들에게 자랑했다. 그가 한국에서 가져온 선물을 받은 친척들도 저마다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런데 하객들이 돌아가고 아버지와 마주 앉은 서광남 씨는 술기운 탓인지 안색이 굳어졌다. 우리 아버지가 전쟁 때 한국군 때문에 한쪽 눈이 실명되었고 다리를 잃었다는 말을 듣고는 죄송합니다. 잘못 했습니다.’는 말을 반복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것도 아닌데 첫날밤 잠자리에서도 서럽게 울었다. 남자가 그것도 나이 든 남자가 그렇게 우는 것을 본 일이 없다. 난 우리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는 참으로 속내 깊고 잔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의 지참금으로 아버지는 의족을 달아 사십여 년을 의지하던 목발에서 벗어났고 낡은 집을 헐고 집을 새로 지었다.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본 제주의 바다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물비린내 나는 누런 강물만 보고 자랐던 나는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푸르고 싱싱한 갯내음을 맡으러 바다로 달려가곤 했다.

남편은 시내 식당을 빌려 음식을 대접하며 친척들에게 나를 인사시켰다. 그중에 외삼촌이라는 분이 했던 말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지금도 가슴에 박혀있다.

어디 간 잘 사 와신 게.”

일행은 나를 보며 웃었고 나도 떨떠름한 표정으로 웃어넘겼다. ‘난 팔려 온 게 아니에요. 내 꿈을 위해 스스로 선택한 길이에요.’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말대답은 하지 않았다. 내가 한국말을 못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한 친척들은 저들끼리 내 흉을 보며 좋아했다. 그들과 섞여 있을 때 내가 느끼는 만큼의 낯설음은 그들에게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난 같은 언어로 말하니까 그들도 같은 생각을 할 거라고 착각했다. 낯선 곳에서 왔다는 생각을 의도적으로 지우려고 했다. 매일 아침 그들이 쓰는 샴푸와 향기 좋은 물비누로 샤워를 했고 그들이 먹는 음식을 마다하지 않고 먹으며 동화되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난 여전히 동물원 원숭이였다.

가끔 집으로 찾아오는 친척들은 내가 된장찌개와 김치 먹는 걸 신기해했고, 내 몸에 코를 대고 킁킁대기도 했다. 함부로 내 피부를 만져보기도 했고 어떤 이는 옷장을 열어 내가 입는 속옷을 들춰보기도 했다.

남편에겐 밤송이 같은 턱수염이 보송보송 난 아들이 있었다. 지능이 좀 모자라지만 순수한 영혼을 가진 아이였다. 그는 내가 좋은지 처음 만난 날부터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지훈이는 엄마소리도 못 해 보고 자란 정이 그리운 아이였다. 내 환심을 사려고 라면도 끓여주고 부침개도 곧잘 만들어 나를 대접했다. 지훈이는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한국 음식을 배우려고 요리학원에 다닐 때 함께 등록했다. 지훈의 미래를 위해서 그의 독립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다. 지훈이가 요리학원에 등록하던 날 나와 한 약속이 있다.

엄마. 베트남이 어디 있어?”

왜 가 보고 싶어?”

. 엄마 나라잖아? 나 거기 가서 라면 식당 할 거야.”

그래. 열심히 배우면 라면 가게 아니라 큰 식당도 열 수 있지.”

말은 그렇게 했으나 베트남에 가면 지훈이도 외국인이다. 더구나 말도 모르고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당할 조롱과 모멸감을 지훈이가 이겨낼 수 있을까?

 

결혼하고 제주에서의 일 년은 꿈같은 생활이었다. 남편은 양식장을 하며 여유가 있어서 한 달이 멀다 하고 나를 데리고 육지로 구경 나갔다. 그렇게 좋던 세월은 일본의 원자력 사고 때문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사고의 여파로 수출길이 막히면서 광어 값은 폭락했고 남편은 끊었던 술을 다시 입에 댔다. 손찌검이 시작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한두 번은 그냥 화풀이 정도로 알고 맞으면서도 참으려고 무진 노력했다. 맞은 상처가 아픈 게 아니라 내 인격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것이 더 괴로웠다. 날이 갈수록 횟수가 잦아지더니 급기야 의처증까지 생겼다. 쯔엉의 의도적인 도발이 남편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난 꿈을 이루기 위해 내 손으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친구도 사귀고 물정도 알고 싶다는 내 뜻을 남편이 선뜻 받아들여 주었다. 외국인 취업정보센터의 소개로 베트남 학원에 취업했다. 거기서 쯔엉을 만났다. 학원 원장인 쯔엉은 내 고향 이웃 마을 출신이어서 처음 보았을 때부터 친근감을 느꼈다. 그는 한국에 온 지 10년이 된다고 했는데 나를 동생처럼 아껴주어서 큰 의지가 됐다.

쯔엉은 한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 결혼 이민 온 여자들 대상으로 한국 문화에 대해 강의했고 난 일주일에 세 번 한국어를 가르쳤다. 직장에 다닌 지 일 년쯤 되었을 때였다. 강의가 잡혀있던 전날 남편의 폭행으로 얼굴에 큰 멍이 들었다. 도저히 원생들 앞에 나설 자신이 없어 휴강을 요청했는데 쯔엉이 교외에 있는 우리 동네로 찾아왔다. 엉망이 된 내 얼굴을 본 쯔엉은 화를 냈다.

왜 맞고 지내? 당장 집에서 나와. 사람을 개 취급하는 놈 내 가만 안 놔둘 거야.”

그는 눈을 부라리고 얼굴을 붉히며 분개했지만 난 남편의 실수라고 변명했다.

한국 남자들 남존여비 사상이 있어서 여자를 종처럼 생각해. 한번 폭력에 맛을 들이면 고치기 힘들어. 당장 이혼해.”

벌겋게 달아오른 그의 얼굴에서 진심을 느꼈지만 난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런 소릴 함부로 해? 내가 왜 한국에 왔는지 몰라? 쯔엉 난 그럴 수 없어.”

후안. 그 꿈 내가 이루게 해줄게.”

난 한국인 피를 가진 애를 낳고 싶다고.”

그 집에 있다간 꿈이고 나발이고 다 끝장이야. 맞아 죽는다니까?”

난 가난해서 꾀죄죄하고 눅눅한 베트남이 싫어. 한국에서 자손 낳고 뼈를 묻을 거야. 그러니 제발 날 흔들지 말고 바람막이가 되어줘.”

그 후에도 쯔엉은 여러 번 설득하려 했지만 내 신념을 꺾진 못했다.

 

한동네에 사는 이모님은 사람들이 날 경멸할 때도 내 편이 되어준 엄마 같은 분이다. 찬거리를 들고 자주 우리 집에 들리시는데, 어느 여름날 긴소매 옷을 걸친 나를 이상하게 보았다. 베트남에선 다 그렇다고 둘러댔으나 소매를 걷어 퍼렇게 멍이 든 내 팔을 확인한 이모는 한숨을 쉬며 가족의 역사를 끄집어냈다.

광남이는 병자여. 그놈의 술이 웬수지. 술 처먹고 부부가 싸우다가 저 어린 것을 땅에 떨어뜨려 병신 만들었주. 불쌍한 것. 그래도 아방이 술 먹고 광질하면 울면서 우리 집으로 도망 올 정도니 영 바보는 아니여. 할망은 병에 걸려 일찍 죽고 어멍은 물귀신이 되어부난 지훈인 내가 키웠다.”

사진으로 남은 지훈이 엄마는 자그만 체격에 갸름한 얼굴이 예뻤다. 그런데 이모가 들려준 이야기는 너무 비참하고 충격적이었다.

그 당시 어촌에는 미역 해경이라는 게 있었다. 일정 기간 미역이 자라도록 채취를 금하다가 풀리는 날이 있었는데 그게 미역 해경이다. 해경 날 해녀들은 모두 바다에 자맥질해 들어가 미역을 채취하는데 수확한 만큼 자기 수익이 되므로 한해 살림 밑천을 건지는 대목 날이었다. 그런데 그 무렵 지훈이 엄마는 남편의 폭행으로 갈비뼈에 금이 가서 병원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그녀는 대목을 놓칠 수 없어 아픈 몸을 이끌고 바다로 나갔다.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기어이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끝내 참변을 당했다고 했다.

그날 밤. 어렸을 때 겪은 끔찍한 기억이 꿈속에서 되살아나 몸서리를 쳤다. 우리 동네 어귀에 개를 키우는 집이 있었다. 아이들은 개 피쟁이 집이라고 그 집 근처에 가길 꺼렸다. 난 학교를 오갈 때마다 그 집 앞을 지나야 했다. 그 앞을 지날 때면 늘 개들이 날뛰며 짖는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개들은 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공간 안에 갇혀서 철망 사이로 코를 내밀고 끙끙거렸다. 그러다 인기척이 들리면 구원을 요청하듯이 발을 구르고 난리를 치며 짖어댔다. 한 번은 개의 비명이 유난히 크게 들려오기에 나무판자로 둘러친 울타리 틈 사이로 안을 엿보았는데 희한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가끔 동네에서 마주칠 때마다 징그럽게 웃는 아저씨가 개의 네발을 꼼작 못하게 묶어놓고 알루미늄 야구 방망이를 내리치고 있었다. 개는 몇 번을 깽깽거리다가 머리를 한방 두둘겨 맞고는 움직이질 못했다. 머리에선 피가 뿜어져 나왔는데 죽어가는 개의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난 다리에 힘이 풀리며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너무 놀라 울음도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날 이후 꿈속에선 그 장면이 반복되어 재생됐고, 그때마다 요에 지도를 그렸다. 중학교 때까지 내 별명은 오줌싸개였다. 그일 이후로 그 집 앞을 피해서 일부러 먼 길을 돌아다녔고 꼭 지나야 할 때면 난 달리기 선수가 되어야 했다.

 

남편이 술에 취하면 벌이는 광기의 원인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사건이 나던 해 시조부님 제삿날이었다. 시내에 사시는 숙부님과 사촌들이 집에 모여들었다. 남편은 친구 분들과 이야길 하다가도 군대 얘기만 나오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을 전에도 여러 번 보았다. 그날도 파제를 하고 음복하는 자리에서 어쩌다 군대 이야기가 나왔다. 남편은 사촌들과 말다툼하다 악다구니를 쓰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숙부님이 분위기를 진정시키려고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광남이 병은 군대 가서 얻은 것이다. 그렇게 착하고 건실하던 아이가 군대를 살다 오더니만 사람이 영 틀려버렸다.”

파제하기를 기다리며 팔짱을 끼고 서로 허공만 쳐다보는데 백부님 자제인 장손이 젓가락으로 버섯전을 집으며 화답을 했다.

숙부님은 군대에 말뚝 박다 제대하셨으니 잘 아시겠네요?”

그래. 내가 전방 부대 근무할 때 광남이가 특전사에 배치되었다는 소식 들었지.”

인간 병기가 될 정도로 훈련이 빡 세다는 부대 말씀이지요?”

군 입대를 앞둔 장손 아들이 끼어들었다.

그래. 헌데 자대 배치 받자마자 출동한 곳이 하필이면 빨갱이 폭동이 일어난 광주였어.”

숙부님은 쩍하며 입을 다시더니 술잔을 들어 목을 축이셨다. 장손이 허참하며 입가에 쓴웃음을 흘리더니 숙부님의 말에 토를 달았다.

숙부님. 그거 빨갱이 폭동이 아니라 항쟁이우다. 민주화 항쟁. 저도 압니다. 특전사 군인들이 광주에 가서 시민군을 무참하게 학살 해십주. 그 죄책감에 광남이가 저렇게 된 거라 마씸.”

난 그제야 남편이 베트남에 온 첫날밤 그렇게 몸서리치며 울었던 이유를 알았다.

시대가 바뀌니 나 참. 너희들 하곤 얘기 못 하겠다.”

숙부님이 벌떡 일어서서 귀가를 재촉하자 장손과의 설전이 끝났다. 난 밤새껏 제사의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눈이 퉁퉁 붓는 줄도 모르고 울었다. 무자비한 동료 군인들이 죄 없는 시민들에게 자행했던 살상행위. 몽둥이로 두둘겨 패고 총검으로 찌르고, 자신이 쏜 총탄에 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얼마나 괴로워했을까? 보잘것없는 생명이라도 죽일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는데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고 총질을 해서 피어보지도 못한 숱한 청춘들의 목숨을 앗아간 죄악. 본성이 착한 남편은 그 지워지지 않는 악마의 문신 같은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해 발버둥치는 환자라는 걸 그 밤에 알았다.

할머니가 말해 줬던 고향에서의 학살사건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중학교에 다닐 때 전쟁을 맞이했다. 아버지에게 한국은 원수의 나라다. 지금도 고향 반호아에는 한국군 증오비가 있다. 난 그 비에 적힌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란 의미를 머리가 큰 후에야 알았다. 전쟁이 한창이던 어느 날 한국군이 동네 사람들을 전부 모이게 하더니 포탄이 떨어져 생긴 거대한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극단적 상황을 예감하고 꾸물거리는 사람은 발길질과 개머리판으로 때려 포탄 구덩이로 몰아넣었다. 그리고는 둘러선 군인들이 구덩이를 향해 무차별 난사를 했다. 우리 동네 인근에서 베트콩이 출몰하여 한국군인 한 명이 죽은 일에 대한 보복이었다. 사백삼십 명이나 되는 어린아이와 늙은 사람들 속에 섞여 할아버지와 삼촌들이 전부 죽었다. 아버지는 구덩이 속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으나 왼쪽 다리를 잃었고 포화의 연기에 한쪽 눈이 멀었다. ‘아가야 이 말을 기억하거라. 적들이 우리를 포탄 구덩이에 몰아넣고 다 쏘아 죽였단다.‘ 어렸을 적 어머니가 들려주었던 자장가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젊은이들은 한국 가수들에 열광했다. 나도 또래 애들과 따이한을 동경하며 라디오를 통하여 한국어를 배웠다. 그때 평생을 아파하며 한숨으로 살아야 했던 아버지의 청춘 시절을 보상해 줄 순 없지만 난 유쾌한 복수를 계획했다. 가해자의 돈으로 아버지 시력을 회복시켜드리겠다는 생각이 풋풋한 가슴에 서 자랐다. 잘 사는 나라 한국으로 시집간 동네 언니들의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내 가슴은 부풀어 갔다.

 

전화기의 전원을 켜니 수십 개의 부재중 이름이 떴다. 남편과 쯔엉과 지훈의 이름이 경쟁하듯 교대로 섞여 있었다. 보고 싶다는 지훈의 음성 메시지, 남편의 욕설과 협박의 메시지를 읽는데 쯔엉에게서 전화가 왔다.

후안.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어디야?”

그건. 말할 수 없어요. 당분간 혼자 있고 싶어요.”

이번 참에 아주 마음 독하게 먹고 결심해. 요즘 그렇게 맞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남편 알아보니 술만 먹으면 아주 개라던데?”

내가 붙들어주지 않으면 스스로 목숨을 버릴 것이라는 생각에 매를 참으며 정상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남편은 인간 말종에 이르는 폭력이란 병을 이겨낼 기미도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난 한도 끝도 없이 인내심을 빨아들이는 늪 같은 그 집에서 이젠 탈출해야겠다고 마음먹지만 꿈을 포기해야 한다니 너무 억울했다. 지훈이도 눈에 밟혔다. 인간의 정이란 것이 참 무섭다는 걸 알았다.

남편 환자 맞아요. 하지만 그분 덕에 한국에 왔어요. 내가 없으면 그 사람 오래 못 살아요.”

그럼 창창한 앞날 진흙탕 속에서 뒹굴 거야? 내가 도와줄게.”

쯔엉이 어떻게 도와준다는 거야?”

나에게 다 수가 있어. 우리 얼굴 보며 얘기하자. 응 후안? 지금 학원으로 와.”

남편의 광기를 불러온 원인 제공자를 만난다는 게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학원으로 갔다.

집을 구할 동안 여기서 살아.”

그는 사무실 안쪽에 있는 방의 문을 열었다. 갇혀 있던 퀴퀴한 냄새가 몰려나왔고 불을 켜자 널부러진 잡동사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에 내가 살던 방이야. 저것들은 치워 줄게.”

쯔엉은 한국 여자를 만나 시내 외곽에 집을 얻어 동거하다 헤어졌다. 그래서 은근히 내 이혼을 부추기고 있는 것을 난 안다. 방을 사용할 것인지 결정을 못 내리고 방문을 닫았다.

수라는 게 뭔데?”

커피를 들고 온 쯔엉이 자리에 앉자마자 난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후안. 그놈 죽여 줄까? 그놈 죽으면 재산의 반은 후안이 차지할 것 아냐? 아니면 아예 병신 아들까지 없애줄 수도 있어.”

쯔엉의 말에 충격이 너무 커서 대꾸도 못하고 그를 멀뚱하게 쳐다만 봤다.

왜 그래? 후안의 일이라면 내가 못 할 게 뭐 있어?”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말아요. 우리 아버지도 서광남 씨도 나도 다 폭력의 피해자 들이예요. 폭력은 인간을 짐승으로 만들어요.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당하는 순간의 아픔은 상처가 아물면 사라지지만 찰거머리처럼 기억 속에 달라붙어 유령처럼 시시때때로 나타나 괴롭히는 그 고통을 쯔엉이 알아요?”

그래서 평생 맞으면서 살겠다는 거야?”

난 남편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로 마음먹었다.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다는 확실한 다짐을 받기 전에는 절대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치료받도록 설득할 거예요.”

설득?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이 미련 곰탱아.”

쯔엉은 빈정대며 웃었다. 그에게서 원초적인 야만의 냄새가 났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지만 딱히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그 집으로 기어들어 갈 거야?”

당분간 여기서 지낼게요. 남편과 타협할 때까지만.”

좁고 누추한 방이지만 물건들을 정리하고 청소를 하고 나니 냉장고와 씽크대도 있어서 지낼 만했다.

낯선 곳에서의 밤은 악몽의 연속극이었다. 내가 만났던 추악한 장면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계속 등장하며 나를 괴롭혔다. 땀과 눈물로 끈적한 눈가를 비비고 눈을 뜨니 창밖은 환히 밝아 있었다. 남편이 양어장 관리를 위해 집을 비울 시간을 이용해 갈아입을 옷가지를 가지러 집으로 갔다.

나흘 만인데 조용하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왠지 낯설었다. 거실에는 내팽개쳐진 옷가지로 어지러웠는데 구석에 자리 잡은 행운목이 유난히 내 시선을 끌었다. 지난해 결혼기념일에 오일장에서 구해다 세워놓은 화분이다. 다가서서 보니 가지 사이에서 꽃대가 올라오고 있었다. 욕조의 바가지에 물을 떠서 화분에 물을 주고 난 후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마음 한쪽이 환하게 밝아왔다. 안방으로 가서 캐리어 가방을 꺼냈다. 옷장과 서랍을 열어 옷가지들을 대충 담고 지퍼를 닫는데 현관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가슴이 털컥 내려앉았다. 들켰구나. 텅텅거리며 날뛰는 심장 소리를 외면하며 온 촉각을 거실에 집중하는데 지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엄마 왔어?”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캐리어를 들고 거실로 나가보니 태권도복을 입은 지훈이가 내 신발 옆에 자신의 운동화를 가지런히 놓고 있었다.

도장 다녀왔니?”

. 헌데 엄마, 전화도 안 받고 어디 갔었어?”

지훈은 현관 마루에 올라서 우두커니 나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나는 달려가 그를 안았다.

미안해. 지훈아.”

또래의 아이들은 대학에 들어가려고 공부에 한창인데 지훈이는 자기를 놀리는 놈들 가만 안 둔다고 태권도 도장엘 다녔다. 대학 입시를 위해 고생하지 않아도 됐으니 어쩌면 다행한 일이다. 갑자기 지훈이가 내 팔을 뿌리쳤다.

엄마, 또 어디 가?”

캐리어 가방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 엄마 며칠만 더. 학원에 숨어 있을게.”

엄마. 싫어. 나도 갈래.”

지훈아. 금방 돌아올 거야. 아빠가 엄마 안 때린다고 사과하면.”

아빠 나빠. 아빠 사과해야 해.”

그래. 착하다. 밥은 잘 먹는 거지?”

엄마. 나 요리 잘해. 요리학원에서 배운 거 만들어서 아빠도 먹어.”

개수대에 아무렇게나 쌓인 그릇을 보니 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날 저녁 강의를 마치고 퇴근했던 쯔엉이 입주 파티를 하자며 피자와 음료수를 들고 왔다. 그의 입에선 술 냄새가 났으나 피자 냄새가 더 코를 자극했다. 불안이 허기를 부추겼다. 둥둥 떠다니는 구름 같은 신세가 서글퍼 꾸역꾸역 피자를 입에 집어넣고 씹는데 눈물이 다 나왔다.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이 안 되어 보였는지 쯔엉은 웃으면서 음료수를 따라주었다.

체할라 천천히 먹어.”

쯔엉도 같이 좀 먹어요.”

피자 조각을 내밀었으나 쯔엉은 웃기만 했다.

됐어. 후안은 먹는 모습도 예쁘네. 그 늙다리랑 사는 게 참 안됐어.”

그런 소리 하면 나 여기서 나갈 거예요.”

그러자 쯔엉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이런 말 하기 그런데. 며칠 전 우연히 베트남 고향 친구를 만났거든? 그런데 후안에 대한 놀라운 얘기를 들었어.”

무슨 소리예요?”

꽁푸앙이라고 알지?”

나는 뜨끔해서 먹던 피자 조각을 내려놓았다. 꽁푸앙은 귀찮게 나를 따라다니던 동네 건달이었다. 입속의 음식물들을 급하게 목으로 넘기고 휴지로 입가를 훔쳤다.

그는 스토커였어요.”

그 남자 친구를 어떻게 했지?”

그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나를 노려보며 비열하게 웃고 있었다. 어디선가 찢어지는 듯한 개의 비명이 들렸다.

남자 친구 아니라니까요?”

꽁푸앙은 내가 다니던 옷 공장 사장의 아들이었다. 반반하게 생긴 여공들을 꾀어 정조를 유린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 놈인데, 나를 타겟으로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치근덕댔으나 난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똘마니를 시켜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는 나를 마취시켜 납치했다. 몽롱한 정신으로 눈을 떠보니 호텔이었다. 나는 침대 위에 발가벗긴 채 누워 있었고 알몸인 그도 내 옆에 누워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내 인격이 위계에 의해 침해받은 것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가 감언이설로 꼬였으나 난 똥개가 아니야,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해라고 소리쳤다. 내가 완강하게 거부하자 그는 경멸하듯이 웃으며 칼을 들이댔다. 칼날은 불빛에 부딪혀 번쩍이며 당장이라도 내 몸속을 파고들 기세였다. 살기 가득한 그의 얼굴은 개 피쟁이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정신은 명징했으나 몸은 벌벌 떨리고 오금이 저려 꼼짝 못 했다. 그는 나를 쓰러뜨리고 순결한 몸을 더러운 혀로 핥으며 내 몸 속으로 남근을 들이밀었다. 정조가 속절없이 무너진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왔다. 그는 아랑곳없이 몸을 움직이며 욕정을 배설하는 데 열중했다. 뜨거운 입김이 얼굴에 쏟아지는 걸 느끼는 순간 그의 혀가 내 입안으로 들어왔다. 난 이빨을 꽉 다물었다. 그가 비명을 질렀지만 난 놓지 않았다. 입안에 뜨뜻한 액체가 고이더니 목구멍으로 흘러들었다. 그제야 그는 핏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떨어져 나갔다. 나를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 행위였지만 법은 가진 자의 편이었다. 난 구속되어 판결이 나기까지 반 년을 심장을 옥죄어오는 눅진한 감방에서 살았다. 시련은 나를 단련시켰고 베트남을 떠나야 한다는 신념은 더 단단해졌다.

그 사실을 남편도 알고 있나?”

쯔엉. 난 무죄를 받았어. 왜 그런 소릴...”

프로판 가스 냄새 같은 역한 불쾌감을 느끼며 난 일어섰다. 머리가 빙빙 돌며 몸이 휘청거렸다. 쯔엉이 무슨 짓을 한 거지?

난 다 이해해. 후안. 우리 도망 가자.”

내가 왜? 난 한국인이야. 그러니 제발 날 놓아 줘.‘ 말을 해야 하는데 소리가 나오 않았다. 그가 몸을 가누지 못하는 나를 껴안으며 입술을 덮어왔다. 벌려진 내 입술 사이로 그의 혀가 들어왔으나 입을 다물 힘마저도 없이 다리가 흐물거리며 무너져 내렸다.

뭐 하는 짓이야?”

몽롱한 의식 속에서 남편의 목소리를 들었다. 엄마를 부르는 지훈의 소리도 들렸다. 쇠몽둥이에 머리를 맞고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개의 공포에 찬 눈망울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까무룩 허물어졌다.

 

눈앞이 밝아지더니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고 보니 병실이었다. 이모가 침상 옆에서 손에 묵주를 들고 기도문을 외다가 멈추었다.

후안. 괜찮니?”

상체를 세우고 주변을 살피는데 곁에 있어야 할 지훈이가 보이지 않았다.

. 지훈이는요?”

이모는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눈시울을 붉혔다.

에고 설운 애기야. 난리도 난리도 세상에 이런 난리가 없다.”

이모는 옷소매로 눈가를 닦고 나서 남편과 쯔엉이 죽었고 지훈은 살인죄로 경찰에 잡혀갔다고 했다. 난 가슴이 떨리고 울고 싶은데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지훈이가 태권도라도 배웠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온 식구가 다 죽을 뻔 했져.”

이모가 가고 혼자 남게 되자 아랫배가 당기면서 욕지기가 올라왔다. 그날은 헛구역질 때문에 종일 화장실을 드나들었다. 이상하게 여긴 간호사가 나를 산부인과로 데려갔다. 임신이었다.

 

꿈꾸는 자에게 행운은 벼락처럼 떨어진다. 우리와 거래하던 식당 아저씨의 소개로 양식장을 팔아넘기고 시내에 장어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을 열었다. 그건 지훈이 몫이다. 식당 손님은 연일 북적였고 돈의 힘은 대단했다. 이젠 개의 비명 같은 환청도 사라졌고 나를 깔보는 사람도 없다. 아버지는 한국에 와서 수술을 받았는데 완전한 개안은 아니었으나 내 얼굴이 보이는 듯 감격의 눈물을 쏟아냈다. 어머니와 동생 가족까지 한국으로 초청하여 관광도 시켜 드렸다. 지훈이 오면 우린 베트남으로 가족 여행을 떠날 것이다. 고향에 들러 증오비 앞에 꽃다발도 바칠 생각이다. 나의 유쾌한 복수의 완성을 위하여.

엄마, 뭐해? 준비 다 했어.”

응 알았어, 가자.”

핸드백을 팔에 걸고 등신대 거울 앞에서 맵시를 확인하는데 거울 안에서 서광남 씨가 배시시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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