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
김명지
지금은 그 곳엔
제 몸에 불을 지르며 피어나는 꽃들로
눈길 닿는 곳마다 난리가 났을 테지
도솔암 오르는 길목
다투듯 키를 맞춘 사랑들이 무더기로
신열을 고하고 있을 테지
비문을 몸속 깊숙이 품은
마애불이
지긋한 눈빛으로 그 사랑을 독려하고 있을 터
우거에 홀로 앉아
먼 그곳
갸륵한 꽃빛을 그리워하며
빈 하늘에 붉은 꽃 한송이 그려 넣을 수 밖에
무릇,
세상 모든 사랑은 붉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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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 비밀문서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 고창 선운사 도솔암 오르는 양쪽 길가에는 상사화(꽃무릇)가 지천으로 붉게 핀다.
도솔암 암자 옆 커다란 절벽에는 누군가 조각한 마애불상이 있다.
마애불상 품안에 비밀문서가 있다고 일본제국주의 시절에 불상 품을 파헤친 자가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