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정원joon

예술정원을 산책하며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소설 나무 동산

놓친 열차는 아름답다

강용준 2021. 3. 24. 17:13

는 죽어가고 있다. 살아있는 것들은 사멸의 순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엔 이제 갓 오십에 들어선 난 너무 억울하다.

인간의 장기 중에서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하는 첨병이 눈이다. 시각을 통해서 인식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기억을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의 것만 볼 수 있는 한계가 있다.

아담과 이브가 낙원에서 추방된 후 인간에겐 에덴동산에 대한 회귀본능이 원죄처럼 남았다. 그래서 늘 좋았던 과거를 기억하며 그리워한다. 예술이 다 그렇지만 사진에 관심과 열정을 갖는 것도 회귀본능에 대한 무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사진을 가까이하게 됐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대학생 때, 급전이 필요한 선배에게서 헐값으로 인수한 카메라 때문에 사진 찍기가 취미가 됐고, 잡지사 기자가 되어 지금까지 먹고살아 왔다. 그런데 그 순간을 포착하는 생명줄 같은 시력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시력이 고장 난 것을 안 것은 2년 전 가을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새벽까지 폭음하고 깨어난 후부터다. 눈을 떴을 때 안개 속처럼 앞이 흐릿했다. 술이 덜 깬 탓으로 생각했는데 시간이 흘러도 사물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왼쪽 시력은 사물의 형태만 희미하게 짐작할 수 있을 뿐이고 오른쪽은 그나마 가까이 있는 사물을 분별할 수 있는 정도다. 안과에서는 시신경 노쇠 현상으로 완치 불가능 판정을 내렸다. 이런 현상은 당뇨에서 오기도 한다는데 혈당 수치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대학생 때 시위 장면을 촬영하다가 전경이 휘두른 곤봉에 머리를 맞아 의식을 잃고 쓰러진 일을 기억해 냈다. 그 후유증이 이제야 나타난 것이라고 의사는 진단을 내렸다. 실명을 늦추기 위해 투약을 하고 시력을 무리하게 사용하지 말라는 주의를 받았다.

캄캄한 세상에 혼자 적응해야 할 현실은 두려움을 넘어 공포였다. 나보다 더 나쁜 놈들이 많은 세상인데 왜 나만 이런 형벌을 받아야 하는가? 분노에 사로잡힌 눈물의 시간을 거쳐 현실을 인정하는 각성의 시간에 들자 생존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현장을 쫓아다니며 사진을 찍을 수도 보정 작업을 할 수도 없어 이십여 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시력이 남아 있을 때 조용한 곳에 집도 마련하고 여생을 준비해야 한다는 초조함 때문이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그제야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난 사진만 생각하며 친구 하나 없이 참 이기적으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 필요했으나 그들을 다시 가까이 할 수 없다는 상실감에 절망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이젠 소식마저 뜸한 그들은 이미 가족이 아니다. 홀로 서야 한다. 맹인의 몸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삶에서 긍정이라는 것을 배웠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앞 못 보는 퇴역 장교 역할을 멋들어지게 연기한 주인공을 기억하며 여유를 되찾았다.

남아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들이마시는 공기가 깨끗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제주도의 한적한 동네에 거처를 마련했다. 눈을 감고 감각과 기억을 통하여 사물을 식별하고 생활 기기의 사용법을 익히며 맹인의 생활을 하나씩 준비했다. 그리고 버킷리스트에 아름다운 사진작품집 만드는 것을 넣었다. 아버지 노릇 못한 딸에게 남기는 마지막 선물을 위해서다.

 

*

 

도항선의 승객은 대충 20여 명쯤 되어 보였다. 선착장 바다는 잔잔했지만, 내항을 벗어나자 물결이 춤을 추더니 배를 뒤집어 놓을 듯 파도가 객실 유리창을 덮쳤다. 눈을 질끈 감고 의자에 앉은 채 창가의 쇠막대를 꽉 잡았다. 손님들은 배가 솟구쳤다가 곤두박질할 때마다 비명을 질렀다.

괜찮습니다. 저는 30년 경력의 선장입니다. 안심하시고 손잡이를 꽉 잡읍서라는 방송이 있었지만, 전복의 두려움을 떨쳐낼 수는 없었다. 그러길 십여 분 만에 배는 섬 안의 선착장에 도착했다. 승객들의 뒤를 따라 하선하는데 방파제로 둘러싸인 내항의 물결은 엉너리를 부리듯 살랑이며 일행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비양도는 바람 냄새부터가 달랐다. 비행기에서 보면 마치 소라 껍데기를 뒤집어 놓은 듯한 앙증맞은 섬이어서 꼭 한번 와보고 싶었다. 해안가의 기암괴석들이며 수런거리는 물결 소리가 행인들을 붙들고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다. 길가의 초등학교를 보자 불현듯 원생들 얼굴이 떠올랐으나, 고개를 흔들며 떨쳐냈다. 해방감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해안을 따라 걸으며 울담에 핀 꽃들과 검은 바위에 부딪히는 물결들을 휴대 전화에 담았다. 그리고 비양봉 오르는 길이라는 팻말을 보며 데크로 이어진 산길을 올랐다.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 금세 다리가 퍽퍽하고 숨이 찼다. 걸음을 멈추고 크게 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그래도 아직 쓸 만한 몸맨데 이런 부실 체력이라니. 헬스장 회원권 끊어놓고 몇 번 다니지도 못했으니.’

게으른 천성을 자책하면서 등 뒤로 시원한 바람을 느꼈다. 뒤돌아보니 멀리 바다 건너 풍차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 다가왔다. 다시 길을 올라 빼곡한 대나무 숲을 지나니 앞이 환히 뚫리면서 전망대가 나타났다.

먼저 올라온 사람들이 바다를 향하여 탄성을 내지르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구름이 떠다니는 파란 하늘 아래 하얀 갓을 쓴 한라산의 의젓한 풍경에 홀릴 만도 했다. 전망대 울타리 바로 옆에 삼각대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는 벙거지를 쓴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뷰파인더에 눈을 붙이고 연신 다이얼을 조작하며 셔터를 눌러댔다. 옆에 놓인 카메라 가방이나 차림새로 봐서 직업적인 사진가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뒤를 따라 정상에 있는 등대까지 돌고 다시 전망대까지 돌아왔는데 예의 그 사진가는 아직도 카메라에 매달려 있었다. 행인들의 인기척이 거슬렸는지 잠시 얼굴을 돌렸는데 낯이 익었다.

분명 어디선가 본 인상인데, 잡지나 티브이에 나오는 유명한 사진가인가?’

항구에 이르러 시계를 보니 회항선 도착할 시간이 한 시간 이상 남았다. 배에서 꼬로록 소리가 났다. 배 시간을 맞추느라 아침을 거른 생각이 났다.

마트를 겸한 식당이 보였다. 문 앞에 서 있었던 마음씨 좋게 생긴 아줌마가 이곳은 보말죽이 유명하다고 했다. 파래무침이며 대파 장아찌, 볶은 어묵, 앙증맞은 깅이() 반찬을 먼저 가져다 놓았다. 식욕을 느끼며 젓가락질을 하는데 커다란 대접에 가득 담긴 죽이 나왔다. 보말(고동)을 참기름에 볶아 만들었다는데 맛이 좋았다. 호호 불며 정신없이 먹었지만, 양이 너무 많아 반도 먹기 전에 트림이 나왔다. 다 먹고 나서야 죽이 좀 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로 입안을 헹구는데 문이 열리면서 손님이 들어왔다. 가방을 둘러메고 삼각대를 쥔 아까 그 사진가였다. 그런데 도수 높은 안경을 낀 그의 행동이 부자연스러웠다. 주변을 둘러보며 한참을 서 있다가 조심스럽게 들어오던 그가 식탁 모서리에 툭 부딪히더니 물끄러미 쳐다보고선 자리에 앉았다. 저런 몸으로 어떻게 사진을 찍을까? 벙거지와 안경을 벗은 그의 얼굴과 마주친 순간 짧은 탄성과 함께 임동윤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내 눈빛을 느꼈는지 그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안경을 닦으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안경을 썼으나 임동윤이 분명했다. 나는 놀라움에 다가갔다.

임동윤 씨 맞죠?”

그는 안경을 들고 멀뚱히 쳐다볼 뿐 알아보지 못했다.

그렇습니다만, 제가 시력이 좋지 못합니다.”

반가움에 허락도 없이 그의 앞자리에 앉았다.

어머, 이게 몇 년 만이죠? 저 윤순애에요.”

 

*

 

사람과 마주 앉은 지 오랜데 여인의 향기가 뇌를 자극했다. 그 여인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왔을 때부터 맥박이 빨라졌다. 그런데 시력이 나빠지면 보상으로 기억력은 더 예민해진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윤순애라는 이름은 기억에 없다. 낭패스러웠다. 어색한 표정으로 기억을 더듬는 사이 그녀는 다시 한 사람을 거명했다.

왜 있잖아요. 은지 친구.”

그때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 정은지하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젊은 시절 가슴에 묻어두고 그립고 아쉬워했던 이름이었다. 한때는 그 모습만 떠올려도 분홍빛 향기가 마음을 헤집어 놓던 아련한 이름이 정은지였다.

아 그랬군요. 이거 이런 우연도 있군요. 반갑습니다.”

손을 내밀어 악수했지만 윤순애라는 이름은 그래도 낯설었다.

국토순례대행진할 때 수원 원천유원지에 은지랑 놀러 가서 오리배도 태워주고 딸기도 많이 사주고 그랬잖아요?”

그제야 둘만의 오붓한 분위기에 끼어들며 수줍어하던 여학생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 냈다.

은지를 처음 만난 건 군부독재 타도 시위가 한창이던 대학교 3학년 때였다. 그때 여름방학을 이용해 국토순례대행진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대학생들이 10일간 도보 행진하는 행사가 있었다. 참가자가 천명에 가까워서 군대 조직처럼 20명 단위로 소대를 만들고 중대, 대대, 연대까지 만들었다. 그때 3학년인 내가 관리를 맡은 소대는 서울과 춘천과 경기지역 대학생으로 편성된 외인부대였다. 은지는 춘천에 있는 대학교에 다녔고 순애는 그녀의 친구였다.

일학년인 은지는 처음 보는 순간부터 눈빛이 달랐다. 참가자 사전 모임이 끝나던 날 당돌하게도 밥 사달라고 매달렸다. 소대장은 소대원들을 잘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 원천유원지에 놀러 갈 것을 제안했다. 까부는 모습이 맹랑했지만 싫지 않았다.

팔월의 땡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간혹 시골길도 걸었지만 대부분 아스팔트의 복사열을 받으며 걷는 힘든 장정이었다. 가끔 소나기가 내려 열 받은 육신을 잠시 적셔주기도 했으나, 그것이 신발을 젖게 해 발이 부르트고 물집을 키우는 역할을 했다. 모자를 벗어들고 내리는 빗방울을 온몸으로 맞이하며 신나서 펄쩍펄쩍 뛰던 은지도 오후에는 걸음이 이상해질 정도로 물집의 포로가 되었다. 시골 어린 학생들의 환영을 받으며 임시 숙소로 정해진 초등학교에 도착하면 조별로 취사를 준비하고 배당된 교실별로 달콤한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환자들은 의무실로 찾아가 치료를 받았다. 달빛 아래서 소대별로 모여 앉아 토론회를 열기도 하고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 부르며 피곤을 달래기도 했다. 난 그런 장면들과 그룹들을 촬영하느라 우리 소대원과 은지에겐 자연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은지는 그것이 못내 섭섭했는지 눈을 마주쳐도 일부러 외면했다. 그런 갈등에 심신이 지친 은지는 행진 일주일째가 되던 날 끝내 탈진하여 앰뷸런스로 이송되었다.

 

방학이 끝나고 은지가 여러 번 연락이 왔지만 자주 만날 수 없었다. 지역적인 거리감도 있었지만 난 당시 학생회 임원으로 시위를 주도하는 처지로 경찰에 쫒기는 신세였다. 지금처럼 휴대 전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인터넷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다. 하숙집 주인아줌마가 간간히 걸려오는 전화 메모를 전달해주긴 했지만, 그것도 하숙집에 있을 때 확인이 가능했다.

주말이면 은지는 청량리역에서 내려 내 하숙집에 먼저 들르곤 했다. 그러나 내가 동아리와 학생회 일로 바빠서 매번 얼굴을 볼 수 없는 게 불만이었다. 청소와 빨래를 해놓고 기다리다 예쁜 선물을 간식과 함께 장문의 편지를 써놓고 가곤 했다. 월요일 아침이면 난 미안한 마음을 담은 답장을 부쳤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단풍잎을 흔들던 어느 날 오후, 하숙집에 들렀더니 은지의 메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저녁 6시에 자주 들렀던 종로 하모니 커피숍으로 나오라는 것이다.

평일인데 학교는 어떻게 하고. 무슨 일이지?’

그날이 내 생일인 건 은지를 만나고서야 알았다. 회색 털실로 짠 조끼를 선물로 내밀었을 때 고마움과 미안함과 사랑스러움의 복합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런 분위기를 은지가 수습했다.

지금 우는 거야?”

그래 감동이다.”

난 은지의 등을 툭 쳤다.

아야. 이거 은혜를 원수로 갚네. 처음 짜 본 건데, 우리 아빠는 자기 건 줄 알고 등을 내주면서 기대를 잔뜩 했거든. 임자가 따로 있는 줄 모르고. 호호호. 어디 한번 입어 봐.”

주변의 시선도 아랑곳없이 잠바를 벗고 두꺼운 남방 위에 겹쳐 입었는데 조금 여유가 있었다.

좀 큰가?”

걱정 마. 잘 먹고 살찔게.”

어둠이 깔린 하늘에선 여전히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은지가 노란색 우산을 펴서야 노란 운동화에 하얀 물방울무늬가 있는 노란 원피스로 깔색을 맞추고 있는 것을 알았다. 우산을 들고 은지의 어깨를 살포시 껴안자 그녀의 손이 자연스럽게 허리로 왔다. 은지가 잘 안다는 명동의 경양식 집에서 저녁을 먹고 적십자회관 앞을 지나 남산 길을 걸었다.

부슬부슬 비 내리는데도 팔각정 주변에는 먼저 온 연인들이 벤치를 점령하고 있었다. 빈자리를 찾아 잠바를 벗어 깔아 은지를 앉게 했다.

안 추워?”

괜찮아. 은지의 정성을 입었잖아. 여자는 아랫도리를 따뜻하게 해야 한데.”

그 말에 은지는 입을 삐쭉 내밀며 엉덩이를 걸쳤다. 옆자리에 앉으려고 하자 은지는 잠깐하더니 깔고 앉았던 잠바를 넓게 펼쳤다.

난 한 손에 우산을 들고 다른 손으로 등을 기대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앉아 있는 은지의 어깨를 살며시 감싸 안았다. 은지가 머리를 기대왔다. 맞은편 벤치에 앉은 커플은 우산으로 앞을 가리고 있었다. 나도 들고 있던 우산을 살며시 앞으로 기울였다. 가로등에서 쏟아지는 불빛이 노란 우산에 부서지며 야릇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어깨를 감았던 손으로 은지의 턱을 드니 눈을 감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견딜 수가 없었다. 은지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갰다. 은지는 나지막하게 짧은 탄성을 내며 부르르 떨더니 상체를 돌려 내 목을 끌어안았다. 첫 키스였다.

 

*

 

축제 날 왜 안 오셨어요? 춘천역에서 한참을 기다렸는데.”

기억의 서랍 속에서 몇십 년 전 파일이 불쑥 튀어나왔다. 고등학교 때 정은지는 그저 얼굴만 알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같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제일 친한 친구가 됐다. 나는 국문과에 입학했고 은지는 가정관리과였지만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춘천 가는 열차 안에서 만나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룸메이트가 됐다. 같은 동아리에 들고 국토순례대행진에도 같이 참가했고, 동윤을 만날 때도 함께 했다. 난 내성적이어서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했으나, 은지는 부족한 것 없이 자라선지 거리낌이 없었다.

중간고사가 끝난 날. 처음 맞는 축제여서 은지는 들떠 있었다. 마지막 과목 시험을 치르고 점심도 거른 채 그간 설쳤던 잠을 달콤하게 즐기는데 은지가 흔들어 깨웠다.

야 이 기집애야. 지금 잠이 오니? 낼이 축제 날인데?”

아 왜 그래? 나 축제 안 갈 거야.”

난 귀찮다는 듯이 잠투정을 하며 이불을 뒤집어썼지만, 그걸 가만히 놓아둘 은지가 아니었다. 이내 이불은 내 몸에서 허물처럼 벗겨져 멀리 내동댕이쳐졌다.

일어나. 파트너 구해주면 되잖아.”

그 말에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동윤 씨 올 거야?”

당연하지. 친구 데리고 오라고 미리 말해 두었거든. 어서 씻고 전보 때리러 가자.”

 

은지는 틈만 나면 동윤의 이야기를 했다. 그와 만나고 온 일요일 밤은 새벽까지 얘기가 이어졌다. 은지는 편지를 쓸 때나 선물을 고를 때, 혹은 동윤 때문에 속상한 일이 있을 때면 내게 도움을 청했다. 그래서 은지의 부모가 동윤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았다. 은지는 변호사 아버지를 둔 유복한 집안의 무남독녀고, 동윤은 농사꾼 부모를 둔 지방 출신의 가난한 유학생이었다. 게다가 운동권 학생이라는 걸 안 부친이 완강하게 반대한다는 게 은지의 고민이었다.

동윤 씨도 알어?”

그걸 어떻게 말해?”

하긴 내가 부모라도 말리겠다. 생각해봐. 잘나가는 변호사가 무엇이 부족해서 시골 가난한 농사꾼의 자식, 그것도 미래가 불투명한 시위 주동자를 사위로 받아 들이겠냐구?”

샘이 나서 염장 지르는 소리를 했더니 은지는 넌 친구도 아니다며 울고불고 난리를 쳤었다.

은지는 은밀한 접선처럼 내일 오후 620분 춘천행 열차를 타시오라고 지령문 같은 전보를 보냈다. 아침부터 은지는 목욕탕엘 다녀오고, 미장원엘 들려 파마까지 했다. 평상시에 안 하던 화장까지 마치고는 일찌감치 마련한 파티복으로 갈아입고 나를 굼뜨다고 들들 볶아댔다.

축제를 알리는 각종 현수막과 포스터, 길가 나무에 매달아 놓은 풍선과 형형색색의 데커레이션과 흥겨운 음악 소리로 캠퍼스는 이미 취해 있었다.

기차 도착 예정 시간보다 30분 전에 춘천역에 도착한 은지는 화장한 얼굴이 불그스레할 정도로 들떠서 마구 말을 뱉어냈다. 그러다 표정이 심각하게 변하며 하는 말에 나는 귀를 의심했다.

난 오늘밤 일 저지를 거야. 그 방법밖에 없어.”

이제 갓 스물인 계집애의 입에서 나온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너 정말. 두렵지 않니? 그러다 임신하면 학교는 어떻게 하려구?”

이깟 대학이 문제야? 내 인생 전부가 걸린 일인데.”

그런다고 네 아빠가 허락하실까?”

안 그러면 독립하는 거지 뭐. 학교 때려치우고 오빠랑 함께 살래. 내가 일 다니면서 취직할 때까지 뒷바라지할 거야.”

그때 사랑의 힘이 위대하면서도 무섭다는 걸 알았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기차가 도착했으나 동윤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은지의 얼굴은 많이 일그러졌다. 동윤과 함께 나타날 파트너에 대한 기대가 컸기에 내 마음도 아려오며 힘이 쭉 빠져나갔다.

기차를 놓쳤나 보지, 다음 차를 기다려 보자.”

그땐 축제 다 끝날 시간인데 무슨 소용이야? 일부러 안 온 거야. 오빤 변했어. 편지를 써도 답장도 없고 무슨 말을 해도 심드렁하고 짜증만 내. 순애야 나 어떡하니?”

기어코 은지는 눈물을 쏟아내며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날 동윤 씨가 왔더라면 은지의 인생도 달라졌을 거예요.”

나 같은 놈 만났으면 평생 고생했을 겁니다. 좋은 사람 만나 잘 지내고 있지요?”

아직 소식 못 들었군요? ......작년에 세상을 떴어요.”

 

*

 

학생회 임원수련회에 참가하고 하숙집에 돌아와 보니 전보가 놓여 있었다. 가야지. 가서 오늘은 사실을 털어놓고 오해를 풀어야지. 마음을 졸이며 기다린 날이다. 시간을 확인하니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역이 가까운 곳에 있었으므로 버스를 타도 시간에 맞출 수 있으리라 믿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부리나케 샤워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하숙집 문을 나섰다. 헌데 웬일인지 학교 앞 정류장에 10여 분을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파업 때문에 노선버스 운행이 당분간 중단된다는 대자보를 발견하고서 택시를 찾았으나 승객을 태운 차뿐이었다. 한참을 기다린 후 발견한 택시는 앞에서 불쑥 나타난 사람에게 빼앗겼다. 그제야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 것을 알았다. 심장이 초침보다 빠르게 뛰는 것을 느끼며 교통이 번잡한 네거리 길로 내달렸다. 다행히 학교 쪽으로 진입하는 택시가 있었다.

아저씨 청량리역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막히지만 않는다면 10분이면 충분합니다만 퇴근 시간이라.”

“620분 기차를 타야 하는데 가능할까요?”

기사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빠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큰길을 놔두고 골목길을 누비며 달렸다. 그제야 친구를 데리고 가기로 한 약속이 생각났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택시가 골목길을 돌아 막 큰 도로변으로 나오려는 순간 갑자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흔들렸다. 차창 밖을 보니 중국집 배달통을 실은 오토바이가 쓰러져 있고 저만치 튕겨 나간 청년이 길바닥에 누워 있었다. 기사 아저씨는 시동을 끄고 내리며 화를 냈다.

임마, 앞을 살피며 달려야지, 많이 다쳤어?”

청년은 대답도 못 하고 간간이 신음만 뱉어냈다. 시계를 보니 10분이 채 안 남았다. 멀리 청량리역사가 보였다. 택시에서 내려 냅다 역을 향하여 달렸다. 택시 기사가 뒤에서 소리를 질렀지만 쫓아오지는 않았다. 사람들 사이를 헤집으며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려 역사 입구로 들어섰다. 하지만 개찰구는 닫혀 있고 기차는 서서히 역을 떠나고 있었다. 시간표를 확인하니 다음 열차는 세 시간 뒤에나 있었다. 난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아 운명이구나. 은지와의 인연은 여기까지구나.’

 

은지가 유복한 집안의 무남독녀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그녀의 사촌 오빠라는 사람을 만난 후였다. 그가 찾아와 학교 앞 커피숍에서 만났을 때 중소기업 간부의 명함을 내밀었으나 첫눈에 정보계통의 사람인 것을 알았다. 사진을 찍다 보니 인상착의만 봐도 대충 그 사람의 직업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말을 듣고 나서는 사촌 오빠가 아니라 은지 부친의 부탁을 받은 형사거나 기관원일 거라 생각됐다. 그는 나를 보자 웃었다. 초라한 내 행색을 보고 비웃고 있다는 걸 그의 말투와 행동에서 알 수 있었다. 치밀하게 계산하고 내 기를 죽이려는 게 분명했다. 그는 오랜 시간 은지 가족의 환경을 설명했다. 그리고 은지 부친의 선물이라면서 바바리코트 주머니에서 스위스제 시계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그리고 앞으로 가까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촌놈아 네 분수를 알라는 말이다. 모멸감에 치가 떨리고 분해서 욕이 저절로 나왔다. 그리곤 탁자 위의 시계를 콘크리트 바닥에 내팽개쳐 박살 내고 커피숍을 나왔다. 그날은 분하고 씁쓸해서 낮부터 폭음하며 울었다.

은지와의 거리가 생긴 것은 그때부터였다. 은지는 빈자가 넘겨볼 수 없는 보석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그놈과의 만남을 비밀로 했지만, 열패감까지 걷어낼 순 없었다. 괜히 은지만 보면 짜증이 났다. 그녀의 말에 열중하지도 않았고 월요일마다 부치던 편지도 그만두었다.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으나 은지와 거리를 좁힐 묘안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다 축제가 기회라고 생각했다.

축제를 펑크 낸 이후론 단단히 삐쳤는지 연락도 오지 않았다. 나도 면목이 없고 변명하고 싶지도 않아 연락하지 않았다. 그러다 시위 도중에 머리를 다쳐 병원 신세를 져야 했는데 연락할 방도가 없었다. 시위대와 분리되어 카메라가 박살 나고 백골단에게 무수히 얻어맞은 후유증으로 오른팔이 저리는 증상까지 생겼다. 의사의 말로는 시간이 흐르면 차차 풀릴 거라며 아령 운동으로 근력을 키우라고 했다. 퇴원 후 휴학을 하고 고향에 내려왔다.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한참 후 편지가 왔다. 반갑기도 했으나 글을 쓸 수도 대서해 줄 사람도 없어 답장 못 했다. 편지를 받을 때마다 어차피 이루지 못할 사랑이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답장이 없어도 눈물이 담긴 편지는 매일 도착했다. 그러길 한 달여, 제풀에 겨웠는지 편지는 끊겼다.

 

그리고 다시 은지를 본 것은 2년 뒤 졸업식에서였다. 식이 끝나고 교정을 배경으로 후배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낯익은 시선이 느껴졌다. 은지였다. 그녀는 화사한 옷을 입고 저만치 서서 쓸쓸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후배들이 알아차리고 둘이 찍기를 권유했으나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응하지 않았다.

졸업생과 가족들로 북적거리는 캠퍼스를 빠져 나와 지하철을 타고 하모니 커피숍에 도착할 때까지 그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평상시보다 붐비는 지하철에서 그녀는 자리에 앉고 나는 조금 떨어져 서 있었기 때문에 대화하기도 마땅치 않았다. 그녀는 지그시 눈을 감고 복잡한 감정들을 정리하는 듯했다. 손잡이에 의지하고 눈을 감자 그녀와의 행복했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눈을 떴는데 그녀의 얼굴에서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내가 내민 손수건을 받아들고 접힌 손수건을 펴가며 눈물 자국을 지웠다.

고마워요.”

손수건을 돌려주더니 핸드백에서 분첩을 꺼내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쳤다. ‘신사는 항상 손수건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던 어느 교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커피를 주문하고 나서야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었어요,”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그녀의 얼굴만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를 그렇게 박정하게 대하고, 편지 답장도 없기에 다른 여자가 생긴 줄 알았죠.”

머릿속 회로가 분주하게 돌아갔지만 마땅한 대답이 생각나지 않아 씁쓸하게 웃기만 했다. 지난 사연 변명을 하자니 구차스럽고 옹색하게 생각됐다. 울음을 참는 은지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갑갑하게 느껴졌다.

배고프지 않아? 나가자.”

낮술이나 한잔해요.”

우리는 예전에 함께 갔었던 을지로의 높은 빌딩 지하에 있는 생맥주집을 찾아갔다. 낮이었으나 졸업시즌이라 젊은이들로 붐볐다. 유니폼을 입은 알바 생이 눈치를 채고 칸막이 있는 구석 자리로 안내했다. 술과 안주를 주문받은 알바 생이 돌아가자 나는 은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미안해. 그리고 축하해 주러 와줘서 고마워.”

은지의 표정이 다시 일그러지더니 이내 내 손을 뿌리쳤다.

지금에야 무슨 소용이야.”

기어코 눈물주머니가 터진 듯 눈가에 여러 줄기의 개울을 만들었다. 나는 은지의 옆자리로 가서 다시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품에 기대는가 싶더니 고개를 들어 내 입술을 덮쳤다. 생각지도 못한 돌발적인 상황이었지만 난 눈을 감고 그녀의 입술을 받아들였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었지만 우리의 기나긴 키스는 술과 안주를 들고 온 알바 생이 눈치를 주어서야 끝났다.

 

*

 

대학 시절 동윤은 패기 넘치는 귀공자였다. 늘씬한 키에 하얀 피부, 서글서글한 눈동자와 자상한 성격에 중저음의 목소리는 첫눈에 은지의 넋을 빼놓을 만했다. 그가 자백했으나 전혀 시골 출신이라는 티가 나지 않았다. 용감한 자가 미인을 얻는다고 은지는 과감하게 대시했다. 그때 내 성격으로는 백번 죽었다가 깨어나도 그렇게 못했다. 마음에 드는 남자가 먼저 고백을 해도 우선은 뒷걸음치고 보는 성격 때문에 숱한 남자들을 놓쳤다. 잘난 것도 없으면서 그렇게 뻐기다가 혼기를 놓치고 집안의 강요로 맞선 본 남자와 한 달 만에 결혼했다. 고르다 보니 외눈박이라고 하필 사기꾼한테 걸려서 모진 고생했다. 첫인상이 낯이 익다고 생각했는데 겉모습이나 하얀 피부와 중저음의 목소리까지 동윤을 닮았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나는 은지를 통해 동윤에 대한 많은 것을 알게 되면서 그를 사모하게 됐다. 만나진 못 하지만 은지의 편지 답장 대필을 통해서 내 마음을 전했다. 은지가 부러웠다. 동윤이 바람둥이 같다고 투정부릴 때도, 너무 무심하고 냉정한 인간이라고 욕하는 장단에 맞추며 동윤을 흉보면서도 마음 한편에선 쾌감이 일었다. 그렇게 내 첫사랑은 짝사랑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질시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날 우리는 비참한 패잔병처럼 공지천변의 카페에 물색없이 죽치고 앉아 있었다. 생맥주를 시켜 놓았으나 은지는 울기만 할 뿐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달래다 지친 내가 화장실에 가느라고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돌아와 보니 웬 ROTC 교복을 입은 학생이 은지 옆에 앉아 있었다. 그는 S대 공대에 다닌다고 했고 축제에 참여하러 왔는데 바람을 맞은 신세라는 것이다. 은지는 금세 마음이 풀려 화장실로 가더니 퉁퉁 부은 얼굴을 고치고 나왔다. 분위기는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 울고불고 난리를 쳤던 은지는 간 곳 없고 우습지도 않은 농담에도 깔깔거리며 그에게 빠져들었다. 마지막 기차 도착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은지는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 새끼 필요 없어. 너나 가져.”

그들을 두고 혼자 역으로 갔다. 날씨가 찼으나 동윤이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옷깃을 여미며 기다렸다. 한참 후, 긴 트림을 하며 기차는 도착했고 이내 개찰구를 통하여 승객들이 나왔다. 그러나 몇 되지 않은 사람들 속에서 그를 찾을 수 없었다. 출입문이 닫히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공지천을 거슬러 온 강바람이 시린 마음을 마구 헤집었으나 어떤 희열 같은 게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마음을 평정했다. 카페로 돌아왔는데 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날 열차를 타고 동윤이 나타났더라면 은지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 인생이 바뀌었을 것이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 동윤에 대해 어떤 소식도 들을 수 없었고, 친구와의 의리 아니 내 성격상 수소문하거나 찾아다니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인연인가? 숱한 세월이 흐른 뒤 여행지에서 오래된 추억을 만나다니?

세월이 그를 성숙 시켰다기보다 온전치 못한 시력이 그를 억누르는 것 같았다. 말수도 줄었고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배를 타고 내릴 때는 부축을 해야 했고 시야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그는 자그만 돌부리에도 채여 뒤뚱거렸다.

날씨가 밝은 날은 그래도 좀 나은데 어두운 곳에선 영...”

쓰러지려는 몸을 부축하자 그가 변명처럼 내뱉었다.

렌트한 차에 그를 태우고 해안가를 따라 시내로 들어오는 길이었다. 눈을 감고 음악을 감상하는 줄 알았는데 그의 안경 밑으로 눈물 줄기가 보였다. 난 모른 척하며 바다를 바라봤다. 눈 부신 햇살을 받은 물빛이 환상적이었다. 바다는 한 가지 색이 아니었다. 같은 햇빛을 받으면서도 어떤 곳은 파랗고, 어떤 곳은 검었고, 어떤 곳은 에메랄드빛으로 반짝거렸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 예술 그 자체네요?”

의자에 기댔던 동윤이 슬며시 눈가를 훔치더니 몸을 앞으로 당기며 설명했다.

환상적이죠? 햇빛은 바다 내부를 관통하죠. 저기 파란 것은 모래가 있는 곳이고, 검은 곳은 암석이 있는 곳이죠. 사람의 삶도 그래요. 같은 세상을 살아도 빛깔이 다 다르잖아요. 그래서 바다는 많은 영감을 주죠.”

돌아오는 길에 모래가 있는 해변에 들리자고 했다. 겨울이지만 스산한 정경이 아주 좋다고 했다. 차를 세우자 그는 카메라를 들고 모래톱으로 갔다. 나는 벤치가 놓여 있는 언덕에 올라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해변에는 갈매기를 향해 먹이를 공중에 던지며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소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무릎을 굽혀 카메라 앵글을 맞추고 그 광경을 멀리서 찍었다.

바람은 그렇게 차지 않았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옛 생각이 났다. 그 웬수가 다이아 반지를 내밀며 프러포즈한 것이 인천 강화도의 해변이었다. 죽도록 행복하게 해주겠노라며 뺀질거리며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가 노름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결국 싸움에 휘말려 죽고 나서야, 두 번이나 혼인했던 이력을 알았다. 그것이 임신 5개월이 지나서였는데 그래도 출산을 해야 한다는 엄마와 이모의 권유를 뿌리치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낙태를 시켰다. 그리고서 겪게 된 산후 후유증과 온갖 심적 압박 때문에 한동안 남자는 쳐다보지 않고 살았다. 진저리를 치며 생각을 지우는데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렸다. 동윤이 가까이에서 내 모습을 찍고 있었다. 손을 들고 웃음으로 포즈를 취하자 계속해서 셔터를 눌러댔다. 카메라를 가방에 넣으며 동윤이 말했다.

은지를 오래 전 동아리 송년회에서 봤어요. 그때는 참 좋아 보이던데. 남편인 듯한 사람과 함께 있어서 말은 못 하고 눈인사만 했어요.”

그는 아직도 은지를 생각하는 걸까?

은지는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갔어요. 그때 축제 날 우연히 만난 사람과 연애하다 결혼했지요. 헌데 암에 걸려 10여 년 만에 귀국했어요. 용하다는 의사를 찾아 수술하곤 다 나은 줄 알았죠. 그래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사하며 살자고 장애인복지원을 운영했어요.”

그 말을 하고 동윤을 보다 퍼뜩, 동윤과 은지는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윤은 카메라 가방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 멀리 수평선을 응시했다.

이런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 살았으면 병도 안 걸리고 오래 살았을 텐데.”

대답이 없다.

이런 곳에서 반려자와 함께 여생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넋두리처럼 말을 했으나 그는 면벽한 보살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깊은 화두에 빠진 듯했다. ‘, 내가 무슨 말을 했지?’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고 자책하는데 그가 생뚱맞은 화답을 했다.

“‘자신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누군가는 도망가고 누군가는 남는다.’ 여인의 향기란 영화에서 알파치노가 한 말이죠.”

난 그 말의 의미를 몰라서 화제를 돌렸다.

자식은 몇이나 두셨어요?”

사진에 미치다 보니 가정을 돌보지 못했어요. 친분이 있던 디자이너의 제자들 의상발표회에서 사진을 찍다 만나 결혼했죠. 그 후로 난 그녀의 전속 기사가 됐고 한때 잘나갔죠. 그렇게 잘나가게 되니 욕심을 내더라고요. 딸애가 초등학교를 마치자 제 언니 있는 미국으로 갔어요. 애 교육이 핑계였지만 본 바닥에 가서 디자인 공부를 하고 싶었던 거죠. 다 이해해요. 아내는 꽤 재능이 있었으니까. 그게 젊음의 특권이죠.”

함께 가지 그랬어요?”

그땐 내 일이 있었고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말도 통하지 않은 외국에 건너가서 적응한다는 게 두렵더군요. 안존한 환경을 버리기가 그리 쉽나요? 조명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뜨거운 열 받으며 조명을 비추는 사람도 있어야 하잖아요,”

그의 얼굴에 처음으로 희열이 번지는 것을 보았다. 설핏 젊은 시절 아름다운 모습이 되살아났다.

애는 많이 컸겠어요?”

딸도 의상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어렸을 땐 방학 때마다 왔는데 철이 드니 바쁜가 봐요. 대학 졸업 발표회 준비에 취직도 해야 할 거구. 전화는 가끔 와요. 난 지금 우리 줄리의 졸업 선물을 준비하는 중이죠. 멋진 앨범을 만들어 보낼 거예요.”

그의 표정이 도로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가끔 오던 전화도 끊긴 지 오래됐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오랜만에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아주 오래된 친구를 만난 기분. 속을 털어놓고 무슨 말을 해도 이해해 줄 것 같은 품이 꽤 넉넉한 여자 같다. 이런 친구가 이웃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는 저녁을 먹고 노래 부르러 가자고 했다. 노래방은 명도가 낮아 사물의 윤곽만 겨우 확인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녀는 첫 곡으로 이선희의 인연을 불렀다. 노래가 시작되자 조명이 꺼지고 모니터의 강렬한 빛과 소리가 어지럽게 실내를 휘감았다. 나는 눈을 감고 노래를 음미했다. 그런데 갑자기 소름이 돋으며 짠한 기운이 몰려왔다.

운명이라고 하죠. 거부할 수가 없죠, 내 생애 이처럼 아름다운 날 또다시 올 수 있을까요

그 대목을 듣는 순간 기어코 눈물이 흘러내렸다. 주책맞다고 생각하며 얼른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다행히 순애는 노래에 심취해 있었다. 노래를 마치자 실내는 다시 환해졌고 내 순서라며 노래를 청했다. 나는 쭈뼛거리며 말했다.

“...... 아는 노래가 없어요.”

그제야 그녀가 눈치를 챘다.

, 죄송해요. 내 생각만 했군요.”

가사를 아는 옛 노래가 있긴 하지만 부를 기분이 아니군요.”

그녀는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가방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 몇 장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이게 은지가 설립한 광명원이에요. 농아와 맹아를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어요. 지금은 내가 원장이죠.”

그녀가 내민 휴대 전화를 받아 손가락으로 넘기면서 여러 장의 사진을 봤다. 밝은 아이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이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다면 오세요. 제가 지켜 드릴게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내가 잘못 들었나? 휴대 전화에서 눈을 떼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용기 있게 말을 이었다.

외로운 사람끼리 의지하고 벗하며 살아요. 저 예전에 많이 좋아했어요. 은지 답장 내가 쓴 거 모르셨죠?”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 우두망찰 앉아 있을 뿐인데 그녀는 무안했는지 일어섰다.

제가 너무 무례했다면 용서하세요. 이제 나갈까요?”

그녀는 나를 외면하며 가방을 챙겼다. 난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살고 싶다고 했죠? 오세요. 환영합니다. 아 참 아까 노래 괜찮던데 한 번만 더 불러 줄 수 있겠소?”

노래 부르는 그녀의 표정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으나 다리가 풀려 일어설 수 없었다.

고달픈 길에 당신은 선물인걸. 이 사랑 녹슬지 않도록 늘 닦아 비출게요.’

인연은 따로 있었나 보다. 먼길 돌아서 그녀가 왔다. 동행이 있다면 어떤 여행도 외롭지 않으리라. 눈앞이 점점 환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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