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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 벤치

십일월

강용준 2023. 11. 19. 09:45

2023년 11월에 출간된 김이듬 시인 시집

 

십일월

                                                김이듬

 

차라리 저수지에 몸을 던지겠어

 

마음이 지는 소리를 듣는다

 

나무가 씨앗의 기억으로 자란다면

나는 떠날 수 있기만을 꿈꾸었다

뿌리를 뻗어 이동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잎을 통해 햇살을 열망했던 나무가

셀 수 없는 잎사귀들을 멀리 보낸다

 

추락하는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

 

나는 활엽수 같아서

손바닥만한 마음을 가졌구나

셀 수 없이 많은 

알 수 없이 좀스러운

 

매년 나는 환희의 나무에 관하여 쓰려고 했으나

몇 번이나 실패했다

 

이제 내 마음은 낙엽 되어 바스러진다

말라비틀어진 채 나무에 붙어 있기가 부담스러웠을 것

이다

 

처음 날아본다 나무는

낙엽의 형식으로

자신으로부터 가장 멀리 갈 수 있다

환희와 슬픔이 섞인 모순적인 마음으로

 

낙엽은 나뭇잎의 본색이다

겉보기만 화려하지

아무 것도 남는게 없는

내 마음

 

나는 너를 끊어낸다

 

낙엽이 물 속에 가득하다

가물가물한 노래의 후렴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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